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주차관리인
전옥화 2004.02.07 20:05:49
조회 1,235 댓글 9 신고
어떤 주차 관리인

그는 선천적인 뇌성마비 장애인이었습니다.
'뇌성마비'라는 것이 신경의 자율적인 조절 이상으로 자신의 몸을 자신의
의사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일 뿐 중복장애가 있지 않는 한,
사고나 마음까지 제어불능의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부자연스러운 몸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그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능력까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그의 몸과 다를 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앞에서 조심성 없이 마구 말을 내뱉어
그의 여린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내기 일쑤였습니다.
그는 성장해 감에 따라 타인과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면서부터
자신을 '세상의 적' 이라 단정 짓고 자학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가 자신을 이 세상에 불편한 몸으로 보내준
조물주에게 무언가 남다른 의미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정말 커다란 축복이었습니다.

그는 씨름하듯 어렵게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며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재수하여 마침내는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었답니다.
그러나 힘겨운 공부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난다긴다하는 정상적인 수재들 틈에서 처지지 않고 공부를 하는 것은
아무리 피눈물을 쏟고 노력을 해도 역부족이었습니다.

생각다 못한 그는 2학년을 마치고 휴학한 이후 언어교정을 받고,
암호 필기법을 배웠으며, 무엇보다 기쁜 일은 운전면허증을 움켜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여본 것이 하나도 없었던
그는 자신이 운전하고 조작하는 대로 달려주고 멈추어주는
자동차가 정말 신기하고 고맙기 그지없었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는 마치 날개를 단 것 같았습니다.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한동안은 꿈인가 싶을 정도 였습니다.
그 동안 가보고 싶었던 곳도 마음껏 가볼 수 있었고,
어쩌면 조만 간에 자신의 뒤틀린 겉모습이 아닌 온전한 마음을 볼 줄 아는,
눈 밝고 마음씨 고운 여자 친구 하나를
태우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꿈에 부풀었답니다.

그러나... 자동차 운전이 늘 그렇게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주차가 문제였습니다.
공공기관이나 아파트 등에는 장애인용 주차공간이 있긴 했지만
그나마 없는곳이 더 많았고, 그걸 지키는 사람은 더욱 없었습니다.
'먼저 대는 사람이 임자' 라는 냉정한 법칙에 뒤늦게 도착한
그는 늘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그 때마다 빈곳을 찾아 헤매다 주차를 해도
힘겹게 한참을 걸어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 곳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그는 학교에 가면 늘 장애인용 주차공간이 비어 있어
별 어려움 없이 주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가 공부하는 건물 앞 현관 가까운 곳에는
두 자리의 장애인용 주차공간이 있었는데,
장애인용 표시가 붙지 않은 차가 주차되어 있는적은 없었습니다.
그는 이제 신 새벽부터 잠을 설치며 고단한 몸을 끌고 등교하지 않아도
주차 때문에 마음을 졸이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다른 날에 비해 늦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세상은 하얗게 옷을 갈아입고 있었습니다.
눈 속에 파묻히면 온전치 못한 자신의 모습이
남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아 눈을 몹시도 좋아하던 그였지만,
그런 감상보다는 주차가 더럭 걱정으로 다가섰습니다.
장애인용 주차표시가 눈에 덮이면,
모르는 이들은 그냥 그 자리에 차를 세워버릴 것이 분명했으니까요.

그는 부랴부랴 집을 나서 학교로 향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제발 제 자리가 남아 있게 해주세요...'
그 자리에 주차하지 못하면, 그는 눈 때문에 미끄러운 길을 꼬이는 걸음으로
몇 번이나 나동그라져야 교실에 들어갈 수 있을지 짐작도 할 수 없었습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펑펑 쏟아지는 눈을 헤치고 학교에 도착한 그는,

아!!!
장애인용 주차 공간 두 자리가 그대로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놀랍고 의외여서 그는 잠시 자신의 행운을 의심했지만
그 자리는 눈에 덮이지 않은 것을 보니, 아마 자신과 같은 장애인이 먼저
차를 댔다가 나간 모양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뭇 가벼워진 마음으로 교실로 들어간 그는
친구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 건물의 경비원 아저씨가 새벽부터 장애인용 주차 공간 두 자리를
줄곧 부지런히 쓸고 계셨다는 것을...
장애인용이라는 휠체어 표시가 눈에 덮일 만하면
그 경비 아저씨는 비를 들고 나와 다시 쓸고 들어가시길
몇 번이나 반복하셨다는 겁니다.
그 소리를 들은 그는 잠시 할 말을 잊었고, 그 다음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해져 철들기 전 엄마에게...

'왜 나를 다른 아이들처럼 마음대로 뛰어 놀 수 없게 낳았느냐'고 떼를 부리며,
모자간에 부둥켜안고 울었던 이후에는 흘려본 적 없던
눈물이 마구마구 주책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얼른 닦지도 못하는 그의 눈물을 꼼꼼히 닦아주며
친구는 덧붙였습니다.

아저씨가 그 자리의 눈을 계속 쓸고 계시는 의미를 다들 알고 있어서...
그 동안의 묵계를 깨고 그 자리에 주차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입니다.
그는 그 동안 자신이 어렵지 않게 주차할 수 있었던
이유를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주차공간을 호시탐탐 노린다고 그가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그 자리를 오래 지켜주고 있었다는 사실도 새삼 알 수 있었구요

그는 한참 동안이나 마음을 다스리며 앉아 있다가 이윽고...
경비실이 있는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든 그는 경비실로 가서
아무 말 없이 아저씨께 그 커피를 드렸습니다...
커피는 가져오는 동안 흔들리는 그의 걸음 때문에 다 쏟아져
반밖에 남지 않았지만 쏟아진 나머지 반은,
어느 샌가 다시 흐르기 시작한 그의 눈물이 채우고도 남을 것 같았답니다.

경비 아저씨는 눈물로 범벅된 그가 건네는 반잔의 커피를 묵묵히 받아들고
아주 맛나게 잡수셨습니다.
그리고는... 입안에서 뱅뱅 돌 뿐 말이 되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정말 감사하다...' 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서 있는 그의 등을
따뜻하고 투박한 손으로 툭툭 두드려 주시며
'그러잖아도 뜨거운 커피가 마시고 싶었는데 잘 마셨네...'
하시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