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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이야기
11 그도세상김용호 2021.05.04 23:14:06
조회 102 댓글 0 신고

기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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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문화

“기부”라는 말의 뜻을 사전에 찾아보니
"재물을 공공사업이나 보조 또는 원조할 목적으로 거저
내어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자신의 것을 아무런 조건 없이 거저 내어준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문화가 정착된 사회를 선진사회라고도 한다.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미국의 억만장자 기업인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훗날 상응하는 보답도 기대하기 어려운 불특정
다수를 위해 피땀 흘려 번 돈을 선뜻 기부하는 심리적인 까닭은
도대체 뭘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심성의 미스터리다.

8월 4일 억만장자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가 이끄는 자선사업 운동인
“기부약속(The Giving Pledge)"은 미국 갑부 40명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한다고 발표하여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놀라기도 할만한 것이 수천억 달러(수백조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부자의 유산

빌 게이츠는 워런 버핏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며, 또한 가장 많은 기부를 한 사람입니다.

빌 게이츠의 2011년까지의 기부액은 280억 달러이며,
그럼에도 560억 달러의 재산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 금액은 한화로 약 60조원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세간에서는 빌 게이츠가 자신의 세 자녀들에게
얼마의 유산을 남겨줄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2011년 빌 게이츠는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메일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에 대해 언급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자녀들은 저의 재산에 대해서 아주 적은 규모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자녀들은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많은 재산을 주는 것이 자녀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껏 모은 재산을 자녀들을 위해 사용하기보다 기부를 통해
사회에 환원할 것입니다.”

지금껏 빌이 자녀들에게 약 천만 달러의 금액만을 남겨줄 것이라는
소문이 많이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자신의 말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사실 천만 달러도 100억에 해당하는 돈으로 결코 적은 돈이 아니지만
이는 빌의 전 재산에 0.018%밖에 되지 않는 비율입니다.

빌 게이츠의 롤모델

미국의 사업가 척 피니는 1931년 아일랜드 이민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넉넉지 않은 어린 시절을 갖은 고생을 하며 살았으며
6.25 참전용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후 세계 최대 규모의 공항면세점인 DFS 공동 창업자로
억만장자가 되었지만 지독한 구두쇠로 유명했습니다.

값싼 전자시계를 차고 다니고, 비행기는 이코노미석만 고집하고,
개인 자동차도 없으며 집은 임대아파트에 거주하고 있고,
항상 허름한 식당에서 한 끼를 해결했습니다.

'부유하고 냉철하고, 돈만 아는 억만장자'
미국의 한 경제지에서는 척 피니를 이렇게 묘사하며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척 피니에게도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회계조사를 받던 중 수십억 달러의 거금이 다른 회사 이름으로
지속해서 지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자금 횡령 사람들은 긴장했고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척 피니가 몰래 지출하고 있던 어마어마한 거금은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기부금이었던 것입니다.

'자랑하지 마라.
받은 이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면 절대 자랑하지 마라.'

어머니에게 이렇게 교육받아온 척 피니는 지금까지 자기 재산의
99%인 9조 5천억 원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고 있습니다.

다른 부자들의 기부도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척 피니는
바로 빌 게이츠의 롤모델 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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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인 채로 죽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

‘강철왕’으로 알려진 Andrew Carnegie라는 사업가가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벌레 잡이, 기관조수, 전보배달부, 전신 기사를 거쳐서
후에 세계 최대의 철강회사를 운영했던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철강사업가로 생각하기보다는
자선사업가로 생각합니다.
아마 그가 벌어들인 재산만 생각하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에서
최고의 호사를 누리면서 살아도 남고 또 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어느 시점에서 회사를 매각하고, 인생 후반부는
자선사업에 몰두했습니다.
2,509개의 공공도서관, 카네기 공과대학, 카네기 교육진흥재단,
각종 평화재단 건립 등에 전 재산의 90%를 기부했습니다.
평소에 그는 늘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부자인 채로 죽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카네기는 그 말대로 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것을 남에게
다 나누어주었습니다.
카네기는 인간의 일생을 2기로 나누어서, 전기에는 부를 축적하고,
후기에는 축척 된 부를 사회복지를 위해서 투자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 신념을 실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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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레몰아 400억 쾌척 노부부

"기부도 내 형편에 맞게 할 수 있다면 기쁜 일이에요.
좋은 인재를 발굴해서 나라에 기여할 수 있게 하면 그게 좋은 일이지요."

희게 센 머리를 곱게 빗어넘기고 지팡이를 짚은 양영애씨(83·여)의
나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양씨가 차려입은 붉은 체크무늬 셔츠는 30년 넘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해진 데 없이 단정하고 깨끗했다.

25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본관을 찾은 양씨와 김영석씨(91)
부부가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에 기부한 부동산은 시가 200억원 규모
서울 청량리 소재 토지 5필지와 건물 4동. 현재 시가로 따지면
200억원 규모에 이른다.

이뿐만이 아니다.
양씨 부부는 이후 시가 200억원 상당의 토지 6필지와 건물 4동을 추가로
기부할 예정이다.
평생 과일 장사를 하며 모은 전 재산 400억원을 "인재 발굴에
써 달라"며 고려대학교에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기부 금액은 지난 2007년 익명을 요구한 60대 여성이 시가
4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부한 이후 고려대학교 기부금 가운데
역대 최고 액수다.

"'청량리~서대문' 전차 비용도 아까웠죠"

양씨는 경북 상주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형제자매 중 가장 머리가 좋았지만 초등학교 문턱도 제대로 밟아 보지 못했다.
대신 "쟤는 공부 안 해도 얘들(형제들)보다 잘 살 것"이라는 아버지의
심부름을 돕는 등 일찍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양씨는 23살에 김씨와 중매를 통해 만나 결혼했다.
김씨는 강원 평강군 남면에서 태어나 15살에 부모를 여의고 17살에
월남한 실향민이다.
"돈을 벌어 오겠다"며 고향에 2명의 형제를 두고 떠나 왔지만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양씨는 식모살이, 식당 일 등 궂은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다 1960년대 초
종로5가에서 김씨와 함께 손수레로 과일을 떼어다 팔기 시작했다.
매일 자정쯤 종로 5가 시장통에 도착해 납품 트럭으로부터 과일을 샀다.
좋은 과일을 고르기 위해 같은 트럭에서 과일을 사들이는 다른 상인들보다
4시간은 일찍 움직였다.

청량리부터 서대문까지 다니는 전차 요금을 아끼기 위해 1시간 거리를
매일 걷기도 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라 파출소 순경에게 붙잡히는 일도 다반사였다.
또 과일 장사가 끝나면 늦은 밤까지 식당 일을 하는 대신 밥을 얻어먹고,
번 돈은 모두 은행에 저금하고, 옷이나 신발도 얻어쓰는 등 검소하게 생활했다.

양씨는 "산꼭대기에서 월세 생활을 15년 했다.
그런데 분수에 맞게 살아야지, 허세를 떨면 안 되지 않나"라며
"이것도 30년 된 옷"이라고 자신이 입은 셔츠를 가리켜 보였다.

이 같은 성실한 노력이 빛을 발해, 이들이 파는 과일의 질이 좋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기 시작했다.
몇 년 후에는 시장 상인들의 도움을 얻어 가게도 낼 수 있었다.
개점 후 3∼4시간만 지나면 과일이 전부 팔려 나갈 정도로 장사도 잘 됐다.

이렇게 모은 돈을 종잣 돈으로 대출을 얻은 부부는 1976년 처음으로
청량리에 상가 건물을 매입했고, 과일장사를 계속해 빚을 갚아 나가며
주변 건물들을 하나 둘씩 사들였다.
그러면서도 입주 업체들이 오랫동안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임대료는
가급적 올리지 않고 저렴하게 유지했다.

알뜰하고 소중하게 모은 전 재산을 통 크게 기부하게 된 배경에 대해
부부는 "오래전 두 아들이 미국에 이민을 가 자리를 잡고 살고 있기 때문에
재산을 물려주기보다는 좋은 곳에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부처를 고민하던 양씨는 가깝게 지내던 부동산 주인의
"어머니, 우리 동네가 잘 살아야지. 고려대 가서 (기부)하세요"라는
권유로 고려대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양씨는 "기부를 하기 전에는 이렇게 기부가 좋은 것인지 몰랐다.
무식해서 남들이 기부하면 그런가보다 했다"며 "열심히 벌어서 형편이 되면
내가 쓰고 남은 돈은 절대로 자식에게 주면 안 된다.
막 쓰고 인생을 망친다"고 강조했다.

"국민학교를 졸업 안 했어도, 썩은 과일장사라도 사람이 머리를 써야 한다"며
배움의 중요성을 수 차례 강조한 양씨는 "우리나라의 인재를 많이
발굴해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날 오후 5시부터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본관 인촌챔버에서 열린
기부식에는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김재호 이사장, 염재호 고려대 총장,
유병현 고려대 대외협력처장 등이 참석해 양씨 부부에게
기부증서와 감사패를 전달했다.

출처 : 뉴스1코리아 윤다정 기자 2018.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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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아름다운 것

백발이 성성한 머리와 수염을 지닌 한 노인이 매일 집에서 20킬로 이상
떨어져 있는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Sofia)를 걸어 다녔습니다.

도브리 도브레브(Dobri Dobrev)라는 이름의 노인은
알렉산더네브스키 대성당 근처에서 매일 같이 동전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거지 할아버지를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이 할아버지는 20년 동안 구걸하여 받은 돈이
4만 유로가 넘었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고
보육원 등에 모두 기부했기 때문입니다.

이 할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은
우리 돈으로 10만 원 정도의 연금뿐입니다.
낡고 해진 신발과 옷을 몇 번이나 수선하여 사용하면서도
본인은 항상 만족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2014년에 무려 100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20km를 걸어 다니며 사람들에게 모은 돈은 기부하였습니다.

그 후 2018년 2월 13일, 향년 104세의 일기로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성인(聖人)처럼 살다간 '도브르 할아버지'가 이 세상에 진정으로
남기고자 했던 것은 나누는 것의 많고 적음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 일어서길 바라는 선한 행동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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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천사

15년간 6억 달러(약 5천1백억 원) 이상을 익명으로 자선단체 등에 기부,
미국 언론의 끊질긴 추적을 받아온 '얼굴 없는 천사'가
드디어 실체를 드러냈다.

주인공은 뉴저지 주에서 공항면세점 그룹을 운영하는 찰스 피니 씨(65).
23일 뉴욕타임스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진 피니 씨 자신은 정작 집과
자동차도 없는 청빈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많은
미국인들에게 큰 감동을 던졌다.

그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도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었다.
그가 운영해 온 회사를 매각함에 따라 새 주인이 인수한 회계장부에서
놀라울 만큼 많은 액수의 기부행위가 이뤄진 사실을 알고 뉴욕타임스에
이를 제보했기 때문이다.

피니 씨는 「자수성가」의 전형이었다.
코넬대 재학시절 군복무를 전제로 정부에서 학자금을 융자받아 수업료를 내고
샌드위치 장사로 생활비를 충당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큰돈을 벌게 된 것은 70년대 초 대학친구들과 공항면세점
체인을 설립하면서.
이 회사는 지난해 연간매출액이 30억 달러(약 2조5천억 원)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목돈을 손에 쥐자 그는 두 개의 비영리재단을 세웠다.
그리고 회사운영자금을 제외한 대부분을 사회단체에 기부했다.

총기부액 6억 달러는 대학에 47%, 국제기구에 24%, 어린이와 노인 시설에
19%씩 돌아갔다.
그러면서도 그는 15달러짜리 시계를 15년째 쓰고 비행기도 이코노믹
클래스 만 이용하는 등 검약한 생활을 계속해 왔다고 한다.
피니 씨는 뉴욕타임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부를 한 것은 내가 필요한 것보다 많은 돈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돈은 매력적일 수 있지만 누구도 한 번에 두 켤레의 신을 신을 수는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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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의 이유

홍콩 굴지의 기업인 허치슨 왐포아의 리카싱 회장은 중화권 최고의
갑부로 손꼽힙니다.
2010년 기준으로 210억 달러의 재산을 가져 세계에서 14번째로
부자로 뽑힌 리 회장은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처럼 세계적1으로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1980년에 리카싱기금회라는 재단을 만들어
지금까지도 매우 많은 재산을 공공의 발전을 위해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단일 자선재단으로만 따지면 빌 게이츠에 이어서 세계 2위인 리카싱
기금회는 특히나 교육과 의료 등의 공익사업에 전문적으로
기부를 합니다.
최근에는 지원을 할 단체를 재단에서 직접 선정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한 투표로 직접 선정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일반인들에 대한 기부의 관심과 참여도가 매우 크게 높아졌다고 합니다.
리 회장이 지금까지 기부를 한 금액은 한화로
약 1조 5000억 원에 달합니다.
자신의 총 자산의 절반이 넘는 금액으로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지만
최근에 다시 450억 원을 추가로 재단에 기부 했다고 합니다.
리 회장은 자신이 이런 기부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12살 때부터
가장이 되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 겪었던 어려움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겪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어려움을 아는 사람,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만이 어려움을
당하는 다른 사람을 위한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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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왕 카카오 김범수 "재산 절반 이상 기부하겠다"

최소 5조원 추정…임직원에 신년 카톡 메시지로 알려 공증 위한
기부 서약 절차도 추진 중 누적으로 이미 224억원 규모 기부 여러차례 단행해

[서울=뉴시스] 이진영 기자 =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의장이 8일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재산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발표했다.
그의 재산은 주식만 현재 10조원 정도임에 따라 최소 5조원이 넘는
규모를 사회에 헌납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의장은 이전에도 카카오 법인과 별도로 사회적 문제 해결과
국가적 위기 극복을 위해 14년여간 224억원 규모의 기부를
단행한 데 이어 이번 통큰 결정으로 명실상부 '기부 끝판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의장은 이날 카카오 임직원에 신년 카톡 메시지를 보내
"격동의 시기에 사회문제가 다양한 방면에서 더욱 심화되는 것을
목도하며 더이상 결심을 더 늦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다짐이 공식적인 약속이 될 수 있도록 적절한
기부서약도 추진 중이다"라고 알렸다.

앞서 그는 작년 3월 카톡 출시 10주년을 맞아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자가 되겠다고 약속한 후 고민한 결과의 연장선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김 의장이 보유 중인 카카오의 지분은 13.74%(1217만631주)다.
김 의장이 보유한 주식 가치는 약 10조원으로 추산되며,
그의 재산 중 주식 절반만 계산해도 5조원에 달한다.

그는 기부금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김 의장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는 이제 고민을
시작한 단계이지만, 카카오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찾고 지원해 나갈 생각이다"며
"구체적인 플랜은 크루 여러분들에게 지속적으로 공유드리며
아이디어도 얻고 기회도 열어 드리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김 의장은 이번 결정 이전에도 어떤 기업인보다 기부를 활발히 해왔다.
현재까지 그가 기부한 규모는 현금 72억원, 주식 약 9만4000주
(약 152억원)이다.
기부 당시 주가로 합산하면 총 224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카카오 주식 가치가 가파르게 상승한 것을 고려하면
그의 기부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구체적으로 보면 지난해 8월 장기간 이어진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
복구를 위해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10억원(약 2830주)에
이르는 개인 주식을 전달했다.

또 작년 3월에는 코로나19 피해 극복을 위해 20억원 상당의
개인 주식(약 1만1000주)을 내놓았다.
당시 카카오도 20억원을 기부해 총 40억원의 코로나 기부금이
카카오에서 조성, 국민적 기부 활동을 견인했다.

(출처: 카카오)
교육 문제를 해결하고 교육 혁신가를 발굴 육성하는 비영리재단
아쇼카에도 기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16년부터 작년까지
5년간 매년 1만주씩 총 5만주를 내놓았다.

다음세대의 건강한 성장을 미션으로 교육혁신 분야의 다양한
실험에 투자하는 벤처기부펀드인 씨프로그램에는
2015년부터 매년 10억씩 6년간 총 60억원을 투입했다.

게임인재단에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2억씩 5년간
10억원을 기부했다.
게임인재단은 게임 산업에 종사하는 게임인과 게임인을 꿈꾸는
청소년들을 지원한다.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에도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1만주씩
3년간 총 3만주를 전달했다.
이 네트워크는 다양한 파트너와 문화예술사회공헌, 청년창업플랫폼,
도시 재생사업 등을 진행하는 조직으로 김 의장은 주식 기부를 통해
경기도 스타트업 캠퍼스 설립 및 운영 프로젝트에 힘을 보탰다.

이 밖에 모교인 건국대사대부고에 장학금으로 2007년과
2011년 1억원 씩 총 2억원을 기부했다.

김 의장은 지난 3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 출시 10주년 맞아
임직원에 영상 메시지를 보내 "기업이 선한 의지를 갖는다면
확실히 더 나은 세상이 되는 데 근접할 수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사회 문제에 더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고 싶다"라고 말한 바 있다.

또 "카카오의 지난 10년이 '좋은 기업'(Good Company)이었다면
앞으로 10년은 '위대한 기업'(Great Company)으로
이끌어줄 것입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mint@newsis.com 등록 2021-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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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부 왕들

"천사처럼 쓰고 싶다"…1조 재산도 아낌없이, 한국의 기부왕들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은 676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출연해
‘이수영 과학교육재단’ 을 설립하기로 했다.

한국인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해달라며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이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에 676억원 상당을 기부한 사연이 알려지며
화제가 되고 있다.
이 회장처럼 평생 모은 재산을 아낌없이 베풀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인물은 누가 있을까.
거액의 재산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한
'한국의 빌 게이츠들'을 정리해봤다.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회장은 대표적인 '한국의 기부왕'이다.
100세를 눈앞에 두고 있는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돈을 버는 데는 천사처럼 할 수 없어도 돈을 쓰는 데는
천사처럼 하겠다'는 자신의 기부 철학을 밝혔다.

그는 1959년 삼영화학공업 주식회사를 세운 뒤 2000년 1조원의
사재를 털어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세계 100대 자선재단 순위에서 90위에 속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 장학재단이다.

가구업체 한샘의 창업주인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은 2015년 자신이
보유한 한샘 주식 절반인 260만주(당시 종가 기준 약 4400억원)를
한샘드뷰재단에 내놓기로 약속했다.
조 명예회장은 2015년 60만주, 2017년 100만주를 기부했으며
나머지 주식의 재단 증여도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도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의
통일 나눔펀드에 개인자산 전액인 약 2000억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이 명예회장은 1995년 대구 지하철 공사현장 폭발사고(20억),
2017년 경북 포항 지진(10억원), 2020년 코로나19 지원 (20억)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일에 꾸준한 기부를 이어왔다.

연예계 스타들도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며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 있다.
원로배우 신영균씨는 2010년 명보극장(명보아트홀)과
제주 신영영화박물관 등 500억원 규모의 사유재산을 한국 영화 발전에
써달라며 쾌척했다.
모교인 서울대에도 시가 100억원 상당의 대지를 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나중에 내 관 속에는
성경책 하나 함께 묻어 주면 된다"며 앞으로 남은 재산도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신씨는 서울대 출신의 잘 나가는 치과의사이자 사업가, 배우,
국회의원 등으로 다양한 삶의 궤적을 그려 나간 인물이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극단에서 활동하다 어머니의 반대로 1995년
서울대 치과대학에 진학했다. 1960∼1978년 영화에 출연해
얼굴을 알린 이후 15, 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배우 장나라는 정확한 액수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미 2009년에
130억이 넘는 금액을 기부했다.
대부분의 광고 수익을 기부하는 그는 '사람들에게 장미를 나눠주니
내 손에 장미향이 남았다’는 가족 생활 신조로 선행을
실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부 천사'로 유명한 가수 션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와 아내 정혜영과 각종 재단에 개인으로 기부한 금액은
55억원이 넘는다.
그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한 단체에서만 아이 400명 정도 후원을 한다.
총 1000명 정도 후원을 한다"고 밝혀 놀라움을 안겼다.

이밖에 가수 하춘화도 45년 간 200억원이 넘는 기부를 했으며,
가수 조용필도 매년 수억원씩 기부하며 2013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 선정
‘아시아 기부영웅 48인’에 이름을 올렸다.

2020.07.25 06:30

출처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2020.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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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은이 : 그도세상 김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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