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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노 타임 투 다이] - 제임스 본드의 충격적인 퇴장, 그리고 가장 파격적인 새로운 코드네임 007의 등장
13  쭈니 2021.09.30 15:50:01
조회 244 댓글 0 신고

감독 : 캐리 후쿠나가

주연 : 다니엘 크레이그, 라미 말렉, 레아 세이두

새로운 제임스 본드를 만들어낸 다니엘 크레이그의 퇴장

2002년 개봉한 [007 어나더 데이]를 마지막으로 피어스 브로스넌의 제임스 본드 시대는 막을 내렸다. 1995년 [007 골든 아이]를 시작으로 [007 어나더 데이]까지 7년간 네 편의 007 영화에 출연한 피어스 브로스넌은 숀 코네리, 로저 무어와 함께 바람기가 다분하고, 젠틀한 제임스 본드의 전형을 만들어낸 배우로 평가받았다. 피어스 브로스넌의 시대가 끝이 나며 과연 6대 제임스 본드는 누가 될 것인가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작사의 선택은 다니엘 크레이그였다. 기존의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거친 이미지의 배우였던 다니엘 크레이그가 6개 제임스 본드로 선정되자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다니엘 크레이그는 부정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제임스 본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제임스 본드를 만들어 냈다. 2006년 [007 카지노 로얄]에서부터 시작하여 2021년 개봉한 [007 노 타임 투 다이]까지 15년간 다섯 편의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의 역할을 수행해냈으며, 2012년에 개봉한 [007 스카이폴]은 007영화 역대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다.

솔직히 고백하겠다. 나 역시도 다니엘 크레이그가 [007 카지노 로얄]에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다니엘 크레이그는 제임스 본드가 아닌 카리스마 넘치는 악당 역에 더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007 카지노 로얄]을 보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제임스 본드는 그냥 멋있었다. 하지만 다니엘 크레이그가 만들어낸 제임스 본드는 인간미가 풀풀 풍겨났다. 특히 베스퍼 린드(에바 그린)와의 슬픈 사랑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여운이 길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007 영화가 그냥 재미있었다면 [007 카지노 로얄]은 재미있는데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007 영화를 그렇게 바꾸어 놓았다.

예상했던 대로 베스퍼 린드의 그림자는 제임스 본드를 내내 괴롭혔다. [007 스카이폴]에서는 제임스 본드에겐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였던 M(주디 덴치)이 비장하게 최후를 맞이했고, [007 스펙터]에서는 제임스 본드의 과거가 최악의 적이 되어 제임스 본드를 괴롭혔다. 그리고 이제 [007 노 타임 투 다이]를 통해 혁명과도 같았던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퇴장을 선언했다. 첫 등장부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답게 그의 마지막 퇴장 역시 충분히 논란을 불러일으킬만하다. 왜냐하면 가장 제임스 본드답지 않은 퇴장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후 영화에 대한 스포가 가득할 것임을 경고하는 바이다.)

베스퍼 린드의 그림자는 어떻게 제임스 본드를 괴롭혔나.

007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는 바로 본드걸이다. 다니엘 크레이그 이전의 본드걸은 대부분 예쁜 액세서리 같은 역할을 했었다. 제임스 본드가 임무를 마치고 본드걸과 키스를 하면서 끝나는 007 영화가 꽤 많았을 정도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본드걸은 예쁜 액세서리에 머물지 않고 제임스 본드의 동료로써 만만치 않은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여전히 제임스 본드와 본드걸의 관계는 일회성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007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새로운 본드걸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007 카지노 로얄]의 베스퍼 린드는 달랐다. 영화에서는 기존의 본드걸과 별반 차이가 없는 듯했지만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며 제임스 본드에게 마음의 상처를 안겨줬다 사실 제임스 본드는 은퇴 후 그녀와 결혼까지 생각했을 정도로 깊이 사랑했고, 이후 영화에서도 베스퍼 린드는 제임스 본드가 사랑한 유일한 여자로 언급되곤 했다.

[007 스펙터]에서 새로운 본드걸의 임무를 맡은 마들렌 스완(레아 세이두)이 [007 노 타임 투 다이]에도 등장한다는 사실이 공개되었을 때 화제가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마들렌 스완은 두 편의 영화에서 연속으로 등장한 최초의 본드걸이기 때문이다. 제임스 본드가 사랑한 유일한 여자라는 베스퍼 린드조차 해내지 못한 것을 마들렌 스완이 해냈다. 그래서일까?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오프닝에서부터 마들렌 스완의 과거를 보여주고, 영화의 메인 빌런인 루치페르 샤핀(라미 말렉)이 마들렌 스완의 과거와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마들렌 스완은 제임스 본드와 함께 베스퍼 린드의 무덤이 있는 이탈리아를 방문함으로써 제임스 본드가 베스퍼 린드를 정리할 시간을 주며 새로운 제임스 본드의 여자로 자리 잡을 만반의 준비를 한다.

하지만 마들렌 스완의 배려는 오히려 독이 되고 만다. 베스퍼 린드의 무덤에는 프란츠 오버하우저(크리스토프 왈츠)의 함정이 기다리고 있었고, 겨우 위기에서 벗어난 제임스 본드는 마들렌 스완을 의심하게 된다. 제임스 본드가 마들렌 스완을 기차에 태워 냉정하게 떠나보내는 장면은 이 영화의 명장면. 그렇게 제임스 본드는 또다시 베스퍼 린드의 그림자에 갇혀 마들렌 스완과 이별을 선언한다.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그로부터 5년 후가 영화의 배경이다.

샤핀의 복수, 그리고 그의 이해되지 않는 폭주

마들렌 스완과 헤어진 제임스 본드는 MI6를 은퇴하여 조용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그에게 제임스 본드가 유일하게 친구라 부를 수 있는 CIA 요원 펠릭스 라이터(제프리 라이트)가 찾아온다. 영국에서 비밀리에 '헤라클레스'라는 새로운 무기를 개발했는데 테러 조직 '스펙터'가 연구소를 폭파하고 기술을 빼돌린 것. 그런데 '스펙터'의 수장 프란츠 오버하우저는 MI6의 철저한 감시 속에 감금되어 있는데 어떻게 이 모종의 음모를 벌일 수 있었단 말인가? 비록 은퇴했지만 '스펙터'가 관련되어 있다는 펠릭스 라이터의 말에 제임스 본드는 사건에 뛰어든다. 하지만 이는 제임스 본드를 죽이려 한 프란츠 오버하우저의 함정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MI6가 개발한 '헤라클레스'가 유전자 정보를 통한 나노 로봇이라는 것. 나노 로봇에게 암살 대상자의 유전자 정보를 입력하고 나노 로봇을 공기 중에 방출시키면 다른 사람들은 멀쩡하지만 대상자만 나노 로봇에 감염되어 즉사한다. M(랄프 파인즈)은 이 무기를 추가 피해가 없는 효과적인 무기라고 말하지만, 어떤 유전자 정보를 나노 로봇에게 입력하느냐에 따라서 전 인종을 몰살시킬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무기이기도 하다. 프란츠 오버하우저는 이 무기를 이용해서 제임스 본드에게 복수를 하려 했지만, 오히려 '스펙터' 조직원이 몰살당하는 참사를 겪게 된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일까?

영화 오프닝에서 마들렌 스완의 어머니를 죽인 가면의 남자는 루치페르 샤핀으로 그는 '스펙터'의 조직원인 미스터 화이트(제스퍼 크리스텐슨)에 의해 가족이 몰살당하고 복수를 위해 미스터 화이트의 집을 찾아 그의 아내를 죽였었다. 하지만 미스터 화이트의 어린 딸인 마들렌 스완은 결국 죽이지 못하고 살려 줬었다. '스펙터'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던 그는 제임스 본드에게 복수하려는 프란츠 오버하우저의 계획을 역이용하여 '스펙터' 조직원들을 몰살시키고, 프란츠 오버하우저와 유일하게 면회가 가능한 마들렌 스완을 이용해서 프란츠 오버하우저 암살도 성공시킨다. 그렇다면 이제 그의 복수는 끝이 났다. [007 스카이폴]에서 M에 대한 복수에 집착하던 라울 실바(하비에르 바르뎀)처럼 말이다. 하지만 루치페르 샤핀은 멈추지 않고, 나노 로봇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인류를 위험에 빠뜨리려 한다. 만약 루치페르 샤핀이 프란츠 오버하우저 복수를 끝으로 멈췄다면 어땠을까? 제임스 본드와 대결해야 하는 상황을 모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의 이해되지 않는 폭주는 결국 엄청난 비극을 불러일으킨다. 자신에게도, 그리고 제임스 본드에게도...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만들어 냈지만...

기존의 007 영화는 비록 시리즈이긴 해도 영화 한 편, 한 편이 개별적인 영화였다. 그렇기에 전 편을 보지 않아도 영화의 재미를 느끼는데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하지만 다니엘 크레이그가 주연을 맡은 다섯 편의 007 영화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전 편을 보아야 영화의 재미가 극대화된다.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007 영화 중 첫 번째 영화인 [007 카지노 로얄]에 등장했던 베스퍼 린드의 죽음이 마지막 영화인 [007 노 타임 투 다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다섯 편의 영화 모두에는 '스펙터'라는 프란츠 오버하우저가 이끄는 테러 집단이 중요한 연결고리이다. [007 스펙터]에서 드디어 프란츠 오버하우저가 제임스 본드에 의해 붙잡히지만 [007 노 타임 투 다이]에서도 '스펙터'는 여전히 중요한 연결고리이다. 마치 MCU 영화들이 '인피니티 스톤'을 중요한 연결고리로 거대한 세계관을 만들어 냈듯이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사실 이 세계관의 절정은 [007 스펙터]였다. 제임스 본드가 베일에 싸인 '스펙터'를 파헤치고, '스펙터'의 수장 프란츠 오버하우저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함으로써 사실상 '스펙터'는 끝장이 났다. 그렇기에 '스펙터'에 대한 루치페르 샤핀의 복수는 메인이벤트라기보다는 부수적인 뒷마무리와도 같다. 007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사상 최악의 적', '가장 강력한 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안타깝게도 루치페르 샤핀은 최악의 적도, 강력한 적도 아니다. 프란츠 오버하우저를 죽여 복수를 완성했음에도 불구하고 폭주를 멈추지 못하고, 그냥 말도 안 되는 개똥철학을 내뱉으며 인류 멸망이나 계획하는 얼뜨기 테러리스트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진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2시간 43분으로 007 영화 중에서 가장 긴 러닝타임을 자랑하지만, 그렇게 긴 러닝타임은 오히려 독이 된다. 제임스 본드가 납치된 마들렌 스완을 구하기 위해 일본과 러시아의 분쟁 구역이 위치한 섬에 몰래 들어가면서부터 영화는 질질 늘어나는 느낌이고, 급기야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그 덕분에 제임스 본드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아름다운 죽음을 선택하는 역대급 엔딩이 완성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베스퍼 린드가 제임스 본드를 위해 죽음을 선택한 [007 카지노 로얄]보다 여운이 덜 했다. 꼭 그렇게 제임스 본드를 죽였어야 했나?라는 의문만 강하게 남았다. 제임스 본드가 가장 어울리지 않았던 다니엘 크레이그의 첫 등장만큼이나 마지막 퇴장 역시 제임스 본드와 가장 어울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노미, 007 코드네임을 물려받다.

확실히 제임스 본드가 그런 식으로 퇴장할 줄은 정말 몰랐다. 하긴 제임스 본드와 마들렌 스완 사이에서 딸이 있었을 것이라는 예상도 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이례적이다. 이전의 제임스 본드라면 결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모두 해냈다. 베스퍼 린드와 사랑에 빠졌고, 베스퍼 린드가 죽자 그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마들렌 스완 사이에서 자식까지 낳았으니 말이다. 이 정도면 역대급이다. 문제는 이렇게 역대급인 제임스 본드를 만들어 내기 위해 루치페르 샤핀이라는 억지스러운 빌런을 끼워 맞췄다는 점이다. 두고두고 아쉬울 일이다.

어찌 되었건 제임스 본드는 죽었다. 물론 다음 영화에서 리부트라는 미명 아래 죽었던 제임스 본드를 다른 젊은 배우로 부활시킬지도 모르지만, 아직 그런 뻔뻔스러운 발표는 없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노미(러샤나 린치)가 코드네임 007을 물려받아 새로운 007로 활약하는 것이 확정된 것은 아닐까? 제임스 본드는 죽었지만 코드네임 007은 영구 결번이 되지는 않았기에... 노미는 첫 등장에서부터 은퇴한 제임스 본드에게 자신이 바로 코드네임 007이라고 자랑스럽게 드러내며 '영구결번될 줄 알았어요?'라며 비꼬기도 했었다. 그러고 보니 차기 007이 흑인 배우라는 소문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이드리스 엘바가 언급되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백인 남성이 상징과도 같은 007 제임스 본드를 흑인 남성이 한다는 것에 반감을 표하는 여론이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흑인 여성 배우인 러샤나 린치가 007 코드네임을 물려받으니 더욱 파격을 선택한 셈이다.

이렇게 하나의 시대는 갔다. MCU도 한시대를 풍미했던 슈퍼 히어로들을 퇴장시키고 새로운 슈퍼 히어로로 빈자리를 메꾸고 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상당 부분 유색 인종과 여성들이 맡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흑인 여성 007도 그러한 시대의 흐름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나는 러샤나 린치의 007 영화를 보기 전까지 투덜거릴 생각은 없다. 생각해 보면 다니엘 크레이그가 007 영화에 캐스팅되었을 때도 영화를 보지도 않고 투덜대었지만, 이렇게 지나고 보니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은 최고로 내 기억에 남지 않았던가. 러샤나 린치의 007도 편견을 깨고 새로운 재미를 안겨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아직 제작사에서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지만 [007 노 타임 투 다이]에서 대놓고 노미에게 코드네임 007을 물려준 만큼 이제 와서 바꾸는 것도 뻘쭘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냥 조용히 기대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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