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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들과 격리된 곳에서 벌어지는 살인의 극한 공포... [키퍼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13  쭈니 2021.07.27 14:19:06
조회 108 댓글 0 신고

지난 주말은 정말 무더웠다. 게다가 전날까지 잘 작동되던 에어컨이 갑자기 망가지는 바람에 선풍기 바람에 의지한 채 폭염을 견뎌야 했다. 에어컨 AS를 신청했더니 8월 12일에나 올 수 있다고 하니, 몸도 마음도 극한의 짜증에 휩싸였다. 더울 땐 움직임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래야 땀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기왕이면 섬뜩한 영화를 보면 더 좋다. 무서운 영화를 보면 몸에서 잠시나마 서늘함을 느끼게 되어 더위를 잊게 된다고 한다. 내가 워낙에 겁쟁이인 탓에 아주 무서운 영화를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서늘함을 느낄 수 있는 두 편의 영화를 선택해 보았다. 외딴섬 세 명의 등대지기가 금괴가 든 나무 상자를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담은 [키퍼스]와 산불 현장에서 냉혹한 킬러와 마주하게 된 소방대원의 사투를 그린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키퍼스] - 1900년 12월 아이린모어 섬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을 것 같지는 않지만...

감독 : 크리스토퍼 니홀름

주연 : 피터 뮬란, 제라드 버틀러, 코너 스윈들스

실화에 영감을 받은 영화

[키퍼스]는 1900년 영국 스코틀랜드 북부의 플래넌 제도 아이린모어 섬에서 일어난 의문의 실종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 사건의 내용은 이러하다. 1900년 12월 15일, 아이린모어 섬의 등대가 꺼져 있음을 목격한 섬 근처를 지나가던 배들이 영국 정부에 신고를 했고, 영국 정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기 위해 조사대를 파견하려 했지만 워낙 거센 풍랑 때문에 12월 26일에야 배를 띄워 어이린모어 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섬에는 세 명의 등대지기인 토마스 마셜, 제임스 다켓, 도널드 맥아더가 상주하고 있어야 하는데, 섬 어디에도 그들은 없었다. 결국 조사대는 등대지기들이 절벽에서 바람에 날려갔거나, 크레인이나 장비들을 단단히 고정시키려다 익사한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기에 그 진실은 지금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날 등대지기들에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아무도 들어가거나 나올 수 없는 밀실과도 같은 외딴섬에서 세 명의 등대지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아이린모어 등대지기 실종 사건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영국의 인기 SF 시리즈물인 <닥터 후>의 에피소드로 사용되기도 했고(1977년 9월에 방영된 <닥터 후 클래식 시즌 15>의 '팽 록에서의 끔찍한 일') 1979년에는 영국의 현대 음악가 피터 맥스웰 데이비스에 의해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오페라 <등대>가 발표되었고, 영국의 록그룹 제네시스는 <플래넘섬 등대의 미스터리>라는 곡을 만들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니홀름 감독도 이 대열에 합류했는데, 그는 등대지기의 실종이 금괴에 눈이 먼 인간의 욕심 때문일 것이라 말한다.

난파된 보트에서 발견된 시신과 금괴

비극적인 사건의 시작은 이러하다. 언제나처럼 6주간 등대를 지키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토마스(피터 뮬란), 제임스(제라드 버틀러), 도널드(코너 스윈들스)는 해안가에 난파된 보트와 남자 시신, 그리고 의문의 나무 상자가 발견한다. 도널드가 밧줄을 타고 내려가 의문의 나무 상자를 가져가려 하자 죽은 줄 알았던 남자가 도널드를 공격하고, 어쩔 수 없이 도널드는 남자를 죽인다. 한바탕 소동 끝에 모두가 진정될 때쯤 나무 상자에 들어 잇는 것이 금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침착한 토마스는 정부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제임스와 도널드는 팔자를 순식간에 바꿀 수 있는 금괴를 탐한다. 결국 세 등대지기는 시체를 유기하고 금괴를 나눠갖기로 합의한다. 하지만 시체를 유기하려는 순간 낯선 두 남자가 섬을 방문하여 죽은 남자와 남자가 가지고 있던 나무 상자의 행방을 묻는다.

남의 것을 탐한 대가

등대지기들은 낯선 남자들에게 시체와 나무 상자는 정부에 인계했다는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그들의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직감한 낯선 남자들은 몰래 섬을 침입하여 등대지기들을 공격하고 등대지기들은 가까스로 그들을 살해한다. 내 것이 아닌 금괴를 탐한 대가로 점점 죽인 시체가 쌓여만 가는 상황. 등대지기들은 점점 이성을 잃어 가고, 급기야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 빠진다. 결국 금괴를 차지하기 위해 동료였던 그들은 서로를 죽이기 시작하는데...

등대지기들이 이성을 잃은 이유

[키퍼스]는 아이린모어 등대지기 실종 사건의 원인이 금괴에 대한 욕심 때문일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아내와 두 딸을 먼저 저세상에 보낸 토마스의 죄책감, 등대에서 수은에 중독된 제임스의 정서 불안, 또래 여자들에게 무시를 당한 도널드의 열등감, 여기에 여러 차례의 살인을 통해 무너진 멘탈이 그들의 광기를 자극한다. 하지만 도화선이 부족하다. 세 등대지기의 광기를 차곡차곡 쌓아 올릴 시간이 부족했던 [키퍼스]는 등대지기 중 가장 체격이 좋은 제임스부터 무너뜨리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 제임스가 몰래 염탐하던 어린 남자아이를 죽이고 죄책감을 느끼는 장면과 수은 중독 장면은 그래서 뜬금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가장 덩치가 좋은 제임스가 걷잡을 수 없는 광기에 휩싸이자 영화의 긴장감이 치솟은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기도 하다.

공감대 형성에는 실패했지만...

솔직히 나는 1900년 12월 아이린모어 섬에서 [키퍼스]와 같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다면 등대에 피의 흔적이 발견되었을 것이며, 바다로 내던져진 시체가 파도에 휩쓸려 발견되었을 것이다. [키퍼스]가 흥미로운 영화이긴 하지만 걸작이라 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정말 저랬을지도 모른다는 관객의 공감대를 얻었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키퍼스]는 그러한 공감대 형성에는 실패했다. 그래도 영화 마지막 토마스의 선택은 충분히 섬뜩했다. 시종일관 가장 침착했던 토마스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영화를 보고 한 가지 새삼 깨달은 점.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하지 말아라. 그것이 없어도 지금 나는 충분히 행복하지 않던가.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 산불과 킬러 중 더 무서운 것은 무엇인가?

감독 : 테일러 쉐리던

주연 : 안젤리나 졸리, 핀 리들, 니콜라스 홀트, 에이단 길렌

산불의 공포는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던가.

가끔 TV 뉴스에서 산불 장면이 나오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섬뜩함이 느껴진다. 광활한 산이 불바다가 되어 활활 타오르는 모습 만으로도 저 불을 어떻게 끄나 싶은 막막함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몇 년 전 뉴스에서 봤던 호주 산불의 어마어마한 위력은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불에 그을린 코알라와 검은 재로 뒤덮인 황무지로 변해버린 땅.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바로 그러한 산불의 섬뜩함에 킬러의 위협을 가미시킨 영화이다.

앞에는 산불, 뒤에는 킬러

베테랑 소방대원 한나 페이버(안젤리나 졸리)는 산불 현장에서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결국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그녀는 산속 깊은 곳의 산불 감시탑에 배정된다. 감시탑에서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한 어린 소년인 코너(핀 리들)를 만나게 된다. 코너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는 하지 않은 채 방송국에 가야 한다며 고집을 피운다. 이제 한나의 임무는 코너를 안전하게 방송국에 데려다주는 것, 하지만 방송국으로 가는 길은 산불로 인하여 막혀 버렸고, 코너를 노리는 킬러 잭(에이단 길렌)과 패트릭(니콜라스 홀트) 형제가 한나와 코너를 위협한다.

뭔가 짠한 킬러 형제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잭과 패트릭 형제이다. 대부분 이런 유의 영화에서 주인공을 뒤쫓는 킬러는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냉혈한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잭과 패트릭은 여느 킬러와는 조금 다르다. 물론 그들은 악당이다. 진실을 덮기 위해 목격자들을 망설임 없이 죽이고, 코너를 쫓기 위해 산불도 낸다. 그러나 비용 절감을 위해 두 팀이 파견되지 못한 것에 대해 투덜거리고, 코너를 놓친 후에는 상사에게 불려가서 혼나기도 한다. 급기야 보안관(존 번탈)의 임신한 아내(메디나 생고르)를 죽이는데 주저하다가 화염방사기에 당하기도 하고, 영화 후반에는 코너를 죽이는데 주저하던 패트릭은 한나에게 역습을 당하기도 한다. 분명 나쁜 놈들이긴 한데 살짝 짠하기도 하더라는...

여전한 안젤리나 졸리

악당이 주인공을 죽이려다가 반격의 여지를 주는 바람에 역습을 당하는 영화를 보면 솔직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악당을 죽이는데 왜 악당은 주저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에서는 잭과 패트릭 캐릭터가 애초에 약간은 인간적으로 그려져서 영화 후반부의 주저함이 이해가 되었다. 그와는 달리 안젤리나 졸리는 여전했다. 2001년 [툼 레이더]를 통해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여전사로 우뚝 섰던 그녀는 2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여전사 포스를 풀풀 풍긴다. 그래서 코너가 한나를 만나자 긴장감이 풀리면서 안심이 되었다. 사실 그러한 부분은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해야 하는 스릴러 영화에서 약점이기도 하다.

짠한 킬러와 여전한 포스를 풍기는 여전사의 대결

분명 악당인데 어딘지 모르게 짠한 잭과 패트릭, 그와는 달리 여전히 여전사 포스를 풀풀 풍기는 안젤리나 졸리의 한나의 대결. 어쩌면 그걸로 이미 게임 끝이다. 게다가 남편을 구하겠다며 홀몸도 아닌데 말을 타고 나타난 앨리슨까지 합류하니 잭과 패트릭은 적수가 되지 못한다. 만약 이 영화가 이대로 끝이 난다면 너무 맥빠진 스릴러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에게는 히든카드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산불이다. 총을 든 잭과 패트릭 따위는 위협이라고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사방을 태워 버리는 산불의 위력은 이 영화의 진정한 빌런이다.

영화를 보고 나니 온몸이 후끈거린다.

문제는 내가 이 영화를 본 것이 폭염 속, 에어컨이 망가진 상태에서 선풍기에 의존하면서라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더운데 화면 속 산불이 화면 밖의 나에게까지 생생하게 전해지니 선풍기 바람이 후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다른 이들과 격리된 외딴 산속에서 무시무시한 킬러와 만나는 스릴러 영화를 기대했지만 킬러보다는 후끈거리는 산불이 더욱 무시무시했던 영화이다. 이런 영화를 보면 등골이 오싹해져서 더위를 잊는다고 하던데,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을 보면서는 산불 때문에 오히려 온몸이 후끈거림을 느꼈다. 그것만 제외한다면 나름 볼만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단,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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