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어린 아버지/은비녀
이현경 2022.09.15 02:24:50
여름휴가를 밀어두었던 형제들이
부모님 산소에 벌초를 하기 위해 모두 모였다.
인천에 사는 언니, 안산에 사는 오빠네, 그리고 포항에 사는 동생,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지만 다행이 부모님 산소는 충청도 고향에 있으니
만나는 중간지점이 된다.
아침 일찍 출발해도 해가 중천이 되어야 만날 수 있는 거리,
아직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그 길에는 온갖 들꽃들이 만발해 있다.
개망초, 원추리, 물봉숭아 등등...
어린 시절 학교에 오갈 때 마다 내가 늘 상 보아왔던 들꽃들은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피어 있다.
일손이 모자라 묵혀두었던 밭둑에 빨갛게 산딸기가 익어가도 누구 하나
따먹는 이가 없다.
모두 차를 타고 지나다니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이리라.
한 알 따서 입에 넣어 본다.
그 옛날 그렇게 맛있던 딸기는 이젠 고급화된 내 입맛에 그냥 고향 맛 일뿐
시기만 하다.
유난한 폭우에도 다행히 풀만 무성할 뿐 산소는 훼손 되지 않아 다행이다.
남자들이 모두 달려들어 금새 부모님 두 분의 봉분이 깨끗해 졌다.
준비해간 음식을 차려 놓고 모두 절을 하는데 막내 동생의 아장아장 걷는
아들놈도 엉덩이를 하늘로 올리고 절을 하는 폼이 귀엽기만 하다.
' 아버지 당신의 손자예요 절 받으세요 ' 하고 다시 절을 시킨다.
아버지는 아시려나 이 놈이 당신의 손자란 것을.
마흔이 다 된 막내 동생은 유복자이다.
서른 여섯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 달 만에 태어났다.
추운 겨울에 동생을 낳은 엄마의 하얀 소복이 어린 기억에 남아있다.
그 때는 어려서 아버지의 부재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고
어머니의 아픔이랄까 그런 것은 더욱 헤아려 볼 수도 없었다.
나이가 들고 내 자신이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야 어머니의 아픔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헤아리게 되었다.
막내는 언제나 말이 적다.
어려서도 형이나 누나들이 상급학교나 직장으로 떠나가 있어서 말 벗이 없이 보내서 그런지
말도 없고 어려워한다.
그런 동생은 우리 형제들에게 늘 마음 아픈 자리에 있다.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동생은 아버지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유복자라는 이유만으로……
동생이 대학졸업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직장에서 인정 받고 승진을 할 때에도
내 눈에는 대견한 마음 한편에 늘 마음이 저려 온다.
살아 생전 말씀은 안 하셨지만 어머니 마음은 더욱 그러하셨을 것이다.
서른 여섯이란 젊은 나이에 가신 사진 속의 아버지보다 이제 그 아들이 나이가 더 많다.
유난히 아버지 모습을 많이 닮은 동생이 음복 한잔에 농을 한다.
“아버진 이제 나보다 나이가 어려……”
그래,…..뭐가 그리 급하셔서 그리 일찍 가셨을까 이렇게 잘 큰
아들도 손자도 못 안아보시고……
아버지 봉분에 알 수 없는 보라색 꽃들이 예쁘게 피어있던 것을 꺾어다가
어머니 앞에 놓았다 아버님이 보내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남겨진 사 남매를 키우며 모진 어려움 속에서도 어머님은 한번도
아버님을 원망하는걸 보지 못했다. 다만 너무 일찍 가시어 자식들과의 행복한 시간을
누리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실 뿐이었다.
어쩌면 어머닌 이런 들꽃 한 송이에 자신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놓고 떠난 아버지를
용서할지도 모른다.
앞산에 해 가 걸리어서야 산을 내려온다.
이제 모두 떠나버리고 몇 가구 안 되는 고향의 저녁 시간은 더욱 썰렁한 기운이다.
앞산 뒷산,
이젠 떠나서 사시던 분들이 돌아와 누운 봉분이 더 많은 내 고향 언덕,
과연 우리도 언제 까지 이렇게 모여서 벌초를 하고 성묘를 할 것인가.
장례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부르짖지만 고인의 유언이 없는 한 막상
내 부모만은 쉽게 화장하고 납골당에 모실 결정을 하긴 어렵다.
아마 그건 살아 생전 효를 다하지 못한 나 같은 불효자는 더욱 그럴 것이다.
장남으로 책임이 큰 오빠는 자기 대에서 부모님을 납골당으로 모시는 문제를 거론하지만
생전에 보지 못했던 아버님을 그런 모습이라도 보고 싶어서일까
멀리서도 비행기를 타고 제사 모시러 오는 동생은 늘 대답이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멀어져 가리라.
장례문화가 바뀌어 가고 그와 함께 이런 벌초 행사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밖에 없으리라.
어떤 시인은 어머님에 대한 마음이 애틋하여 빗과 가위로 잘라드렸다고 하던가,
후리지도 않고 한 줌 한줌 낫으로 베어 깎던 벌초에서 이젠 예초기란 이름의 기계로 대신하고 아예 대행업까지 한 몫 보는 세대가 되어버린 것을……
벌초는 이제 하나의 풍습에 지나지 않는 세대가 될 것이다.
마을 어귀의 친구 아버님 산소에 소주 한잔 올려 드리고 저문 고향을 뒤로 했다.
유년시절 벌거숭이 물장구 치던 냇가에 물 안개가 피어 오른다.여름휴가를 밀어두었던 형제들이
부모님 산소에 벌초를 하기 위해 모두 모였다.
인천에 사는 언니, 안산에 사는 오빠네, 그리고 포항에 사는 동생,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지만 다행이 부모님 산소는 충청도 고향에 있으니
만나는 중간지점이 된다.
아침 일찍 출발해도 해가 중천이 되어야 만날 수 있는 거리,
아직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그 길에는 온갖 들꽃들이 만발해 있다.
개망초, 원추리, 물봉숭아 등등...
어린 시절 학교에 오갈 때 마다 내가 늘 상 보아왔던 들꽃들은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피어 있다.
일손이 모자라 묵혀두었던 밭둑에 빨갛게 산딸기가 익어가도 누구 하나
따먹는 이가 없다.
모두 차를 타고 지나다니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이리라.
한 알 따서 입에 넣어 본다.
그 옛날 그렇게 맛있던 딸기는 이젠 고급화된 내 입맛에 그냥 고향 맛 일뿐
시기만 하다.
유난한 폭우에도 다행히 풀만 무성할 뿐 산소는 훼손 되지 않아 다행이다.
남자들이 모두 달려들어 금새 부모님 두 분의 봉분이 깨끗해 졌다.
준비해간 음식을 차려 놓고 모두 절을 하는데 막내 동생의 아장아장 걷는
아들놈도 엉덩이를 하늘로 올리고 절을 하는 폼이 귀엽기만 하다.
' 아버지 당신의 손자예요 절 받으세요 ' 하고 다시 절을 시킨다.
아버지는 아시려나 이 놈이 당신의 손자란 것을.
마흔이 다 된 막내 동생은 유복자이다.
서른 여섯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 달 만에 태어났다.
추운 겨울에 동생을 낳은 엄마의 하얀 소복이 어린 기억에 남아있다.
그 때는 어려서 아버지의 부재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고
어머니의 아픔이랄까 그런 것은 더욱 헤아려 볼 수도 없었다.
나이가 들고 내 자신이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야 어머니의 아픔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헤아리게 되었다.
막내는 언제나 말이 적다.
어려서도 형이나 누나들이 상급학교나 직장으로 떠나가 있어서 말 벗이 없이 보내서 그런지
말도 없고 어려워한다.
그런 동생은 우리 형제들에게 늘 마음 아픈 자리에 있다.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동생은 아버지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유복자라는 이유만으로……
동생이 대학졸업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직장에서 인정 받고 승진을 할 때에도
내 눈에는 대견한 마음 한편에 늘 마음이 저려 온다.
살아 생전 말씀은 안 하셨지만 어머니 마음은 더욱 그러하셨을 것이다.
서른 여섯이란 젊은 나이에 가신 사진 속의 아버지보다 이제 그 아들이 나이가 더 많다.
유난히 아버지 모습을 많이 닮은 동생이 음복 한잔에 농을 한다.
“아버진 이제 나보다 나이가 어려……”
그래,…..뭐가 그리 급하셔서 그리 일찍 가셨을까 이렇게 잘 큰
아들도 손자도 못 안아보시고……
아버지 봉분에 알 수 없는 보라색 꽃들이 예쁘게 피어있던 것을 꺾어다가
어머니 앞에 놓았다 아버님이 보내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남겨진 사 남매를 키우며 모진 어려움 속에서도 어머님은 한번도
아버님을 원망하는걸 보지 못했다. 다만 너무 일찍 가시어 자식들과의 행복한 시간을
누리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실 뿐이었다.
어쩌면 어머닌 이런 들꽃 한 송이에 자신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놓고 떠난 아버지를
용서할지도 모른다.
앞산에 해 가 걸리어서야 산을 내려온다.
이제 모두 떠나버리고 몇 가구 안 되는 고향의 저녁 시간은 더욱 썰렁한 기운이다.
앞산 뒷산,
이젠 떠나서 사시던 분들이 돌아와 누운 봉분이 더 많은 내 고향 언덕,
과연 우리도 언제 까지 이렇게 모여서 벌초를 하고 성묘를 할 것인가.
장례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부르짖지만 고인의 유언이 없는 한 막상
내 부모만은 쉽게 화장하고 납골당에 모실 결정을 하긴 어렵다.
아마 그건 살아 생전 효를 다하지 못한 나 같은 불효자는 더욱 그럴 것이다.
장남으로 책임이 큰 오빠는 자기 대에서 부모님을 납골당으로 모시는 문제를 거론하지만
생전에 보지 못했던 아버님을 그런 모습이라도 보고 싶어서일까
멀리서도 비행기를 타고 제사 모시러 오는 동생은 늘 대답이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멀어져 가리라.
장례문화가 바뀌어 가고 그와 함께 이런 벌초 행사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밖에 없으리라.
어떤 시인은 어머님에 대한 마음이 애틋하여 빗과 가위로 잘라드렸다고 하던가,
후리지도 않고 한 줌 한줌 낫으로 베어 깎던 벌초에서 이젠 예초기란 이름의 기계로 대신하고 아예 대행업까지 한 몫 보는 세대가 되어버린 것을……
벌초는 이제 하나의 풍습에 지나지 않는 세대가 될 것이다.
마을 어귀의 친구 아버님 산소에 소주 한잔 올려 드리고 저문 고향을 뒤로 했다.
유년시절 벌거숭이 물장구 치던 냇가에 물 안개가 피어 오른다.
부모님 산소에 벌초를 하기 위해 모두 모였다.
인천에 사는 언니, 안산에 사는 오빠네, 그리고 포항에 사는 동생,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지만 다행이 부모님 산소는 충청도 고향에 있으니
만나는 중간지점이 된다.
아침 일찍 출발해도 해가 중천이 되어야 만날 수 있는 거리,
아직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그 길에는 온갖 들꽃들이 만발해 있다.
개망초, 원추리, 물봉숭아 등등...
어린 시절 학교에 오갈 때 마다 내가 늘 상 보아왔던 들꽃들은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피어 있다.
일손이 모자라 묵혀두었던 밭둑에 빨갛게 산딸기가 익어가도 누구 하나
따먹는 이가 없다.
모두 차를 타고 지나다니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이리라.
한 알 따서 입에 넣어 본다.
그 옛날 그렇게 맛있던 딸기는 이젠 고급화된 내 입맛에 그냥 고향 맛 일뿐
시기만 하다.
유난한 폭우에도 다행히 풀만 무성할 뿐 산소는 훼손 되지 않아 다행이다.
남자들이 모두 달려들어 금새 부모님 두 분의 봉분이 깨끗해 졌다.
준비해간 음식을 차려 놓고 모두 절을 하는데 막내 동생의 아장아장 걷는
아들놈도 엉덩이를 하늘로 올리고 절을 하는 폼이 귀엽기만 하다.
' 아버지 당신의 손자예요 절 받으세요 ' 하고 다시 절을 시킨다.
아버지는 아시려나 이 놈이 당신의 손자란 것을.
마흔이 다 된 막내 동생은 유복자이다.
서른 여섯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 달 만에 태어났다.
추운 겨울에 동생을 낳은 엄마의 하얀 소복이 어린 기억에 남아있다.
그 때는 어려서 아버지의 부재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고
어머니의 아픔이랄까 그런 것은 더욱 헤아려 볼 수도 없었다.
나이가 들고 내 자신이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야 어머니의 아픔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헤아리게 되었다.
막내는 언제나 말이 적다.
어려서도 형이나 누나들이 상급학교나 직장으로 떠나가 있어서 말 벗이 없이 보내서 그런지
말도 없고 어려워한다.
그런 동생은 우리 형제들에게 늘 마음 아픈 자리에 있다.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동생은 아버지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유복자라는 이유만으로……
동생이 대학졸업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직장에서 인정 받고 승진을 할 때에도
내 눈에는 대견한 마음 한편에 늘 마음이 저려 온다.
살아 생전 말씀은 안 하셨지만 어머니 마음은 더욱 그러하셨을 것이다.
서른 여섯이란 젊은 나이에 가신 사진 속의 아버지보다 이제 그 아들이 나이가 더 많다.
유난히 아버지 모습을 많이 닮은 동생이 음복 한잔에 농을 한다.
“아버진 이제 나보다 나이가 어려……”
그래,…..뭐가 그리 급하셔서 그리 일찍 가셨을까 이렇게 잘 큰
아들도 손자도 못 안아보시고……
아버지 봉분에 알 수 없는 보라색 꽃들이 예쁘게 피어있던 것을 꺾어다가
어머니 앞에 놓았다 아버님이 보내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남겨진 사 남매를 키우며 모진 어려움 속에서도 어머님은 한번도
아버님을 원망하는걸 보지 못했다. 다만 너무 일찍 가시어 자식들과의 행복한 시간을
누리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실 뿐이었다.
어쩌면 어머닌 이런 들꽃 한 송이에 자신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놓고 떠난 아버지를
용서할지도 모른다.
앞산에 해 가 걸리어서야 산을 내려온다.
이제 모두 떠나버리고 몇 가구 안 되는 고향의 저녁 시간은 더욱 썰렁한 기운이다.
앞산 뒷산,
이젠 떠나서 사시던 분들이 돌아와 누운 봉분이 더 많은 내 고향 언덕,
과연 우리도 언제 까지 이렇게 모여서 벌초를 하고 성묘를 할 것인가.
장례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부르짖지만 고인의 유언이 없는 한 막상
내 부모만은 쉽게 화장하고 납골당에 모실 결정을 하긴 어렵다.
아마 그건 살아 생전 효를 다하지 못한 나 같은 불효자는 더욱 그럴 것이다.
장남으로 책임이 큰 오빠는 자기 대에서 부모님을 납골당으로 모시는 문제를 거론하지만
생전에 보지 못했던 아버님을 그런 모습이라도 보고 싶어서일까
멀리서도 비행기를 타고 제사 모시러 오는 동생은 늘 대답이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멀어져 가리라.
장례문화가 바뀌어 가고 그와 함께 이런 벌초 행사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밖에 없으리라.
어떤 시인은 어머님에 대한 마음이 애틋하여 빗과 가위로 잘라드렸다고 하던가,
후리지도 않고 한 줌 한줌 낫으로 베어 깎던 벌초에서 이젠 예초기란 이름의 기계로 대신하고 아예 대행업까지 한 몫 보는 세대가 되어버린 것을……
벌초는 이제 하나의 풍습에 지나지 않는 세대가 될 것이다.
마을 어귀의 친구 아버님 산소에 소주 한잔 올려 드리고 저문 고향을 뒤로 했다.
유년시절 벌거숭이 물장구 치던 냇가에 물 안개가 피어 오른다.여름휴가를 밀어두었던 형제들이
부모님 산소에 벌초를 하기 위해 모두 모였다.
인천에 사는 언니, 안산에 사는 오빠네, 그리고 포항에 사는 동생,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지만 다행이 부모님 산소는 충청도 고향에 있으니
만나는 중간지점이 된다.
아침 일찍 출발해도 해가 중천이 되어야 만날 수 있는 거리,
아직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그 길에는 온갖 들꽃들이 만발해 있다.
개망초, 원추리, 물봉숭아 등등...
어린 시절 학교에 오갈 때 마다 내가 늘 상 보아왔던 들꽃들은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피어 있다.
일손이 모자라 묵혀두었던 밭둑에 빨갛게 산딸기가 익어가도 누구 하나
따먹는 이가 없다.
모두 차를 타고 지나다니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이리라.
한 알 따서 입에 넣어 본다.
그 옛날 그렇게 맛있던 딸기는 이젠 고급화된 내 입맛에 그냥 고향 맛 일뿐
시기만 하다.
유난한 폭우에도 다행히 풀만 무성할 뿐 산소는 훼손 되지 않아 다행이다.
남자들이 모두 달려들어 금새 부모님 두 분의 봉분이 깨끗해 졌다.
준비해간 음식을 차려 놓고 모두 절을 하는데 막내 동생의 아장아장 걷는
아들놈도 엉덩이를 하늘로 올리고 절을 하는 폼이 귀엽기만 하다.
' 아버지 당신의 손자예요 절 받으세요 ' 하고 다시 절을 시킨다.
아버지는 아시려나 이 놈이 당신의 손자란 것을.
마흔이 다 된 막내 동생은 유복자이다.
서른 여섯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 달 만에 태어났다.
추운 겨울에 동생을 낳은 엄마의 하얀 소복이 어린 기억에 남아있다.
그 때는 어려서 아버지의 부재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고
어머니의 아픔이랄까 그런 것은 더욱 헤아려 볼 수도 없었다.
나이가 들고 내 자신이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야 어머니의 아픔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헤아리게 되었다.
막내는 언제나 말이 적다.
어려서도 형이나 누나들이 상급학교나 직장으로 떠나가 있어서 말 벗이 없이 보내서 그런지
말도 없고 어려워한다.
그런 동생은 우리 형제들에게 늘 마음 아픈 자리에 있다.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동생은 아버지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유복자라는 이유만으로……
동생이 대학졸업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직장에서 인정 받고 승진을 할 때에도
내 눈에는 대견한 마음 한편에 늘 마음이 저려 온다.
살아 생전 말씀은 안 하셨지만 어머니 마음은 더욱 그러하셨을 것이다.
서른 여섯이란 젊은 나이에 가신 사진 속의 아버지보다 이제 그 아들이 나이가 더 많다.
유난히 아버지 모습을 많이 닮은 동생이 음복 한잔에 농을 한다.
“아버진 이제 나보다 나이가 어려……”
그래,…..뭐가 그리 급하셔서 그리 일찍 가셨을까 이렇게 잘 큰
아들도 손자도 못 안아보시고……
아버지 봉분에 알 수 없는 보라색 꽃들이 예쁘게 피어있던 것을 꺾어다가
어머니 앞에 놓았다 아버님이 보내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남겨진 사 남매를 키우며 모진 어려움 속에서도 어머님은 한번도
아버님을 원망하는걸 보지 못했다. 다만 너무 일찍 가시어 자식들과의 행복한 시간을
누리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실 뿐이었다.
어쩌면 어머닌 이런 들꽃 한 송이에 자신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놓고 떠난 아버지를
용서할지도 모른다.
앞산에 해 가 걸리어서야 산을 내려온다.
이제 모두 떠나버리고 몇 가구 안 되는 고향의 저녁 시간은 더욱 썰렁한 기운이다.
앞산 뒷산,
이젠 떠나서 사시던 분들이 돌아와 누운 봉분이 더 많은 내 고향 언덕,
과연 우리도 언제 까지 이렇게 모여서 벌초를 하고 성묘를 할 것인가.
장례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부르짖지만 고인의 유언이 없는 한 막상
내 부모만은 쉽게 화장하고 납골당에 모실 결정을 하긴 어렵다.
아마 그건 살아 생전 효를 다하지 못한 나 같은 불효자는 더욱 그럴 것이다.
장남으로 책임이 큰 오빠는 자기 대에서 부모님을 납골당으로 모시는 문제를 거론하지만
생전에 보지 못했던 아버님을 그런 모습이라도 보고 싶어서일까
멀리서도 비행기를 타고 제사 모시러 오는 동생은 늘 대답이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멀어져 가리라.
장례문화가 바뀌어 가고 그와 함께 이런 벌초 행사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밖에 없으리라.
어떤 시인은 어머님에 대한 마음이 애틋하여 빗과 가위로 잘라드렸다고 하던가,
후리지도 않고 한 줌 한줌 낫으로 베어 깎던 벌초에서 이젠 예초기란 이름의 기계로 대신하고 아예 대행업까지 한 몫 보는 세대가 되어버린 것을……
벌초는 이제 하나의 풍습에 지나지 않는 세대가 될 것이다.
마을 어귀의 친구 아버님 산소에 소주 한잔 올려 드리고 저문 고향을 뒤로 했다.
유년시절 벌거숭이 물장구 치던 냇가에 물 안개가 피어 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