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로(草露)

나는 초로(草露) 

말 그대로 풀잎 이슬이다

밤새 우주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풀잎 위 단 한 방울의 수분

바람 불면 

자신을 잉태한 풀잎 위에서 

안간힘을 쓰다

결국엔 툭 떨어져버리는 

힘 없는 이슬

어둑새벽을 지나 찬란한 햇빛을 받기라도 하면

그 작은 방울엔 무지갯빛 꿈도 

영글지만

그 영롱한 우주의 꿈은 

태양신의 시샘으로 반나절도 안 되어 사라져 버리네

어찌어찌 백년을 모은다 해도 

한 바가지도 안 되는 이슬방울

그 바가지 뒤집어 엎으면

지나가던 개미가 물벼락이야 하고

한 번 소리치는 사이에 

땅으로 스며들 그 이슬방울들

초로(草露)는 한낱 한 개의 물방울 

작은 파동에 흩어지기라도 하면

다시 모아질 수 없는 우주의 실종자라네

나는 힘 없는 수분 한 덩어리

나는 하루살이 보다 더 나을게 없는

미생물이라네

허허(虛虛)

나는 초로(草露)

- 草露 김성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