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를 먹으며 반성하다
김안나 2006.07.11 22: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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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그 떡볶이 집에 갔다. 혹시 나를 기억하고 알아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집의 떡볶이를 먹어야겠다는 신념이 그 모든 우려를 초월하고 있었다. 일주일쯤 전에 나는 떡볶이를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주인아주머니와의 안면을 이용하여 새치기하려는 남자와 말다툼을 벌였던 것이다. 다행히 언성이 높아지기 전에 뒤에 서 있던 어린 학생이 교통정리를 해 주었다. “이 아저씨가 먼저 와서 기다리다가 잠깐 다른 데 갔다 온 거예요.” 진실로 ‘쪽팔림’ 이외에는 그 상황을 표현할 말이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버텨서 결국 떡볶이 1인분을 사서 돌아왔다.




오늘도 나는 십 분 정도는 기다려야 할 것이라는 각오를 다지며 길모퉁이를 돌아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저기 멀리 이미 일단의 사람들이 가게 앞에 모여 있었다. 부지런히 걸어서 가게 앞에 도착했는데, 이게 웬 일! 떡볶이를 끓이는 널찍한 팬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닌가. 가게 안에 있는 너덧 개의 간이 테이블에도 사람들이 빈틈없이 진을 치고 있었는데, 그들의 테이블에도 물컵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더욱 신기했던 것은 아무도 아우성을 치거나 초조해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제야 주인아주머니가 등장하더니 비어있는 팬에 물을 붓고 떡을 쏟아 부었다. 이제부터 떡볶이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옆에서는 다른 아주머니가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그 옆에는 팅팅 불어터진 오뎅이 맛있게 끓고 있었다. 실내에는 물론 에어컨은 없으며, 바깥 기온도 만만찮게 더운 날이었는데, 오뎅이 끓고 떡볶이가 익는 화덕 앞에서 기다리다보니 이 무슨 고생인가 싶었다.




주인아주머니는 기다리는 사람들과 쉴 새 없이 이야기하며 천천히 떡볶이를 저어 갔다. (아기를 업은 채 기다리는 여인에게) “아줌마는 떡볶이 2인분에 김밥 세 줄이라고 했지?” (옆에서 김밥을 마는 아주머니에게) “두 줄 먼저 말아서 저 안쪽에 언니들한테 먼저 갖다 줘.” (양복을 입은 남자에게) “오늘은 아저씨가 왔네. 김밥 두 줄하고 떡 1인분이지?” (참지 못하고 옆에 와서 알짱대는 젊은 여자에게) “언니는 좀 기다려야 해. 먼저 온 사람 먼저 줘야지.” (그러더니 나를 보고는) “언니는 뭐라고 했지?” (내가 대답하길) “떡볶이 하나하고 김밥 하나요.” (그랬더니 다시 나에게) “그런데 지금 떡볶이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 언니 순서까지 갈지 모르겠네.”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제발 떡볶이가 내 앞에서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서 있었다. 떡볶이가 완성되자 주인아주머니는 공평하고 정확한 매너로 떡볶이를 배분하기 시작했다. 안에서 기다리는 손님,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 그 모든 사람들의 순서와 주문을 정확하게 기억하여 접시에 담을 것은 접시에 담고, 비닐봉지에 담을 것은 비닐봉지에 담는 민첩한 동작을 지켜보면서 저 정도면 이미 달인의 경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럼. 에스비에스, 엠비씨, 케이비에스, 모두 나보고 테레비에 나오래. 그래도 나는 싫다고 해.”라고 아주머니가 거스름돈을 내어 주며 누군가에게 말했다. “왜 싫어? 매스컴 타면 좋잖아?”라고 거스름돈과 비닐봉지를 받은 사람이 물었다. “나가면 뭐 해? 괜히 성가시기나 하지. 지금도 바빠 죽겠는데.”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나는 그래, 저 정도면 장인정신이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많던 떡볶이는 정확하게 내 순서에서 끝났다. 마지막 남은 양념까지 싹싹 긁어서 비닐봉지에 담으면서 아주머니는 고맙게도 김말이 하나 서비스로 넣어 주었다. 다시 떡볶이가 끓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 사람들을 뒤에 남겨둔 채, 나는 검은색 비닐봉지를 소중하게 들고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절대로 손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는 대담한 경영철학, 수요가 있을 때만 제조를 한다는 안전한 경제논리, 먼저 와서 더 오래 기다린 사람이 먼저 먹어야 한다는 공평한 상거래질서, 매스컴 효과를 아예 무시해버리는 사회비판적 태도, 그리고 이렇게 맛있는데 니들이 안 먹고 배기겠느냐는 저 엄청난 자신감! 그것이 바로 뒷골목의 허접한 가게로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비결이다. 상대방이 약속에 오 분만 늦어도 참지 못하는 나로 하여금 불가마 앞에서 땀 흘리며 십 분 이상 서서 기다리게 하는 힘이다. 놀라운 필살기이다.




그래, 그 정도 잘난 척 하려면 그 정도의 필살기는 있어야 한다. 그 정도 필살기도 없이 그렇게 잘난 척 하면 망한다. 그렇다면 나의 필살기는 무엇일까. 나는 뭘 믿고 잘난 척 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반성하면서 나는 떡볶이와 김말이와 김밥 한 줄을 싹싹 먹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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