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전체보기 즐겨찾기
바람부는 언덕에 앉아 모바일등록
김별 2022.12.30 02:21:06
조회 342 댓글 1 신고

바람 부는 언덕에 앉아 / 김별 

 

타는 노을도 없이 날이 저무는 

바람 부는 언덕에 앉아 

쑥부쟁이 한 송이 꺾어 

향기를 맡아보다가 

꽃잎을 뜯어 한 장 한 장 뿌려 봅니다

 

꽃잎이 마르고 겨울이 오도록 

늘 그렇게만 살았습니다 

땀이 식으며 이내 등줄기에 한기가 도는데 팔꿈치며 목덜미에 긁힌 상처는 조금씩 아려 오고 

아물지 않은 딱지를 떼다가 덧나는 상처는 욕이 되었거나 빚이 되었거나 두고두고 삭여야 할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미워하는 사람은 미워한다는 이유로 모두 떠나고 혼자 남아 돌아보거니 

누군가 있었기는 있었는지 

누구를 잃기는 잃은 건지 

아무것도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가슴을 관통하고 휑하니 가버린 사람들 

여기 바람부는 언덕에 앉아 뿌리는 꽃잎처럼 

아름다움이었다가 

향기를 잃고 시들어 남이 되어버린 

그 채워주지 못한 가슴들은 

어차피 모두가 타인들은 아니었는지 

이제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소리 죽여 가만히 불러볼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황량함이 

다시 견딘 하루를 낯설고 쓸쓸하게 합니다

 

절정을 향해 타오를 봄의 출발보다 

잔뜩 움츠린 어깨가 아직은 버리지 못한 몸을 지탱합니다 

추위가 아니라도 겨울은 따듯함이 그립기에 

주머니난로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으련만 탄불 꺼진 썰렁한 방처럼 

마음은 이미 흐름을 멈추어버린 강물처럼 쩡쩡 얼어버려 

불을 밝힌 꽃상여가 눈발 날리는 얼음 위를 상엿소리 앞세워 건너는 헛것을 보다가 

핑 눈물이 돌아 맹하니 막혀버린 코를 풀어도 

속은 답답하기만 하고 무엇 하나 시원한 것이 없습니다 

 

아직 꿈속에서조차 아득히 어른거리는 봄은 서로가 팽팽히 당기는 줄다리기보다 더 힘겨워 

눈 쌓인 능선 겨울나무 우듬지에 

야속히도 감당 못 해 쏟아지는 

눈의 무게를 더해 

입술이 터지고 목이 잠겨 이른 열병을 지독히 앓아야만 할 것 같습니다

 

맞으려 해도 손 내밀 수도 부를 용기도 힘도 없어 

빈방을 꽝 닫고 이불을 뒤집어쓰는 것으로 차라리 고통을 다 못 이긴 눈물을 삼켜야 할 것 같습니다 

이맘때면 한없이 약해지기만 하는 마음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잊고 지고 꽃은 피어도 먼 강물로 돌아누워 버린 세월 

바위 같던 의지는 모래성처럼 술술 허물어져 

폭풍처럼 일어서던 자신감을 다시 잃어갑니다 

 

보름날 바람 속에서 돌리는 아이들의 불깡통보다 위험한 계절의 위험한 그리움 채울 수 없는 동굴 같은 공허조차 봄바람처럼 변덕스러워 어느 글로도 말로도 몸부림으로도 콱 막혀버리는 돌덩이 같은 응어리를 토할 수도 삼킬 수도 없어

 

손가락 마디마디를 비명을 토하도록 찔러 검은 피를 햇솜 가득 찍어내어도 돌아서면 보여줄 후련한 사연이 되지 못한 허물어진 추신의 산더미만 겹겹이 쌓이고 쌓여 말라버린 검불더미에 기어이 불을 질러 진달래꽃처럼 온 산을 활활 태웠으면 좋으련만 

아직 귓볼이 따가운 바람 거센 언덕에 앉아 술 마신 사람처럼 이기지 못한 감정이 솟구친 걸까요 

 

사무침은 스스로에게 당긴 시위가 되고 

몇 대의 살을 맞고도 숨을 거두지 못한 짐슴처럼 

숨을 헐떡거리다 혼절하고 깨어난 듯 

아주 딴 사람이 되었다가

꾸역꾸역 다 못 삼킨 넋두리를 내뱉다가

 

불길처럼 타오르는 목젖을 다스리지 못한 갈증이

오히려 덜 뜬 텁텁한 술맛이 되었습니다 잊고 살다가 언제나 침묵보다 못한 불덩이가 됩니다 

마음을 열어도 아직 열길 속을 다 풀어헤칠 강이 없습니다 

 

동상 입은 상처에 연고라도 발라야 하건만

이불 속에서도 시리고 저린 발을 주무르다

솟구치는 서러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밤을 새워 폭포수같은 눈물을 쏟아놓아도 애초에 그것은 욕심보다 못한 어리석음이었나 봅니다 

그렇지만 이제 알았습니다 

긴긴 겨우내 

그리고 잠들 수 없었던 몇 며칠

나를 감싸고 돌던 알 수 없는 슬픔의 이유를... 

 

그 일어설 수 없는 슬픔의 이유만큼 

시린 등을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 종일토록 그늘진 곳에 한 줌 햇살 같은 따듯함을 보태줄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오히려 지쳐 쓰러져 감당할 수 없는 만신창이의 몸뚱이를 기대고 싶을 뿐입니다 

 

동목가지처럼 언 손을 그대 따듯한 가슴에 묻어 녹이고 싶습니다 

기꺼이 가슴을 내어 비수같이 찬 손을 녹여 주시겠는지요 

눈 덮인 벌판을 떠나지 못하는 상처 입은 짐승의 목숨을 

꽃 보던 눈으로 꽃잎을 따던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겠는지요

 

이제 체념도 아니게 지천으로 터져 나올 꽃을 향한 열정도 아니게 

바람 부는 언덕에 앉아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남은 여정을 향해 

메마른 꽃잎의 살점을 뚝 뚝 띄워봅니다 

그렇게 몇 번을 봄이 가고 오고 아무리 기다려도 무지개를 만들지 못하는 혼자 몸부림에 강물 넘던 떠나버린 날들은 살벌한 여백의 벌판에 겨우살이로 파랗게 혼자 살아남아서 

주체할 수 없이 솟구치는 가득한 물마루 너머로 

덧없이 잔인한 봄을 맞다가 

세월은 그렇게 몇 해를 아파 

만신창이로 아파 

더는 손 쓸 수 없어 마지막 끈을 놓아버려도 다시 온 계절은 나를 와르르 무너지게 합니다 

정말 이대로 남은 날들을 견딜 자신이 없습니다 

 

쑥부쟁이 옆에서 원없이 흔들리다 

흔적도 없이 

생목숨을 이대로 벌판에 묻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활활 타오를 그대를 두고 

영영... 영영... 

 

*****


 

제목 작성자 조회수 작성일
3월의 기도 / 정심 김덕성  file 뚜르 335 23.03.01
인생이라는 모래시계   뚜르 371 23.03.01
도전에 관한 명언 짧은좋은글모음   바운드 224 23.03.01
봄 이야기 2   곽춘진 248 23.03.01
[사순절 7일]병을 고치는 믿음   해피니스23 148 23.03.01
날마다 맞이하는 오늘   직은섬 288 23.03.01
♡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file (2) 청암 243 23.03.01
대한민국은 진정 해방되었는가?  file 모바일등록 초로김 488 23.03.01
삼일절의 기도   도토리 96 23.03.01
이재명  file 모바일등록 (2) 김별 316 23.02.28
♡ 그대가 있어 편안하다  file (4) 청암 298 23.02.28
[사순절 6일]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2) 해피니스23 158 23.02.28
연꽃 묵상   (2) 도토리 136 23.02.28
사랑한다. 2월! /윤보영   (6) 뚜르 202 23.02.28
김연아가 아름답고 대단한 이유   (4) 뚜르 216 23.02.28
주름에 대하여   (4) 뚜르 201 23.02.28
우리 이제 봄을 준비 해요   (2) 직은섬 238 23.02.28
네 번째 걸음마  file 모바일등록 (2) 김별 200 23.02.27
가슴 일렁이는 말  file 솔새 323 23.02.27
[사순절 5일]원수를 사랑하라   해피니스23 177 23.02.27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