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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톳불, 눈발, 해장국 / 신경림
뚜르 2023.01.29 09: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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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톳불, 눈발, 해장국  / 신경림

 

새벽 장바닥에 화톳불이 탄다

누더기가 타고 운동화가 탄다

구두닦이와 우유배달이 서서 불을 쬔다

매운 바람은 불꽃을 날리고

널조각이 탄다 삭정이가 탄다

가겟문 여는 소리 가래 뱉는 소리

이른 장바닥에 눈발이 날린다

부드럽고 가는 눈발이 날린다

신문배달 오토바이와 쓰레기차에 날린다

방법대원의 움츠린 어깨 위에 날린다

포장마차에 날리고 채소더미에 날린다

채소더미 뒤 대폿집에서 해장국이 끓는다

담뱃자국 곰보식탁에 미장이가 앉았다

운전수가 앉았고 청소원이 앉았다

뜨거운 국물들을 훌훌 마신다

밝아오는 장바닥에 화톳불이 탄다

화톳불 위에 눈발이 날린다

눈발 속에서 해장국이 끓는다

삐걱대는 걸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뜨거운 국물들을 훌훌 마신다

언청이도 마시고 곰배팔이도 마신다

낚시꾼도 마시고 장꾼도 마신다

들이치는 눈발 머리칼에 맞으며

더러는 언 어깨들을 기댄다

새봄 이른 새벽 화톳불이 탄다

지난 겨울의 쓰레기들이 타고

너절한 것들 더러운 것들이 탄다

부끄러운 것들이 탄다 잊고 싶었던 것

버리고 싶었던 것들이 탄다

화톳불 위에 눈발이 날리고

눈발 속에서 해장국이 끓는다

 

- 신경림,『쓰러진 자의 꿈』(창작과비평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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