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맛만은 못 잊겠더라.
몽중한 2023.01.19 01: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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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학교 수업 마치고 집으로 가며

개울가 개구리 잡다가 오후 늦게야 

눈치를 살피며 집에를 왔다

어린 동생들 탓으로 발 동동하신 어머니

야이 야 인자 오모 우야노

너그 아부지 엄청 성질 내시 긋다

얼른 갔다 드리거라 하신 어머니 눈은

가자미 됐다 솔방울 됐다

찰나에서도 번개를 몇 번이나 치시더라

 

점심인지 새참인지도 모를

밥 소쿠리와 술 주전자 양손에 들고

아버지 계실 뒤뜰의 논 향해 오르면서

생목이 말랐었지만

뒤뜰에 물 졸졸 있어도 한참의 거리

오르막길 숨도 차고 목도 말라

에라 모르겠다 하고는 술 주전자에

입을 맞추고 한 모금 꼴닥

저만치 오르다 또 한 모금 꼴딱

들큼하게 톡 쏘는 그 맛이

소풍 때 마신 사이다 맛과 비슷이라

내 늙어도 그 맛만은 절대 못 잊겠더라

 

한 여름날 뙤약볕 아래의 까까중머리

맛은 둘째치고 줄어든 주전자 속 걱정으로

뒤뜰 입구의 논 물 슬쩍 넣고 시침 뚝딱

 

어이구 이놈아 더븐데 뭐시 급해서

얼굴이 시뻘겋도록 쫓아왔노 하신

아버지의 반 꾸중에 술 취한 쪼맨한 악마

괜찮심더 아부지 하곤

얼버무리며 쥐 죽은 듯

얼른 고개를 숙여 보아도

심장이 벌떡거려 터질 것 같았었다

더븐데 시게 욕봤다 저그 그늘 가서

어여 쉬거라 하신 말씀에

시뻘건 까까중머리 야 하곤 그늘로 갔지

말만 그늘이었지

더위를 먹고 술에 취한 까까중머리는

유월의 태양과 오후 내내 씨름질로

얼굴과 함께 발과 팔뚝까지 새빨갛더라.

 

마당의 모깃불에 저녁상 물린 아버지

막걸리에 취해 똬약볕서 자다 화상을 입어

낑낑거리는 쪼맨한 악마를 보곤 어머니께

보소 임자 저놈 얼굴하고 팔뚝

감자 좀 갈아서 붙여 주구려 하셨었지

내 아버진 이미 알고 계셨을 게다

막걸리 맛이 막걸리 맛 아니었단 것을

속으론 저눔의 자식 하셨겠지만

남자 대 남자의 비밀

아버지와 나만 아는 나의 비밀을 유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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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이 아닌 술에 물 탄 비밀 유지하신 내 아버지

나 역시 어느 듯 중년의 나이 고개를 넘으니 내 아버지의 인생이 보인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 그랬을까

내 배는 곯아도 자식 배 굶기기 싫은...

춘 삼월 보릿고개 넘기기 힘들어 굶기를 밥 먹듯 하던 그 시절 아버지들은

생각조차 어려운 숙명 그저 말없이 묵묵으로 인내들 하셨었다

한 여름 작열의 태양도 벼 이삭 숙임으로 꺾어진다는 걸 알고들 계셨기에

세상의 수많은 비애들을 말없이 보듬으며 그리도 살아 내셨다

 

해거름 어슬녘 동네 길 어귀에서 한 손에 쥐어진 봉다리의 간식에

자식들 종알거림 생각으로 흐뭇해하시며서

막걸리 몇 잔으로 풍진세상 흥얼흥얼의 노래로

당신의 한을 풀어 내신 내 아버지

당신이 슬퍼도 슬프다 안 하시며 아파도 아프단 말을 못 하셨던 분

아니 어쩌면 당신의 가족들 걱정에 안 하려고 하셨을 게다.

 

그 시절 낙이라곤 사랑 방서 그저 귀 쫑긋하신 마실 어른들 둘러 앉히곤

보물처럼 간직하셨던 선반 위 책들 중 한 권을 펼치시며

유명한 변사가 되어 읊조리듯

"사랑을 따르자니 다이아몬드 반지가 울고

다이아몬드 반지를 따르자니 사랑이 울고" 하시며

심순애의 갈대와 같은 사랑에 동네 어른들 은근히 광분케 하셨던...

"순애야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렇게도 좋단 말이냐"

마치 소설 속 이수일 환생을 한 듯이

열변도 마다치 않으며 호야 불 유리 거멓도록 들려주시던 내 아버지

미루어 짐작 건데

이야기 중간에 막걸리 생각이 나서 인지 은근 슬쩍 목이 마르네 하시면

뒷이야기 궁금해하신 어른들

"그려 막걸리 한잔하면서 천천히 하시게나." 하신 마실 어른들 말씀에 

물도 괜찮은데 하시면서도

속마음 숨길 수 없음인지 반가이 술잔을 받으시며 밀당의 진수를 펼치셨다.

 

새끼줄 꼬고 이엉을 만들며 멍석도 만들던 그 시절에

막걸리 거나에 다 함께 노랫가락 차차차로 한 자락 하시던 아버지들...

동지섣달 긴긴밤을 그리 보내던 아버지들 그립고 그리워서 눈물이 난다.

간곡하시게도 너는 절대 이 아비 닮지 말라던 아버지의 삶이

내 자화상인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

시대가 변하고 산천이 변해도 애틋한 아버지의 마음들 변할까

들큼한 막걸리 같은 아버지 인생을 세상 어디에 견주랴만

나 또한 아버지의 길을 걷고 있으니

아버지의 맛에 취한 나는 아버지의 그늘에 쉬고 있음이다

혜윰이 머문 만감의 교차에 돌고 도는 게 인생이요

세상 속 포말에 왔다 갔다 한 모래알 같은 인간들의 군상이 아니런가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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