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day
인생의 무대에선 누구나 주인공
12 좋은글 2004.06.21 10: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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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허옇게 같이 늙어 가는 노부부가 승용차를 운전하며 함께 다니는 모습이 어머니는 제일 부럽단다. 아버지 생전에 못해본 것을 늘 아쉬워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어머니도 여자구나 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된다.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어머니는 TV아침드라마 시간이면 시계보다 정확히 채널을 맞추고 “쯧쯧 이제 그만 며느리 놓아주지...”라며 과부며느리의 사랑을 용납하지 못하는 드라마 속 시어머니를 딱해 하신다. 나는 때때로 드라마에 푹 빠져있는 어머니가 드라마 속한 구성원이 아닐까하는 착각을 일으키곤 한다. 어머니에게 드라마는 결코 가상의 세계가 아니다. 기꺼이 드라마 속으로 뛰어들어 진심으로 분노하고 슬퍼하고 가슴 아파하신다. “과수댁 며느리를 사랑하는 중년 현장소장의 애틋한 사랑”에는 거의 환상까지 갖고 계신다. 노인정 할머니들이 한결같이 “저런 남자 있으면 나도 한번 살아보고 싶다”했다며 그들의 사랑이 꼭 이뤄지길 기도까지 올린다.

드라마에 열광하는 노인들의 심리는 결국 대리만족일 것이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남이 해 줄 때 느끼는 보편적 감정이 대리만족 아닌가. 인생이란 무대에서 엑스트라로 밀린 어르신들이 그 서글픔을 드라마 배역들에 실어 잠시나마 주인공이 되어보고 싶은가보다.

얼마 전 용인의 한 실버타운에서 홀로 된 70대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 곳에서 알게 돼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얼마 되지 않아 그곳의 다른 어르신들의 반발로 쫓겨나 각각 자녀들의 집으로 돌아갔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쫓겨가야 했던 두 어르신 보다 거기 남아 있는 어르신들이 더 안타깝고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황혼에 찾아온 축복 받은 인연을 용납할 수 없었던 어르신들,그분들은 정말 그 두 어르신의 사랑이 볼썽사납고 망측스럽기만 하였을까? 혹 자신들의 가슴속에 꼭꼭 숨겨놓은 그 무엇이 살아날까 두려워 애써 고개를 돌린 건 아니었을까.

인간의 생이 행복했는가 아닌가를 가늠하는 잣대는 그가 죽을 때까지 성을 영위했는가 그렇지 못했는가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배우자를 잃은 어르신들의 설자리는 어디인가. 인터넷의 한 설문조사에서 ‘혼전동거 괜찮다’는 젊은이가 절반도 훨씬 넘었고,동성애도 법적으로 인정해 달라는 요즘 세상인데 황혼의 사랑에 누가 돌을 던지랴.

인생의 무대에선 누구나 주인공이다. 사랑에 있어선 더욱 그렇다. 그 누구도 황혼의 그들을

비난하거나 엑스트라로 밀어낼 자격이 없다. 늙으신 어머니도 여자고 아버지도 사람이다. 우리가 다만 잊고 있을 뿐이다.

- 이명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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