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스토리] 경찰특공대 출신 메달리스트…'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더팩트 2023.06.04 00: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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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경찰청 교육계 강신영 경위
경찰관 신분으로 아시안게임 출전
최고령 유도 국가대표로 첫 올림픽


아시안게임 유도 동메달리스트인 충청남도경찰청 교육계 소속 강신영 경위가 충남 예산군 충남경찰청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예산=김세정 기자
아시안게임 유도 동메달리스트인 충청남도경찰청 교육계 소속 강신영 경위가 충남 예산군 충남경찰청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예산=김세정 기자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2008년 여름, 중국 베이징과학기술대 체육관. 첫 올림픽 무대라는 부담감은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다. 50초 만에 '지도'를 받았지만 연이어 '효과' 2개를 따내면서 역전에 성공했다. 상대는 두 번이나 이겼던 적이 있는 선수다.

승기를 잡았다 싶던 순간, '유효'를 내주고야 말았다. 경기 종료 1분 55초를 남긴 때였다.

허무한 결과에 매트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이 5분 때문에 이렇게 달려왔나' 머리 위로 수십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은 그렇게 1회전에서 끝났다.

친구의 딸은 위로하며 알루미늄 포일로 만든 메달을 목에 걸어줬다. '최선을 다했으니 됐다' 가벼워서 슬픈 메달을 어루만지며 아쉬움을 꾹 삼켰다.

인간 강신영에게 올림픽은 쓰라린 기억이다. 그러나 경찰관 강신영으로서 자신을 단련한 계기가 됐다.

"아픈 기억이죠. 그런데 경찰관으로서 지금 제 인생은 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충청남도경찰청 교육계 소속 강신영 경위는 전무후무한 타이틀을 지녔다. 유도선수 출신 경찰관이라면 무도특채라고 생각하기 쉽다. 강 경위는 다르다. 경찰 입직 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출전했다. 현직 경찰관이 올림픽 무대에 선 것은 한국에선 강 경위가 유일하다.

고등학교 2학년,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빵도 주고, 육성회비도 면제해 준다는 말에 운동부 문을 두드렸다. 육상을 하기엔 속도가 느린 탓에 유도부로 보내졌다.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도복을 입었지만,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솔직하다. 경찰이 왜 됐냐고 묻는다면 허탈감 때문이다.

고향에서 열리는 국제대회. 경찰 입직 전 부산 북구청 소속이던 강 경위는 2002 부산아시안게임에 꼭 뛰고 싶었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등을 하고도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당시 함께 슬픔을 나눴던 이가 추성훈 선수(당시 부산시청 유도팀 소속)다.

강 경위는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인 고등학교 2학년 때 유도에 입문했다. 2002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뛰고 싶었지만, 태극마크를 달지 못하자 경찰의 길로 들어섰다. /예산=김세정 기자
강 경위는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인 고등학교 2학년 때 유도에 입문했다. 2002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뛰고 싶었지만, 태극마크를 달지 못하자 경찰의 길로 들어섰다. /예산=김세정 기자

길고 긴 방황의 길에 들어섰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할 때 누군가 "경찰특공대에 가면 원하던 운동을 계속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고민을 거듭하다 시험을 봤고, 2003년 덜컥 합격했다.

"누가 경찰특공대가 제 체질적으로 맞는 곳이라고 추천하더라고요. 안정적 직업도 필요했고, 운동도 계속하고 싶었어요. 면접을 볼까 말까, 이 길이 맞는 걸까 계속 고민했어요. '부지런하면 올림픽도 뛸 수 있지 않겠나' 위로하는 말에 시작했어요."

서울지방경찰청 경찰특공대에 들어갔다. 경찰 업무와 운동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유도는 혼자 훈련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 기술을 걸 때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몸으로 느껴야만 한다. 그래서 대체로 오후 3시경 훈련 시간이 정해져 있다.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강 경위는 퇴근 후 훈련장으로 달려가 야간 운동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했다. 잠이 쏟아져도 이를 악물고 버텼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선발전을 거쳐 당당히 태릉선수촌에 입소했다. 2006 도하아시안게임 여자 유도 57kg에서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강 경위는 "한국에선 제가 독특하지만, 외국에는 경찰이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 특별하게 쳐다보긴 했다. 간절한 마음으로 뛰었더니 아시안게임에서 3등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31세의 나이에 베이징올림픽까지 도전했다. 당시 유도 국가대표 중 최고령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회복력이 빠른데 저는 나이가 있어서 회복이 아주 더뎠어요. 선수촌에 있으면서 단 한번도 여유를 즐겨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유도가 계속 바닥에 떨어지는 스포츠다 보니 부상도 많았고요."

베이징올림픽을 끝으로 강 경위는 선수촌을 나와 경찰에 복귀했다. 경찰특공대부터 지구대, 경찰대학 연구원 등을 두루 거쳤다. 체득된 유도 기술은 실무에 큰 도움이 됐다. 범죄자를 상대할 땐 몸이 먼저 반응한다. 강 경위는 "유도 기술 하나 하나를 습득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 보통 다들 안 하려고 하지만 경찰 업무에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 상대와 서로 가까이 붙어야 하고, 또 조용히 제압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강 경위는 특기를 살려 충남경찰청에서 현직 경찰관들을 교육하고 훈련한다. 무도는 물론 사격 교육까지 강 경위 담당이다.

"현장 대응 교육을 담당해요. 사격도 제가 맡고 있어요. 사격은 누군가 도와줄 수가 없는 분야라서 본인이 연습해서 채워야 하거든요. 교육에서 가장 예민한 부분이죠.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직원들이 숙달할 수 있을까 그게 지금 가장 큰 고민입니다."

현재 강 경위는 특기를 살려 충남경찰청에서 현직 경찰관들을 교육하고 훈련한다. 무도는 물론 사격 교육까지 강 경위 담당이다. /예산=김세정 기자
현재 강 경위는 특기를 살려 충남경찰청에서 현직 경찰관들을 교육하고 훈련한다. 무도는 물론 사격 교육까지 강 경위 담당이다. /예산=김세정 기자

유도에서 좌절을 맛본 후 경찰로, 또 경찰관 신분으로 국제대회 출전까지 순탄치 않은 순간이 많았다. 조직 적응도 쉽지 않았다. 올림픽을 마치고 나서야 차츰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유도인인가, 아니면 경찰관인가' 끊임없이 고민하던 강 경위는 경찰관으로서의 자아를 서서히 쌓아나갔다. 스트레스 없이 운동하다 보니 전국체전 6연패라는 업적도 달성했다.

21년 경찰 생활 중 가장 행복했던 때를 꼽으라면 "강신영 반만 하면 좋겠다"는 소리를 들을 때였다.

"현장에서 그런 소리가 종종 들려와요. 그래도 제가 잘못 살진 않았구나, 나름 잘 살았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과서대로 살진 않았지만, 남들에게 욕 안 먹을 만큼 살았던 것이니까요."

운동 후배들이 경찰로 오는 경우가 많다. 강 경위의 유도 제자인 베이징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정경미 선수도 경찰이 됐다. 후배들을 볼 때마다 뿌듯한 마음과 함께 걱정도 따라온다. 강 경위는 후배들에게 "'3년만 딱 버텨봐라'고 많이 이야기한다. 운동만큼은 힘들지 않으니까. 열정만 보여줘도, 내가 노력한 만큼 성과를 가져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경찰관으로서 최종 목표가 있냐는 말에 강 경위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그냥 지금의 제가 좋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제복을 입었을 땐 경찰관 강신영으로. 순간순간 열심히, 나를 위한 강신영으로 사는 것이죠. 그렇게 늙어가고 싶습니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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