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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론] - 우정도 소셜 네트워크에서 이뤄지는 시대, 우리의 우정은 고장난 것이 아닐까?
13  쭈니 2021.10.29 15: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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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사라 스미스, 진-필리프 바인, 옥타비오 E. 로드리게즈

더빙 : 자흐 갈리피아나키스, 잭 딜런 그레이저

요즘 아이들은 뭘 하고 노는 걸까?

어릴 때부터 나는 소위 말하는 인싸가 아니었다. 워낙에 소심한 성격이고, 밖에서 뛰어노는 것보다는 집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고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친구는 많지 않았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어머니께서 야구 글로브와 나무 배트를 사주셨다. 솔직히 나는 야구를 잘 하지 못한다. 하지만 야구 글로브와 나무 배트를 가지고 학교 운동장에 서있기만 해도 동네 아이들이 내게 같이 야구를 하자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들이 필요한 것은 내가 아닌, 동네에서 흔치 않던 야구 글로브와 나무 배트였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야구 실력이 엉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해가 질 때까지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며 뛰어놀 수가 있었다.

그런 내가 어른이 되고, 아빠가 되었다.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쯤 나는 어머니께서 내게 그러하셨듯이 아들에게 야구 글로브와 나무 배트를 사줬다. 하지만 학교 운동장에 가도 아들과 같이 야구를 할 동네 아이들은 없었다. 그저 내가 아들의 친구가 되어 함께 캐치볼을 하고, 단둘이 야구를 할 뿐이었다. 도대체 요즘 아이들은 뭘 하고 노는 걸까? 그러한 궁금증은 초등학생이 된 아들이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보며 해소되었다. 각자의 집(혹은 PC방)에서 게임에 접속해서 함께 게임을 하는 것. 그것이 요즘 아이들이 노는 방법이었다. 더 이상 학교 운동장에서, 동네 공터에서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며 뛰어노는 풍경은 볼 수가 없다. 조금 씁쓸하긴 하지만 세상이 변하듯 친구들과 노는 방식도 그렇게 변하는 것이니 애써 그러한 변화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고장난 론]이 개봉했다. 1991년 극장에서 [인어 공주]를 본 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만큼은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오랜 원칙을 가지고 있던 나는 [고장난 론]의 개봉 당일 극장을 찾았다. 솔직히 큰 기대를 했던 영화는 아니다. 20세기 스튜디오 애니메이션의 제작 지원을 받은 락스미스 애니메이션의 첫 작품이기 때문에 아직 검증이 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소재도 최첨단 AI 로봇 '비봇'과 소심한 소년 바니(잭 딜런 그레이저)의 우정이라고 하는데 뭐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막상 [고장난 론]을 보고 나니 어린 시절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내 모습이 떠오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정이란, 친구란 무엇일까? [고장난 론]은 관객에게 그러한 근본적인 질문을 살며시 던지는 영화이다.

최첨단 소셜 AI 로봇 '비봇'

[고장난 론]은 버블사의 천재 개발자이자 CEO인 마크(저스티스 스미스)가 최첨단 소셜 AI 로봇 '비봇'을 소개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비봇'은 첨단 디지털 기능과 소셜 미디어 연결 기능을 탑재하고 있으며 게임은 물론 셀카,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 공통된 관심사를 통한 친구 찾기 기능 등 요즘의 스마트폰에 AI를 탑재한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보며 정말 '비봇'이라는 것이 출시되면 나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이 출시되었을 때, '핸드폰이 전화만 잘 되면 되지, 뭐 하러 인터넷 기능까지 필요하냐?'라며 시큰둥했지만, 지금은 단 하루도 스마트폰이 없으면 답답함을 느낄 정도이다. 그러니 정말 '비봇'이 출시된다면 지금 우리가 스마트폰에 중독 증상을 보이듯 '비봇'에게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영화의 주인공은 불가리아 이민자 출신의 중학생 바니(잭 딜런 그레이저)이다. 생일을 맞이한 바니가 갖고 싶은 유일한 선물은 바로 '비봇'이다. 다른 학교 친구들은 모두 '비봇'을 가지고 있지만 가난한 바니의 집에서는 바니에게 비싼 '비봇'을 사줄 여력이 없다. 하지만 바니의 생일날 친구들이 아무도 집에 오지 않자 바니의 아버지 그레이엄(에드 헬름스)은 그제서야 바니에게 '비봇'을 사주기로 결심한다. 문제는 멀쩡한 '비봇'을 사줄 형편이 안된다는 것. 하는 수없이 고장이 나서 폐기 처분 직전의 '비봇'을 값싸게 구매하여 바니에게 선물한다.

제목 그대로 바니가 선물 받은 '비봇'은 고장이 났다. 자신을 론(자흐 갈리피아나키스)이라고 소개한 바니의 '비봇'은 네트워크 연결도 안되고, 버블사에서 설정한 모든 안정 장치도 작동이 안 된다. 결국 바니를 괴롭히는 학교 친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 정상적인 '비봇'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썽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처음엔 론을 반품하려 했던 바니는 론이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을 혼쭐 내주자 마음을 바꾼다. 학교에서 괴짜로 소문이 나서 친구가 하나도 없는 바니 입장에서는 자신의 편에 서서 싸워주는 론이야말로 진정한 친구처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불량품 '비봇'이 시중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버블사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론을 회수하여 폐기 처분하려는 버블사와 유일한 친구인 론을 지키려는 바니의 싸움이 시작된다.

우정의 양방향

'비봇'의 궁극적인 목적은 주인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비봇'의 개발자인 마크는 소심한 성격 탓에 학창 시절 친구 사귀기에 애를 먹었고,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비봇'을 만들었다. '비봇'이 주인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는 방식은 간단하다. 먼저 주인의 소셜 미디어 활동 이력을 기본 데이터로 하여 주인의 취미, 관심사 등을 파악하고, 네트워크에 접속하여 주인과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을 찾아 연결해 주는 방식이다. 이렇게 '비봇'에 의해 연결된 사람들은 절친이 되어 같은 취미와 관심사를 공유한다. 익숙하지 않은가? 사실 우리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 '좋아요'를 눌러 주며 우정을 나누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미 [고장난 론]의 가상 도시인 논서치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장난 론'은 다른 '비봇'과는 다른 방식으로 바니의 친구를 찾는다. 네트워크 접속이 안되기 때문에 직접 발로 뛰어다닌다. 바니를 소개한 전단지를 동네에 붙이고,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 '나의 주인인 바니와 친구 하실래요?'라며 묻고 다닌다. 물론 그러한 론의 방식이 제대로 통할 리가 없다. 결국 론에 의해 바니의 학교는 난리가 나고 바니는 학교에서 정학을 당하는 등 난처한 입장이 된다. 론에게 화를 내는 바니. 하지만 론도 참지 않는다. 정상적인 '비봇'이라면 주인의 명령에 불복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론은 고장이 났기 때문에 바니에게 반항하며 항변하고 이별은 선언해 버린다. 그제서야 바니는 깨닫는다. 바니는 론에게 우정을 강요했지만 론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정은 양방향인데, 론이 바니를 위해 서투르지만 노력을 하는 동안 바니는 론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화만 내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부분에서 [고장난 론]의 주제가 나온다. 우정은 양방향이다. 내가 친구를 위해 우정을 발휘하면 친구도 나를 위해 우정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친구이다. 만약 한쪽은 주기만 하고, 다른 한쪽은 받기만 한다면 그것을 진정한 우정이라 할 수 있을까? 바니는 론에게 우정을 강요했지만 결코 론의 친구가 되어주지는 않았다. 뒤늦게 바니가 깨달은 것은 바로 자신의 이기심이었다. 그렇기에 바니는 뒤늦게 론을 지키기 위해 깊은 산속으로 숨어 버렸고, 배터리가 떨어져가는 론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그것이 론을 위한 바니의 우정이다.

소셜 미디어에서의 우정, 과연 괜찮은 것일까?

솔직히 고백하는데 나는 SNS를 하지 않는 구닥다리이다. 블로그에 내가 본 영화의 리뷰를 열심히 쓰고 있지만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기록의 일환일 뿐이다. 먼 훗날 내 블로그를 보며 '맞아, 이런 영화를 봤었지.'라고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다. 물론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가입을 하긴 했다. 한때는 요즘 유행에 발맞추기 위해서 SNS를 열심히 해보려고 시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일상을 불특정 다수와 공유하는 것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고, 얼굴도 본 적이 없고 이름도 알 리가 없는 낯선 누군가에게 친구 요청이 들어오면 왠지 꺼림칙한 기분이 먼저 들어서 결국 SNS에 손을 떼고 말았다.

[고장난 론]에서도 SNS는 중요한 화두이다. '비봇'은 즉흥적으로 셀카를 찍어서 주인의 SNS에 공유하고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도 할 수 있다 보니 '비봇'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SNS에 푹 빠져 있다. 바니가 남몰래 짝사랑을 하고 있는 학교 퀸카 사바나(카일라 캔트럴)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SNS 스타인 사바나는 수백만 명의 온라인 친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일순간의 굴욕으로 인하여 '똥된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고, 그녀의 수백만 명의 온라인 친구는 오히려 그녀를 '똥된걸'이라고 놀리는 수백만 명의 안티가 되어 버린다. SNS에서 관심을 받기 위해 관종이 된 아이, 게임 1등에 집착하는 아이 등, [고장난 론]의 아이들은 SNS에 중독된 요즘 세대를 풍자하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러한 관심이 우정은 아니다. 진정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SNS가 아닌, 직접 만나 얼굴을 보며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뛰어놀기도 하고, 싸워도 봐야 하는 것 아닐까?

바니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발로 뛰는 론. 물론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고장이 나는 바람에 네트워크 연결을 할 수 없는 론의 입장에서는 발로 뛰는 것이 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리고 론의 엉뚱한 행동으로 인하여 벌어진 소동 끝에 SNS에 중독된 아이들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언제부터 SNS에 집착하게 되었는가? 왜 SNS가 아니면 친구도 사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분명 [고장난 론]의 가상 도시 논서치의 상황은 영화를 위해 과장되어 있지만, 내가 할아버지가 되었을 땐 현실에서도 그러한 상황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땐 손자에게 야구 글로브와 나무 배트를 사줘도 쳐다도 안 보겠지? "요즘 누가 이런 걸 가지고 놀아요?"라며. 그런 상상을 하니 왠지 씁쓸하다.

모든 것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버블사의 개발자이자 CEO인 마크는 분명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친구를 사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비봇'을 개발했다. 하지만 마크의 동료이자 투자자인 앤드류(롭 딜레이니)의 생각은 다르다. 앤드류에게 있어서 '비봇'은 그저 돈벌이에 불과하다. 특히 '비봇'을 통해 수집된 사용자들의 개인 정보는 마케팅 정보에 활용되어 더욱 큰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그렇다. 모든 것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사랑도, 우정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이치가 아니었던가.

며칠 전 인터넷을 하다가 사이트의 우측 광고 배너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내가 며칠 전 검색한 사이트와 상품이 배너에서 버젓이 광고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편리하다는 생각보다 섬뜩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누군가 마치 내가 무엇을 검색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감시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마케팅 정보 활용이 요즘은 흔하더라. [고장난 론]에서도 마크를 내쫓은 앤드류는 그동안 애써 감추었던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장면이 낯설지가 않았다. 수많은 개인 정보를 취합한 소셜 네트워크와 포털 사이트는 그렇게 취합한 정보를 통해 계속 이익을 창출하고 있으니, 영화에서 앤드류는 악당이지만, 현실이라면 성공한 IT 사업가라고 할 수도 있겠다.

분명 [고장난 론]은 어린아이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다. 특히 '비봇'의 귀여운 디자인은 나중에 캐릭터 상품으로 나와도 대박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고장난 론]은 그저 어린아이들이 재미있게 보고 즐기는 오락 영화만은 아니다. 이 영화 속에는 소셜 네트워크에 푹 빠져 사는 요즘 세대를 풍자하며 진정한 친구와 우정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든다. 그 속에서 모든 것을 돈으로 결부시키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까지 곁들이니 어린아이들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성인 관객도 진지하게 감상할만한 영화이다. [고장난 론]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락스미스 애니메이션에 대해 아직 검증이 되지 않아 불안하다고 생각했는데, [고장난 론] 덕분에 락스미스 애니메이션의 검증도 모두 마친 셈이다. 이렇게 극장에서 꼭 관람해야 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작품이 한 곳 더 늘어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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