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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 - 영화적 설정과 현실적 리얼리티가 적당히 섞어서 극강의 긴장감을 만들어 냈다.
13  쭈니 2021.08.20 15:34:20
조회 130 댓글 0 신고

감독 : 필감성

주연 : 황정민, 김재범, 이유미, 류경수

올여름 한국 영화 빅 3 관람을 마쳤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긴커녕 오히려 델타 변이까지 발생하며 더욱 위기감을 증폭시키는 요즘, 극장가의 대목인 여름 시즌이 다가왔다. 코로나19를 피해 개봉을 미루고 미루었던 대작 영화들이 하나씩 개봉을 하기 시작했다. MCU [블랙 위도우]를 시작으로 DCEU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그리고 디즈니 블록버스터 영화 [정글 크루즈]와 [프리 가이]까지... 지금까지 극장에서 마땅히 볼 영화가 없었던 나에겐 조금 숨통이 트인 느낌이다. 그중에서 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개봉이 반갑기만 하다. 100억이 넘는 거액의 제작비가 투입이 된 만큼 흥행 여부에 따라 제작사의 존폐가 결정되는 영화들, 올여름에는 [모가디슈], [싱크홀], [인질]이 바로 그러한 영화들이다. 나는 이 어려운 시기에 극장 개봉이라는 결정을 해준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모두 챙겨 보기로 결심했고, [인질]을 마지막으로 목표를 달성했다.

[인질]은 [모가디슈], [싱크홀]에 비해 제작비가 크지 않은 영화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모가디슈]의 경우는 모로코 올로케로 제작되어 순 제작비만 약 240억 원이 들어갔고, [싱크홀]의 경우는 도심 한가운데 발생한 '싱크홀'을 재현하기 위한 특수효과 비용 때문에 약 145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되었다. 그와는 달리 [인질]은 황정민의 원 맨 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로 약 8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되었다고 한다. [모가디슈], [싱크홀]과 비교한다면 [인질]은 한국형 블록버스터보다는 중소형 영화에 가깝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질]의 영화적 재미는 결코 [모가디슈], [싱크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인질]은 2016년에 국내 개봉했던 유덕화 주연의 중국 영화 [세이빙 미스터 우]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세이빙 미스터 우]는 2004년 실제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 납치된 실제 당사자는 [세이빙 미스터 우]에서 형사로 출연한 배우 오약보라고 한다. [인질]에서도 사건이 해결되고 2년 후, 박성웅 주연으로 황정민 납치 사건이 영화화된다는 설정이 있는데 [세이빙 미스터 우]와 오약보의 상황을 빗댄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인질]은 영화적 설정과 현실적 리얼리티를 오가며 극강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영화이다.

황정민, 그는 어쩌다가 납치되었나?

시작은 천만 배우 황정민이 '냉혈한'이라는 제목의 영화에 출연하여 제작 발표회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는 도중에 발생한다. 언제나처럼 편의점에 차를 세워둔 그는 자신의 차 앞에서 얼쩡대는 수상한 남자들을 발견한다. 자신에게 노골적으로 시비를 거는 그들은 황정민은 무시하고 집으로 향하지만 집 앞에서 그만 납치되고 만다. 도대체 누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배우 황정민을 납치하는 어처구니없는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황정민이 납치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언론은 난리가 될 것이고, 언론이 주목하는 사건이기에 경찰은 황정민을 구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달려들 텐데 말이다.

황정민 납치 사건을 저지른 범인은 최기완(김재범)을 리더로 한 5인조 납치범들이다. 이들은 이미 카페 사장과 아르바이트생인 소연(이유미)를 납치하였고, 카페 사장이 2억 원의 몸값을 내지 못하고 8천만 원만 줬다는 이유로 그를 토막 살해하여 가족에게 보낸 극악 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상태이다. 그들은 사제 총과 폭탄을 직접 제조하고, 경찰의 추적 따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함을 보여준다. 처음 황정민은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먼저 납치된 소연을 보고 편의점에서 봤던 뉴스 기사를 생각해낸다. 그리고 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지를 발휘한다.

[인질]은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두 가지 방식을 택한다. 그 첫 번째가 유명 배우의 경우 극중 이름이 아닌 실제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황정민은 자신의 이름과 직업 그대로 배우 황정민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황정민이 실제로 납치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에서 황정민과 친분이 있는 배우 박성웅도 실제 이름을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려 준다. 그러한 선택은 탁월했다. 관객 입장에서는 당연히 영화적으로 연출된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실제 상황인 것처럼 몰입하고 긴장하게 된다. 이런 비슷한 경험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차인표]에서도 느꼈었는데, 앞으로 이런 시도를 하는 영화가 많아지지 않을까?

극악무도한 5인조 납치범들이 진짜 같았던 이유

[인질]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선택한 두 번째 방법은 5인조 납치범들을 관객에게 생소한 신인급 배우들로 채워 놓은 것이다. 특히 납치범 리더인 최기완을 연기한 김재범은 정말 섬뜩했다. 타인에 대한 감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실제 사이코패스를 캐스팅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의 무표정은 스크린을 뚫고 나에게까지 두려움을 안겨줬다. 영화를 보고 나서 김재범의 필모그래피를 봤는데, 2016년 무명의 밴드가 뮤직 페스티벌에 나가기 위한 여정을 담은 [마차 타고 고래고래]와 2018년 이천희, 남규리 주연의 스릴러 [데자뷰]에 출연한 경력이 있었다. 그땐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인질]을 통해 올해의 발견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김재범뿐만이 아니다. 5인조 납치범 중 이인자이며 영화 후반 절대적 일인자인 최기완에게 반기를 두는 염동훈(류경수), 최기완을 무조건적으로 따라는 행동대장 고영록(이규원), 약간 모자란 듯한 용태(정재원)와 납치범 중 유일한 홍일점 샛별(이호정)까지. 그들 모두 익숙하지 않은 배우들이 연기를 했다. 이규원과 정재원의 필모그래피는 [인질]이 유일하고, 류경수는 [항거 : 유관순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단역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이호정이 [청년 경찰],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 [얼굴 없는 보스]에 조연으로 출연, 나름 빵빵한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명 배우인 것은 다른 배우들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들 모두 한결같이 연기를 잘 하더라. 실제로 낯선 곳에서 마주치면 너무 무서워서 온몸이 굳어버릴 것 같다. [인질] 촬영을 위해 오디션을 진행해서 뽑은 배우들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엔 참 노래 잘하는 무명 가수도 많고, 연기 잘하는 무명 배우도 많은 것 같다.

이렇게 납치범들이 진짜 같다 보니 영화의 긴장감은 더욱 쫄깃해진다. 영화 중후반, 샛별이 소연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에서는 얼마나 통쾌하던지, 나도 모르게 '미친 X, 잘 뒈졌다.'라며 중얼거리고 말았다. 영화 후반, 황정민과 최기완이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에서는 마치 내가 싸우는 것처럼 몸이 들썩이더라. 이게 모두 과몰입 현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몰입은 배우들의 완벽한 연기력에서 비롯된 것이며,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는 특효약이 되었다.

의외의 카 체이싱, 확실히 돈값을 해냈다.

원작인 [세이빙 미스터 우]를 보지 않았지만 [인질]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스펙터클한 영화였다. 나는 이 영화가 납치범과 황정민의 머리싸움으로 진행될 것이라 생각했다. 납치범들은 황정민에게 돈을 빼앗아야 한다. 황정민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얻으면 자신과 소연을 죽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시간을 끌어야 하고, 납치범들을 분열시켜 탈출할 기회를 엿보아야 한다. 여기까지는 영화를 보기 전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스토리 전개이다. 황정민이 납치범 5인조 중 약한 고리라고 할 수 있는 용태를 이용해서 탈출하는 장면이 나는 이 영화의 긴장감이 최고조로 치솟는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래봤자 인적이 드문 한적한 산골에서의 추격전이겠지만, 영화가 납치범의 꽉 막힌 아지트에서 벗어난 것만으로 최고의 스펙터클을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인질]은 80억이라는 제작비가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의외로 스릴이 넘치는 카 체이싱 장면을 선보인다. 카페 사장 납치 및 토막 살인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최기완이 주범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를 뒤쫓는다. 때마침 최기완은 황정민의 은행 비밀 카드를 찾기 위해 황정민의 집과 집 근처 편의점에 갔고, 편의점 앞에서 경찰과 마주친다. 이제 최기완이 체포되는 것은 시간문제. 하지만 고영록의 도움으로 최기완은 도망을 치게 되고, 최기완의 차와 경찰차의 추격이 벌어진다.

요즘 우리나라 영화에서 카 체이싱 장면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예전에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서도 볼 수 있었던 카 체이싱 장면이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액션 영화에서도 관객에게 최고의 스릴을 안겨준다. [인질]에서도 그렇다. 좁은 골목과 교차로에서 아슬아슬한 추격전을 벌이는 두 차는 최기완의 차가 미용실 건물을 들이 받은 후에야 끝이 난다. 그리고 터지는 사제 폭탄의 위력. 이 장면을 보고 나니 80억 원이라는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짐작이 갈 정도였다. 주인공인 황정민이 없는 클라이맥스. 그 덕분에 [인질]은 황정민과 납치범, 그리고 경찰의 삼각구도를 만들어내며, 후반이 될수록 단조로울 수 박에 없었던 영화의 전개를 풍성하게 만들어 냈다.

내가 납치되었다가 풀려난 기분. 영화 마지막 장면의 신인 배우조차 섬뜩하더라.

[인질]은 최고의 몰입감을 전해 준다. 하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도 있다. 영화를 보며 황정민과 감정이입을 했더니 영화를 보는 동안 체력 및 감정 소모가 너무 심했다. 영화는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황정민의 극한 상황을 보여주는데, 이 영화의 몰입감은 내가 마치 그러한 극한 상황에 빠진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고, 결국 영화를 보다 보면 기진맥진해버린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94분이다. [모가디슈]가 121분, [싱크홀]이 113분임을 감안한다면 [인질]의 러닝타임은 굉장히 많이 짧은 편이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만약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 2시간을 넘겼다면 영화를 보고 나서 너무 힘이 들었을 듯.

정말로 짜증 날 정도로 끈질긴 최기완과 목숨을 건 사투 끝에 황정민 납치 사건은 마무리된다. 그리고 2년 후, 연기 활동을 잠시 접고 휴식을 취하던 황정민은 자신의 납치 사건을 영화화하는 촬영 현장에 들러 후배 배우인 박성웅과 반갑게 담소를 나눈다. 그런데 그때 최기완과 똑같이 닮은 한 남자가 천천히 황정민 앞으로 걸어온다. 순간 얼굴이 굳어지는 황정민. 그 장면에서 나 역시 바짝 긴장했다. 할리우드 공포, 스릴러 영화에서 다 끝난 줄 알았는데 갑자기 살인마가 되살아나 주인공을 덮치며 관객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영화들이 있지 않은가. [인질]은 이렇게 마지막 장면까지 관객의 긴장감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솔직히 따지고 보면 영화의 내용은 특별하지 않다. 배우 황정민이 납치되었다가 탈출하는 것이 전부이다. 황정민이 [테이큰]의 브라이언 밀스(리암 니슨)처럼 납치범들을 모조리 때려죽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납치범들은 자기네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다가 죽는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서 속이 후련하지도 않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느꼈던 극강의 긴장감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이렇게 뻔하고 단순한 내용으로 극강의 긴장감을 안겨줬다는 것은 그만큼 이 영화의 몰입감이 대단했음을 알려주는 것이며, 이 영화의 몰입감은 현실적 리얼리티에 의한 것이다. 황정민을 비롯한 영화의 모든 출연 배우들이 함께 이뤄낸 성과이다. 휴~ 보는 내내 심자잉 쫄깃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두 번은 보고 싶지는 않다. 납치되는 경험을 또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한 여름인데도 오랜만에 등골이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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