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국숫집에서 - 김광렬
뚜르 2022.10.02 08: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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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국숫집에서 - 김광렬

세 부자가 고기국숫집에 깃들었다

아비는 늙은 노새를 닮았다

어디서든 권위가 안 설 것 같은,

머리털이 몽당비자루 같은,

밑바닥 세월 견뎌가는 듯한,

왜소한 아비와 함께 온 두 남매가

쑥부쟁이처럼 고왔다

아비가 자식들의 그릇에

말없이 돼지고기 한 점씩 얹어주었다

나는 소싯적 찌든 아비를

얼마나 부끄러워했는가

가슴에 아리게 면도날이 서는데

서럽긴 해도

저들은 덜 아프겠다

 

김광렬 시집, 그리움에는 바퀴가 달려있다/푸른사상/2013

 

‘고기국수’는 제주의 음식이다. 김광렬 시인이 아마 제주의 고기국숫집에 들렀던 모양이다. 마침 세 부자가 국숫집에 들어섰고, 고기국수를 시켰을 것이다. 아버지는 ‘늙은 노새’와 같은 얼굴에 머리는 ‘몽당 빗자루’ 같고 체격은 왜소했지만 시인의 눈에 두 남매는 ‘쑥부쟁이처럼’ 고운 모습이다. 두 남매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어떻게 생각할까.

아들에게 아버지는, 어릴 때에는 슈퍼맨이었고 아들이 성장할수록 아버지는 쪼그라든다. 그러다가 어느 날 초라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된다. 시인도 그랬던 모양이다. ‘소싯적 찌든 아비를 얼마나 부끄러워했’는지 후회하고 있다. 그 후회가 면도날처럼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런데 정말 아버지가 초라한 것일까.

시인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분명 초라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자식들 그릇에 자신의 국수그릇에서 ‘말없이 돼지고기 한 점씩 얹어주’고 있다. ‘내 논에 물 들어가는데……’라고 하지 않았던가. 자식이 먹는 모습을 보면 아버지는 안먹어도 배부르다. 자식을 키워본 사람은 아버지의 그 사랑을 안다. 그것이 아버지이다. 아버지의 자식 사랑이 담긴 돼지고기 한 점을 더 먹는 남매 – 그러니 ‘어디서든 권위가 안 설 것 같은’ 아버지이지만 자식을 위한 마음은 결코 초라하지 않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을 품어주는 큰 산이다. 가고 안계신 후에야 내 아버지가 얼마나 큰 사람이었는지를 깨닫는 나 - 김광렬의 시 한 수가 오늘 내 아버지를 그립게 한다.

이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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