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day
용산역 - 임동확
100 뚜르 2021.06.18 06:59:20
조회 134 댓글 0 신고

용산역 - 임동확

제가 가진 최후의 염치와 자존을 지켜갈 줄 아는 미래가 남아 있는 한,

용산역은 더 이상 동정의 눈길과 연민의 거처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던 그날 밤.

광주발 서울행 마지막 열차에서 내려 광장 한 구석에서 서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을 때였습니다. 행색 초라한 칠십대 후반의 노숙자 노인이 다가와 담배 두 개비만 구걸했습니다. 때마침 팔십 노모의 간곡한 부탁을 듣고 난 후여서, 난 별다른 주저 없이 몇 개비 남지 않은 담뱃갑을 통째로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노숙자는 한 개비는 자신의 입에 물고, 한 개비는 나란히 앉아있던 오십대쯤 보이는 여성 노숙자에게 건넸습니다. 그리곤 곧장 일어서더니, 그 노인은 필시 대리석 계단의 냉기를 막아줄 방석이자 시월 밤의 찬 이슬을 막아줄 침구이기도 할 영주 사과박스 골판지에 앉아 편안히 남은 담배를 다 태우라고 했습니다. 마치 꺼져가는 불빛처럼 희미한 그의 체온이 분명 스며 있을 그 자리에 잠시 쉬었다가기를 정중히 청했습니다.

적어도 그 누구에게든 나눠가질 답례품 같은 예의가 하나쯤 남아있다는 듯 한사코 바쁜 발길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은 하루였습니다.

웹진 『시인광장』 2015년 10월호 발표

 

<블로그 '시와 음악이 머무는 곳'>

3
페이스북 로그인
꾸미기
제목 작성자 조회수 작성일
중복글 관련 안내드립니다(2019.07.01)  (5)
[필독] 저작권 관련 게시글 삭제 처리 기준 (2017.02.15 링크 추가)  (22)
좋은글 게시판 이용안내  (16)
푸르른 날   new 산과들에 21 19:30:24
갈대꽃   new 산과들에 22 19:28:28
그리움이란   new (1) 산과들에 23 19:27:22
아내가 남긴 쪽지   new (2) 뚜르 189 14:07:34
감동은 뇌의 주요 활성 요인이다   new (1) 뚜르 146 14:07:30
물끄러미 / 정호승   new (1) 뚜르 139 14:06:56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file 모바일등록 new 하서량 77 13:43:21
칵테일 효과   new (26) 떠도는방랑자 152 10:28:40
지루함을 자초하지 말라  file new (12) 광솔 120 09:42:08
익숙함   new (4) 떠도는방랑자 84 09:36:05
벗에게   new 도토리 55 08:50:33
아내의 발   new 도토리 25 08:48:52
새와 꽃과 나   new 도토리 26 08:46:46
인생이라는 긴 여행   new 네잎크로바 69 08:40:57
♡ 꼭 필요한 말만 하자   new (7) 청암 97 07:56:02
아줌마라고 부르지 마라.  file 모바일등록 new (7) 관심글쓰니 118 07:46:25
여보게,그렇게 말하지 말게  file 모바일등록 new (3) 관심글쓰니 102 07:39:13
왠지 그런날 있잖아요  file 모바일등록 new (5) 관심글쓰니 134 07:38:15
꽃 지고 잎 진 자리에   new (2) 예향도지현 72 06:50:05
한 순간에 뒤바뀐 인생   new (8) 태극 112 03:40:29
글쓰기
 
행운의 다이아몬드~ 클릭하시면 포인트 5점을 드려요~
Copyright ⓒ EZHLD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