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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 수학을 아는 만큼 영화의 재미도 더 많이 느낄 수가 있다.
13  쭈니 2022.03.15 16:24:35
조회 207 댓글 2 신고

감독 : 박동훈

주연 : 최민식, 김동휘, 박병은

수학을 아는 만큼 영화의 재미도 더 많이 느낄 수가 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중학교 때였을 것이다. 인수분해를 배우는 시간이었는데 수학 선생님이 칠판에 공식을 쓰더니 무조건 외우라고 했다. 어떻게 이 공식이 성립되는지는 설명조차 없었다. 이걸 외우지 못하면 앞으로 수학은 포기해야 한다며 엄포를 놓았고, 공식을 외우지 못한 학생에겐 모진 매질을 해댔다. 나는 반항기가 가득한 사춘기 소년이었다. 수학 선생님의 막무가내식 협박을 순순히 따를 생각이 없었다. 나의 반항심은 수학으로 옮겨붙었고, 너무나도 당당하게 '수학 따위 몰라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라며 수포자임을 선언했다. 지금은 물론 후회한다. 그때 수학 선생님이 시킨 대로 이유는 따지지 말고 인수분해 공식을 달달 외웠다면, 나는 좀 더 좋은 대학에 가고, 좀 더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아들은 수학을 좋아한다.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인수분해 공식조차 외우지 않은 나로서는 절대로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공식들을 아들은 술술 풀어 낸다. 다행이다. 날 닮지 않아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라는 수포자 입장에서는 거부감이 드는 영화가 개봉했다. 만약 이 영화를 혼자 봐야 한다면 나는 극장 관람을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과 함께 볼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단 아들에게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라는 영화가 개봉하는데, 너처럼 수학을 잘 하는 사람이 영화를 본다면 수학을 아는 만큼 영화의 재미도 더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꼬드겼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들이 흔쾌히 관람을 승낙했다. 영화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아니면 요즘 갱년기 증상으로 잘 삐치는 아빠에 대한 배려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요일 아침, 반가운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보고 왔다. 예상했던 대로 영화에는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학 공식들이 잔뜩 나왔고, 이를 토대로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가 완성되었다. 당연히 나는 영화에서 나오는 수학 공식들을 배제한 채 이학성(최민식)과 한지우(김동휘)의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에 포커스를 맞추며 영화를 봤다. 한마디로 영화를 절반만 즐긴 셈이다. 그와는 달리 아들은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온전히 즐기고 있었다. 확실히 아는 만큼 재미있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역시 그러했다.

상위 1% 영재들이 모인 자사고에서 생긴 차별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상위 1% 영재들이 모인 자사고, 동훈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어렸을 적에 음주운전 차량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지우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노력해서 남들이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동훈고에 사회배려 계층 전형으로 입학한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지우는 학교에서 나름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이었지만 주말마다 거액의 일타강사 수업을 받는 동기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급기야 담임인 김근호(박병은)에게 일반고로 전학을 권유받는 처지가 된다. 하지만 자신만 보고 살아온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동훈고에서 살아남으려면 수학 성적을 올려야 한다. 그때 지우에게 구세주처럼 나타난 것이 학교 경비원 학성이다.

북한에서 수학 천재로 추앙받던 학성은 학문의 자유를 위해 탈북하여 남한에 온다. 하지만 탈북자라는 꼬리표는 남한에서 차별의 이유가 되었고, 이를 참지 못한 학성의 아들은 월북을 하려다가 총에 맞아 사망한다. 이에 대한 충격으로 학성은 수학자로서의 명성을 뒤로하고 동훈고의 경비원으로 은둔의 삶을 선택한다. 학생들에게 인민군이라는 별명을 들으며 기피 대상 1호인 그는 어느 날 학교에 몰래 술을 반입하려던 지우를 적발한 사건을 계기로 지우와 친분을 맺게 되고, 지우에게서 죽은 아들의 모습을 발견한 학성은 지우를 위해 수학을 가르쳐 준다. 학성의 가르침 속에 지우의 수학 실력은 나날이 발전해 나간다.

기본적으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차별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지우는 동훈고 내에서 차별받는 학생이다. 기본적으로 웬만큼 사는 사람들이 모인 자사고에서 지우는 은근히 따돌림을 당한다. 기숙사 동기들의 강요로 학교에 몰래 술을 반입하다가 걸렸지만 그는 '나 혼자 마시려고 했다.'라며 모든 것을 혼자 뒤집어쓴다. 그런 지우에게 5만 원짜리 지폐를 내민 기숙사 동기는 친구끼리 이런 건 필요 없다는 지우의 말에 떨떠름한 표정을 짓다. 그 장면에서 함축적으로 그들이 지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드러난다. 학교 선생님들도 사회배려 계층 전형으로 입학한 아이들을 귀찮아 하긴 마찬가지이다. 학성이 지우의 수학 공부를 돕기로 결정한 데에는 그렇게 차별받는 지우의 모습에서 탈북자라고 차별받던 아들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수학을 잘 하는 방법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중학교 때 수학 선생님이 인수분해 공식을 무작정 외우라고 강요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수학에 재미를 붙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건 수포자의 비겁한 변명이다. 그때 수학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도 나중에라도 언제든 나는 수학을 포기했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수학을 포기하지 않을 의지가 있었다면 나중에라도 언제든 혼자 인수분해를 공부해서 반 친구들과 진도를 맞출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수포자가 된 것은 강압적인 수학 선생님 때문만은 아니다. 결국 나 자신의 의지 때문이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누군가 내게 수학이 무작정 공식을 외워야 하는 지루한 학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면 지금보다 나는 수학을 더 좋아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학성이 지우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방법이 바로 그러하다. 지금 당장 수학 성적을 올리려면 공식을 달달 외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하지만 학성은 그런 쉬운 길보다는 빙 돌아가는 어려운 길을 선택한다. 수학 문제의 답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밤새 하나의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게끔 만듦으로써 수학과 친해지도록 유도한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 달달 외우는 것은 단시간적으로 효과를 볼 수도 있지만, 결국 내 것이 아니라서 금방 잊게 된다. 학성은 이렇게 지우에게 수학의 기초부터 탄탄하게 천천히 쌓아 올라가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그 효과는 당장은 아니지만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학성과 비교가 되는 것은 근호의 교육법이다. 근호가 낸 수학 문제에 대해서 지우는 문제 풀이가 틀렸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근호는 지우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라면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럴듯한 헛소리를 지껄인다. 틀린 문제에서 어떻게 올바른 답이 나오겠냐는 지우에게 근호는 오히려 혼을 내며 교실에서 내쫓아 버린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 장면에서 나왔던 수학 문제는 2009학년도 6월 모의평가에서 실제로 출제된 문제였다고 한다. 당시 평가원은 문제의 오류를 인정해서 복수 정답 처리를 했다고 하니 결국 근호는 틀렸고, 지우가 맞았다. 나의 학창 시절 수학 선생님은 항상 근호 같았다. 만약 내게도 학성 같은 수학 선생님이 있었더라면... 이 영화를 보며 자꾸 부질없는 수포자의 비겁한 변명이 하고 싶어졌다.

이상한 나라를 탈출했더니, 더 이상한 나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학이라는 학문은 참 오묘하다. 0에서 9까지 열 개의 아라비아 숫자와 온갖 괴상한 기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사실 수학 하나만 놓고 본다면 내가 중학교 시절 선언했던 것처럼 인생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회사에서 회계 관리자로 일하고 있지만 간단한 산수만 할 줄 안다면 나머지는 컴퓨터가 다 알아서 계산을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학이 전혀 쓸모없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우리의 삶에 수학은 알게 모르게 깊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 생활에서 사용하는 단순한 물건에서부터 첨단 과학에 이르기까지 수학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수학의 발전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인류 문명의 발전 또한 없었을 것이다.

학성은 그저 수학이 좋았다. 수학을 바라보는 학성은 깊은 사랑에 빠진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그가 왜 탈북을 했을까? 학성은 북한에서 수학은 그저 무기를 만드는데 이용이 되었을 뿐이라고 회상한다. 자신이 그토록 깊이 사랑하는 수학이 인간을 죽이는 잔인한 무기를 만드는데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학성은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그 정도로 학성에게 있어서 수학은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남한에서 그는 수학과 제대로 된 사랑에 빠질 수 있었을까? 그것도 아니다. 학성은 남한에 왔더니 수학을 그저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된다고 한탄한다.

이 영화의 제목은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이다. '수학자'는 당연히 학성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상한 나라'는 어디를 뜻하는 것일까? 북한과 남한, 이 두 곳이 모두 학성 입장에서는 '이상한 나라'였을 것이다. 수학이라는 아름다운 학문을 끔찍한 무기를 만드는데 이용했던 북한도, 고작 좋은 대학,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남한도, 학성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나라'였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학성과 지우가 재회한 곳은 북한도, 남한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학성은 행복해 보였다. 그저 순수하게 수학이라는 학문의 아름다움에 빠질 수 있는 곳. 그러한 곳이야말로 학성 입장에서는 '이상한 나라'가 아닌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었을까?

너무 작위적이더라도 해피엔딩이 잘 어울렸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영화이다. 학성과 지우의 우정을 통해 영화는 많은 이야기를 담아낸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 그리고 결과만 중요시하는 입시 제도의 문제점, 그리고 교육 현장의 추악한 이면까지. 지질학이라는 자연과학에 자신의 인생을 올인하겠다고 선언한 아들의 입장에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의 주제는 더욱 마음에 와닿았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짧게 '재미있었어요.'라는 한마디만 하는 무뚝뚝한 녀석이지만, 슬쩍 아들의 표정을 살펴보니 만족감이 배어 나왔다. 최민식의 연기는 역시 명불허전이었고, 젊은 배우인 김동휘, 조윤서의 싱그러운 연기도 최민식의 노련한 연기와 잘 어울렸다. (나의 아들에게도 보람이 같은 귀여운 여자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 ^^)

물론 깐깐하게 평가를 한다면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 백 점 만점을 주기는 어렵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너무 낙천적인 결말이다. 솔직히 이 영화가 현실이라면 학성과 지우가 처한 상황은 더욱 안 좋았을 것이다. 특히 시험지를 빼돌렸다는 누명을 쓴 지우가 빠져나갈 구멍은 없어 보인다. 영화에서는 학성이 자신의 유명세를 등에 업고 지우의 누명을 벗겨 주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화니까 가능한 해피엔딩이다. 학성이 리만 가설을 증명한 천재 수학자라는 사실을 증언해 줄 사람이 때마침 학교 강당에 있었기 때문에 며칠 전까지만 해도 경비원에 불과했던 그의 말을 다른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준 것이다. 학성이 수년 전 밝혔던 리만 가설 증명이 왜 갑자기 화제가 되었는지도 영화에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학성의 논문이 어딘가에 숨어 있디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일까? 이렇게 낙천적인 결말은 관객 입장에서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져 오히려 감동을 해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좋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가슴이 따뜻해졌기 때문이다. 너무 작위적인 결말이었지만 너무 현실적인 비극으로 영화가 끝이 났다면 영화를 보고 나서도 하루 종일 찝찝함 때문에 짜증이 났을 것이다. 여운이 오래 남는 비극적인 결말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만큼은 너무 작위적이더라도 해피엔딩이 잘 어울렸다. 수학이라는 학문은 이름만 들어도 내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조금은 아름다운 학문으로 느껴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수학에 다시 도전해 볼 용기가 나지는 않지만 수학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조금은 사라질 것 같다. 고맙다. 잠시 이상한 나라에 머물다간 천재 수학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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