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day

마이 마니아

대중문화 마니아 리스트

영화, 그 일상의 향기속으로...

이 세상 모든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영화를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닌,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
마니아 칼럼(대중문화) 즐겨찾기
[리슨] - 우리의 작은 관심이 모여,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을 바꿀 수가 있다면...
13  쭈니 2021.12.10 14:41:33
조회 87 댓글 0 신고

감독 : 아나 로샤

주연 : 루시아 모니즈, 루벤 가르시아

내 취향의 영화가 전혀 아니다.

나에게 있어서 좋은 영화란 재미있는 영화를 뜻한다. 재미라는 단어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웃기다, 슬프다, 무섭다, 스릴 넘친다 등 다양한 감정이 영화를 통해 재미로 변환되기 때문이다. 젊었을 땐 내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미처 알지 못했기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영화를 봤었다. 그러고 나서 느낀 것이 있다면 나는 사회 문제를 지적하는 현실적 영화에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는 것이 힘들었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 때문에 여유로운 삶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팍팍한 삶에서 영화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영화에서 나는 멋진 액션 히어로가 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신나는 모험을 한다. 비록 두 시간 남짓한 간접 경험이지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그러니 부조리한 사회 문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는 영화에 내가 재미를 느끼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데 [리슨]이 정확하게 바로 그런 영화이다. 이 영화는 영국에서 벌어진 실화를 통해 가난한 이민자 가족이 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사랑하는 자식들을 빼앗기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게 말이 되나? 영국 정부는 아동 복지를 내세워 비록 가난하지만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가족을 강제로 해체해버린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천편일률적인 법의 잣대로 잘라 버리는 만행을 선진국이라는 영국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 아이의 아버지의 입장에서 [리슨]은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두려워지는 영화이다. 이건 재미있는 영화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 사실 메가박스 오리지널 티켓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오리지널 티켓이 발매된 영화들은 내 취향의 부합하는 영화들이라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뜬금없이 메가박스에서 오락 영화가 아닌, 작가주의적 사회성 드라마 영화에 오리지널 티켓 No. 42의 번호를 부여한 것이다. 어쩌지? 꽤 오랜 고민이 이어졌다. 결국 내 선택은 '그래, 까짓것 내 취향의 영화는 아니지만 한번 도전해 보자.'였다. 그렇기에 [리슨]을 보기 위해 극장에 들어갈 땐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다행히 영화의 러닝타임이 1시간 17분으로 짧은 편이라서 조금만 버티자는 생각뿐이었다.

조타와 벨라는 어쩌다가 자식을 빼앗겼는가?

그런데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 나의 두려움은 스르륵 녹아 사라졌다. 철저하게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리슨]의 상황이 내가 두려워했던 것만큼 잔인하지는 않았다. 영화의 시작은 영국 런던에 살고 있는 평범한 포르투갈 출신 이민자 가족의 일상이다. 남편인 조타(루벤 가르시아)는 목공소에서 일용직으로 일을 했지만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한 채 지금은 백수 신세이고, 아내인 벨라(루시아 모니즈)가 청소부 일을 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 나간다. 그들 부부에게는 삼 남매가 있는데 차녀인 루(메이지 슬라이)는 청각장애인으로 그날은 하필 보청기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벨라의 걱정을 산다.

솔직히 기들 가족이 위태로워 보이긴 했다. 첫째 아들은 몸이 펄펄 끓을 정도로 열이 나지만 조타는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다. 아마도 병원비 때문일 것이다. 루의 보청기는 망가졌지만 벨라는 보청기를 새로 살 형편이 되지 않는다. 사회복지국에 신청을 해보라는 권유에 그러면 책만 잡힌다며 망설인다. 특히 벨라가 쓰레기통 옆에 루와 갓 태어난 막내를 방치하고 동네 식료품점에서 식빵과 음료를 훔치는 장면에서는 과연 이러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맞는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던 중 결국 문제가 발생한다. 루의 몸에서 멍 자국이 발견된 것. 루도 멍 자국이 어쩌다가 생긴지 알지 못한다. 벨라는 사회복지국이 아이들을 빼앗아 갈 것이라며 도망을 치려 하지만, 조타는 우리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며 벨라를 안심시킨다.

정말 그렇다. 확실히 조타와 벨라는 세 아이를 키우기엔 경제력이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돈이 없다고 해서 부모의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식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분명 루의 몸에 난 멍 자국은 아동학대라는 의심을 불러올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오해는 사회복지국의 조사를 통해 분명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내 상식은 사회복지국이 조타와 벨라의 집에 들이닥치며 무너진다. 그들은 조타와 벨라의 해명을 들으려 하지 않고 아이들이 위험에 처했다고 판단된다며 무작정 세 아이를 데려가 버린다. 그리고 72시간 동안 부모의 격리시킨다.

국가의 폭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사회복지국이 집에 방문한다는 말에 왜 그토록 벨라가 긴장하며 두려워했는지.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들은 조타와 벨라 부부에게 이전에도 강압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벨라는 그들의 강압적인 태도를 통해 그들이 언제든 자신의 아이들을 빼앗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루의 보청기가 망가졌음에도 사회복지국에 지원 신청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이 빌미가 될지도 모르니까. 사회복지국은 사실 이렇게 형편이 어려운 가정을 돕기 위해 설립된 곳이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형편이 어려운 가정을 위협하는 국가의 폭력으로 변질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사회복지국의 모든 행위는 법에 의해 집행된다. 하지만 법은 완벽하지가 않다. 분명 실제로 아동학대가 벌어지고 있는 가정에서는 사회복지국이 강제로 부모와 자식들을 72시간 동안 격리시키는 것이 효율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모든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 사회복지국은 그동안의 여러 사례를 통해 루가 아동학대를 당하고 있다고 판단했고, 법과 원칙대로 조타와 벨라를 아이들로부터 격리시켰다. 하지만 예외적인 상황이란 언제나 존재한다. 그렇기에 법과 원칙대로 집행을 했더라도 혹시나 예외적인 상황은 아닌지 끊임없이 되짚어야 한다. 결국 법도 완벽하지 않은 우리 인간들이 만든 것이 아니던가.

법과 원칙대로 집행하는 것은 편하다. 문제가 될 소지도 적다. [리슨]의 사회복지국 직원들도 그렇다. 그들이 만약 조타와 벨라의 입장을 들었다면, 그래서 법과 원칙을 벗어난 다른 선택을 했다면 절차가 번거로웠을 것이고, 혹시나 문제가 생긴다면 법과 원칙대로 집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편하고 안전한 방식을 택했고, 그로 인하여 억울하게 조타와 벨라는 가난함 속에서도 애지중지 지켜왔던 세 아이를 빼앗겼다. 국가의 폭력은 이러한 관료주의적 안일함에서 비롯된다.

좋은 부모라는 것이 법으로 지정할 수 있는 것일까?

좋다. 오해 때문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사회복지국은 오해를 풀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다. 세 아이를 보호하며 분명 상담을 진행했을 것이고, 그들이 학대를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충분히 파악했을 것이다. 특히 루의 멍 자국이 폭력에 의한 것이 아닌 지병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조타와 벨라 부부에 대한 사회복지국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실적 때문일까? 분명 그러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비록 아동학대가 없었더라도 조타와 벨라가 아이들을 키우기에 좋은 부모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을 유복한 가정에 입양시키는 것이 조타와 벨라가 키우는 것보다 훨씬 아이들을 위하는 것이라 그들은 판단을 했던 것이다.

물론 이 세상엔 나쁜 부모가 수두룩하다. TV 뉴스를 보면 자신의 자식들에게 못쓸 짓을 하는 짐승만도 못한 부모에 대한 사건, 사고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그런 뉴스를 볼 때마다 불쌍한 아이들을 부모에게 떼어 놔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게 강제적으로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갈라 놓는 조치는 최소한 조타와 벨라에게 해당되어서는 안된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단지 돈뿐이기 때문이다. 돈이 부족하다고 해서 나쁜 부모이고, 돈이 많다고 해서 좋은 부모라는 판단은 결코 옳지가 않다. 하지만 사회복지국은 조타와 벨라를 나쁜 부모로 규정하고 강제 입양 절차를 진행한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두 아이는 곧장 입양이 결정되었지만 장애를 가지고 있는 루는 입양이 되지 않았다. 입양 가정에서도 장애를 가지고 있는 루를 꺼려 했기 때문이다. 좋은 부모라면 과연 자식의 장애 여부를 따지겠는가? 그럴 리가 없다. 조타와 벨라는 루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부에 루를 돌려 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사회복지국이 좋은 부모라고 규정한 입양 가정에서는 장애 때문에 루를 거부한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정말 좋은 부모가 과연 누구인지 쉽게 판가름이 난다.

이 영화가 사회의 부조리를 바꿀 수 있을까?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어디까지가 진짜 영국의 현실인지는 알 수가 없다. 정말 사회복지국의 판단 하나로 부모가 있는 아이들을 다른 가정으로 입양을 보낼 수가 있단 말인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조타와 벨라는 지난한 법정 투쟁 끝에 루만 되찾는다. 다른 두 자식은 이미 입양을 보냈기 때문에 되돌릴 수가 없다고 한다. 그나마 첫째 아들은 자진해서 입양 가정으로부터 도망을 나와 조타, 벨라와 만나지만, 갓 태어난 막내는 결국 되찾지 못하고 이들은 포르투갈로 돌아간다. 이게 정말 현실이라면 우리가 아는 선진국 영국에서 말도 안 되는 일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리슨]을 연출한 아나 로샤 감독이 포르투갈 출신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게다가 이 영화는 2020년 제7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미래의 사자상과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 영화를 통해 아나 로샤 감독이 부조리한 영국의 복지 정책을 세상에 알리고 바꾸고자 했다면 일단 첫 번째 발걸음은 성공적으로 내디딘 셈이다. 이 영화를 통해 과연 영국이 법 개정을 결정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더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함께 분노한다면 언젠가는 아나 로샤 감독의 꿈이 이뤄지지 않을까?

비록 [리슨]을 본 것은 메가박스 오리지널 티켓을 받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나의 즐거움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조금이라도 기여를 했다면 그 또한 기분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메가박스에서는 오리지널 티켓 한 장당 국립서울농학교 전공과에 장학금으로 1,000원이 기부된다고 한다. 나 역시도 나도 모르는 사이 1,000원을 기부한 셈이다. 그런 소액 기부가 모여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나 로샤 감독의 바람대로 영국의 잘못된 아동복지 정책을 바꾸는 데에도 작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가 화제가 되면 될수록 영국 정부도 이 부조리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을 테니까. 1시간 17분이라는 짧은 시간을 투자한 것치고는 마치 내가 꽤 큰일을 한 것 같은 뿌듯함을 느꼈다. 그러한 뿌듯함도 재미의 범주 안에 넣을 수 있다면 [리슨]은 내게 재미있는 영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0 첫번째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페이스북 로그인
꾸미기
행운의 다이아몬드~ 클릭하시면 포인트 5점을 드려요~
마니아 혜택/신청
Copyright ⓒ EZHLD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