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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선물
12 해바라기 2004.02.10 12: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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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내가 머무르는 곳은 발 밑에 망망대해가 펼쳐진 곳이다.
집필구상을 핑계로 집을 떠나 홀로 오게 된 이곳은 동해안의 한 여름별장이다.
난방도 안되고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고 신문도 오지 않고 인터넷도 없다.
창 밖으로는 곧바로 무섭도록 푸르른 동해의 바닷물만이 출렁거려 마치 내가 홀로 무인도에 갇혀있는 것 같다.
파도가 심하게 출렁대는 날은 꼭 이 집이 ‘노아의 방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니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라 해도 홀로 있는 내가 꼭 태초의 ‘이브’처럼 느껴진다.
나는 번잡한 일상을 떠나 그런 절대적 고독감을 맛보는 걸 어떤 의미에서는 정신적 사치의 하나로 여긴다.
그래서 불만은커녕 홀로있음의 감미로움을 즐기는 편이다.
그러나 때가 때인지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이번만큼은 그 감미로움을 제대로 즐기게 되지 않는다.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산타 할머니’의 노릇도 해야 하고 가족과 크리스마스를 함께 하지 못한다는 죄책감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우리집 둘째는 늘 12월부터 크리스마스 대목을 노려 엄마 아빠의 선물을 미리 예약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받고 싶은 산타의 선물을 암시한다.
(이제는 산타의 존재를 믿지 않을 나이도 되었지만 순진을 가장한 녀석의 속셈이 의심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 크리스마스는 바닷가에서 가족들과 색다르게 보내고 싶어 남편더러 아이들을 데리고 오라고 하니 남편은 희희낙락인데, 오히려 아이들이 시큰둥하다.
아이들 성화에 남편이 이틀 전부터 미리 선물을 사주어서인지 엄마 있는 곳까지 멀리 가는 게 귀찮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아이들이 요구하는 선물이 무언지 알고나니 좀 기가 막혔다.
큰애는 현금을 요구했고, 열 살인 둘째 녀석은 캠코더를 사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그래서 타협을 본 것이 두 아이들이 공용으로 쓰는 것을 조건으로 디지털카메라를 사주었노라고 남편이 말했다.
식구들이 오면 예쁜 케이크를 하나 사놓고 둘째 녀석의 산타용 선물은 따뜻한 털실장갑을 준비하리라 생각했던 나는 기가 막혔다.
웬일인지 큰 선물에만 집착하는 아이들이 안타깝고 속상했다.
크리스마스는 종교적인 축일이기도 하지만, 서양에서는 우리나라 설날처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의미깊은 날이다.
또 선물이란 것은 가족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오 헨리의 소설인 ‘크리스마스 선물’에 나오는 아름다운 빗과 시곗줄 같은 소중하고 귀중한 마음의 선물을 준비하지 못하는 것은 내 탓일까 아니면 아이들 탓일까 생각하니 조금은 우울해진다.

- <경향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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