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일시모음 41편/그도세상
그도세상김용호 2021.02.14 00: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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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일시모음 4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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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섬 대마도

손해일

천안하의 구름다리
대마도(對馬島)엔 입이 두개다.
조선의 왜열도 개척 전진기지
일본의 반도침략 전초기지

부산포에서 43km
구주북단 명호옥에서 107km
두 섬, 두 시마, 쯔시마로 바뀌어 불리며
반도의 문명이 배설되는 곳
왜국의 배은망덕이 오줌누는 곳
대마도는 항문이 두개다.

파도에 얼굴묻은 야누스여
척박한 땅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조선 왜국 양다리로 외줄타기
이전투구 진흙발로 왜구 소굴되었더니
안개속에 숨은 너를 가려
넘실대는 만경창파.

조선반도 신천지 개척자들이
가야, 백제, 신라, 고구려
회한의 망명객들이
잠시 둥지틀어 쉬어 가던 곳
대마도는 가슴이 두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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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디엠제트 에델바이스

손해일

사운드어브 뮤직
명화에서나 뜨는
스타인줄 알았다.

휴전선 호젓한 산록에서
꽃무리로 자생한 너를
찾기까지는

멧새는 참호 속에 숨고
비비비비
빗속에 우는 비비새

언제쯤 이산의 아픔을 접으랴
디엠제트 에델바이스
비무장지대 엉거시꽃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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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땅따먹기

손해일

뼘 재먹는 재미에 끼니도 거른 한낮
밥 먹으라는 엄마의 부름도 귓전에 흘리고
아이들이 땅따먹기를 한다
오종종한 손바닥으로
한껏 넓혀가는 너의 영토
재주만 있으면 네 것이다 아이야
큰손이 아니래도

지네처럼 스멀대는 땅거미
어둠이 흡반을 들이대자
미련 없이 자리 털고 일어서면
기실 가지고 갈 수도 없는
한 뼘의 탯자리

돈과 명예와 권력과 허세
종교 민족 국가 이데올로기의 허울로
쳇바퀴 도는 다람쥐

밤새 몇 치쯤 부쩍 자란
우리들의 땅따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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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망자기

손해일

늦장가를 들었지요

자식을 불사르고 돌아오던 귀로
문득 네가 생각키움은
끈끈한 인연 탓일까
10년을 지나서도
무력한 아비가 줄 것은
한 편의 시뿐

부모는 흙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던데
강남성모병원 영안실
죽은 자식 불알을 만지며
부질없는 너울
수의를 입히며
살아있는 나를 생각했다
서류에 쾅쾅 목도장을 지르며
가슴에 응혈진 못을 박으며

덜컹대는 장의 버스엔

작은 목관이 하나
저승사자처럼 무표정한 운전사
죄인처럼 흔들리던 나
우린 그렇게 이승을 하직했다
용하다는 첨단의술로도
전능하신 신의 부름 앞엔
무력하던 너의 숨결

벽제화장장
이승의 마지막 정차장
來生으로 갈아탈 티켓을 끊어
火夫가 당기던 불꽃
간절한 내 기도에도
낮달은 무심히 뜨고
호접인 양 춤을 추던 너
슬픔의 축제
치솟던 불기둥
평안하거라
한 오락 연기
허무의 재여

문득 문득
네가 생각 키움은
질긴 인연의 고리 탓일까
오늘은 별이 된 너를 보았다

늦장가를 들었지요
높새바람을 가득 안고 돌아오던 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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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몰운대 안개

손해일

얼마나 흘러왔을까.
낙동강이 굽이굽이 남녘바다와 살섞는 곳
타성받이 하나 없이 대물리며
안개를 먹고 안개만 낳는
안개들의 집성촌
부산 다대포 몰운대(沒雲臺)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ㄲㄹ ㄲㄹ ㄲㄹ ㄲㄹ ㄹㄹ
현해탄을 돌아온 을숙도 갈매기떼
안개비에 젖을 때
몰운대 물살에 옷자락을 끌며
가덕도 산자락에 지는 노을

아직도 내는 모른데이
낙동강 물은 썩어도
버릇처럼 부딪치는 포말을 휘적시는 남녘바다
솔바람 가지 끝에 걸리는
몰운대 안개꽃
그 현란한 일렁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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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물구나무서는 세상

손해일

거꾸로 서면
세상이 바로 보였다
두 팔에 느껴지는 중량감
물구나무를 서서
나는 지금
지구를 번쩍 들었는데
얼마쯤일까
내 삶의 무게는
내가 살아서 지은 죄
내가 보탠 미움
내가 베푼 사랑의 무게는

이 땅에 살다 간 사람들
살아 있는 우리들의
대차대조표
사랑과 미움
고통과 기쁨
모두들 상쇄한
삶의 값은 얼마쯤일까

더도 덜도 아닐 것 같은데
내 두 팔에 느껴지는
지구의 무게만큼은
물구나무를 서서
부질없이 헤아려 보는
삶의 값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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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물푸레나무 숲을 돌아

손해일

바람아
석달 열흘만 불어라

물푸레나무 숲을 돌아
쉬엄쉬엄 올라온
고갯마루
얽힌 실마리를 찾다가
문득
물레질을 멈추고 보면
빛과 어둠의 선연한 경계
확연히 금 그을 수는 없어도
허공에 달아 맨
붙박이창
날강목치기

살아서도
죽어서도
진양조 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열두 발 상모상모

휘휘한 굿판
어느 가락엔들 한마당이라지만

무덤결 들풀
꿈결에 보낸 한 뉘
바람스럽게
나무스럽게
물푸레나무 숲을 돌아가면.

* 날강목치기 : 광물을 캘 때 갱목을 치고 광맥을 찾아 파들어 가지만
조금도 얻은 바가 없어 헛일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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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밀라노 환상곡

손해일

상아 건반을 두드리는 손길에선
청대바람소리가 난다.

이태리 밀라노
라 스칼라좌 오페라를 보며
어족처럼 노닐던 연미복의 신사들
성장한 귀부인들의 날개옷에
루빈스타인
카라얀의
신들린 지휘 모습도 보인다.

페르시아 화려한 궁전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라쟈드
낭만의 천일야화(千日夜話)

제정러시아 눈덮인 대평원을
프레스토 콘브리오
노래하듯 춤추듯
쌍두마차로 달리면
꽃그림자 얼비치는 백조의 호수
차이코프스키
감미로운 선율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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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바람별곡

손해일

돛배에 실려오는 머리칼에선
파래 냄새가 난다

갈대머리 빗기고
성큼성큼
갈밭을 걸어가는
하이얀 맨발

사운대는 참대숲을 지나
탱자울을 맴돌다가
벙그는 꽃망울에
눈 맞추고 설레인다

끊어져 하르르 날아간
내 연의 실낱
서러운 눈물을 찍어 바르고
겹동백 꽃 결에
솟아오른 달 무지개

무시로 그를 만나지만

역마살로
산모롱을 돌아가는
정작 그가 어디 사는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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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벌거숭이의 노래

손해일

비면 채우려 하고
차면 넘치길 바라는
우리들이 이기
아슴아슴 황톳길이다

올려다보면
산정은 아득해도
먼발치에서
이승의 벼랑 끝에 부서지는
상두꾼의 요령소리
존재의 밑둥을 후비고 간다

살아 있는 자보다 더욱 살아 있는
죽은 자의 웅변
무시로 발 밑에 깔리는 정의
양심만으로 못 다스린 우리들의 허기

꽃불 타는 목숨의 심지
그 알몸의 무게만큼은
누구도 어쩌지 못한다

날이 저물기 전에
누가 나에게 벌거숭이 가슴을 다오
失足한 어둠을 빠져나와
산맥으로 치달리겠다
싱싱한 물살로 굽이치겠다

불꽃 심지를 올려다오
누가 나에게
마르지 않는 기름으로 타오르겠다
먼 신의 얼굴보다는 가까운 이웃을 사랑하며
가닥가닥 찢겨도
빛살로 나부끼겠다
나부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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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분재론

손해일

작은 것이 옹골차다.
위장과 변신
절제와 균형
수미산 낙락장송으로
천년고목 이미지로
마냥 축소지향의 네 모습은
시처럼 아름답지만

직근(直根)을 잘려도 잔뿌리로 연명하기
곡(曲)을 잡는대로 휘어지며 모양내기
세파에 시달려도 중심 잡고 버티기
어려도 노숙한 체 하기
속은 비었어도 알찬 체 하기
무잡한 가지 털고
꽃피워 열매맺기
분방한 자유 대신 굴종에 길들기

적자생존의 정글
각박한 여량세태에
뒤틀리는 것이 어디 너 뿐이랴.
체면, 도덕, 이데올로기, 법, 종교
총구에서 나온다는 무지한 권력에도
우리는
분재처럼 휘어져 살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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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불 좀 빌립시다

손해일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장엘 간다
가물치 뛰고
푸성귀 살아
아바이 순대 진한 사투리 들으면
성큼 다가서는 고향 하늘

인정도 흥정되고 에누리 되는가
왁자한 저잣거리
담배 한 가치를 빼어 물고
불을 빌린다

고만고만한 키로 갑 속에 누운
성냥개비처럼
남남인데도 꼭 어디서 본 것만 같은
얼굴들
우린 또 누구의 손에
발화되길 기다리는 성냥개빌까

잇몸 시린 동치미 한 사발로

조금씩 갈무리한 정을 나누며
무청 같은 세상
고된 풀무질

불 좀 빌립시다
젖은 거리에서
마른 성냥을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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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브라질의 호랑나비

손해일

아마존 정글에서 꾸던
장자의 호접몽
여인국 인디오 무사들이
쏘아올리던 교교한 달빛

거꾸로 거꾸로 가다가
액자에 멈춰버린 시간
나도 저 폭포에
물보라로 쏟아져
여인국 미이라 소녀처럼
잠들고 싶다

내 친구 스피넬리의 나라
리오데자네이로
광란의 카니발
박제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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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빛을 위한 탄주

손해일

<1曲>

해는
몸을 살라 빛을 기른다
江心에 흩뿌리는 목숨의 뼛가루
어둠을 伐木하는 톱질소리
등성이마다
아침을 예감하는
해바라기 눈매여.

<2曲>

마른 번개 천둥 돌개바람
짜랑짜랑 울지 못하는 녹슨 목울대로
무슨 가락을 빚으랴
독충에 심장을 다 주고도
탐욕스런 황금의 손
톱날에 잘려
깊이깊이 떨어져 간 奈落
귀멀로 눈멀어 죽어가는 것들은
늘 꽃상여에 실려갔다
가위눌린 볕살의 꿈
碑銘이나 남아 있을까.

<3曲>

팍팍한 자갈밭으로
빈 수레를 끌고 떠난다
섬돌 위에 꽃신을 벗어 두고
가시덤불 헤치는 맨발
둘러봐도 날샐 기척은 없고
살갗에 배는 피얼룽
그 눈물과 절망의 깊이만큼
밤이 무너진다.

<4曲>

겨울나무 매몰찬 가지
싸늘한 웃음소리
어둠의 명치 끝에 햇살을 꽂을 때쯤
악전고투 끝에 우리의 육신은
쓰러져 뒹굴지만
아픔을 말하지 말라
불기둥 맞부딪친 섬광
푸른 넋들이 깰 때까지는.

<5曲>

어디로 가고 있는가
流浪의 문턱에 닳아지는 발바닥
날아도 닿을 수 없는 순수의 끝
살과 뼈를 묻고도 잎새 하나 못 피운
허망한 몸짓을 버리고
더운 가슴 트고 사는
나무로 서자.

<6曲>

未明을 날개 쳐
푸득푸득
銀河에 둥지 트는 불새
피가 배도록 부리로 물어 나른 빛
홰를 칠 때마다
깃털 한 오락 생살점까지
청댓잎새 살아나는, 오오
눈부신 採光

<7曲>

첫닭이 울면
어둠의 은밀한 자궁 속
탯줄을 가르는 햇덩이
빛나는 햇살의 옷자락
아침은 쩡쩡
하늘의 푸른 정수리를 쪼개고
늪 같은 잠 속
풋풋한 젊음이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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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사향사

손해일

박꽃지붕 삼삼한
맷방석만한 한가위 달
멱서리 삼태기에
풋밤이랑 햇감이랑
도리깨질 타작마당
탕건 바람에
맨 상투로 튀던 콩깍지

동치미 국물에 잇몸 시린 겨울밤
질화로에 알밤은 익어
폭죽으로 터지는데
동구 밖에 묻어오던
목화송이 함박눈
분분한 싸락눈

모성의 달디단 젖 다 빨리고
쭉정이로 누운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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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산국

손해일

꽈리를 불 듯
신이 잠시 산야에 납시어
잎잎이 노오란 숨결 불어주심은
찬 서리 머금어 닦아낸 성대
청아한 목청으로 노래하라 함이다

흙이다가
물이다가
이승에 늘 살 부비며 살아도
사랑 없인 남남
메마른 가슴에
뜨거운 심장을 담으라 함이다

가볍게 가볍게 스치는
바람결에
때묻은 눈을 씻고
고고히 피라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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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삶의 저잣거리

손해일

남사당패 한마당 자지러진 후
막걸리 한 사발에 국밥을 마시고
검버섯 할배가 사라진다

옹기전 머리에서
신기료 장수가 닳아진 양심을 깁는다
맨 정신으로 못 건너는 강
큰물에 거덜나서
굿판에 휘휘 도는
이 세상 어질머리

무식한 소치로
튀밥이나 뻥뻥 튀기며
도시의 능숙한 나뭇꾼에
바리로 팔리는 문전옥답
허욕과 어리석음의 덫
하도한 속병의 실마리
그 물레에서
꾸리꾸리 뽑히는
동티난 매듭

수렁 속에서 요람인 듯 잠을 청하는
우리의 미망
탐욕의 늘펀한 허벅지에
불침이나 놓았으면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
야맹증의 하늘
무심한 달무리

내일은 이빠진 할매가 낭자를 팔러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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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새 천년 새 아침에

손해일

새천년 새날이 동터 온다
보라
즈믄해 칠흑같은 어둠을 살라먹고
찬연히 떠오르는 아침해
둥둥둥 빛이 빛을 길러
용솟음치는 희망을

장엄한 그 햇살
반도 삼천리
백두대간 굳센 등줄기를 타고
흰옷겨레 보배로운 산하에
눈부시게 퍼진다

역사는 켜켜이 쌓이는 시간의 나이테
온갖 내우외환 시름에도
우리 농민들은 꿋꿋했다
'농자 천하지 대본' 푯대 삼아
씨뿌리고 거둔 보람 농심을 가꾸었다
큰물지고 가뭄 들어 하늘은 무심해도
옥토에 짖줄 대어 인정을 퍼 올렸다

이제 근대농업 한 세기도 저물고
녹색혁명 선진농업도 아람 벌어
디지털 정보시대 사이버세상 될지라도
흙이 있어 생명이 살고
생명이 있어 우리가 산다
생명을 기르는 농민은 언제나
위대한 생태환경 지킴이니
새 천년 새날에도 변함 없는 뿌리다

오늘 묵은 해넘이와 새 해오름이 살섞어
새날을 잉태하니
누리에 넘치는 박동소리
우리 앞에 거칠 것이 있으랴
내 땅 내 흙 생명의 텃밭에서
환경친화 으뜸농업
신토불이 토종 가꿔 나라 곳간 채우자
수입개방 경제위기 거친 파도 헤쳐 가자

새천년은 상생의 시대
미움의 누더기를 벗고 사랑을 갈아입자
사람과 자연, 농민과 소비자, 도시와 농촌
어화둥둥 서로 돕고 더불어 사는
복된 세상 이루자
눈부신 햇살따라
세계로 미래로 힘차게 나래펴서
금수강산 대물리며 영원토록 번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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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새벽바다 안개꽃

손해일

바다는 육지가 그리워 출렁이고
나는 바다가 그리워 뒤척인다
물이면서 물이기를 거부하는
모반의 용트림
용수철로 튀는 바다

물결소리 희디희게
안개꽃으로 빛날 때
아스팔트에 둥지튼 갑충(甲蟲)의 깍지들
나도 그 속에 말미잘로 누워
혁명을 꿈꾼다.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덧없는 날들을 어족처럼 데불고
시원(始原)의 해구(海溝)로

우리가 어느 바닷가 선술집에서
불혹을 마시고 있을 때
더위먹은 파도는 생선회로 저며지고
섬광 푸른 종소리에 피는
새벽바다 안개꽃
☆★☆★☆★☆★☆★☆★☆★☆★☆★☆★☆★☆★
《20》
서울 간 청무우

손해일

덕구영감네 찰진 텃밭에서
땅심 오른 청무우는
풋풋한 각선미가
일품으로 빠졌는데

미스코리아 대회나 나가듯
솜털 다듬고
때빼고 광내어
밤새 고속도로 달렸는데

땅거미 가시잖은
새벽 청과시장
조선무우 왜무우 알타리무우
내노라 하는 각선미는
구름같이 모였더라

벙어리 手話하는
경매사 손 끝에선
레이저 광선이라도 나오는가
운임이 안되는 도매금 신세라

진짜 눈물나구나

청무우야
네 어여쁨
에누리없이 쳐주기 전에는
아예 가지 말아라
눈먼 서울엘랑.
☆★☆★☆★☆★☆★☆★☆★☆★☆★☆★☆★☆★
《21》
송이맞이풀꽃

손해일

백두대간 등솔기
초가을 햇살
오대 설악 가파른
칠팔부 능선 어디쯤
간밤 꿈자리가 맞았나
송이밭이 벙글었네

묏부리엔 한자락
새털구름
휘파람 새소리
일능이 이송이 삼표고
부자간 고부간에도 쉬쉬 한다는
금따는 송이밭엔
이삼십년생 적송(赤松) 덤불
싱싱한 밑동을
유리태자 신표(信標) 찾듯
심마니가 헤집네

낱송이 줄송이 마당송이 방석송이
어라, 저것 좀 보게
옹알이 하며 제손 빠는
앙증맞은 조막손
저요, 저요
유치반 코흘리개 기특한 주먹손들

송이밭에 다소곳한
송이맞이풀꽃 무리
연분홍 알싸한 향에 취해
아이구야,
주체 못할 춘정으로
솔가리 홑이불 들추는
물오른 남근들

그로부터
수줍은 풀각시 첫정에 바람나서
줄송이 맨앞줄에 치어걸로 나섰다가
방석송이 젓가락 장단에
뽕짝으로 날렸다가
마당송이 굿판에 불루스로 돌았다가
어느날 스타탄생 팡파레에
채홍사에 스카웃된 송이맞이 풀꽃들이
오늘은
완월동 유리성에 오두마니 앉아
송이송이 기다리네

달구경하다 못다 핀
한떨기 망부석
☆★☆★☆★☆★☆★☆★☆★☆★☆★☆★☆★☆★
《22》
수선화

손해일

깨어나라
잠든 영혼이여
마법의 성
까마득한 망루에서
난쟁이 병정이
꽃대궁으로 부는
사랑의 나팔소리

천의자락에
패옥소리는 없어도
색색 무지개 빛보라를 타고
물 마을에 나들이 온 선녀

모두들 제멋에 취해 살지만
거짓스런 눈빛만으론
허울 하나 가리울 곳 없는
회오리 들판

달그림자 잡으려다
물의 속살 알아버린

이태백의 넋
눈부신 제 모습에 반하여
숙명처럼 피고 지는

물의 요정
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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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암스테르담 만유기(漫遊記)

손해일

<여섯 마당>

"아서라! 낭만 좋아하다
귀국 비행기 또 놓치면
진짜 내 큰 코 다칠라."
어둑어둑 황혼녘에
취리히행 침대표 한장 끊어 놓고
이쯤 김삿갓 홀로여행 마감키로 작심하니
못내 아쉽구나, 네델란드여.

대장부 출입은 분명하라 하였으니
조선선비 가시는데 하직인사 없을소냐.
"또 보더라고 고호 양반, 아무쪼록 몸 성허고...."
눈물로 작별하니
금발 미녀 대동하고 하멜선생도 쪼르르 나와
"굳럭 투 유, 씨유 레이터, 바이바이, 조선양반."

암스테르담역 광장엔
봉두난발 보컬그룹이
자진모리로 돌았더라.
☆★☆★☆★☆★☆★☆★☆★☆★☆★☆★☆★☆★
《24》
어떤 동업

손해일

배설은 언제나 즐겁다
별 신나는 일도 없는 날은
오줌이라도 시원스럽게 갈겨볼 일

D사 극락전 가는 숲길에
노스님 한 분이 용무를 보는지라
나 또한 보살도를 따르고저
스님 동업해도 될까요」
……?」
나무아미타불」
……!」
염화시중의 미소로 성사된 동업

노스님 오줌발엔 佛心이 서렸고
내 오줌발엔 고뇌가 엉켰는데
무명 무무명
솔바람 소리에 무지개가 뜨고
어디선가 끼룩끼룩 산새가 울었다

나는 다시 강한 요의를 느꼈다.
☆★☆★☆★☆★☆★☆★☆★☆★☆★☆★☆★☆★
《25》
억새 밭에서

손해일

너는 흰 옷 겨레
허궁을 나래 치던
천마의 갈기
일찍이
신시 너른 뜻 펴신 이래
숱한 야만의 발굽에도 굴치 않은
꿋꿋한 속 뿌리

오가는 철 새떼
철없는 바람에 국경이 있으랴
한식날
냉가슴에 한을 사르면
무심히 부르니
삽상한 고조선의 봄바람
고구려의 높새바람

너는 저쪽
나는 이쪽
우리 모두의 것이면서도
어쩌면

네 것도 내 것도 아닌
비무장지대
녹슨 가시철망

죽은 자는 말이 없어도
봄볕 챙챙
숨 머금은 억새꽃밭
그리워라
오오래 잊고 살던
보고픈 살붙이들.
☆★☆★☆★☆★☆★☆★☆★☆★☆★☆★☆★☆★
《26》
연꽃

손해일

사랑을 두레박질하여
정갈히 길어 올리는 별빛
물의 순수
물의 살과 뼈
물의 정기

고해의 뻘밭에서도
늘 청정한 태깔로
피는 까닭을 알려거든
水宮 속 깊은 물굽이로 자맥질하여
한 만년쯤
무심천 세모래로 흘러보아라

아, 우리가 눈 부라리며
탐하는 온갖 것
잠시 돌아서면 잊혀질
티끌
바람
먼지

내가 업으로
이승에 피는 까닭을 알려거든
한 만년쯤
수미산 깎아지른 벼랑에
먹돌 가슴으로 서 보아라.

*수미산(須彌山) : 불교의 世界說에서 세계의 중심에 8만 유순(由旬 : 1유
순은 400리)의 높이로 솟은 산. 정상에는 帝釋天이 살고
중턱에는 四天王이 살며 해와 달이 수미산 주위를 회전
한다 함.
☆★☆★☆★☆★☆★☆★☆★☆★☆★☆★☆★☆★
《27》
영덕 대게의 보행연습

손해일

"애비는 비록 삐뚜루 기어도
널랑은 똑바로 걷그래이."
이를테면
불교의 팔정도(八正道)도 같은 것이
우리 가문의 유훈이지만
교육 백년대계를 표방하는 가풍으로도
속살 탄탄한 대쪽같은 다리로도
옆걸음치는 버릇은 어쩔 수가 없구나.

직립보행의 잘난 인간들은 우리를 비웃지만
가치관이 마냥 거꾸로 서는
어지러운 세상
안돌면 쓰러지는 팽이의 숙명처럼
중심잡기도 쉽지 않단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며
복지부동 게걸음이 유행이란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카더라.
더이상 인간의 걸음 흉내는 치아라.
자, 이제부터는 우리식 제식훈련이다.
꽃게야, 참게야.
집게발을 들고 힙합춤을 추거래이.
좌향 옆으로이 갓! 우향 옆으로이 갓!
행군 간에 군가한다.
군가는[나그네 설움]

"오오 나알 도~ 오오 걷느은 다아~ 마아는
정처 엄~ 느은 이이 바아알 길......"
☆★☆★☆★☆★☆★☆★☆★☆★☆★☆★☆★☆★
《28》
영산홍

손해일

고개를 넘으면
조랑말 탄 낭군님 모습 보일까
주렴을 걷고 이윽히 바라보던
할머니 신행길에
지천으로 피던 꽃이

매웁다는 시집살이 석삼년에
뒤안에서 감춘 눈물
할머니 향낭 깊은 늪에
속멍울로 피던 꽃이

할아버지 여읜 뒤론
손주녀석 재롱에 한 시름을 잊어도
어서 이 세상 버려야지
염주알 굴리시며
되뇌이던 입버릇이

접동새 울음도 없는 돌집
아파트 난간에
꿈결인 듯 피어 있다.
☆★☆★☆★☆★☆★☆★☆★☆★☆★☆★☆★☆★
《29》
용설난

손해일

누가 너를 꽃이라는가
일찍이 네 전생은 청용
천상에서 불을 뿜던
너의 혀

미리내 굽이도는 여울을
일월성진 구름 더불어
치달리던 푸른 갈기
속진의 탁한 강물을
분류로 솟구치는 물기둥
서슬 푸른 날개로
우르릉우르릉
먹장구름을 가르던 번개

지금쯤 살아나고 있을까
잠시 잊고 살던 것들
네 질긴 뿌리에
내성의 깊이로 자라는 빛
줄기찬 용솟음.
☆★☆★☆★☆★☆★☆★☆★☆★☆★☆★☆★☆★
《30》
유채 꽃 산굼부리

손해일

멀리 바다가 보이고
섬들이 흘러간다
갈매 빛 산그늘에
팔베개를 하고 보면
꿈속의 봄 태깔은
안단테 칸타빌레

노랑나비떼
노랑나비떼
나래 접은 무도회
흐드러진 꽃판이라
다북쑥 싱그러운
청보리골 이랑이랑
파도만 제 흥에 겹다

산다는 게 한마당 꿈이라지만
몸살 지는 설움 같단들
아으
봄은 꽃그늘에 어려올 따름
하늬바람에 꽃잎 떨면

나도 한 마리 나비되어
달디단 꿈 깰까
저어하노니.

* 안단테 칸타빌레(Andante Cantabile) : 느리게 노래하듯이.
☆★☆★☆★☆★☆★☆★☆★☆★☆★☆★☆★☆★
《31》
윤삼월 아침 목련

손해일

잎새는 아직
꿈결에 젖었는데
윤삼월
꽃 그리매
해돋는 아침나절
급하기도 해라
꽃잎이 제 먼저 나와
바람개비로 벙그네

빨·주·노·초·파·남·보
당금아기
볼우물에 어린 무지개
후둑후둑
비 그친 뜨락으로
봄햇살이
하얗게 부서지네.
☆★☆★☆★☆★☆★☆★☆★☆★☆★☆★☆★☆★
《32》
자운영 꽃밭에서

손해일

색동옷 입고 오는
볼 이쁜 하늬바람
휘적휘적
팔소매 젓고 가는 마파람
휘감아 도는 흰 옷자락

어지럼증 나는 세상
아지랑이에 취해
자운영 꽃판에
산드랗게 박히는
목매기 울음소리

꿈결에 조는 봄
새참도 겨운 한낮.
☆★☆★☆★☆★☆★☆★☆★☆★☆★☆★☆★☆★
《33》
잠자는 불새

손해일

아무리 달아나도
도처에서 어둠을 만난다
고생대 캄브리아기
삼엽충과 잠자던 새

밤마다 가위눌리며
포충망을 찢는 헛손질
어둠의 죽순밭에
혼곤한 지구의 잠
오로라의 살 속을 파고 드는
배냇짓의 꿈틀거림

오욕의 바다에 구겨버린
원시의 하늘
CH4 NH3 H2O H2
프로메테우스의 불씨 하나 물고
중생대 쥐라기
시조새로 날고 싶다.
☆★☆★☆★☆★☆★☆★☆★☆★☆★☆★☆★☆★
《34》
청 보리밭에 오는 봄

손해일

진눈깨비 날리던 겨울엔
생솔가지 군불 지핀
아랫목 뜨신 맛에 살았다

이불 홑청을 벗기듯
청 보리 밭
살얼음 녹이는
돌개울 물소리

비늘 돋친 바람에 실리는
씀바귀의 봄 몸살
은쟁기 보습에
뭉툭뭉툭
겨울이 잘려 나간다

젖은 나목의 가지마다
불을 켜는 눈망울들
오요요
기지개 켜는 버들개지
몽정하는 들녘

내 이제 들로 나가
더운 피 흐르는 흙살을 보듬고
꽃씨를 뿌리리라.
☆★☆★☆★☆★☆★☆★☆★☆★☆★☆★☆★☆★
《35》
청 보리밭에 오는 봄

손해일

진눈깨비 날리던 겨울엔
생솔가지 군불 지핀
아랫목 뜨신 맛에 살았다

이불 홑청을 벗기듯
청 보리 밭
살얼음 녹이는
돌개울 물소리

비늘 돋친 바람에 실리는
씀바귀의 봄 몸살
은쟁기 보습에
뭉툭뭉툭
겨울이 잘려 나간다

젖은 나목의 가지마다
불을 켜는 눈망울들
오요요
기지개 켜는 버들개지
몽정하는 들녘

내 이제 들로 나가
더운 피 흐르는 흙살을 보듬고
꽃씨를 뿌리리라.
☆★☆★☆★☆★☆★☆★☆★☆★☆★☆★☆★☆★
《36》
트레비분수의 동전 세 닢

손해일

누가 저 줄기찬 물줄기로
하늘을 거역케 했을까
백마 탄 넵튠이 물의 여신 유혹할 제
은비늘로 가라앉던
신화속의 로마 전설

어깨너머 동전을 던지며
이 한 닢으로 로마에 다시 오고
이 두 닢으로 아내와 금슬 깊어지며
이 세 닢으로 만사형통 이루라고
찰칵찰칵 몇 카트 사진으로
굳은 언약 남겼는데

오늘은
잠실 롯데 월드
모조 트레비분수 앞에 서서
로마를 생각한다.
하마 나이테가 늘었을까
미아처럼 버리고 온
내 동전 세 닢
☆★☆★☆★☆★☆★☆★☆★☆★☆★☆★☆★☆★
《37》
프랑크푸르트 왕소세지

손해일

프랑크푸르트 시가지를 어슬렁거리며
털복숭이 주근깨
밤거리 요화들의 추파도 받아가며
토종 한국인은 오금이 저렸다

주렁주렁 푸줏간의 왕소세지
불끈불끈 핏발서는 남근처럼
독일 사람들은 아마
오줌발도 굵을 거야
나치독일 미쳐 돌던
아우슈비츠 대학살도
동·서독 사이좋게
통일 향해 가는 걸 보면

대한민국 조선민국
전라민국 경상민국
잘게 잘게 찢겨 나간
아웅다웅 시골장터
안쓰러운 한국 순대
☆★☆★☆★☆★☆★☆★☆★☆★☆★☆★☆★☆★
《38》
함박눈이 내리면

손해일

함박눈이 내리면
포르르포르르
햇솜꽃 벙글어라
건반을 두드릴 때마다
어둠의 등솔기를 타고 내리는
난장이 고수(鼓手)들
북소리를 따라
아이들이 몰려갔다

곤한 내 꿈속으로
문득 찾아온 소복 미인
푸근한 사랑을
훌훌 가마에 실어
싸락싸락
흰 눈이 내리면

밤새 깜박이는
알라딘의 램프
마법의 성
폭죽 소리를 듣는다.
☆★☆★☆★☆★☆★☆★☆★☆★☆★☆★☆★☆★
《39》
해질 무렵

손해일

알 수 없는 흡인력으로
햇발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어둠이 떼지어 몰려온다
다시 피울 심장의 화톳불
젖은 쏘시개가 마를 때를 기다리며
뻘밭에 남긴 불씨 하나
쟁쟁쟁
갈기 달린 바람 타고 가는 햇살아

고요히 꽃잎이 진다
서녘 하늘 흥건히 적시는
빛과 어둠의 왁자한 혼례
밤이 슬슬 베일을 벗고
어둠의 성감대를 애무하는 빛

첫날밤의 신부였다
해질 무렵은 늘.
☆★☆★☆★☆★☆★☆★☆★☆★☆★☆★☆★☆★
《40》
흐르면서 머물면서

손해일

아래로 더 아래로
낮은음자리표가 흘러간다
누가 부질없다 하리
만상이 흐르는 융융한 일렁임을

여울목에 좌초된 혼
더러는 거품으로 스러지고
더러는 앙금으로 가라앉고
더러는 수렁 속에 썩고 썩지만
무심한 버릇으로 흐르다 보면
머무는 것 또한
어려운 일

빛나는 아침의 출정에도
빈손뿐인 귀로
나 아닌 나를 만난다
수없는 자맥질에
우리의 물배는 얼마나 부르고
맨살은 얼마나 부르텄는가
잠시 눈감으면

잊혀질 것들을 위하여
우린 또 얼마나 흘러가야 하는가
하릴없는 뗏목처럼.
☆★☆★☆★☆★☆★☆★☆★☆★☆★☆★☆★☆★
《41》
바람개비

손해일

속소리나무 숲
칙칙한 어둠을 따라
눈발 속에 날아간 당홍연

바람독에 서서
강강한 바람을 맞는다
마파람 높새 된새
하늬하늬 하늬바람
무상한 너의 변신

너 없이 내가
바람개비일 수 없지만
너를 거스르지 않고는
돌지 못하는
모순의 나

바람난 바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꽃 물 같은 생채기만
혓바늘로 돋는다

머무르고 싶지만
바람개비
역마살

오오 누가 나에게
청청한 바람을 다오
나도 한 줄기 힘찬 흐름이 되어
정녕 누군가의 바람개비를
돌리고 싶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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