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day

마이 마니아

대중문화 마니아 리스트

영화, 그 일상의 향기속으로...

이 세상 모든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영화를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닌,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
마니아 칼럼(대중문화) 즐겨찾기
[노매드랜드] - 부동산 불패 신화에 빠져 있는 세상에게 던지는, 21세기 유목민의 묵직한 질문.
13  쭈니 2021.04.21 13:50:26
조회 166 댓글 0 신고

감독 : 클로이 자오

주연 : 프란시스 맥도먼드

연차 휴가에 선택한 단 하나의 영화

지난 1월, 내 생일에 연차 휴가를 낸 이후 3개월 만에 올해 들어서 두 번째 연차 휴가를 냈다. 이유는 결혼기념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웃긴 건 정작 아내는 연차 휴가를 내지 못하는 바람에 아내가 퇴근할 때까지 결혼기념일을 혼자 보내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럴 거면 도대체 왜 연차 휴가를 낸 것인지... 암튼 기왕 연차 휴가를 낸 만큼 오늘 하루를 즐기자고 다짐했지만 막상 할 것이 없었다. 출근할 때보다 일찍 일어나 소파에서 빈둥거리며 TV를 보다가, 이렇게 연차 휴가를 보내면 안 된다는 위기감을 느끼며 극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볼만한 영화는 [노매드랜드] 단 한 편뿐. 예전에는 연차 휴가를 내면 영화 세, 네 편 정도 보며 하루 종일 극장에서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러고 싶어도 볼 영화가 없다. 그나마 [노매드랜드]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노매드랜드]는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제77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으며, 현지 시간으로 지난 2월 28일에 개최한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작품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를 바탕으로 오는 4월 25일에 개최되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고 수상이 유력한 영화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가 내게 영화적 재미를 안겨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영화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호기심이 가는 것은 당연했다. 특히 작년 [기생충]의 깜짝 수상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어서 [기생충]의 바통을 이을 영화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개인적으로는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가 바통을 이었으면 좋겠지만...)

[노매드랜드]는 2017년에 출간된 제시카 브루더의 논픽션 <노매드랜드 :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이다. 국내에서도 영화 개봉에 맞춰 <노마드랜드>라는 제목으로 지난 3월 26일 출판되었다. 책의 내용은 64세 노년의 린다 메이의 고달픈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평생 쉼 없이 일을 했지만 집 한 채 가질 수 없었던 그녀는 연노란색 트레일러를 집 삼아, 일을 찾아 미국 전역을 떠돈다. 영화 [노매드랜드]는 린다 메이가 아닌 펀(프란시스 맥도먼드)을 새롭게 내세운다.

그녀는 어쩌다가 노매드가 되었는가?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노매드는 미국에서는 이제 흔하게 볼 수 있는 새로운 사회층이라고 한다. 노매드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사연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주거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살고 있던 집을 빼앗기거나 포기해야만 했던, 한때 안정을 추구하며 살아왔던 은퇴 연령대의 중산층이라고 한다. 그들에게 은퇴 이후 일을 쉬는 삶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일을 찾아 미 전역을 떠돌아 다녀야 하는데 고용주들에게 노매드는 필요한 만큼만 일을 시키고, 최대한 낮은 임금을 주며,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는 노동자일 뿐이다. 대표적인 곳이 영화에도 나왔던 아마존 물류 창고이다. 아마존은 연말 성수기 폭증하는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노매드 노동자를 모집하는 '캠퍼포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펀은 석고보드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을 했었다. 하지만 석고보드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자 공장은 폐업을 하게 되었고, 공장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마을은 한순간에 유령 도시가 되어 버린다. 펀은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을 투자하여 낡은 트레일러를 산다. 그리고 트레일러를 집 삼아 생활하며 일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노매드가 된다. 아마존 물류 창고, 국유림의 캠프장 관리, 식당의 웨이트리스 등 돈을 벌 수 있다면 그녀는 어디로든 달려갔다. 물론 그렇게 해서 그녀가 손에 쥐는 돈은 최저임금 수준이고, 그 돈으로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빠듯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이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은 채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간다.

물론 펀에게도 가족은 있다. 그녀의 언니는 펀에게 자신의 집에 함께 살자고 제안을 하기도 한다. 같은 노매드였지만 이제는 아들의 집에 정착한 데이브(데이빗 스트라탄)는 펀에게 청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펀은 알고 있다. 그곳은 자신의 자리가 아님을. 그렇기에 푹신한 침대가 아닌 딱딱한 트레일러가 더 편하다. 그렇게 그녀는 남에게 기대는 삶이 아닌, 스스로가 결정한 삶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는다.

자발적 노매드

어쩔 수 없이 노매드가 된 원작의 린다와는 달리 펀은 자발적 노매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가 길 위의 삶을 청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언제든지 그럴 수 있었다. 영화 초반 마트에서 우연히 마주친 지인, 그녀의 언니, 그리고 데이브까지 그녀에게 편히 쉴 수 있는 방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지만 그녀는 모두 거절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노매드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

영화 후반, 노매드 공동체의 리더인 밥 웰스에게 펀은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그녀의 방황은 남편의 죽음에서 비롯되었다. 고아였던 펀의 남편은 석고보드 공장에서 평생을 일했지만 결국 병에 걸리 죽고 만다. 두 사람 사이에선 자식이 없다. 남편이 평생 일한 석고보드 공장은 폐업을 했고, 남편과 함께 했던 집은 버려졌다. 펀은 나조차도 남편을 잊으면 남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 될 것 같아 괴롭다는 심정을 토로한다. 그 순간 나도 펀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인간의 삶은 짧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세상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의 유전자 일부를 갖고 태어난 자식과 평생 일하며 일군 유산을 남긴다. 펀과 그녀의 남편 사이엔 자식이 없다. 그래도 정말 열심히 일을 했다. 하지만 어느 한순간 그들이 이루었던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나만이라도 남편을 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 그리고 나도 언젠가 그렇게 잊힐 것이라는 두려움. 그것이 펀을 지배하고 있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녀는 만약 남편이 살아있었다면 당연히 그렇게 했을,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차라리 노매드가 되는 삶을 선택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남편과 함께 마련했던 살림살이들을 처분함으로써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난다. 집이라는 굴레 없이 자유롭게 떠돌아나디는 노매드의 삶을 통해 그녀는 진정으로 자유로워진 것이다.

노매드의 고단함보다 자유가 느껴지는 이유

참 이상했다. 처음 [노매드랜드]를 보려고 마음먹었을 때 나는 이 영화가 노매드라는 사회에 소외된 새로운 유목민들의 고단한 삶을 통해 노매드 노동자라는 미국의 사회적 문제를 지적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영화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 갔다. 노매드가 된 펀. 그녀의 삶은 물론 고단하다. 아마존에서 매일 반복적인 일을 하고, 깡통에 들어있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트레일러에서 추위에 떨어야 하며, 대소변을 직접 처리해야 하는 등, 펀의 삶은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안락함과 중산층의 안정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노매드랜드]가 관객에게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그러한 고단함이 아니었다.

펀은 많은 사람들과 만난다. 선배 노매드로써 펀에게 조언을 하는 린다(책의 주인공인 그 린다 메이가 맞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지만 삶의 마지막 순간을 병원에서 허비하지 않고, 좋은 추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알래스카로 여행을 떠나는 스웽키, 그리고 이제 보잘것없이 늙어버린 그녀를 사랑해 주는 데이브와 노매드 공동체의 리더 밥 등. 만약 한곳에서 안주했다면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을 통해 펀은 새로운 삶의 지혜를 깨닫는다.

영화 후반 펀이 전라의 상태로 대자연 속에서 수영을 하는 장면이 잠시 나온다. 12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에서 여성의 성기가 그대로 노출되다니 살짝 놀라긴 했지만, 그 장면은 야하다는 생각보다는 자유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그녀. 물론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고 트레일러를 고치기 위해 언니에게 손도 벌려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유롭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펀의 삶을 통해 점점 치솟고 있는 주거 비용을 감당하며 대출 이자를 갚기 위해 끙끙대는 사람들보다, 집을 내려놓고 살아가는 노매드의 삶이 오히려 더 자유롭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그리고 당신은 그녀처럼 용기를 낼 수 있나?

만약 내가 회사에서 잘리거나 회사가 갑자기 부도를 당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10여 년이 흐르면 나 역시도 정년퇴직을 해야 할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 들어서 부쩍 아내와 은퇴 후의 삶에 대한 대화를 많이 하게 된다. 나도 아내도 학교 졸업 후 열심히 일을 했지만 정작 모아놓은 돈은 거의 없다. 오히려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면 돈을 모으기 보다는 빚이 늘어날 것이다. 노후를 위해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그리고 개인연금에 가입되어 있지만 그 돈으로는 그냥 먹고 살기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만약 아내나 내가 병에 걸려 큰돈이 들어가게 된다면 마땅한 대안이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작은 20평대 아파트가 있다는 것뿐. 은행 빚을 내서 30평대 아파트에 이사 가고 싶었지만 어쩌다 보니 이 나이가 되도록 20평대 아파트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만약 내가 펀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을 팔고 노매드의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아니, 난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가 미국과는 달리 땅덩어리가 작아서 트레일러를 주차해놓고 거주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거니와, 만약 트레일러 주차 문제가 해결된다고 할지라도 평생 동안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노년이 되어 갑자기 바꾸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펀의 선택이 더욱 대단해 보였다.

대한민국의 부동산 불패 신화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빚을 내서라도 집을 장만하려 한다. 그렇게 장만한 집의 은행 이자는 아깝지 않은데 종합부동산세를 내는 것은 아깝다고 아우성이다. 나는 세금을 내도 좋으니 공시가 9억 원짜리 집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좋겠건만.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공시가는 서울임에도 불구하고 1억 5천만 원이 조금 넘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노매드랜드]를 추천하고 싶다. 욕심에 눈이 먼 부동산의 노예가 된 그들에게 펀의 삶은 어떻게 비칠까? 진정으로 궁금하다. 

 

 

 

1
페이스북 로그인
꾸미기
행운의 다이아몬드~ 클릭하시면 포인트 5점을 드려요~
마니아 혜택/신청
Copyright ⓒ EZHLD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