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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겨울바다 모바일등록
11 하서량 2021.08.01 22: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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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다 

박완서 

 

 

 아마 작년 12월 26일이었을 게다.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다가 별안간 영하 15도의 추위가 몰아닥친 날 아침, 나는 설악산 쪽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그렇게 추워질 줄 모르고 미리 계획한 여행이었는데 아침에 깨어보니 그렇게 추워져 있어서 계획을 취소할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어차피 겨울 나들이인데 춥지않으면 그 또한 무슨 맛일까 싶어 강행했다. 

 

  동대문 터미널에서 대관령까지, 버스 유리창에 성애가 두껍게 끼어 전혀 밖을 내다볼 수가 없었다. 답답해서 손톱으로 긁어내기가 무섭게 곧 다시 성에가 끼어 결국 밖을 내다보는 건 단념할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관령을 넘자 유리창은 저절로 줄줄 물을 흘리고 녹아내렸다. 

 

  대관령을 사이에 끼고 동서가 그렇게 기온의 차이가 심했다. 그러나 강릉에 내리고 보니 역시 추운 날씨였다. 곧 경포대로 가서 겨울바다를 보고, 싱싱한 회도 먹고 늦은 점심도 먹고 오죽헌에 들렸다가 다시 강릉으로 나왔다. 곧바로 설악산으로 갈까 하다가 낙산으로 갔다. 그게 잘못이었다. 

 

  어느 틈에 날은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이 깜깜하게 어두웠는데 버스 차장이 낙산이라고 하며 내려준 곳은 허허발판인데 칼날처럼 매운바람이 사정없이 휘몰아치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바다가 믿을 수 없을 만큼 격노한 소리로 아우성치고 있었다. 

 

  바람을 막아줄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데 그래도 저만치 여관의 빨간 네온이 보였다. 그 암흑의 벌판에서 보는 극히 도시적인 불 네온은 조금도 현실감이 없어 신기루 같았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네온을 향해 달렸다. 말이 달리는 것이지 바다로부터 거센 맞바람이 불어와 걸음은 지지부진하고 그 사이에 몸은 동태처럼 얼어붙을 것 같았다. 

 

  천신만고 당도한 여관에서 우선 뜨뜻한 방을 줄 것을 신신당부했으나 방바닥은 미적지근했다. 사동은 곧 덥다고는 했다. '새마을 보일러'라나, 방구석에 링거 병 같은 게 거꾸로 매달렸고, 거기서 나온 줄이 벽으로 연결되었는데 조금 있으면 줄을 통해 물이 순환되는 게 보일 거라고했다. 물만 순환되면 방바닥은 단박 뜨뜻해진다는 거였다. 

 

  오버까지 입은 채 자리에 들었다. 병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더니 물이 순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방바닥은 흡족하게 더워오지 않았다. 

 

 추위로 깊은 잠을 못 이루는데 바다는 밤이 깊을수록 그 노여움을 더해갔다. 이 외딴곳에서 지구의 종말을 맞는가 싶어 밤중에 추위를 무릅쓰고 창을 열어보니 실로 장관이었다. 

 

  바다는 깜깜하고 다만 파도만 보였다. 순백의 깃털을 가진 사납고 노한 짐승이 수천수만 마리 떼를 지어 으르렁대면서 질주해오는 것 같았다.

 

  바다는 거대한 짐승이 되어 있었다. 물에 대한 숙명적인 적으로 하얗게 타오르고 사납게 몸부림치는 짐승이었다. 나는 그의 너무도 동물적인 진한 체취까지 역력히 맡은 것처럼 느꼈다. 그리고 깊이 전율했다. 

 

​▓▓▓▓▓▓▓▓

박완서 작가

경기도 개풍 출생(1931~2011)

 

1950년 서울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었다. 1970년 《여성동아》에 《나목》이 당선되었다. 이후 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6·25전쟁과 분단, 물질중심주의 풍조와 여성 억압에 대한 비판을 사회현상과 연관해서 작품화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엄마의 말뚝》(1982),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8) 등이 있고, 수필집으로는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1977), 《아주 오래된 농담》 등이 있다.

 

학력

숙명여자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 중퇴

서울대학교 문학 명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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