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자] 한성식품 사장

김치로 러시아를 유혹하다


“한국 김치가 조류 인플루엔자(AI)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연구 결과로 확인되지 않았습니까. 러시아 국민 여러분들이 김치를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제가 뛰어보겠습니다.” 김치가 점점 세계인의 식품이 되어간다지만 러시아인들에게 김치는 아직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동양음식’일 뿐이다. 이 ‘김치 불모지’ 모스크바에 한국의 김치박사가 떴다. 2002년 미니롤보쌈김치, 깻잎양배추말이김치 등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김치를 새롭게 개발해 내, 모스크바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던 김순자(金順子·52) ㈜한성식품 사장이 그다.


김 사장은 이번엔 같은 대학 객원교수로 위촉돼 모스크바 한복판 크렘린궁 바로 옆에서 15일 김치 특강과 시식행사를 열고 ‘조류인플루엔자’ 창궐을 기회로 삼아 러시아인들 식탁에 한국 김치를 올리겠다고 선포했다.


러시아는 현재 AI의 확산을 국가적 차원에서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 의학계는 “2006년 봄에는 AI 때문에 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는 “승부처는 러시아인들 입맛에 맞춘 퓨전김치”라 했다. 그는 이번 시식행사를 위해 자신이 만들어내 특허까지 얻은 각종 퓨전김치 보따리들을 직접 들고 왔다.


김 사장은 “우선 우리 김치를 러시아로 직접 수출하고, 내년 중엔 러시아에 김치공장도 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대로 실현되면 한국 김치의 ‘러시아 진출 1호’가 되는 셈이다.


내년에 러시아에 문을 열 롯데백화점 입점권을 따냈고, ‘메가’ ‘람스토르’ 같은 러시아 대형 유통할인매장 진출도 추진 중이다. 배추 재배 농장 부지는 이미 모스크바 남부 로스토크 지역에 불하받았다.


그는 “러시아는 물론 가까운 장래에 동유럽에도 진출, 웰빙김치·고급김치를 통해 새로운 한류(韓流)를 일으키고 싶다”고 했다.


김 사장은 김치를 “자식 같다”고 했다. 1986년 창업한 지 만 20년간 김치 제조업 한길을 걸어온 만큼, 김치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특허를 받은 김치 종류가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인삼포기김치, 브로콜리김치, 치자말이김치 등 40여 가지가 넘는 낯선 김치 이름이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올해 ‘기생충 알 김치’ 파동을 겪은 그에게는 또 하나의 목표가 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국내 연간 매출액 475억원보다 해외 매출액이 더 많도록 투자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를 공략한다면 더 정복하지 못할 김치 시장은 없다”며 “우리 김치가 피자·햄버거·초밥처럼 지구촌의 인기메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꿈”이라고 말했다.


(모스크바=권경복특파원 kkb@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