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키, 롱다리의 그녀가 겅중겅중 뛰어온다. 언제나 신선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에너자이저’ 변정수. 처음 데뷔했을 때는 어린 나이의 유부녀여서 신선했고, 이후 가족들과 떨어져 홀홀 단신 뉴욕으로 건너가 톱 모델들과 정면 승부를 벌인 것도 놀라웠다. 연예계 진출을 시도했을 때도 반신반의했지만 든든히 자리를 잡은 지금에서는 그녀가 뭘 하든 어떤 부정적인 예측도 내놓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 정도 기백과 열의니 성공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이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못해 무서운(?) 것도 사실이었다.



역시! 그녀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변정수의 다음 프로젝트는 바로 패션. 현대홈쇼핑과 손을 잡고 자신의 브랜드 엘라 호야(Ella Hoya)를 선보인다고. 8월 25일 패션계의 트렌드세터들을 모아놓고 정식 론칭을 선언하는 엘라 호야는 9월부터 매주 토요일 10시부터 현대홈쇼핑 채널에서 방영되는 그녀의 독자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들을 찾아간다. 인터넷으로도 판매할 예정. 일단은 여성복 라인을 먼저 전개하고 점차 아동복으로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일찌감치 사무실도 열었고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로 팀도 꾸려졌다. 실제로 인터뷰하는 동안 업무 전화가 여러 통 걸려왔는데 능숙하게 일을 조정하는 모습이 여성 사업가를 보는 느낌이다. 연신 미안해하면서 그녀는 말했다. “스트레스를 받을지언정 내 일은 내가 해야 직성이 풀려요. 팔자인가봐. 가끔 내 스타일을 맞춰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아요.”



엘라 호야는 오랫동안 아껴두었던 변정수의 재능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컨셉트는 노블&큐트(Noble&Cute), 믹스앤매치(Mix&Match). 샤넬 재킷에 어그 부츠를 매치하듯 패션에는 어떤 공식도 없다는 그녀의 평소 생각들, 재기발랄한 스타일링 아이디어들이 총동원된 결과물. “편안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하게 연출하는 걸 사람들이 많이 어려워하잖아요. 명품을 입어도 티가 안 나거나 오히려 오버하기 십상이죠. 이제 변정수의 퀄리티를 보여주겠어요.” 굳이 다른 브랜드와 비교한다면 클로에나 마르니같이 좋은 소재에 몸에 잘 맞는 핏을 지닌 옷, 타깃층도 미스와 미시의 중간 선상, 딱 그녀와 같은 여자다. 25세부터 젊게 살고 싶어 하는 40대까지,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믿는 여자들 말이다.



패션 사업과 함께 연기 활동도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10월부터 KBS에서 방영되는 새로운 시트콤에 캐스팅되었다고. 이번에도 결혼했지만 스타일 좋은 미시족이며 다소 엉뚱한 캐릭터다. “난 진지한 역을 할 때마다 우울해져요. 사람들한테 희망을 주는, 그런 즐거운 역할이 좋아요.” ‘이제 1주일에 닷새는 꼼짝 마라 이거죠. 뭐.’ 말과는 달리 그녀의 얼굴은 생기에 차 있다. 그녀는 삶을 바쁘게 사는 사람이다. 늦어도 아침 7시에는 일어나서 몸을 재게 놀린다. 저녁에는 들어가서 채원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늑장을 부릴 수 없다고. 지금 벌려놓은 사업도 사업이거니와 한국경제신문에는 ‘변정수의 디카 토크’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파티든 촬영장이든 종횡무진 누비면서 알찬 정보와 독특한 시각을 전달하는 것. 패션과 뷰티 노하우야 말할 것도 없고 직접 집안 인테리어를 손보는 재주꾼인 데다 육아법 책을 낸 워킹 맘, 매일 청소할 필요야 없지만 정리는 깔끔하게 되어야 한다는 살림꾼이니 독자들의 호응도 높다. 그뿐인가. 일주일에 한 번은 플라워 스튜디오 알마 마르소에 꽃꽂이를 배우러 다닌다고 한다.




그녀의 스케줄 짜는 솜씨는 경험 많은 매니저를 빰친다. 일주일, 아니 몇 달 전부터 고정 스케줄을 잡아놓고 그 안에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단기 스케줄을 끼워넣는 것. 일과 사생활, 업무와 취미가 거미줄처럼 촘촘히 엮인다. “1분 아니 1초라도 헛되게 쓰는 건 스스로 견디질 못해요. 할 일이 수만 가지인걸요. 빨리 빨리 몸을 움직여야 잡생각도 안 나고 빈틈없이 살 수 있죠.” 그렇다고 그녀가 완벽주의에 사로잡힌 워커홀릭이라는 오해는 접어두시길. 그녀가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생활하는 것은 자기 갈 길은 알아서 헤쳐 나가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데뷔해서 지금까지 그녀의 행보 자체가 제삼자에 의해 움직여진 적은 없었다. 늘 흥미가 끌리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작정인 변정수는 일종의 인디 브랜드라고나 할까. 스스로 선택한 길을 살아왔고, 조금도 조작되지 않은, 그대로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보여왔다. “남이 짠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다 보면 자기 자신의 스케줄은 못 짜게 마련이에요. 늘 누군가 말해주고, 권해주는 대로 살아가다 보면 왜 나는 혼자인가에 대한 질문에 영원히 답을 얻을 수 없을 거예요. 진정한 자기 삶을 찾지 못하는 거죠.” 굳이 스타가 아니라 일에 지친 직장 여성이든,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주부든 그 누구도 마찬가지라는 게 그녀의 말. ‘시간이 없어’라고 말하지 말고 어떻게든 자신의 스케줄을 짜 넣어야 한다, 운동이든 집안 꾸미기든 요리든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뭔가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비디오나 영화만 봐도 자기만의 영감을 발견할 수 있는 법이다. “가끔은 너니까, 변정수니까 그런 말도 할 수 있는 거라고들 하세요. 하지만 떡맛이 어떤지도 맛을 봐야 알잖아요?(웃음) 보고, 시도하고, 그런 일들이 길을 열어주는 법이에요.” 최근 딸과 함께 휴가를 다녀와 건강하게 구릿빛이 된 그녀는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이었다. “선탠도 그래요. 여름밖에 못 입는 옷이잖아요. 자기 스스로 입는 옷이죠. 선탠만 해도 그 계절에 입을 수 있는 옷이 확 달라져요. 이런 시도들도 자기 길을 열어줄 수 있어요.”



남들보다는 조금 더 이름이 나 있는 사람으로서 그녀는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그녀가 하루 24시간을 두 배로 아껴쓰는 이유. 잘 알려져 있듯 변정수는 자선단체인 굿 네이버스와 복지기관인 SOS 어린이 마을의 홍보 대사직을 맡고 있다. 이번 론칭 파티도 ‘save childrens’라고 씌어진 노란색 러브 밴드를 제작해 참가자들에게 판매하는 일종의 도네이션 컨셉트로 기획되었다. “저 같은 사람이 할 일은,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일 같아요. 또 같이 하자고 손을 잡아주는 거고요.” 항상 아이디어와 활력이 넘치는 그녀, 변정수의 손을 잡는다? 그건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