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들에 2022.09.21 18:3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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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내가 날린다

나뭇가지마다 나부끼는 나

포도를 구르고 이리저리 쓸려다니는 나

거리마다 쇼윈도마다 내가 서서 웃고 있다

전자제품 코너의 디스플레이 화면에서

노래하는 나 춤추는 나 바수치는 나

국민 마라톤 대회에 쏟아져 뛰어가는 나

창고 대방출 바겐세일에 무더기로 팔려가는 나

번잡한 사거리를 웅성웅성 몰려다니는

지하거나 흐리거나 다양한 채색의 나

어디나 병목인 러시아워의 도로엔

무수한 내가 지친 바퀴로 굴러가고

구름 낀 거리마다 후둑후둑 빗방울 되어 내리다

다시 얼어붙은 눈발 되어

천지가득 하얗게 펑펑 흩어지는 나

어둔 밤 귀가 길

뚜벅뚜벅 내 뒤를 쫓아오는 그림자 같은

그러다 문득 골목을 돌아서자 숨 막히는 적막

거기서부터 수증기처럼 급속히 소멸되는 나

나만의 텅 빈 공간에 들어서자 거기엔

종일토록 그 많던 내가 하나도 없다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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