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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살아남기 - 최금진
100 뚜르 2022.01.24 07:07:11
조회 159 댓글 0 신고

서울에서 살아남기 - 최금진

—대학 새내기들을 위하여

사람들과 통성명을 할 때

돌아와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일단 무조건 거만해야 한다

엔젤이라고 발음하는 너의 콩글리시에는 천사가 살지 않는다

서울에 천사가 있다면 그건 CCTV일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늦은 밤엔

최대한 예쁘게 포즈를 잡아도 좋다, CCTV가 너를 지킨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하는 것인가, 그렇다

고생은 가치 있는 것인가, 아니다

항복, 할복, 무엇이 행복을 위해 더 명예롭고 윤리적인가

학교를 그만둔다 해도 나무랄 사람은 시골에 계신 부모님뿐이고

잉여인간, 너 같은 애들은 값싼 정부미처럼 창고에 넘친다

교양시간에 배운 플라톤을 성공한 사회사업가라고 말해도 좋다

서울에 개나리가 지천으로 핀다고 해서

그게 백합과인지 나리꽃과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난센스

아프면 전기장판 깔고, 아스피린 따위의 값싼 약이나 먹고 자라

전기요금은 늙고 병든 네 부모의 몫이니까 마음껏 쓰고

성적 욕망이라고 부르기엔 왠지 거룩한 연애 감정이

가스 배관을 타고 도둑놈처럼 방문을 두드릴 때

다 줘버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인생 한 방에 간다

무조건 거만해야 한다

거만하지 않으면 자신만 거만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항복, 할복, 모든 선택은 성적순이며

지하철역에서 무장공비처럼 누워 자는 사내들도 한때는

전투적으로 국가 교육과정을 이수한 자들

황달이 든 너의 얼굴과

고향에 지천으로 피던 민들레꽃이 심리적으로 일치할 때

결핍을 상징하는 그 노란색이 아지랑이처럼 자꾸 어른거릴 때

게임 오버, 넌 끝난 거다

서울 시내 CCTV는 일만팔천 대

너 같은 애들은 하루에고 수없이 녹화되고, 재생되고, 지워진다

대학은 나와야 사람 구실 한다고, 네 늙은 아비는 울었지만

빚쟁이로 시작해서 베짱이로 끝나는 대학

열심히 공부해라, 열심히 하다 보면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일만 산더미처럼 쌓이게 될 것이다

입학과 동시에 심각하게 휴학을 고민한 지도 벌써 여러 날

울지 마라, 비로소 너도 서울의 시민이다

시집『황금을 찾아서』

 

<블로그 '시와 음악이 머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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