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묵이 아저씨는 풀썩 웃으면서 난나의 머리위에 손을 얹었다.
바다 쪽으로 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 속에는 새하얀 겨울 파도소리가
쏴아하고 실려 있었다.

"영구 고모한테 장가들려고 한다."
"정말이예요?"
"정말이고 말고. 오늘 새벽에 당산에 가서 정한수 떠놓고
맹세하고 오는 길인데."

난나는 좀체로 믿기지가 않았다. 동묵이 아저씨가 기어이 영구
고모와 결혼을 하려고 하다니......
난나도 옛일에 대해선 좀 알고 있었다. 동묵이 아저씨가 영구
고모를 얼마나 연모해 왔는지를. 난나와 영구를 통해서도 몇번
인가 이런 사모하는 마음을 전해보려고 한 적이 있었다. 전복을
따오거나 해의를 뜯어 와서 전달케 한 것이라든지.
그러나 영구 고모는 전혀 엉뚱하게 사고를 저지르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것도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자기 집안 당숙하고 일을
일으켰다고 양잿물까지 마시고......

"우리 삼촌이 그랬어요.영구고모는 앞으로 길어야 3년이라고요"
"그래서 서두르는 거야."
"네?"
"죽어버리면 한이 될 거 아니냐?"
"무슨 말인지 난 모르겠어요."
"살아서 죄도 씻고 한도 다 풀어야 원귀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원귀가 무엇인데요?"
"악독한 귀신이다. 용서받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한이 많은 사람이
죽어서 떠도는 혼."
"그럼 누가 영구 고모의 험을 씻어주는 거야!"
"그거야 우리 갯밭의 하늘과 바다와 풀들이지."

동묵이 아저씨는 바지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것을 난나의 손 안에 놓아주면서 말했다.

"그것이 뭔지 알겠지? 영구 고모가 내가 그물을 기우러 간다니까
손이 시리면 어쩌냐면서 소죽 끓이는 부엌에서 달려온 돌멩이다.
이 따뜻한 돌 위에 나의 언 손을 녹이면서 내 마음 속의 응어리
까지도 다 녹여버렸다. 설혹 그 여자의 배에서 남의 아기가
나왔다고 해도 나는 용서하겠다."

동묵이 아저씨가 난나를 번쩍 들어서 목 위에 올렸다.

"난나야. 사람은 고통 속에서 눈이 떠지는가 보더라.
매운 겨울 바람 속에서 꽃송이가 벙그는 동백꽃처럼.
그래, 우리동네 동백꽃처럼 지금 내 가슴에는 잉그락
같은 기쁨이 가득하단다."

동묵이 아저씨는 바닷가를 향해 걸었다.

"끄니 때마다 잊지않고 영구 고모의 호스 속에 미음을 넣어 주겠다.
물때가 되면 누구보다도 먼저 바다에 나가서 손에 피가 나도록
그물질을 하겠다. 난나야, 너도 이사간 곳에서 절대 지지말고 살아라.
그리고 꼭 선장 공부를 해서 기선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거라."
"염려 푹 놓아요."

난나는 주먹으로 퉁퉁 제 가슴을 쳤다.

- 정채봉 <초승달과 밤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