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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위도우] - 숭고한 희생을 선택한 나타샤 로마노프를 위한 가슴 찡한 진혼곡
13  쭈니 2021.07.08 17:21:04
조회 405 댓글 0 신고

감독 : 케이트 쇼트랜드

주연 : 스칼렛 요한슨, 플로렌스 퓨, 레이첼 와이즈, 데이빗 하버

2년 만에 극장에서 만나는 MCU

2019년 4월 '블랙 위도우'와 '아이언맨'의 안타까운 희생을 담은 [어벤져스 : 엔드게임]이 개봉되었고, 그 해 7월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으로 MCU 페이즈 3가 마무리했다. 이제 관심은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가 빠진 MCU 페이즈 4에 쏠렸다. 마블은 페이즈 4를 [블랙 위도우]로 시작한다고 알렸다. '어벤져스'의 초창기 유일한 여성 멤버로 맹활약했던 '블랙 위도우'는 결국 죽음 이후에야 자신의 솔로 영화를 관객에게 내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블랙 위도우'의 죽음이 안타까웠던 MCU 팬 입장에서는 두 눈이 번쩍 떠지는 희소식이었다. 하지만 MCU의 최종 빌런은 결코 타노스가 아니었다. 2020년 연초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탓에 [블랙 위도우]의 개봉은 자꾸만 뒤로 미뤄졌고, 결국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이 개봉한지 2년이 흐른 뒤에야 우여곡절 끝에 관객 앞에 설 수 있게 되었다.

[블랙 위도우]의 개봉이 뒤로 미뤄지는 사이 디즈니는 OTT 서비스 디즈니 플러스를 론칭했고, 시리즈물인 <완다비전>, <팔콘과 윈터 솔져>, <로키 : 시즌 1>이 먼저 MCU 팬에게 선보였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디즈니 플러스가 서비스되지 않으니 이들 시리즈물을 만나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그러한 아쉬움도 잠시뿐. 변이 바이러스 출몰로 인하여 다시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시점에서 [블랙 위도우]의 개봉 소식이 전해졌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도 무서웠지만 우리 가족의 MCU에 대한 사랑을 멈추기에는 역부족이다. 기말고사가 끝난 후 연달아 모의고사를 치른 아들은 시험이 끝나자마자 극장으로 향했고, 이에 맞춰 나와 아내는 회사에 오후 반차 휴가를 내고 극장으로 향했다. 이로써 [블랙 위도우]의 개봉 당일 오랜만에 온 가족이 극장 앞에 모인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정말 좋아하는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내가 그렇다. 실망스러운 영화에 대한 리뷰는 술술 잘 써지는데, 정말 재미있게 본 영화의 리뷰는 엉망진창으로 써진다. 아무래도 이번 [블랙 위도우]에 대한 리뷰도 엉망진창으로 써질 것 같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이 글에서 MCU에 대한 나의 사랑이 아주 조금이라도 드러나길 바랄 뿐이다. (스포를 원하지 않는다면 이쯤에서 그만 읽기를...)

'시빌 워'이후 '블랙 위도우'는 어디에 있었나?

[블랙 위도우]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이후 나타샤 로마노프(스칼렛 요한슨)의 행적을 다룬 영화이다. MCU 팬이라면 모두들 잘 알고 있겠지만 나타샤는 처음엔 '슈퍼히어로 등록제'를 골자로 한 소코비아 협정의 찬성파였다. 하지만 공항에서의 전투에서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와 버키 반즈(세바스찬 스탠)가 제모 남작(다니엘 브륄)을 추격하기 위해 퀸젯에 오를 때, 이를 제지하려는 티 찰라(채드윅 보스만)를 막으며 반대파에 합류하고 만다. 그로 인하여 나타샤는 썬더볼트 로스 장군(월리엄 허트)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그녀가 쉽게 잡힐 리는 없다. 로스 장군의 추격을 아주 간단하게 따돌린 나타샤는 릭 메이슨(O. T. 패그벤늘)의 도움으로 노르웨이의 캠핑카에 은신처를 마련한다. 하지만 릭이 부다페스트의 안전가옥에서 나타샤의 짐을 가져온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 속에는 나타샤의 동생이자 구 소련의 비밀 조직인 레드룸의 요원으로 활약하던 옐레나 벨로바(플로렌스 퓨)가 보낸 의문의 붉은 세럼 뭉치가 있었던 것. 이를 빼앗기 위해 레드룸의 암살자 태스크마스터가 나타샤를 공격하고, 상대의 전투 패턴을 복사하는 태스크마스크의 능력 때문에 나타샤는 고전을 하다가 겨우 빠져나간다.

조용히 숨어 지내려 했던 나타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과거와 마주해야 하고, 여전히 건재한 레드룸과 드레이코프 장군(레이 윈스턴)을 찾아 음모를 막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나타샤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레드룸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옛 가족을 찾는 것. 비록 그들은 소련의 스파이로 위장 가족이었고, 나타샤와 옐레나를 레드룸에 넘겼지만, '어벤져스'가 붕괴된 현시점에서 나타샤가 믿을 수 있는 것은 그들뿐이다. 부다페스트의 안전가옥에서 옐레나와 재회하고, 러시아의 교도소에 수감된 알렉세이 쇼스타코프(데이빗 하버)를 구출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돼지를 사육(?)하며 살고 있는 멜리나 보스토코프(레이첼 와이즈)를 찾아간다. 이렇게 다시 모인 그들은 성공적으로 레드룸의 비밀 기지에 침입한다. 하지만 드레이코프 장군의 반격도 만만치가 않다. 특히 그곳에는 나타샤를 오랫동안 괴롭혀온 원죄인 드레이코프의 딸의 망령이 기다리고 있었다.

'블랙 위도우'의 과거가 드디어 공개된다.

[블랙 위도우]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나타샤의 과거이다. 물론 '시빌 워'이후 나타샤의 행방도 궁금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나타샤의 어린 시절과 그녀가 어떻게 '블랙 위도우'가 되었는지의 과정이 더 궁금했다. 그러한 나의 호기심을 [블랙 위도우]는 완벽하게 채워준다. 영화의 시작은 1995년 오하이오주의 평화로운 마을이다. 그곳에는 어린 나타샤와 옐레나가 살고 있다. 그들은 다른 아이들처럼 천진했고, 행복해 보였다. 나타샤와 장난을 치다가 넘어진 옐레나를 달래주는 자상한 어머니 멜리나는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 알렉세이는 듬직해 보인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알렉세이와 옐레나는 서둘러 짐을 싸고, 영문도 모른 채 나타샤와 옐레나는 정든 집을 떠나 쉴드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기다리는 것은 자매의 고난이다. 알렉세이는 쉴드의 추격을 피해 쿠바에 도착하자마자 드레이코프 장군에게 두 딸을 넘긴 것이다.

이후 비장한 음악이 흐르며 나타샤와 옐레나가 레드룸에서 겪었을 고난이 마치 뉴스 화면처럼 스치며 지나간다. 나는 이러한 오프닝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영화는 나타샤가 레드룸에서 고된 훈련을 받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 대신 가족이라 믿었던 이들로부터의 배신과 개인의 인격은 무시하고, 사람을 물건이나 무기 다르듯이 대하는 드레이코프와 레드룸의 실체,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마치 실제 벌어진 사건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뉴스 화면까지... 천진했던 소녀 나타샤가 어떻게 냉혹한 스파이 '블랙 위도우'가 되었는지 영화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관객에게 어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나타샤의 원죄가 드러난다. 레드룸에서 탈출해야 했던 그녀는 레드룸을 붕괴시키기 위해 드레이코프 장군을 제거해야 했고, 드레이코프 장군의 어린 딸 안야를 이용해서 드레이코프 장군이 있는 건물을 폭파 시킨다. 그렇다. 나타샤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아무런 죄가 없는 어린 여자아이를 이용한 것이다. 그러한 그녀의 선택은 드레이코프 장군과 다를 것이 없다. 오랫동안 나타샤는 자신의 선택에 괴로워했고, 그러한 그녀의 원죄는 태스크마스터라는 빌런을 통해 되돌아온다.

나타샤의 원죄, 그리고 가족

태스크마스터의 가면이 벗겨지는 장면은 나에게 굉장히 짜릿했다. [블랙 위도우]가 개봉하기 전부터 릭 메이슨이 태스크마스터라는 둥, 멜리나가 태스크마스터라는 둥, 소문만 무성했다. 하지만 태스크마스터의 진짜 정체는 안야 드레이코프였다. 드레이코프 장군을 제거하기 위해 나타샤가 이용했던 그 어린 소녀는 레드룸의 인간병기가 되어 다시 나타샤 앞에 나타난 것이다. 사실 영화 오프닝에 출연 배우들 이름이 나오는 장면에서 얼핏 내가 좋아하는 배우인 올가 쿠릴렌코의 이름을 발견했던 나는 그녀가 레드룸의 위도우 중 한 명일 것이라 생각해서 위도우를 열심히 관찰했다. 그런데 태스크마스터의 가면을 벗기니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올가 쿠릴렌코가 딱~.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라 짜릿함을 맛본 것이다. 나타샤 덕분에 인간성을 되찾은 태스크마스터. '윈터 솔져'가 그랬듯이 히어로와 빌런을 오가며 앞으로도 계속 MCU에서 활약을 해줬으면 좋겠다.

[블랙 위도우]는 MCU 영화가 대부분 그러했듯이 밝은 분위기이다. 물론 나타샤의 과거 부분은 도저히 밝을 수가 없었지만, 영화는 어두운 나타샤의 과거보다 과거의 악몽을 뚫고 앞으로 전진하는 나타샤의 현재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 역할을 옐레나, 알렉세이, 멜리나가 맡는다. MCU에서 '블랙 위도우'의 빈자리를 메꿀 것이 확실해 보이는 옐레나는 부다페스트에서 나타샤와의 첫 대면에서부터 맞짱을 뜨는 케미를 선보인다. 특히 '블랙 위도우'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포즈를 디스하는 장면은 큰 웃음을 안겨준다. 하긴 나도 옐레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분명 '블랙 위도우'의 그 포즈는 멋있긴 한데 솔직히 오글거리는 것도 맞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웃음을 주는 캐릭터는 소련 최초의 슈퍼 히어로이며, '캡틴 아메리카'와 라이벌이라는 망상에 빠진 레드 가디언, 알렉세이이다. 이제는 볼품없는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었고 두 딸들에게 구박이나 당하는 처지이지만, 그래도 과거의 영광과 비록 가짜이긴 했지만 가족에 대한 애정이 가득 넘치는 캐릭터이다. 2006년에 국내 개봉한 [콘스탄트 가드너] 이후 나의 최애 배우가 된 레이첼 와이즈도 반갑기만 하다. 과거 알렉세이가 어린 나타샤와 옐레나를 드레이코프 장군에게 넘길 때에도 나타샤에게 '미안하다'라고 속삭일 정도로 인간적인 캐릭터였던 멜리나는 미치광이 과학자와 자상한 엄마라는 이중적인 면모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지만 은근히 어울리는 이 이상한 가족은 나타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된다. 가족이란 원래 그런 존재가 아니던가.

나타샤를 향한 작별 인사

나타샤와 그녀의 가족들은 견고해 보이던 레드룸의 공중 기지를 무너뜨리고 드레이코프 장군을 제거한다. 물론 끝이 아니다. 전 세계에 포진되어 있는 위도우를 하나씩 찾아 인간성을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 임무는 옐레나에게 맡겨진다. 그나저나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에서 헬리캐리어가 추락했을 때도 느꼈지만, 공중 기지는 너무 허약하다. 이렇게 작은 충격에도 와르르 무너지니 말이다. 레드룸의 공중 기지가 너무 쉽게 추락하는 것을 제외하고 [블랙 위도우]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특히 영화 마지막에 릭 메이슨이 마련해 준 퀸젯을 타고 감옥에 갇혀 있는 다른 가족을 구하러 간다며 퇴장하는 나타샤의 모습은 짠하기도 하다. MCU는 번번한 초능력 하나 없는 나타샤에게 너무 많은 짐을 어깨 위에 올려놓은 듯하다.

대부분의 MCU 영화가 그렇지만 이번 [블랙 위도우] 역시 쿠키 영상은 굉장히 중요하다. [어벤져스 : 엔드 게임]에서 숭고한 희생을 결정한 나타샤. 시간이 흘러 옐레나가 나타샤의 무덤에 방문한다. 조용히 나타샤를 추모하는 옐레나 앞에 한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의 이름은 발렌티나. 발렌티나는 옐레나에게 나타샤를 죽인 원흉이라며 클린트 바튼(제레미 레너)의 사진을 건넨다. 그를 죽이라 사주하는 것. 이 장면은 디즈니 플러스의 시리즈물 <팔콘과 윈터 솔져>와 연결되는 듯한데, 볼 수가 없으니... (어서 빨리 디즈니 플러스가 국내에 서비스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발렌티나는 원작에서 마담 하이드라가 된 인물이라도 한다. 비록 <에이전트 오브 쉴드 시즌 4>에서 에이다가 마담 하이드라로 나오긴 했지만, 진짜가 나타난 것이다. 앞으로 MCU에서 그녀의 활약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MCU 페이즈 3는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블랙 위도우]가 진정한 마무리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 영화는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가 개봉하기 전에 공개했어야 시간적으로 알맞다. 그런데 왜 시간적으로도 맞지 않게 MCU 페이즈 3가 끝나고 나서야 개봉된 것일까? 어쩌면 '블랙 위도우'를 이대로 보내기 아쉬운 팬들의 마음이 마블이 헤아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타샤를 위한 가슴 찡한 진혼곡을 마련해 놓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관객 입장에서는 나타샤에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며 마음 속으로 나타샤를 다독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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