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시 모음> 강미영의 '천형天刑' 외
도토리 2016.03.11 19: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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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 시 모음> 강미영의 '천형天刑' 외    

+ 천형天刑  

여기 한 나무가 있다

그 아비와
그 어미가 길러낸
꼭 그들의 키만큼 자란 어쩌면
이토록 신비한 나무
꼭 그 만큼의 상처와
꼭 그만큼의 사랑이 키워낸 여기
한 나무……나무가 있다
신이 잉태한 한 생명을
맡아 길러낸
측은한 아비와 그의 어미 곁에
실은 그들의 상처를
꼭 빼어 닮은
여기


나무
(강미영·시인, 서울 출생)


+ 아들, 딸아

핏줄이 뭔가
온종일 보고도 돌아서면 곧바로
또 보고 싶은 건

내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 갚을 여가 없이
오로지 너희에게 사랑내림 했다만
지나고 보니
내가 준 사랑보다, 너희가 내게 준 기쁨이
더더욱 컸구나.

고사리 새순 같은 손가락으로, 한 쪽 젖 조물거리며
꿀꺽 꿀꺽 신나게 젖물 넘기던 소리
지금도 귓가에 재잘대는데
어느새
나보다 더 큰 나무 되어, 이젠
너희 그늘에, 편히 쉬고 싶구나.
철든 너희 손, 약손이 되었구나.
수시로 투정부려지고, 이유 없이 눈물 쏟아지는 건
너희와의, 긴 이별 앞둔, 어리광이구나.
(변영숙·시인, 1931-2010)


+ 염소

벚꽃이 어지럽게 떨어진 길을
어미 염소가 타달거리며 가고 있다
그 뒤에는 새끼 두 마리가
아니 열 마리 스무 마리가 총총 따른다

우스꽝스러운 몇 가닥의 턱수염 같은 기침을
가끔씩 내뱉으며 간다

어디를 보더라도 새끼를 데리고 갈 힘이 어미 염소에게는 없다
그리하여 가던 걸음 멈추고
구치소의 아들을 면회하는 아버지 같은 얼굴빛으로
하늘을 쳐다본 뒤
다시 길을 간다

그림자가 그 어떤 길도 마다하지 않고 주인을 따르듯
옛날의 어미가 갔던 길을 따라 간다

어미 염소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모른다
단지 새끼 두 마리가
아니 열 마리 스무 마리가 뒤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
새끼들이 힘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
(맹문재·시인, 1965-)


+ 너 갈 데로 가거라

아들아이는 빈 책가방에 도시락만 달랑 넣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가 어디로 가는 걸까요
학교에 가도 수업시간에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없고
한 시간이 천년 같다고 했어요
수학과 영어는 1학년 때부터 공부했어야 하는데 어느새 3학년
기초가 없으니 어느 과목도 다 모를 것뿐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복도에 나가 벌을 서는 편이
마음 편하다 했지요
몰래 시간에 빠진 다음 뒷산에 올라가 낮잠을 자거나
거리를 여기저기 걸어다녔어요
막노동하는 아버지는 이런 사정도 모르고
아이의 장래를 생각하며 일만 열심히 했어요
뒤늦게 이 일을 알게 된 아버지는
분통이 터져 당장 아이를 붙잡아 때려죽이려 했어요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아이 어깨를 짚더니
조용히 이야기했어요 참으로 조용히 말했어요
용식아, 알았다. 그렇구나, 너 갈 데로 가거라
너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거라 이 애비도
그래서 일찍이 집을 뛰쳐나와 이렇게 평생을 살았단다
용식아 알았느냐 그러면서 참았던 눈물을 쏟으며
아버지는 그만 통곡하고 말았어요
(김규동·시인, 1925-)


+ 나의 자식들에게

위험한 곳에는 아예 가지 말고
의심받을 짓은 안 하는 것이 좋다고
돌아가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그분의 말씀대로 집에만 있으면
양지바른 툇마루의 고양이처럼
나는 언제나 귀여운 자식이었다
평온하게 살아가는 사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사람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인생이 힘들 것 무엇이랴 싶었지만
그렇게 살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수양이 부족한 탓일까
태풍이 부는 날은 집안에 들어앉아
때묻은 책을 골라내고 옛날 일기장을 불태우고
아무 것도 남기지 않기 위해 자꾸 찢어버린다
이래도 무엇인가 남을까
어느 날 갑자기 이 짓을 못하게 되어도
누군가 나를 기억할까
어쩌면 그러기 전에 낯선 전화가 울려올지도 모른다
지진이 일어나는 날은 집에만 있는 것도 위험하고
아무 짓을 안 해도 의심받는다
조용히 사는 죄악을 피해
나는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평온하게 살지 마라 무슨 짓인가 해라
아무리 부끄러운 흔적이라도 무엇인가 남겨라
(김광규·시인, 1941-)


+ 가장 사랑하는 자식

자식 가운데 누구를 가장 사랑하느냐고요?
아픈 자식이 나을 때까지는 그 자식을,
집 나간 자식이 돌아올 때까지는
그 자식을 사랑합니다.
(수산나 웨슬리·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의 어머니, 1669-1742)


+ 저희 아이가 진실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주님,
제 아이가
보이지 않는 거룩한 가치관을
소중히 여기게 해주소서.

습관적인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해주시고

진실이 위협당하는 순간에
거짓으로 인해
친구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공공의 선을 위해
진리를 증언해야 할 때

당신께 대한 굳은 신앙심으로
진리를 말할 수 있게 해주소서
(미리암 H·미국 생태 영성가이며 동화작가)


+ 행복한 자녀

산처럼 한결같은 성품의
미더운 아버지

바다같이 깊고 평온한
자애로움의 어머니

이런 부모를 가진 자녀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세월 가도
변함없는 믿음과 신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사랑을 배우면서

그들의 생은
밝은 소망으로 가득할 것이다.

바다 같은 엄마는
이미 아이들 곁에 있으니

나만 산 같은 아빠의 모습을
조금씩 더 닮아간다면  

우리 집 아이들도
행복한 자녀 될 수 있으리.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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