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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힌지드] - 도로교통안전공단에서 홍보용 영화로 상영하면 인기는 끌겠다.
13  쭈니 2021.02.26 15:48:23
조회 275 댓글 0 신고

감독 : 데릭 보트

주연 : 카렌 피스토리우스, 러셀 크로우, 가브리엘 베이트먼

보복운전을 당해본 사람은 안다.

많은 남자들이 '마이카'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없었다. 아마도 어렸을 적부터 심하게 앓은 멀미병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만 가면 심한 어지러움과 구토를 해야 했으니 나에게 자동차는 두려움의 존재였던 것이다. 다행히 집에서 먼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거짓말처럼 멀미병은 나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나는 운전하는 것을 거부했다. 직장 생활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운전면허증을 땄고, 어쩔 수 없이 차를 샀지만, 지금도 될 수 있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내가 운전을 싫어하는 이유는 운전대를 잡는 순간 밀려오는 스트레스 때문이다. 특히 초보 시절 출퇴근을 하며 겪은 아찔한 보복운전은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운전대만 잡으면 극도의 긴장감을 나에게 안겨준다.

[언힌지드]는 극단적인 보복운전에 대한 영화이다. 월요일 아침 늦잠을 잔 싱글맘 레이첼(카렌 피스토리우스)은 최악의 아침을 맞이한다. 아들인 카일(가브리엘 베이트먼)은 학교에 지각하겠다며 짜증을 내고, 이혼 소송 중인 남편은 집을 원한다며 레이첼의 속을 긁어 놓는다. 게다가 차가 막혀 예약 시간이 늦는 바람에 중요한 고객에게 해고 통보까지 받는다. 열이 오를 대로 오른 레이첼. 그런데 꽉 막힌 도로에서 앞 차는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움직이질 않는다. 화가 난 레이첼은 거칠게 경적을 울리며 화풀이를 한다. 그런데 앞 차를 탄 운전자(러셀 크로우)가 그녀의 차를 따라 오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앞 차의 운전자가 전 날 밤, 이혼한 아내를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른 자포자기 상태의 싸이코라는 사실이다. 그는 직장에서 해고되고, 아내에게 이혼까지 당하자 세상에 불만을 품고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한 상황에서 레이첼과 마주한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가 레이첼을 해코지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레이첼에게 정중히 신호 앞에서 멍 때렸던 자신의 행동을 사과했다. 하지만 레이첼이 경적을 울린 행동에 대해 사과하지 않자 그녀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고, 이에 레이첼에게 힘든 하루가 어떤 것인지 느끼게 해주겠다고 결심한다.

시작만 보복운전이다.

보복운전이라는 우리가 도로 위에서 흔하게 당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을 영화화했다는 점이 내가 [언힌지드]를 주목한 이유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시작만 보복운전일 뿐, 이후에는 흔한 싸이코 스릴러가 되고 만다. 하긴 보복운전만으로 1시간 30분의 러닝타임을 채우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뭐 앞에서 급정거하기, 옆 차선에서 칼치기 끼어들기, 뒤에서 들이받으며 위협하기는 당하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공포스럽겠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스릴의 강도가 낮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꽉 막힌 도심의 도로가 무대이다 보니 화끈한 카 체이싱 장면도 기대할 수가 없어서 보복운전 만으로는 스릴러의 재미를 채울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언힌지드]는 무리수를 두기 시작한다. 레이첼을 위협하는 낯선 남자의 정체가 자포자기한 싸이코라는 설정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싸이코 살인마와 마주할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아예 확률 제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싸이코 살인마가 레이첼의 스마트폰을 획득하여 그녀의 지인을 죽이려 들 가능성은 제로이다. 그의 분노가 레이첼을 향한다면 그럴 수 있다고 이해가 되지만 가족을 향한다면 이건 좀 이해가 안 된다. 게다가 그는 카일이 안전하게 등교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던가. 그랬던 그가 갑자기 레이첼에게 전화해서 카일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며 이 위험한 게임에 카일을 끌고 들어간다고? 그러려면 처음부터 그러던가.

영화의 오프닝에 꽉 막힌 도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시민들, 그리고 보복운전이 난무하는 상황과 대거 해고된 경찰들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온다. 이러한 뉴스를 바탕으로 [언힌지드]에는 경찰의 역할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이렇게 대놓고 범죄가 벌어지는데 도대체 경찰은 어디에 있나 싶을 정도이다. 보복운전만으로 영화의 스릴이 만족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스릴을 위해 너무 과한 설정을 마구잡이로 우겨 놓은 것은 [언힌지드]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다.

내가 레이첼이라면...

이런 류의 영화가 재미를 얻으려면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 번째 방식은 통쾌함이다. 처음엔 미치광이 살인마한테 일방적으로 당하다가 나중엔 전열을 가다듬어 미치광이 살인마를 때려 부순다. 대부분 이런 영화의 경우는 주인공이 전직 군인이었거나 특수요원쯤 되어야 한다. 두 번째 방식은 공포이다. 주인공이 미치광이 살인마한테 일방적으로 당하다가 마지막에 가까스로 물리친다. 이 경우 관객은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되고, 주인공이 위기에 몰리면 극도의 공포를 느끼면서 영화적 재미에 빠져든다. [언힌지드]는 정확하게 두 번째 방식을 택한 영화이다.

그럴 경우 중요한 것이 있다. 관객이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문제는 [언힌지드]가 그것에 철저하게 실패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레이첼에 대한 감정이입은 어긋났다. 분명 나 역시도 도로 위에서 짜증이 나면 경적을 세게 울린다. 하지만 상대 운전자가 이 영화에서처럼 정중하게 사과를 한다면 화가 스르륵 풀리면서 당연히 '나도 과했다. 미안하다.'하는 사과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레이첼은 '나는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상대 운전자의 사과를 무시한다. 그 순간 나는 하마터면 영화의 빌런인 낯선 남자에게 감정을 이입할 뻔했다. 도로 위에서 레이첼과 같은 뻔뻔한 운전자를 만나면 평상시 욕을 안 하는 사람이라도 욕이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오게 될 것이다. 레이첼은 바로 욕을 부르는 뻔뻔한 운전자이다.

낯선 남자의 공격이 도를 넘어서면서부터는 레이첼의 대응은 정말 한심하다. 특히 낯선 남자가 레이첼의 동생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면서 카일을 학교에서 데리고 나오라고 명령하는 장면에서 레이첼은 멍청하게도 카일을 데리러 학교에 간다. 그럼으로써 어린 아들을 이 끔찍한 현장에 스스로 끌어들인다. 영화 후반부 텅 빈 할머니 집에서 혼자 잘 숨어 있는 카일을 데리러 가서 오히려 위험에 노출시키는 장면에서는 욕밖에 나오지 않았다. 뭐 저런 멍청한 x가 다 있어? 뻔뻔한데 멍청하기까지 하다니... 요 근래 본 스릴러 영화 중 레이첼은 가장 한심한 주인공이 아니었나 싶다.

통쾌함도, 공포도 없다.

[언힌지드]에 대한 나의 평가는 '실망'이다. 앞서 언급한 이런 류의 영화에서 기대하는 통쾌함 또는 공포를 이 영화는 무엇도 이루지 못한다. 경적 한번 잘 못 울린 대가(아니 솔직히 말한다면 자신의 실수를 제대로 사과하지 않은 대가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로 오랜 친구이자 자신의 이혼 담당 변호사, 그리고 동생의 약혼녀를 잃고 동생도 화상을 입은 중환자가 되었으며, 레이첼과 카일은 심한 폭행을 당했으니 비록 레이첼이 낯선 남자를 죽였다고 하더라도 통쾌함이 느껴질 리가 없다.

공포 또한 마찬가지이다. 레이첼에 대한 분풀이를 레이첼이 아닌 레이첼의 지인 또는 가족에게 해대는 낯선 남자의 폭력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레이첼의 대응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멍청해서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었다.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영화에 공포를 느낄 리가 만무하다. 그저 멍하니 바라보며 '도대체 쟤네는 왜 저러는 거야?'라며 짜증만 낼 뿐.

한 가지 [언힌지드]에거 인상 깊은 것은 있다며 후덕해진 러셀 크로우의 몸매뿐이다. 내가 알던 막시무스(리들리 스콧 감독의 2000년작 [글래디에이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배가 불룩한 몸매를 선보였다. (이 영화를 위해서 살을 찌운 것일까? 아니면 분장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평상시 몸이 저런 건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 신호를 무시하고 지나가는 상대 차를 향해 경적을 울리려다가 참는 레이첼의 모습을 통해 그나마 이 영화에서 건진 것이 있다면 우리 모두 레이첼처럼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안전운전하자는 교훈 뿐이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 도로교통관리공단에서 홍보용 영화로 상영하면 인기는 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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