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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에 대한 시. 아버지. 어머니 모음(효도. 불효. 그리움)
15  호미숙 2022.05.07 09:11:57
조회 308 댓글 0 신고

부모님에 대한 시. 아버지. 어머니 모음

안녕하세요. 호미숙 여행작가입니다.

어느덧 내 나이가 60이 되고 친정 부모님을 떠나보낸지도 2년이 되어갑니다.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나 오지와 같았던 깡촌에서 태어나

자연을 벗 삼아 유년을 보냈고 중학시절부터 홀로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방학이면 부모님 농사일을 거들었던 지난 아련한 그리움의 시를 옮겨봤습니다.

부모님께 불효를 하게 된 이유는 젊은 나이 34살에 남편을 먼저 보냈기 때문입니다.

내가 선택한 결혼으로 어린아이 둘을 키워야 하는

어려운 환경을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친정어머님은 막내딸만 보면 눈물을 훔치셨기 때문에

그런 아픔을 겪지 않게 하고 싶어 일부러 친정을 더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도 어느 정도 장성하고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부모님께 자랑하려니까 두 분 모두 병환으로 입원해있고

노환은 심각해서 언어 소통마저 힘들어버렸지요.

부모님 걱정 끼치는 게 싫어 자주 찾지 않은 것이 불효였습니다.

살아생전에 좀 더 가슴 아프더라도 아이들 성장하는 모습

딸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드렸어야 하는 후회가 큽니다.

1. 아버지 흰 고무신/호미숙

동대문 시장 들러 눈요기 즐기는데 즐비한 명품 구제 구두 사이에

삐죽이 나온 고무신 한 켤레 유난히 새하얗기에 눈이 띠었다

댓돌 위에 닦인 흰 고무신, 닷새마다 서는 우시장에 가시는 날

흙 묻은 검정 고무신 벗어 놓고 하얀 고무신 갈아 신고

시원한 모시 한복으로 멋을 내신 아버지

모시 구멍처럼 가슴에 뚫린 구멍 사이로 바람이 들어

한 여름인데도 냉기를 느낀다

지난 장에 소 판돈으로 도외지 자식들 학비 부쳐주고

몇 푼 남은 돈뭉치를 보자기에 싸 허리춤에 둘러메자

흰 고무신이 아버지보다 먼저 마당을 나선다

제사 때 쓴다고 북어포, 마른 김 한 톳, 쇠고기 반 근 끊어오고

자반고등어 한손 사 오라며 아버지 뒤통수에 대고 어머니가 주문한다

듣기나 하셨는지 뒤도 안 돌아보던 아버지

사립문을 닫자 매달린 쇠 방울이 달랑인다

발길 옮기던 아버지 힐끔 돌아서서 빈 외양간을 초점 없이 바라보신다

해 질 녘 어귀에 들어서는 아버지 발걸음이 한없이 무겁기만 하다

송아지라도 사려 했지만 잔금이 모자라 물건만 사들고 귀가하는 길

고무신에 아버지의 짙은 한숨이 뽀얗게 내려앉고

신문지에 싼 쇠고기 핏물이 흰 고무신 코에 벌겋게 굳었다

사립문을 열자 고삐 잃은 쇠 방울이 달랑이며 반긴다

2. 도시의 아버지/호미숙

회색빛 빌딩들이 깨어난 이른 아침

엎드린 안개 바람 자욱한 도심에는

한숨을 길게 내뱉고 걸어가는 아버지

손가락 마디마다 굴곡진 세상사여

소나무 푸른 가지 베어진 흔적들엔

시커먼 송진 흘러서 고달픔이 맺히네

서민의 일상들의 그림이 휘청인다

부서져 떨어지는 심호흡 조각들이

흑가슴 훑은 자리에 허망스레 차오네

3. 아버지와 갈퀴/호미숙

동트기 전 사립문을 활짝 열어놓고

젖은 장작에 잎나무로 불 지펴

쇠죽을 끓여 내면 시골 아침이 열린다

시렁에 삶은 꽁보리에 쌀 한 줌 얹어 지은

고봉 조반을 드시고 숭늉 한 대접 들이키신 후

외 낫, 굽은 손 같은 갈퀴를 빈 지게에 챙겨

가을 끝 뒷산으로 오르신다

푹신한 나뭇잎 긁혀지는 자리마다

아버지 종아리의 울룩불룩 한 정맥류가

산 그림자를 훑는다

바지게 가득 산을 지고 내려오는 길

지게꼬리 흔들려 덜렁이며

힘겹게 내딛는 발걸음에 장단을 이룬다

갈퀴로 할퀸 통증이 등줄기를 타고

아버지의 검은 주름계곡에 땀이 구른다

4. 아버지와 매미/호미숙

휘청대던 하루를 끌고 가는 밤 풍경

낮인지 밤인지 분간 못 하는 매미 울음이

질주하는 차들의 경적 소리에

뒤섞여 여름밤이 후끈하다

푸른 벼 키가 논두렁을 덮을 때

미루나무 꼭대기 매미의 절규는

피사리하시던 아버지의

가슴으로 부는 휘파람이었다

아버지는 날마다 매미를 품고 누워

이명에 잠 못 들어 뒤척였다

투명한 날갯짓이 멈추자

귀에서 빠져나온 매미가 아버지와 함께

창을 넘어 밤하늘로 날아갔다

아직도 가끔, 그치지 않는 아버지의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내 귓속으로 파고든 매미

매애앰 매앰 매앰 매애

희미하게 걸어가는 아버지 뒷모습이 아련하다

5. 나무꾼과 소녀/호미숙

겨울 골짜기 흐르는 물

살얼음 사이로 똘똘 소리 내며

투명한 봄은 멈추듯 흐른다

짧은 봄방학을 맞아

나무하러 가시는 아버지 따라

커다란 쇠갈퀴, 오낫 아주 질긴

아카시아 장갑 한쪽을 챙긴다

소나무 아래 누우런 솔잎

긴긴 겨울잠 자는 대지를 덮었다

두툼한 이불 아래 여리고 여린

새움이 움트려 몸살을 앓는다

북북 긁힌 갈퀴 자국마다

아버지의 주름이 한 개 더 그어지고

소녀는 삭정이, 솔방울 주어 삼태기

소복하게 하루를 쌓는다

툭툭 잘린 솔가지마다 송진은

아버지의 갈매기 주름에 이슬로 맺히고

흥얼거리는 "찔레꽃" 박자 맞춰

누런 이불은 돌돌 말아 켜켜이 바지게에 얹힌다

지게는 아버지 어깨에 메어지고

기우뚱 한쪽으로 쓰러질 듯

간신히 작대기의 힘 빌려

굽힌 무릎 펴고 번쩍 들려지는 꿈 동산

무겁게 짊어진 아버지의 삶이 내려간다

유난히 얼음 아래 흐르는 물소리 요란스러이

산중의 고요를 깨뜨리고 아버지의 둔탁한 발걸음

동네 어귀에 이를 때 때늦은 저녁 준비하던 어머니

"우리 나무간이 배부르 겄네" 소리에

빙긋 웃으며 식은땀 훔치시는 아버지

쓸쓸하던 초가는 부산한 저녁을 맞는다

**

지금 난 천연가스보일러에 아랫목 없는

넓은 방에서 반팔 걸치고 행복에 겨워

가스레인지 커피 물 얹고 그날을 그리워한다

6. 지게 1/호미숙

해거름 속으로

잎나무 가득 실은 소뿔 달린 지게,

아버지 등에 업혀

휘어진 작대기에 안간힘으로 버텨

박이 열린 초가로 기우뚱 들어갑니다

아버지는 따스한 이부자리 속으로 들지 못하고

공룡 뼈대 같은 지게와 토광에서 잠이 듭니다

굳어버린 등딱지에 모로 누운 꿈

잠꼬대는 풍년가를 부릅니다

농기구 전시관,

고부라진 아버지 세월이 얹힌 빈 지게

흘린 땀은 바다, 긴 숨은 하늘

마디마디 부서져 내린 관절은 땅

우주를 짊어지셨던 것입니다

아버지처럼 지게를 져봅니다

우두둑, 거꾸로 솟는 피

7. 오월에 피는 보리꽃/호미숙

아카시아 지천으로 흐드러져

향기에 취해 어지러움인지

배를 곯아 빈혈증인지 휘청거리는

신록의 5월, 아침부터 흐리다

깎여 담긴 꽁보리밥 한 사발

찬물에 말아 드시고

애기 모 살피러

천수답 논두렁 오르는 아버지

거친 붓 솔 흔들어

바람과 속삭이는 푸른 보리밭

기운 없는 아버지 허허로운 웃음

희끗희끗 보리 꽃에 묻어 피어난다

철모르던 막내딸 장성한 아들 손잡고

보리 꽃 가르맛길 지나 산에 이르면

청보리 같은 푸른 잔디 덮인 봉분

평생 배불리 드시지 못한 아버지

5월을 고봉으로 퍼 담아 외손자를 맞이한다


1. 어머니의 아침

어머니의 풀 빗질이 도배지를 쓸어

꽃무늬 줄 맞춤을 넋 잃고 바라보다가

매직아이처럼 현기증에 취해버리고

강 비늘처럼 반짝이는 칠 남매 낳은 뱃살 트임이

쭈글거리며 초점을 흩트립니다

어머니가 고무신 찢기고 기우뚱이며 밟은 자리

수십 년이 흘러 고스란히 다지는 세월

두꺼워져 내려앉는 세월의 천정이

거리를 좁혀 올 때,

젖 비린 내음마저 바래진

누런 시간의 배냇저고리를 꺼내놓고

소리 없는 울음을 참아냅니다

풀무질로 밥 짓고 구들장 데울 때

아랫목의 게으름은 이불 섶을 물고 늘어지다가

엉거주춤 아침 햇살이 툇마루 끝을 넘보면

기지개를 켜는 하루를 맞이합니다

어머니의 몸뻬 바지 종종걸음이 마당을 닦고

부지깽이로 두들기는 부엌문의 둔탁한 소리가

알람 소리처럼 귀를 후빕니다

지금,

아침마다,

아이를 깨우고

세월을 갈아 마시며

어머니의 낡은 녹음기를 돌리고 있습니다

2. 어머니와 자반고등어

(사진-얼음화석*천안 자전거 여행 중에)

대평리 장에 갔던 울 엄니

짐 보따리 한가득 장을 보고

손에 들린 자반고등어 한 꾸러미

사립문 밀며 먼저 들어선 건

찢겨 반쯤 벗겨진 울 엄니 흰 고무신입니다.

화롯불에 배를 뒤집어 굽던 내내

비린내가 진동하여 초가를 휘감고

저녁상에 올라 누운 자반고등어는

식구들 젓가락에 산산이 분해되어

찰나에 뼈만 추려집니다.

40년이 훌쩍 넘긴 어느 날

짜디짠 소금에 절여진

자반고등어 한 마리가

눈을 흡뜬 채 논바닥에 누운 얼음 화석에

한 움큼의 추억에 울컥합니다.

입을 딱 벌리고 내장도 훤히 보이며

소금 알갱이를 마저 삼키는 고등어

울 엄니 흰 고무신을 조각조각 이어 붙인 듯

내 엄니를 발라먹은 세월을 지우고 싶은

소태처럼 쓰디쓴 그리움의 화석입니다.

3. 어머니의 찻잔

금색 띠 허옇게 벗겨지고 꽃무늬마저 긁혀

고무줄 늘어진 어머니 속것처럼

너덜거리는 찻잔, 이빨까지 듬성듬성 빠졌다

막내딸이 사다 드린 고급 찻잔도 마다하고

구질구질한 찻잔 속으로 녹아드는 어머니

맑은 물에 띄운 마른 국화꽃 깊은 향내로 어머니를 우린다

국화차를 마실 때마다 꽃잎을 부풀리며

어머니는 새색시처럼 화사하게 다시 피어난다

건조대에 널린 어머니, 향기 없는 꽃물을 떨군다

4. 어머니와 빨래판

이른 새벽 마른 기침으로 시작하는 어머니

라면 발 얹힌 굽어 푸석한 손으로

앉은뱅이 빨래판에 쭈그려 앉아

비눗물에 불린 세월을

비벼 빠신다

빨래판 파인 골 따라

찌든 세월 때 국물 흘러내리고

시커먼 거품이 부풀어 올랐다 터진다

빨고 헹구어 짜내고 말리기를 80년

모두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에

마지막 빨래이길 바라며

가녀린 손 떨림 끝으로 응고된

시간이 뚝뚝 떨어진다

희미해진 주름으로 빨래판으로서의

가치를 잃은 지 오래다

성능 좋은 세탁기 마다하고

닳아빠진 나무 빨래판만 고집하는 어머니

나이 든 빨래판의 밋밋함과

어머니의 주름 깊이가 맞닿을수록

휘어진 등으로 식은땀만 배어들고

꺼져가는 생명이 잘려나가고 있다

5. 어머니의 사진

여든이 넘으신 어머니

라면 볶아 까망머리 얹어 회춘하셨습니다

젊은 시절 긴 머리 쪽을 졌던 곱디고운 모습 간데없고

저토록 촌스럽고 싼 티 나는 머리를 하셨을까

흰머리 한 올마다 가격 매겨 검은 머리까지 솎아 내며

눈속임을 했던 막내딸이 머리를 빗겨드리지만

꼬불꼬불 머리 흐른 세월만큼 한 움큼씩 뽑힙니다

희뿌연 안개가 서린 맑았던 눈망울

코끼리 눈으로 쳐져 내려앉은 눈두덩

갸름한 계란형은 양 볼이 늘어져 턱도 둘이 되고

까망문신이 희끗 희끗 바래진 눈썹 자리

기억력도 가물가물 희어져갑니다

어머니 손등 정맥류 가지엔

흰 눈 내리듯 핏기 없이 표백되고

검버섯으로 검은 발자국을 새겼습니다

어머니 사진 바라보다

아줌마도 아닌 할머니도 아닌

주름 가득한 낯선 초상화에 눈물을 떨구고 맙니다

부모님에 대한 시. 아버지. 어머니 모음(효도. 불효.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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