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day
이상한 라면상자
12 좋은글 2004.04.23 10:4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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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어렵게 졸업한 뒤 나는 농사꾼으로 남길 바라는 아버지께 혼자 일하면서 공부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록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무일푼으로 이곳저곳 골목을 헤매고 다녔다. 그때 작고 허름한 인쇄소 앞에서 만난 김씨 아저씨가 내 사정을 전해 듣고는 "우리 인쇄소에서 일하거라. 나중에 돈이 모아지면 야간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주마"라고 하셨다. 그날부터 나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찬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자면서 아저씨의 인쇄소에서 일했다.
한달이 지나 월급을 받았을 때 나는 라면 한상자를 사다 놓고 나머지는 몽땅 저금했다. 신이 나서 일하는 동안 또 한달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라면상자에 손을 넣어보니 라면이 두개밖에 없었다. 그중에서 한개를 꺼냈는데 다음날 신기하게도 라면 두개가 그대로 있었다. "분명히 어제 하나를 끓여 먹었는데..."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또 하나를 꺼냈다. 그러나 다음날에도 또 라면은 여전히 두개였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그렇게 며칠이 지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라면 한상자를 한달이 넘도록 먹은 것이었다.
다음날 나는 일부러 하루종일 라면상자가 있는 쪽에서 일했다. 퇴근무렵 김씨 아저씨가 나를 불러 가게에 갔다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시기에, 인쇄소밖으로 나와 유리창 너머로 슬쩍 라면상자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아저씨가 라면상자 쪽으로 걸어가더니 품속에서 라면 한개를 꺼내 상자속에 집어넣고는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걸어나오셨다. 어린 사남매와 병든 아내와 함께 월세 단칸방에 살고 계신다는 김씨 아저씨...
나는 그날 아저씨의 심부름을 잊은 채 인쇄소 옆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울었다.

- <당신에게 오늘 행복이라는 편지를 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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