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를 내린 사과밭
뚜르 2021.12.07 08:4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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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 내린 사과밭이 하얗다 연사흘 계속된 눈은 비탈진 언덕을 덮고 붉은 그늘 맺혀 있던 자리에
육십 촉 전구들을 매달아 허공까지 환히 밝힌, 흰빛이 점령한 사과밭은 추상으로 가는 통로처럼 미묘
하다

지난 한 시절 허공에 푸른 집 한 채 앉혔던 사과밭은 이제 그날의 기둥만을 간직하고 있다 허공 넓혀
영토를 키우고 다디단 그늘 매달았던 거기, 죽을힘 다해 기둥을 밀던 뿌리들, 쉴 새 없이 빛을 퍼먹던
초록 숟가락들, 햇살이 붉게 덧칠하던 그늘은 향기를 뿜으며 익어갔다 붉게 익은 그늘 아래 서면 상처
처럼 눈물이 고여 둥글게 매달린 그것이 향기가 아니라 그늘임을 알았다

지금 사과밭은 흰빛으로 직조한 지붕 아래 들었다 화가들이 화폭에 담고 싶어 하는 순수의 색, 숲을
둥글게 말아 흰 껍질 속에 가두는 새처럼 지난 시절의 푸른 기둥과 숟가락들 붉은 햇살까지 천 갈래
실핏줄 같은 미로 속에 가두고 지상으로 향하는 문을 닫았다 그 위로 흰 눈 내려 사과밭은 다시 완벽
의 무봉無縫, 어둠 깨고 나오는 부리들을 맞을 때까지 나도 이제 집으로 돌아가 면벽하고 피정에 들
시각

- 허영둘, 시 '스위치를 내린 사과밭'


죽을힘 다해 기둥을 밀던 뿌리들이었겠지요, 숨차게 달려온 지난날은.
그래도 더 매달려야만 할 것 같습니다. 남은 12월에, 남은 2021년에.
그래야만 내 푸른 집 한 채에 따스한 그늘이 온전히 드리워질 것도 같습니다.
사랑으로 직조한 흰 지붕 아래가 따스할 것이라 믿습니다.

 

<사색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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