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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결혼에 관하여..
결혼식 2004.10.15 10: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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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프로포즈도 맨입으로 때우는 거 싫어,
늘 대충대충 얘기 꺼냈다가 언제나 쉽게 쓰윽 들어가버리고 말았으니,
장미 100송이는 아니더라도, 이번엔 정식으로 무릎꿇고 청혼했으면 좋겠어.

당신 부모님보다 더 사랑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아이보다는 나를 더 사랑해 줬으면 해.
그리고, 혹시나 내가 애를 낳지 못하더라도,
절대 대신 강아지 키우자는 말 같은 건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우리 엄마가 요리를 못해서 씨암탉 한마리 제대로 못잡아주더라도,
요리 잘하시는 시어머니랑 비교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더불어 내 맛없는 요리도 다시는, 다시는 버리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양말 벗어놓고 세탁기 집어넣으라면 집어 넣어줄께,
그대신 그럴 땐, 밥 먹고 설겆이는 당신이 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당신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잘 들어주듯이,
당신도 내가 직장에서 속상했던 얘기할 때, '다 그런거지'라고 하지 않았으면 해.
그리고, 내가 혹시 몹시 화가 나거들랑, 나를 위해 주먹을 쥐어줬으면 좋겠어.
무언가를 쳐부셔주진 않더라도,
이 세상에 내 편이 하나는 있다는 거, 감사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우린 어리석게 서로의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당신의 일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듣게 하진 말아줬으면 좋겠어.

아들을 낳으면 야구를 시키고, 딸을 낳으면 첼로를 시킬래,
일요일엔 내 아이를 위해서 함께 차를 청소하고,
캐치볼을 해주고, 낑낑대는 첼로 소리를 함께 들어줬으면 좋겠어.

매일매일 부드럽고 다정한 키스 해주는 건 바라지 않을테니,
면도 안한 턱으로 덥석덥석 물어뜯듯, 입맞추지는 말아줬으면 좋겠어.
때로는, 가만히 손 잡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이 뛸 수도 있으니.

살다가 정말정말 돈 때문에 한심하고 속상해져도,
그 이유로 우리 생활을 하찮게 생각하거나 함부로 살진 말았으면 좋겠어.
길고 긴 삶 내내 함께 하는 순간이 보석보다 더 빛나고 소중함을,
그래서 우리가 서로의 다이아몬드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았으면 좋겠어.

어쩌다는 당신이 나랑 아이를 버리고 혼자서 훌쩍 여행을 떠났으면 좋겠어.
잠깐의 상실로 소중함을 절절히 깨달을 수 있는 우리였으면 해.
떠난 당신은 떠나온 나를, 남아있는 나는 떠난 당신을,
매일은 아니더라도 가끔은 미치도록 서로를 그리워하며 살았으면 좋겠어.

음악은 내가, 미술은 당신이, 집안일 돕기는 내가, 성교육은 당신이,
적어도 '엄마한테 물어봐라'나, '아빠한테 가봐'라는 말은 안했으면 해.
알지? 나는 내 아이에게 '십자군전쟁'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는 엄마이고 싶어.
당신도 아이의 그림을 칭찬해주고, '아카데미상'에 대해서 얘기해줬으면 좋겠어.
내 아이는 학원이나 과외에 치어서 피곤해하지 않았으면 해.

결혼식은 크고 화려하진 않더라도, '갈비탕'이 식사로 나오진 않았으면 좋겠어.
또, 웨딩드레스 입은 내 모습이 그리 이쁘지 않더라도,
당신 평생 보았던 신부 중 가장 예쁘다고, 아름답다고 얘기해줬으면 좋겠어.

신혼여행은 당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따라갈테니까,
결혼식은 좀 춥더라도 꼭 11월에 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아이도 11월에 낳았으면 좋겠어. 늘 꿈꿔왔던 것처럼.

꿈같은 얘기를 꿈처럼 하는 거,
당신과의 결혼이 늘 자신없었던 거,
'더 좋은 사랑'이 혹시 있지 않을까 망설였던 거,
친구가 그랬듯, 당신에게 인생을 거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당신이 나를 믿는다면, 나도 당신을 위해 내 남은 삶을 걸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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