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목장갑 인생①] "주 52시간이 어딨어"…월급보다 더 드는 병원비
더팩트 2023.03.30 00: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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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송물류센터 노동자들과 함께 한 일주일
'더는 안 되겠다 그만 둘까' 거듭되는 갈등
쉴 새 없는 작업에 두통·헛구역질·코피까지


노동자들은 왜 다치고, 기업은 어떻게 대처하며, 정부는 무슨 노력을 해왔을까? <더팩트>는 근본적인 이유를 현장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산업재해가 빈발한다는 현장으로 직접 갔다./남윤호 기자
노동자들은 왜 다치고, 기업은 어떻게 대처하며, 정부는 무슨 노력을 해왔을까? <더팩트>는 근본적인 이유를 현장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산업재해가 빈발한다는 현장으로 직접 갔다./남윤호 기자

대한민국 일터가 위험하다. 한국의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산재사고 사망자 수)은 8년째 0.4~0.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4위다. 평균치(0.29)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산업재해율 역시 2018년 0.54%, 2019년 0.58%, 2020년 0.57%, 2021년 0.63%로 감소하기는커녕 상승 추세다.

정부는 현행 주 52시간 근로제를 유연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사후 규제·처벌 중심에서 자율 예방체계로 전환한다. 변화가 없는 산업재해 실태를 두고 자율성을 강조한 ‘노동개혁’으로 방향을 틀었다.

바뀌지 않는다는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노동자들은 왜 다치고, 기업은 어떻게 대처하며, 정부는 무슨 노력을 해왔을까. <더팩트>는 근본적인 이유를 현장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산업재해가 빈발한다는 현장으로 직접 갔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관련 400여건의 판결문도 분석했다. 왜 ‘목장갑 인생’들은 오늘도 다치고 죽을 수밖에 없는지 7회에 걸쳐 그 잠정적인 결론을 공개한다. 1회는 고 이선호 씨 사건을 비롯해 재해가 잦기로 유명한 항만 물류센터에서 땀흘린 주현웅 기자의 기록이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여긴 진짜 위험해. 직원이 다치면 사업주도 책임져야 되는데 왜 이렇게 희한하게 해놨을까. 내가 몇 년째 이 일을 해왔는데 상상할 수 없는 일이야."

'가요무대 아저씨'는 다음날 출근하지 않았다. 10여년 전 KBS '가요무대'에 출연해 노래 솜씨를 뽐낸 적 있다던 사내다. 최근까지는 다른 물류센터에서 8년간 일했다. 단기노동자 업무 특성상 통성명은 없다. 그냥 아저씨 아니면 형님이다.

작업자에게 주어진 건 달랑 목장갑 한 켤레. 마찰력 때문에 롤러랑 닿으면 빨려 들어가기 십상이다. 베테랑들도 혀를 내둘렀다.

"이거 하나 주면서 초고속 작업을 시키는 건 말이 안 되지."

◆형님은 그날 이후 보이지 않았다

A항 '지정장치장'에서 한 주를 보냈다. 해외에서 온 수입품이나 우편 및 택배 등을 통관 과정에서 잠시 보관하는 장소다. 전국에 55곳 있다. 부산·인천·평택처럼 공항이나 항만이 있는 지역에 주로 크게 구축돼 있다. '특송물류센터'로도 불린다.

컨테이너에서 화주가 물건을 내려주면 세관 위탁업체 등의 사원들이 바코드를 찍고 엑스레이(X-Ray)를 통과시킨다. 이를 민간 택배업체 직원들이 전달받아 허브(HUB)물류센터로 갈 화물차에 싣는다.

내가 속한 곳은 B택배사. 택배 노동이 고강도에 위험하다는 말은 자주 들었다. 그래도 최소한 합리적인 근로 환경과 안전은 보장될 줄 알았다.

어리석음을 깨닫는 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출근 첫날 창고에 들어서자 펼쳐진 광경은 '진기명기' 자체였다. 열차가 달리는 듯 기괴한 굉음을 토하며 돌아가는 컨베이어 롤러·벨트. 그 위를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자칫 넘어지면 뼈가 부러지거나 재수없이 손가락이 끼이면 빨려들어갈 것 같았다. 한 중년 여성 노동자는 "으쨔"하며 간신히 올라타더니 투덜댔다. "길이 거지 같애."

거지 같으면 안전한 길로 될 텐데. 당혹감과 신기함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기 뭐지' 싶은 내 표정은 '나 초보요'라는 실토였다. 멀찍이 택배사 직원이 대번에 나를 알아보고 오라며 손짓했다. 내 앞에는 컨베이어가 2개 있었는데 역시 밟아 넘어오란다.

◆이름만 적어낸 근로계약서

40㎏ 쌀포대 크기 포장 박스가 옮겨지는 컨베이어를 넘을 땐 요령 같지 않은 요령이 조금 필요했다. 벨트 양끝의 약 10㎝ 테두리를 밟아 '알아서 조심히' 넘어야 한다. 주변 작업자들이 전수해준 노하우다.

꼭 이래야 하나. 택배사 직원이 이유를 알려줬다. 컨베이어를 넘지 않고선 다닐 길이 없다. 간혹 작업이 없을 때 컨베이어를 치우면 공간이 생겨 1~8호기까지 라인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일할 때만 위험하게 넘어 다녀야 하는 이상한(혹은 거지같은) 구조다.

직원은 나를 비롯해 처음 온 이들을 일렬로 세웠다. 순서대로 서명하라며 종이를 내밀었다. '일용 노동자 근로계약서'였다. 내용은 읽지 못했다. 맹추위 속 바로 등 뒤에 대기하는 사람의 눈총이 뒤통수를 찔렀다. 무표정한 직원 역시 '바쁜데 뭐 하냐'는 투였다.

"형광펜 그어진 부분 있죠. 여기에 이름만 적으시면 돼요."

물건들은 쇠봉들이 촘촘히 붙어 회전하는 컨베이어롤러를 구르며 전달됐다. '컨베이어 끼임 주의' 스티커가 부착돼 있지만, 이게 얼마나 부질없는 경고인지는 5분만 일해보면 안다. 숙련된 직원 2명이 붙었는데도 감당할 수 없는 물량이 쏟아졌다. /정용무 그래픽 기자
물건들은 쇠봉들이 촘촘히 붙어 회전하는 컨베이어롤러를 구르며 전달됐다. '컨베이어 끼임 주의' 스티커가 부착돼 있지만, 이게 얼마나 부질없는 경고인지는 5분만 일해보면 안다. 숙련된 직원 2명이 붙었는데도 감당할 수 없는 물량이 쏟아졌다. /정용무 그래픽 기자

◆필수 안전교육 대신 목장갑만 덜렁

근로계약서 서명 5초 컷. 또 다른 직원이 와서 우리를 안내했다. 안전교육, 심지어 조심하라는 당부조차 없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에 따르면 일용직 근로자는 채용 때마다 1시간 이상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목장갑 들고 2호기로 가세요."

그의 이름이 뭔지, 직급은 어떻게 되는지 지금도 모른다. 함께 일할 사이가 됐지만 '안녕하세요' 인사치레조차 없었다. 그저 2호기 컨베이어롤러 위 물건들을 마대자루에 담으라고 할 뿐이었다.

물건들은 쇠봉들이 촘촘히 붙어 회전하는 컨베이어롤러를 구르며 전달됐다. '컨베이어 끼임 주의' 스티커가 보였다. 이게 얼마나 부질없는 경고인지는 5분만 일해보면 안다. 숙련된 직원 2명이 붙었는데도 감당할 수 없는 물량이 쏟아졌다.

마대자루 하나를 꽉 채우는데 20초도 안 걸렸다. '영혼까지 끌어모은 속도'로 두 팔을 움직였지만 담는 것보다 떨어뜨린 게 많았다. 굽은 자세로 일해 허리가 부러질 것 같고 팔다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런 지경에 '고작' 손가락 끼임에 주의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고개를 드니 '조심'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다. 사고라도 나면 내 탓이 되는 건 아닐지, 괜히 억울한 마음부터 들었다.

일이 어느 정도 적응되자 시계가 필요 없었다. 쉬는 시간을 오로지 직감만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더는 안 되겠다. 이러다 내가 어떻게 되겠다. 그냥 없던 취재로 할까'. 고민이 깊어지면 쉴 때였다. 45분 일하고 15분 휴식이 원칙이지만 제대로 지켜진 날은 거의 없었다. 떨어트린 물건들을 주워 담고, 미처 못 묶은 마대자루를 케이블타이로 조여 화물에 실으면 쉬는 시간은 끝나갔다.

가까스로 8분 정도 쉬면 모두 '으악' 탄식이 쏟아진다. 일제히 화장실, 흡연장, 음료자판기로 향했다. 시간상 다 하기는 힘들었다. 셋 중 1~2가지 '운명의 선택'을 한 후 공포의 마대 작업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끔 덜 고된 분류나 상차(짐을 차량에 싣는 작업)로 배치될 때 본능적으로 미소가 번졌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21년 '사업체 특성별 산업재해 현황과 과제' 보고서를 보면 주 52시간만 일해도 주 40시간 미만보다 산재율이 4.8배 높다. 40시간 미만 산재율은 0.101%, 40∼46시간 0.165%, 46∼52시간 0.246%, 52시간 이상은 0.484%다. /정용무 그래픽 기자
한국노동연구원의 2021년 '사업체 특성별 산업재해 현황과 과제' 보고서를 보면 주 52시간만 일해도 주 40시간 미만보다 산재율이 4.8배 높다. 40시간 미만 산재율은 0.101%, 40∼46시간 0.165%, 46∼52시간 0.246%, 52시간 이상은 0.484%다. /정용무 그래픽 기자

◆세 시간 동안 일 초도 쉴 수 없었다

유명 게임의 배경음을 작곡한 'BGM 형님'은 기어이 컨베이어에서 넘어졌다. 상차 도중 화물 컨테이너를 빠져나오려다 입구를 막은 롤러형 간이 벨트에서 '꽈당'했다.

"다행히 무릎에 멍들고 손만 좀 긁혔네." 덤덤히 말하던 그도 다음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이곳 직원이라면 누구나 매일 걷는 컨베이어다. BGM 형님이 평소와 달리 부주의했던 걸까.

그가 다친 날. 나와 가요무대 형님, BGM 형님 3인방은 야간 잔업을 했다. 주간보다 훨씬 강도 높은 '미친 노동'이었다. 가뜩이나 주간에도 제대로 못 쉬는데, 오후 4시 20분부터 7시 30분까지는 3시간여 밥도 못 먹고 1초도 쉼 없이 일했다.

모든 작업이 허리를 바짝 숙여 힘을 쏟아야 한다. 1시간 30분쯤 지나자 두통이 찾아왔다. 몸의 무게중심이 상체로 과하게 쏠렸다. 2시간쯤 지났을 땐 코뼈까지 통증이 왔다. 영하 기온 속 콧물을 닦아보니 코피였다. 옆 사람은 공복에 힘을 써서 그런지 연신 헛구역질을 했다.

이런 근로 조건에서는 장정도 곧 체력이 바닥난다. 안전을 챙길 정신줄을 붙잡기는 요령부득이다. 베테랑 직원들마저 '*발' 욕설이 입에 붙는다. 모두 폭발 직전이다. 낮에는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린 롤카트를 끌기도 버겁다. 한쪽 바퀴가 1.5m 난간에 걸리는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다.

무엇보다 작업 장소 자체가 위험했다. 불과 한 발짝 움직이면 난간인데 10명쯤 모여 한가득 물건을 쌓고 컨베이어를 오가며 카트도 이동한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묵직한 물건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추락이다.

'다른 공간이 없나' 주변을 둘러보니 그런 곳은 없었다. 누구도 쓰러지지 않은 게 기적이었다.

◆주 52시간이 꿈같은 노동자들

잔업을 마친 뒤 택배사 한 직원이 등을 토닥였다.

"고생했어. 여기선 잠깐 하다 멀쩡한 데 취직해서 얼른 돈 벌어. 나처럼 나이 들면 번 돈보다 병원비가 더 나가는 때가 있거든. 우린 하루 14시간씩 일해. C시 지정장치장에서 새벽에 출근 찍고 D시에서 작업하고, 다시 E시 가서 퇴근 찍어. 주말 일할 때도 많고. 주 52시간이 어딨어. 나야 딸 아이폰 사줘야 하니 열심히 해야지."

물류센터는 노사 합의에 따라 주 52시간제 예외가 허용되는 특례 업종 중 하나다.

이 직원에게 한국노동연구원의 2021년 '사업체 특성별 산업재해 현황과 과제' 보고서를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주 52시간만 일해도 주 40시간 미만보다 산재율이 4.8배 높다. 40시간 미만 산재율은 0.101%, 40∼46시간 0.165%, 46∼52시간 0.246%, 52시간 이상은 0.484%다.

우리나라는 주 52시간을 일해도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5번째로 노동시간이 길다. 딸에게 아이폰을 사줘야 한다는 그는 더 많이 일할 것이다. 못해도 전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수도 있겠다. 그가 나이 든 게 잘못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주 52시간을 일해도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5번째로 노동시간이 길다. 딸에게 아이폰을 사줘야 한다는 그는 더 많이 일할 것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남윤호 기자
우리나라는 주 52시간을 일해도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5번째로 노동시간이 길다. 딸에게 아이폰을 사줘야 한다는 그는 더 많이 일할 것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남윤호 기자

◆백 사람 일하는데 한 사람 폭 계단 하나

마지막 출근날 또 한 번 놀랐다. 어쩐 일인지 옆 라인 업체와 내가 속한 회사가 4호기 기둥 주변 짐을 싹 정리했다. 물건들이 사라진 바닥에 한 글귀가 보였다.

'소화전 앞 적재 금지'.

고개를 뒤로 돌리자 1∼6호기 직원들이 창고 출입 때 이용하는 계단이 보였다. 단 한 명만 설 수 있는 폭이다. 만약 불이 나면 100명 이상이 이 계단으로 대피해야 한다. 아니면 난간에서 뛰어내려야 한다. 젊고 신체 건강한 이들에게나 해볼 만한 높이다. 혹시 난간에 화물차나 컨테이너라도 세워져 있다면 답이 없다.

걸핏하면 일어나는 물류센터 화재가 발생해도 그때뿐. 여기선 먼 나라 얘기다. 한 주 동안 일하며 안전관리자는 본 적 없다.

택배사의 한 젊은 직원은 '그래도 여기는 나은 편'이라고 한다.

"다른 곳은 훨씬 심해요. 더 바빠서 컨베이어에서 넘어지고, 손 끼이고, 물건에 발등 찍히고 많이 다쳐요. 먼지도 심해서 코 풀면 시커먼 게 나와요. 우리는 다치면 회사에 말하죠. 주현웅씨는 도급업체에 말해야겠지만요."

지정장치장에서 발생한 산재는 통계상으로는 극소수다. 2022년 세관 직원이 상자를 뜯다 커터칼에 손이 베인 사건, 같은 해 컨베이어 수리 직원 2명이 작업 중 손가락이 끼여 각각 절단과 골절상을 당한 사건 등 정도다.

책임소재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음 문제다. 현장은 법에 명시된 필수 안전교육도, 장비 배분도, 원칙적인 휴식 제공도 없었다. 언제든 산재가 일어날 수 있었다. 다른 곳은 상황이 좀 나을까 싶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순진했다.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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