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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일이] - 60년대 평화시장 노동자의 처절한 삶과 목숨을 건 투쟁을,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승화시키다.
13  쭈니 2022.05.03 11:18:02
조회 84 댓글 0 신고

감독 : 홍준표

더빙 : 장동윤, 염혜란, 진선규

1995년 11월, 나는 극장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관람했다. 그 당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칠수와 만수]로 대종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이후 [그들도 우리처럼], [베를린 리포트], [그 섬에 가고 싶다]등 끊임없이 화제작을 연출했던 박광수 감독의 신작이었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통해 데뷔하자마자 연기력을 주목받은 신인 배우 홍경인의 첫 주연작이었다. 이렇듯 내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선택한 이유는 박광수 감독, 홍경인 주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께서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던 그날 평화 시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어머니께서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시며 '맞아. 그때 공장 언니들한테 태일이 오빠가 분신했다고 했었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나와는 상관없는 영화 속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의 희생이 나의 부모님, 그리고 나아가 후손인 나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에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을 하던 평화시장의 어린 여공들은 다른 누구가 아닌 바로 나의 어머니였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함께 어머니가 일하는 공장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도 났다. 여름방학이었는데, 친구와 돈을 모아 오토바이를 사기로 했었다. 하지만 나와 친구의 결심은 채 하루가 되지 않아 꺾였다. 무더운 여름, 선풍기 하나에 의지한 채 뜨거운 증기를 내뿜는 다리미와 숨쉬기조차 버거운 뿌연 먼지, 그리고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만 했던 환경은 혈기왕성한 십 대였던 나와 친구조차도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환경에서 나의 아버지, 어머니는 평생을 일하셨던 것이다. 전태일 열사의 희생으로 환경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 어머니는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셨고, 그렇게 고생을 하셨지만 우리 집은 다섯 식구가 단칸방에서 생활해야 했을 정도로 가난했다.

[태일이]가 개봉했다.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것이다. 굉장히 뜻깊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전태일 열사가 희생되었던 1970년보다 훨씬 나아졌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으니까. 52년 전 전태일 열사의 희생은 주 100시간 근로 가능을 주장하는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이라는 현실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울림을 안겨줄 수 있을까? 나는 진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태일이]를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정작 나는 [태일이]를 극장에서 보지 못했다. 두려웠던 것이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볼 땐, 영화의 내용이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편안하게 관람하고, 맘껏 감동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결코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 아니었음을. 그렇기에 [태일이]를 보게 된다면 젊은 시절 저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죽도록 고생했을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생각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내가 [태일이]를 결국 극장에서 보지 못하고, 영화 개봉 4개월이 지난 후에야 OTT로 보게 된 이유이다.

그런데 막상 [태일이]를 보고 나니 생각만큼 가슴이 아프지는 않았다. [태일이]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답게 당시의 열악했던 환경을 많이 순화시켰다. 마치 한 편의 감동적인 동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물론 평화시장의 열악한 환경도 표현되었고, 근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전태일 열사의 위대한 희생도 그려졌다. 만약 이러한 장면들이 실사 영화였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순화가 되었다고 해도 결코 어린 관객들이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15세 관람가이지만, [태일이]는 전체 관람가인 이유이다.

아마도 [태일이]가 원한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남녀노소 모두가 전태일 열사의 위대한 희생을 감동적으로 볼 수 있는 영화 말이다. 너무 당시의 근로 현실을 그대로 영화에 반영한다면 영화의 메시지를 뚜렷할 테지만 영화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질 것이다. [태일이]는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을 통해 당시의 현실을 순화시킴으로써 모두가 편안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게끔 만들었으며, 영화의 메시지 또한 모두가 쉽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보고 난 후 느꼈던 묵직함 감동과는 다른, 조금은 가볍지만 아련한 감동을 [태일이]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부디 52년 전 전태일 열사의 외침이 지금의 우리들에게 잘 전달되었기를... 그래서 또다시 후퇴하려는 근로기준법을 지켜낼 수 있기를...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묵묵히 참고 견뎌야 했던 그 열악한 근로 환경이 우리의 자식들에게는 이어지지 않기를... [태일이]를 보고 나니 많은 생각들이 나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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