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냄새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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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리는 냄새를 묘사할 때

좋다, 나쁘다, 향기롭다,

역겹다 등의 객관적 형용사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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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가끔 냄새에도

감정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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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기쁜 냄새, 슬픈 냄새, 미운 냄새,

반가운 냄새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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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것은 물리적인 사실과는 상관없이

각자의 경험에 의해

그 냄새에 감정을 투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연인이

이별을 고하며 준 꽃 냄새는

아무리 아름다운 향기라도

영원히 슬픈 냄새로 기억될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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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콩서리하여 구워 먹다

새카맣게 타버린 콩 냄새는

그리운 냄새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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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기가 끝나고 방학을 맞아

제대로 정리도 못한 채

대충 짐을 싸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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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 들어서자 익숙한 냄새가 났다.

그것은 바로 이별의 냄새,

동시에 가슴 설레는 희망의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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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유학길에 오르며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던 때의 그 두려움,

슬픔,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와 설렘의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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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도 여러 번 비행기를 탔지만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떤 비행기를 타더라도

​그 특유의 냄새가 늘 같은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LA 공항에서 밖으로 나오자

미국 특유의 공기 냄새가 났다.

옅은 화장품 냄새 같기도 하고

그냥 휑하게 넓은 공간을 스치는 바람 냄새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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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조금은 흥분되고

또 조금은 붕뜬 느낌,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뚫린 듯한 타향의 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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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LA 근교의 산마리노에 있는

헌팅턴 도서관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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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학 관련 책들을 보기 위해

고물 수동식 엘리베이터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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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서가로 들어오는 순간

​코를 스치는 독특한 냄새.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어딘지 축축하고 매캐한 오래된 책 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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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책 냄새를 맡고 가르치는 일이 내

직분임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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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이런저런 일에 부대끼고 시달리며

얼마 간 까맣게 잊고 있던 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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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를 훑어보는데 프랜시스

톰슨이라는 영국 시인에 관한 책들이 꽂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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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닐 때 영시개론 시간에

톰슨의 <하늘의 사냥개>라는 시를 배운 적이 있다.

나는 그로부터 도망갔다.

낮과 밤 내내 그로부터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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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복도를 지나 내 마음의 미로를 지나,

나는 그로부터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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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늘 내 곁에 있었다.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재미있는 비유로 묘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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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가르치며 교수님은 사람마다

독특한 마음의 냄새를 갖고 있다고 하셨다.

심통난 사람은 심통 냄새를 풍기고,

행복한 사람에게서는 기쁜 냄새가 나고,

무관심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모두 다 주위에 마음이

체취처럼 풍긴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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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떤 TV 프로에서 진행자가

병든 아버지와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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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배달을 하는 청년을 인터뷰했는데,

그도 비슷한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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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가 꿈이 무엇이냐고 묻자 "

좋은 냄새가 나는 가정을 갖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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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오토바이를 타고 피자 배달을 다니면

정말 지독하게 춥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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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피자를 배달하기 위해

현관문을 들어서면 언제나 그 집 특유의

독특한 냄새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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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크든 작든, 비싼 가구가 있든 없든,

아늑하고 따뜻한 사랑의 냄새가 나는 집이 있는가 하면,

​

어딘지 냉랭하고

서먹한 냄새가 나는 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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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한 냄새가 나는 집에서는

​정말 추운 바깥으로 나오기가 싫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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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훗날 그런 가정을 꾸미고 싶습니다."

오래된 책의 향기 속에

파묻혀 앉아 새삼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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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의 냄새는,

아니 나의 체취는,

​

내 마음의 냄새는 무얼까.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