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찬시모음 25편/그도세상
그도세상김용호 2020.11.14 00:25:51
조회 227 댓글 0 신고

정유찬시모음 25편
☆★☆★☆★☆★☆★☆★☆★☆★☆★☆★☆★☆★
《1》
12월의 끝에서

정유찬

사랑한 날이
미워한 날보다 많았는지
슬프고 힘들었던 날보다
행복했던 날이 더 많았는지

12월의 끝에서
지난날들을 떠올려보고 있어

보석 같은 날들을
가슴으로 살았니 머리로 살았니
얼마나 웃고 살았어
아니면 찡그렸어

투명한 날들을
뿌연 눈으로 보낸 건 아닐까
별이 찬란하던 밤
내가 깨어있었는지
잠들어 있었는지

난 거울을 봐
거울 속의 나를 봐
아름다워진 걸까 추해진 걸까
무엇이 변한 것일까

밤이 깊어만 가네
한해가 또 저무네
☆★☆★☆★☆★☆★☆★☆★☆★☆★☆★☆★☆★
《2》
가난한 자들의 겨울

정유찬

서러운 사람들,
파편 같은 슬픔의 조각을
어두운 하늘에 빛나게 걸어 놓고
겨울의 새벽을 딛고 거리로 나선다.

외로움 지난 외로움
슬픔을 넘어선 슬픔
무감각한 고독이여,
모두 떠나라.

시린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눈보라가 아리도록 얼굴을 때려도,
치욕스런 현실을 지나고
수치스런 기억을 건너리라.

세상이 버려도
하늘은 버리지 않으리니,
추운 자에게 더 추운 겨울이여
어서, 어서 가라!

가지 말라 해도 갈
가난한 자들의 겨울이나,
손끝이 얼고 온몸이 떨리는 추위를
참고 넘겨야 하리라.

가난한 구석을 하나쯤은
가지고 사는 우리,
춥고 허탈한 날들을 위해
훈훈한 마음 나누며 살자.

봄이 곧 올지니
☆★☆★☆★☆★☆★☆★☆★☆★☆★☆★☆★☆★
《3》
가을에 아름다운 것들

정유찬

가을엔
너른 들판을 가로질러
노을지는 곳으로
어둠이 오기 전까지
천천히 걸어 보리라

아무도 오지 않는
그늘진 구석 벤치에
어둠이 오고 가로등이 켜지면
그리움과 서러움이
노랗게 밀려오기도 하고

단풍이
산기슭을 물들이면
붉어진 가슴은
쿵쿵 소리를 내며
고독 같은 설렘이 번지겠지

아 가을이여
낙엽이 쏟아지고 철새가 떠나며
슬픈 허전함이 가득한 계절일지라도
네게서 묻어오는 느낌은
온통 아름다운 것들뿐이네
☆★☆★☆★☆★☆★☆★☆★☆★☆★☆★☆★☆★
《4》
가을의 전화

정유찬

만나지 말아야 한다고 서로 다짐하며
안타깝게 헤어진 날들이
만나서 기쁜 날보다 많았던 만남

외줄타기 보다 아슬아슬하게 관계를 이어오며
얼마나 마음 졸이고 애태웠는지

심술을 부려도 예쁘기만 한 당신에게
속상해도 화낼 수 없어 얼마나 답답했는지 몰라

이제 우리 멀 찌기 떨어져
서로 상관없는 사이 되어 속이 후련한가

좋았던 기억
나빴던 기억 모두 벗어버리고
시원스레 팽개치고 새롭게 시작해야지

나 당신 모습이 기억나지 않아
매일 보았던 표정, 몸짓, 말투 였는데
아득하기만 하고

우리 사랑이
그렇게 힘들었나 봐

변해가는 계절이야
바래가는 잎들
바람 불 때마다 흔들리는 마음
붉어지는 세상을 더 붉게 물들이는
가을의 석양을 차마 정면으로 볼 수 없어
피가 거꾸로 솟을 까봐

이 풍성한 계절이 가고 싸늘해 오면
당신과의 기억이 더욱 희미해질지
불현듯 또렸하게 가슴을 뒤집어 놓을지
알 수가 없네
가을이니까 아직은

다만
외줄타기보다 힘들었던 사랑이
그토록 아름답기만 했다는 것
그건 잊을 수 없을 거야

듣고 있니?
☆★☆★☆★☆★☆★☆★☆★☆★☆★☆★☆★☆★
《5》
그대 떠나도

정유찬

어쩌지요
당신 날 떠나간다면
내가 당신 떠나보내면

헤어진다면
그대 아직 내 등에 기대어
하늘 보며 말을 하네요

이제는
슬픈 사랑 안 한다고
힘이 들어 떠난다고

그래요
힘들면 떠나야죠

미워진 건
아니라 해도
당신 마음 알아요

떠나가세요
뒤돌아 떠나요
아쉬움도 남겠죠

아주 많이
그리워져도
헤어져야 하겠죠

아름다운 사랑이 가장 아픈
기억으로 남아도 후회는 안 해요

그대 떠나도
가끔은 서로 생각하겠지요

그리움에 가슴 아파도
힘겨운 사랑 말아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멀어지는 당신을 나는 사랑합니다
☆★☆★☆★☆★☆★☆★☆★☆★☆★☆★☆★☆★
《6》
그리운 당신

정유찬

커피 색깔이
유난히 맘에 드는 날
왠지 모를
그리움과 허전함이 어우러지고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미묘한 감정의 복판에 앉아
상관없이
푸르기만 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참 맑다……’
종이와 볼펜만 보아도
괜시리 마음이 따듯해지는
나는 알 수 없는 글들을 적어나가고

암호도 아닌데
그리 어려운 말을 쓴 것도 아닌데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아니 내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아
그냥 휴지통에 구겨 넣었지요

커피가 식어가고 있네요
내 피가 함께 식어 가는 듯한
아픈 기억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혼자만의 시간은
대체로 충만함과 고요 속에
행복한 시간이지만
오늘은 왠지 가슴 시린
고독이 온몸을 가득 채워옵니다

당신이 그립습니다
아주 많이 그립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외롭습니다
얼마나 허전한지 모릅니다
☆★☆★☆★☆★☆★☆★☆★☆★☆★☆★☆★☆★
《7》
길을 찾는 영혼

정유찬

그것은
순수한 명상으로 잔잔해진
신성한 연못이다

그러면서도
열망으로 가득 찬 불덩이가 아닌
차라리 푸른 불꽃

열정과 갈증 사이를 오가며
여러 차이와 경계를 허물고
어둔 길을 어둡게 두지 않을 빛

비록 타고난 방황처럼
발걸음 어지러이 느껴질 때조차
캄캄한 어둠을 비추는 것이다

그러한 방랑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거룩하고 숙명적인 사색의 본능이니

사실, 길을 찾지 않는 영혼은 없다
☆★☆★☆★☆★☆★☆★☆★☆★☆★☆★☆★☆★
《8》
낯선 것들은 언제나 신비롭다

정유찬

눈뜨고 마주하는 일상이
불현듯 낡은 계단처럼 삐걱거리고
서툰 피아노 소리처럼 박자가 맞지 않으면
낮은 언덕이라도 올라
거리를 두고 실눈으로 바라봐야겠다

초점을 맞추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판단할 수 있는
미묘한 차이들을 들춰 보며
당당함이 자만이 되었는지
겸손함이 비굴함이 된 건 아닌지
무엇인가 너무 쉽게 포기하고 사는 건 아닌지
함몰되고 왜곡된 자신의 진실을 바로잡으려 한다

살아온 길을 돌아보는 건 누군가의 특권이 아니라
때때로 낯선 일상이 주는 깊은 사색일지니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 사색의 시간을 통해 알 수 없던 모순을 이해하며
납득할 수 없던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없던 진실을 수용하는 것이겠지

두렵고 가슴 뛰는 것들은
긴장 속에서 우리를 새롭게 하고
처음 겪는 시간과 사건들은
나른한 정신을 깨어나게 해
그리하여 낯선 것들은 언제나 신비롭다.
☆★☆★☆★☆★☆★☆★☆★☆★☆★☆★☆★☆★
《9》
당신에게 가는 길

정유찬

당신에게 가는 길이
이토록 먼가요
겹겹이 쌓아둔 그리움 안고
다가갈수록 늘어지는
만남의 순간

시간의 길이가
정해지지 않은 곳
먼발치
숨결이 멎어
발길 떨어지지 않으니

만날 수 없나요
더는
다가갈 수 없나요

하루의 가장 긴 그늘이
내 앞에서 빙그레
미소 짓지만
안타까움이 짙은 내 맘
위로도 아니 됩니다

내일로 이어지는 밤이
서서히 윤곽을 드리우며
지친 내 영혼
주저앉아 쉬라고
유혹해 오지요

하루가 이토록 멀고
밤이 또 이다지 길고
그런 것들과 함께
내 목도 길어져
어느새 땅을 바라봅니다
☆★☆★☆★☆★☆★☆★☆★☆★☆★☆★☆★☆★
《10》
당신을 만나서 참 행복합니다

정유찬

내 삶의 자락에서
아름다운 당신을 만나
참 행복합니다

푸근한 모습으로
향기를 품고
신비로운 색깔로
사랑의 느낌을 물씬 풍겨주는 당신

이제는
멀어질 수 없는 인연이 된 것 같습니다

드넓은 하늘 속에 담긴
당신을 떠올릴 때면
나도 모르게 행복해 하지요

내 방황의 끝에서
당신을 만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나 봅니다

오늘도 가슴 깊이 다가오는 당신
그 마음에 기대어
진한 사랑 느끼면
내게서 당신의 향기가 가득 합니다

언제나 또렷한 당신의 느낌
눈을 감아도 선명한 그 미소에
가만히 내 마음 걸어 둡니다

당신을 만나서 참 행복합니다
☆★☆★☆★☆★☆★☆★☆★☆★☆★☆★☆★☆★
《11》
당신을 사랑하고 나는

정유찬

푸근한 모습으로
향기를 품고
신비로운 색깔로
사랑의 느낌을
물씬 풍겨주는 당신

이제는 멀어질 수 없는
인연이 된 것 같습니다.

드넓은 하늘 속에 담긴
당신을 떠올릴 때면
나도 모르게 행복해 하지요

내 방황의 끝에서
당신을 만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나 봅니다.

오늘도
가슴 깊이 다가오는 당신

그 마음에 기대어
진한 사랑 느끼면
내게서 당신의 향기가 가득 합니다.

언제나 또렷한 당신의 느낌
눈을 감아도
선명한 그 미소에 가만히
내 마음 걸어 둡니다.
당신을 만나서 참 행복합니다.
☆★☆★☆★☆★☆★☆★☆★☆★☆★☆★☆★☆★
《12》
바다가 그리운 밤

정유찬

파도가 쳤으면 좋겠어

그리고
내가 그곳에 있다면
행복하겠지

부딪히는 파도소리 듣고 싶다네

푸르른 바다
파아란 하늘
갈매기와 쪽 배

바닷가
하늘 아래 서서
바람에 옷깃 여미며

삶을 돌아보고파

바위에 부딪힌 파도가
온몸 흠뻑 적셔
몸살이 와도 그저 좋으리

그토록
바다가 보고싶은
밤이네

바닷소리 들으며
모래사장 거닐고
파도 끝에 발이 담기면


그 파도와 함께 부서져
거품이 되어도 좋을

그런 밤이네
☆★☆★☆★☆★☆★☆★☆★☆★☆★☆★☆★☆★
《13》
바람의 사랑

정유찬

나는
그대 삶 속의 모든 상념들이 나뭇잎 되어
무성할 때
그 수많은 잎새와 줄기까지 남김없이
훑고 지나갈 그런 바람이다

나는
이내 성난 바람이 되어
그대 삶 속에 함께해온 이기심, 분별심,
그리고 미움을 뿌리 채 뽑아
내팽개쳐 버릴 것이다

그대는 이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거렁뱅이가 된다
춥고 배고픈 그런 거지가 아니다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요 삼아
천지만물과 함께 더불어 사는 주인이 된다

그대는 꿈을 꾸게 될 것이다
꽃이 되어질 것이며
구름이 되어질 것이며
여자가 되고
남자가 되고
돌멩이가 될 것이며
먼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온 우주로 변해갈 것이다

그대
영원히 초라하지 않도록
끝없이 당당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모든 것을
남김없이 날려버릴 나는
바람이다
☆★☆★☆★☆★☆★☆★☆★☆★☆★☆★☆★☆★
《14》
봄처럼 오는 당신

정유찬

추운 날 그토록 기다리던
당신이 봄처럼 옵니다.

간간히 흩날리던 눈발조차 사라지고
온화한 바람으로 투명한 아지랑이로

봄날과 함께 다가오는 당신은
그리움의 환영처럼 아득하고

손에 잡히지도 길게 머물지도 않을
야속한 사람이지만

순식간에 제 마음을 꽃과 풀 향기로
가득 채우는 신비한 사람입니다.

아! 잔디 위를 구르는 햇볕
나무 위를 걷는 바람 정겨워라.

제가 당신 안에서 봄을 느끼고
당신이 다시 봄처럼 저를 품에 안으니

새파란 새싹처럼 제가 노래합니다.
노란 병아리처럼 행복합니다.
☆★☆★☆★☆★☆★☆★☆★☆★☆★☆★☆★☆★
《15》
사랑만 하며 살 순 없을까

정유찬

사랑만 하고
살 순 없을까
보라색 진한 느낌 가득 안고
사랑에 젖어
행복한 노래 흥얼거리며

버석거리는
겨울의 마른 들판조차
아름다워 가슴이 뛰는 삶
너와 내가
사랑만 하고 살 순 없을까

아무런 걱정도
그 어떤 근심도 없이
나는 너의 사랑으로
너는 나의 사랑으로
새처럼 품어 안으며

외롭고 쓸쓸한 날들조차
따듯하고 풍성한 마음으로
살아갈 순 없을까
그렇게 우리
사랑만 하고 살 순 없을까
☆★☆★☆★☆★☆★☆★☆★☆★☆★☆★☆★☆★
《16》
사랑은 표현하지 않으면

정유찬

사랑은
표현하지 않으면 환상이고
슬퍼도 울 수 없으면 고통이며
만남이 없는 그리움은 외로움일 뿐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아쉬운 아픔이 되고
행동이 없는 생각은
허무한 망상이 된다.

숨 쉬지 않는 사람을
어찌 살았다 하며
불지 않는 바람을
어찌 바람이라 하겠는가

사람이 숨을 쉬고 바람이 부는 것처럼
살아있는 날엔 사랑을 하자
마음껏 울고 또 웃자
☆★☆★☆★☆★☆★☆★☆★☆★☆★☆★☆★☆★
《17》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

정유찬

아련히 다가오는 사랑을
천천히 서둘지 않고 맞이하는 것은
천진하고 맑은 눈동자로
먼 하늘을 바라보는 아이와도 같이
설렘과 묘한 기대감으로 순수해지는 건지도 몰라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이야 애달프다 하겠지만
기다림은 지루하고 힘들어도 그 자리에서
그렇게 지치지 않고 해맑은 웃음처럼 있는 거야

사랑이 꽃피는 자리에서 가슴 뛰며 맞이하는
만남을 위해 아픔마저 잊고서

네가 나에게 오고 내가 너에게 가는
아름다운 꿈을 꾸면서 벅차고 기쁜 만남을 기다리는
너와 나는 행복한 거야
☆★☆★☆★☆★☆★☆★☆★☆★☆★☆★☆★☆★
《18》
사랑의 소망

정유찬

맑은 영혼의 숨결로 수혈하고
강인한 진리의 심장을 이식하여
뛰지 않는 자의 심장을 뛰게 하고
굳어진 자의 피를 흐르게 하며
방황의 독을 지우면 좋겠소

마침내 잠들었던 감성이
하늘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날
거듭난 생명 다시 뜬눈으로
혼탁함이 아닌 축복으로
눈물 흘리면 좋겠소

이왕이면 지친 그대에게
지복이 흘러 넘치고 기쁨이 우러나서
내미는 마음 따듯한 손
천만가지 침묵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기막힌 사랑이면 좋겠소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에 손 내밀고
사랑 아닌 것은 사랑에게 손 내밀며 사는
우리네 의존적 삶 속에서
서로 토막 난 영혼을 치유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면 얼마나 좋겠소
☆★☆★☆★☆★☆★☆★☆★☆★☆★☆★☆★☆★
《19》
살아있는 날엔 사랑을 하자

정유찬

사랑은
표현하지 않으면 환상이고
슬퍼도 울 수 없는 고통이며
만남이 없는 그리움은
외로움일 뿐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아쉬운 아픔이 되고
행동이 없는 생각은
허무한 망상이 된다

숨쉬지 않는 사람을
어찌 살았다하며
불지 않는 바람을
어찌 바람이라 하겠는가

사람이 숨을 쉬고
바람이 부는 것처럼
살아있는 날엔 사랑을 하자
☆★☆★☆★☆★☆★☆★☆★☆★☆★☆★☆★☆★
《20》
쉼표이고 싶다

정유찬

쉼표처럼 휴식을 주고 싶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어김없이
당신 옆에 찍히는 쉼표
그 쉼표와 함께
당신이 잠시 침묵하거나
차를 한잔하고 호흡을 가다듬어
생기 있게 다음 줄로
넘어가면 좋겠다

다음 줄로 넘어가 내용을 만들고
지치면 또 쉬다
하루를 마감하는 당신의 일기장엔
마침표가 되어 찍히고 싶다
그리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
함께 아침을 맞이하면 행복하겠다

그렇게 쉼표가 되고
마침표가 되어 살다가
우리 황혼의 끝날……
약해지고 늙어진 당신이
세상을 떠날 때는
마침표가 아닌
영원한 쉼표로 남고 싶다
사랑한다
☆★☆★☆★☆★☆★☆★☆★☆★☆★☆★☆★☆★
《21》
아마도

정유찬

그리우면
무척 그리우면 꽃이 필까 바위에
피어서 꽃잎이 펄펄 날릴까 그리움처럼
한없는 그리움으로 날리는 꽃잎이 울까
울던 꽃잎이 그리움에 또 젖을까

그럴 거야
그러고도 남을 거야
☆★☆★☆★☆★☆★☆★☆★☆★☆★☆★☆★☆★
《22》
이상한 세상이다

정유찬

그가 사는 세상은
꽃이 잠자리를 잡아먹고
트름을 한다

사슴을 사냥하는 나무들이
뛰어 다니며
차가운 태양이 뜨고
달은 불을 뿜는다

바람이 멱살을 잡고
빗줄기로 후려치며
벼락으로 가슴을 찌를 때
천둥은 두리번 망을 보고

가로등이 반갑게 인사를 하거나
건물들이 모여 앉아 수군거리며
교차로가 다리를 벌려 유혹을 할 때
새들은 언제나 침묵한다

시인이 살고 있는 세상이다

풍만한 어미의 젖가슴 같은
언덕 너머엔
화가가 살고 있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

그림 같은 세상 끝
흐르지 않는 강을 건너면
악기를 다루지 않는
음악가가 살고 있고...

우거진 숲을 지나
안개 낀 바다를
한참 건너오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다

우리가
사는 곳은
꿈보다 이상한
세상이다

제일 이상한 세상이다
☆★☆★☆★☆★☆★☆★☆★☆★☆★☆★☆★☆★
《23》
잊혀질 사랑이 아닙니다

정유찬

세월이 지난다고
잊혀질 사랑이 아닙니다.

쉽게 잊고,
죽으면 무덤 속으로 스러질
그런 사랑 아닙니다.

가슴에 새기고
영혼에도 깊이 새겨져,
숨이 다 멎어도 꿈틀거릴 사랑입니다.

죽어도 잊지 못한다 하여,
그토록 그리웠습니다.

가을 벌판에 부는 바람처럼,
부드럽고 푸근한 느낌으로
영원히 남을 사랑입니다.
☆★☆★☆★☆★☆★☆★☆★☆★☆★☆★☆★☆★
《24》
잠든 그대에게

정유찬

내 사랑의 언어가
그대 창문을 두드릴 때
그대는 잠들어 세상 너머로 간다

그대가 무관심처럼
쉽게 망각하는 나의 언어는

그대의 꿈속에서 서성거리다
줄곧 안개처럼 사라져버리고
잠에서 깨어난 그대는 딴청을 한다

아! 내가
잠든 그대의 귓가에서 노래하는가
내 잠 속에서 그대에게 기도하는가

꿈결 같은 미소만
펄럭거리는 그대 창가에서

잠에서 덜 깬 내가
서성이며 아직도 꿈꾸고 있다

헛된 사랑의 꿈을 꾼다
그것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꿈
그것이 나의 현실이 되는 것이다

꿈꾸는 나의 현실이다
나의 현실에서 그대도 꿈꾸고 있다
사랑 따위는 없다는 꿈을 꾼다

어차피 다 부질없는
망상이라는 꿈속의 사랑 따위는
허무한 거라는 꿈을 꾼다

우리의 꿈속에
사랑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그대와 난 목마른 꿈을 꾼다

어제나
마찬가지인 또 다른 오늘내일도
☆★☆★☆★☆★☆★☆★☆★☆★☆★☆★☆★☆★
《25》
초겨울 아침

정유찬

왜 그리도
서러운지

바람에
잎새를 모두 바쳐
앙상한 나무

강물은 냉정하고 무심한 듯
차갑게 지나가고

모이를 찾아
이리저리
후드 덕 거리는 새들

찬 공기에
코끝이 찡 하면……

그냥
아름다워 서글펐던 것이리라
그 허전함은
아마 싸늘한 바람 탓이리라

심장이 저려오는
상실의 아픔

절대로
그건 아니라고

초겨울 아침
한적한 강가에서
나는 내게 말하고
또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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