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가 된 경비원
호연지기 2006.04.16 23:48:28
억만장자가 된 경비원
1968년, 더위의 끝자락이 남아 있는 계절이어서 무척이나 더웠다. 사방이 유리로 둘러쳐진 빌딩 관리실은 그야말로 찜통이었다. 서른 살의 경비원 김명년은 비지땀을 흘리며 고통을 참고 있었다. 그런 순간이면 신세타령이 절로 나오곤 했다.
―내 인생을 수위로 끝낼 수는 없지.
어린 시절부터 손재주 많고 아이디어맨으로 소문난 김명년으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인문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력으로 공장을 기웃거리다가 운 좋게 만난 빌딩 주인 덕분에 빌딩 경비원이 된 게 고작이었다.
그냥 이대로 살기 싫었다
서른 살이 지나기 전에 장가를 들어야 하지만 벌어 놓은 돈도 없는 데다가 경비원에게 시집오겠다는 여자도 없었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매주 꾸준히 사 왔던 복권과도 인연이 없는지 매번 '꽝'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멍하니 앉아 있기가 뭣해서 성냥갑을 만지작거리는 걸 취미로 삼았다. 이 곳 저 곳에서 들어오는 판촉용 성냥갑을 모았다가 자취방에 가져가는 것에 불과했지만 꾸준히 모아 보기로 했다. 나중에 실내포장마차나 술집을 차릴 때 인테리어용으로 쓰겠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직사각형과 팔각형의 성냥갑들이 너무 많은 것에 실망하기도 했다. 모양을 바꾸는 것도 발명이라고 하던데 디자인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빌딩 수위를 면하고 돈을 벌려면 성냥갑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보는 것도 괜찮지 싶었다.
―그래! 성냥 박사가 돼 보는 거야!
판촉 개발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요즘, 값싼 물건으로 회사와 상품을 홍보하려는 기업들의 극성에 편승할 경우 뭔가 작품이 나올 것만 같았다. 유명 대기업들이 현상금까지 내걸고 아이디어를 모집하는 판이니 머리를 굴려 볼 생각이었다.
―하루 중에 절반을 아이디어 개발에 투자하자.
그런 결심이 서자 김명년은 새로운 판촉물 개발에 운명을 걸기로 했다. 일 주일에 4일만 근무하는 수위였으므로 연구 개발 시간도 충분했다. 그는 판촉물 개발에 착수하기 전에 3대 원칙을 정했고 집과 관리실의 벽에 가훈처럼 붙여 두었다.
1. 값이 싸야 한다.
2. 모든 사람의 필수품이어야 한다.
3. 독특해야 한다.
그 3대 원칙을 바라보며 끙끙 앓다가 담배 한 대를 피우려던 순간 김명년은 무릎을 쳤다. 우선 성냥갑으로 출발해 보자고 다짐했다. 그 날부터 빳빳한 종이를 구해 성냥갑을 만들기 시작했고 하루에 너덧 종류의 성냥갑을 만들었다.
―저 친구, 머리가 이상해진 거 아냐?
―성냥 공장이라도 차릴 모양이야.
영문을 모르는 동료들이 비웃기까지 했으나 김명년은 즐겁기만 했다.
100여 종의 성냥갑 디자인
―성냥갑으로 치장한 카페를 차릴 생각이거든.
심중을 숨기며 김명년은 능청까지 떨었다. 다양한 형태의 성냥갑을 만들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몰랐다. 이단형, 반달형, 맥주병형, 팔각형, 원통형……. 새로운 모양의 성냥갑이 만들어질 때마다 그의 희망도 그만큼 부풀어올랐다.
―몇 가지를 만들 작정이니?
―응, 백 가지를 만들 생각이야.
동료들의 호기심 속에서 마침내 김명년은 1백여 종의 성냥갑을 디자인했다. 그 중에서 50여 개를 골라 특허청에 디자인 출원을 마치던 날 맥주 회사를 찾아갔다.
―맥주 회사의 판촉물은 아무래도 맥주병 모양의 성냥갑이 어울리겠죠.
그 회사의 홍보 담당 임원을 만나던 자리에서 김명년은 자신 있게 권했다. 채택하지 않을 경우 다른 경쟁 회사를 찾아가겠다는 으름장도 놓았다.
작은 아이디어가 인생을 바꾼다
―좋습니다. 양다리만 걸치지 않는다면 적극 검토하겠습니다.
홍보 담당 임원은 김명년을 구슬려 놓은 뒤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한국 굴지의 맥주 회사가 신제품의 홍보용 판촉물로 채용해 준 것이었다. 잘 꿰어진 그 첫 단추가 김명년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나머지 성냥갑들도 꾸준히 팔려 나가면서 김명년이 받는 로열티도 연간 수억 원에 이르렀다. 뒤늦게 수많은 기업과 업소들이 성냥갑의 변형을 시도했으나 이미 김명년이 모두 디자인 출원을 마쳐 버려 번번이 허사일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조롱거리로 삼던 자그마한 아이디어가 그 친구의 일생을 바꿔 버렸어.
―미친 줄 알았더니 지극히 정상이었어.
여전히 수위 신세를 못 면한 옛 동료들은 그제야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 실제로 성냥갑 디자인으로 큰돈을 번 인물은 일본의 '쓰쓰이'였다.
1968년, 더위의 끝자락이 남아 있는 계절이어서 무척이나 더웠다. 사방이 유리로 둘러쳐진 빌딩 관리실은 그야말로 찜통이었다. 서른 살의 경비원 김명년은 비지땀을 흘리며 고통을 참고 있었다. 그런 순간이면 신세타령이 절로 나오곤 했다.
―내 인생을 수위로 끝낼 수는 없지.
어린 시절부터 손재주 많고 아이디어맨으로 소문난 김명년으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인문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력으로 공장을 기웃거리다가 운 좋게 만난 빌딩 주인 덕분에 빌딩 경비원이 된 게 고작이었다.
그냥 이대로 살기 싫었다
서른 살이 지나기 전에 장가를 들어야 하지만 벌어 놓은 돈도 없는 데다가 경비원에게 시집오겠다는 여자도 없었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매주 꾸준히 사 왔던 복권과도 인연이 없는지 매번 '꽝'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멍하니 앉아 있기가 뭣해서 성냥갑을 만지작거리는 걸 취미로 삼았다. 이 곳 저 곳에서 들어오는 판촉용 성냥갑을 모았다가 자취방에 가져가는 것에 불과했지만 꾸준히 모아 보기로 했다. 나중에 실내포장마차나 술집을 차릴 때 인테리어용으로 쓰겠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직사각형과 팔각형의 성냥갑들이 너무 많은 것에 실망하기도 했다. 모양을 바꾸는 것도 발명이라고 하던데 디자인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빌딩 수위를 면하고 돈을 벌려면 성냥갑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보는 것도 괜찮지 싶었다.
―그래! 성냥 박사가 돼 보는 거야!
판촉 개발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요즘, 값싼 물건으로 회사와 상품을 홍보하려는 기업들의 극성에 편승할 경우 뭔가 작품이 나올 것만 같았다. 유명 대기업들이 현상금까지 내걸고 아이디어를 모집하는 판이니 머리를 굴려 볼 생각이었다.
―하루 중에 절반을 아이디어 개발에 투자하자.
그런 결심이 서자 김명년은 새로운 판촉물 개발에 운명을 걸기로 했다. 일 주일에 4일만 근무하는 수위였으므로 연구 개발 시간도 충분했다. 그는 판촉물 개발에 착수하기 전에 3대 원칙을 정했고 집과 관리실의 벽에 가훈처럼 붙여 두었다.
1. 값이 싸야 한다.
2. 모든 사람의 필수품이어야 한다.
3. 독특해야 한다.
그 3대 원칙을 바라보며 끙끙 앓다가 담배 한 대를 피우려던 순간 김명년은 무릎을 쳤다. 우선 성냥갑으로 출발해 보자고 다짐했다. 그 날부터 빳빳한 종이를 구해 성냥갑을 만들기 시작했고 하루에 너덧 종류의 성냥갑을 만들었다.
―저 친구, 머리가 이상해진 거 아냐?
―성냥 공장이라도 차릴 모양이야.
영문을 모르는 동료들이 비웃기까지 했으나 김명년은 즐겁기만 했다.
100여 종의 성냥갑 디자인
―성냥갑으로 치장한 카페를 차릴 생각이거든.
심중을 숨기며 김명년은 능청까지 떨었다. 다양한 형태의 성냥갑을 만들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몰랐다. 이단형, 반달형, 맥주병형, 팔각형, 원통형……. 새로운 모양의 성냥갑이 만들어질 때마다 그의 희망도 그만큼 부풀어올랐다.
―몇 가지를 만들 작정이니?
―응, 백 가지를 만들 생각이야.
동료들의 호기심 속에서 마침내 김명년은 1백여 종의 성냥갑을 디자인했다. 그 중에서 50여 개를 골라 특허청에 디자인 출원을 마치던 날 맥주 회사를 찾아갔다.
―맥주 회사의 판촉물은 아무래도 맥주병 모양의 성냥갑이 어울리겠죠.
그 회사의 홍보 담당 임원을 만나던 자리에서 김명년은 자신 있게 권했다. 채택하지 않을 경우 다른 경쟁 회사를 찾아가겠다는 으름장도 놓았다.
작은 아이디어가 인생을 바꾼다
―좋습니다. 양다리만 걸치지 않는다면 적극 검토하겠습니다.
홍보 담당 임원은 김명년을 구슬려 놓은 뒤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한국 굴지의 맥주 회사가 신제품의 홍보용 판촉물로 채용해 준 것이었다. 잘 꿰어진 그 첫 단추가 김명년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나머지 성냥갑들도 꾸준히 팔려 나가면서 김명년이 받는 로열티도 연간 수억 원에 이르렀다. 뒤늦게 수많은 기업과 업소들이 성냥갑의 변형을 시도했으나 이미 김명년이 모두 디자인 출원을 마쳐 버려 번번이 허사일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조롱거리로 삼던 자그마한 아이디어가 그 친구의 일생을 바꿔 버렸어.
―미친 줄 알았더니 지극히 정상이었어.
여전히 수위 신세를 못 면한 옛 동료들은 그제야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 실제로 성냥갑 디자인으로 큰돈을 번 인물은 일본의 '쓰쓰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