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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더] - 품격이 느껴지는 알츠하이머에 의한 혼돈의 세계
13  쭈니 2021.04.12 14:04:01
조회 134 댓글 0 신고

감독 : 플로리안 젤러

주연 : 안소니 홉킨스, 올리비아 콜맨

토요일 아침,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주 5일 근무하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주말을 손꼽이 기다린다. 나 역시 그러하다. 물론 주말이라고 해서 특별히 할 일은 없다. 아들이 어렸을 적에는 주말마다 놀러 갈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고3인 아들은 주말에도 공부하기에 여념이 없다. 괜히 눈치 없이 아들에게 '놀자'라고 말을 꺼냈다가는 집에서 쫓겨날 분위기이니 최소한 올해만큼 아들은 신성불가침의 존재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친구들과 만나 회포를 풀 수도, 아내와 오붓한 데이트를 즐길 수도 없다. 결국 나의 주말은 집에서 뒹굴며 푹 쉬는 것이 계획의 전부이다. 지난 주말도 당연히 그럴 계획이었다.

문제는 예기치 않게 토요일 아침 9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는 점이다. 마음 같아서는 오전 내내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평소보다 고작 2시간 더 잤을 뿐이다. 더 자려고 뒤척였지만 옆에서 코까지 골며 자고 있는 아내의 숙면을 방해할 뿐이었다. 결국 거실로 나왔지만 아내의 잠을 깨울까 봐 TV를 켤 수도 없었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집 근처 메가박스에서 10시 5분에 [더 파더]가 상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화 시작 시간도 적당하고, 영화를 본 후 집에 돌아오면 아내도 잠자리에서 일어나 있을 테니, 여러모로 [더 파더]를 보러 혼자 극장에 가는 것은 당시로서는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렇게 나는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토요일 아침 극장 나들이에 나섰다.

어쩌다 보니 지난주에만 두 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 하지만 개봉 당일에 봤던 [모탈 컴뱃]의 경우 극장 안의 관객은 나를 포함하여 네 명에 불과했고, 토요일 아침에 본 [더 파더] 역시 극장 안의 관객은 나를 포함하여 네 명뿐이었다. 코로나19 일일 확진자가 다시 600명대를 왔다 갔다 하고 있다고 하더니 극장 활성화는 아직 멀었나 보다. 뭐 덕분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안전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모두가 마스크를 벗고 북적이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함께 마음껏 웃고 우는 풍경이 미치도록 그립다.

윤여정의 대항마, 올리비아 콜맨의 연기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솔직히 [더 파더]는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는 아니다. 최근 [고질라 VS. 콩], [모탈 컴뱃]을 보며 느낀 것은 극장에서 영화 보기를 최소화해야 한다면 스케일이 큰 SF, 판타지를 위주로 극장에서 보고, 잔잔한 드라마는 나중에 OTT로 집에서 봐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잔잔한 드라마라고 해서 무조건 집에서 본 것은 아니다. [미나리], [자산어보]처럼 화제가 된 영화의 경우는 OTT에서 서비스가 되기까지 기다리는 것이 힘들다. 그럴 땐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짜내서 극장에서 빨리 봐야 정신건강에 좋다. [더 파더]도 그런 경우이다.

[더 파더]는 런던에서 노년의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는 안소니(안소니 홉킨스)와 그의 딸 앤(올리비아 콜맨)의 이야기이다. 앤은 런던을 떠나 파리에서 새 출발을 하기로 하지만, 런던에 홀로 남게 되는 안소니 때문에 고민이 많다. 안소니가 알츠하이머(치매)에 걸린 것. 앤은 안소니를 위해 간병인을 두지만, 안소니의 괴팍한 성격 탓에 간병인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만둔다. 결국 안소니를 자신의 집으로 모시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앤의 남편은 안소니를 요양원에 보내야 한다고 다그치지만 앤은 차마 그럴 수가 없다. 안소니 또한 자신에게도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끼지만,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영화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더 파더]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의 그를 돌봐야 하는 딸의 갈등을 그린 영화이다. 이 영화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등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는데, 특히 [미나리]의 윤여정과 여우조연상을 두고 대결을 펼칠 올리비아 콜맨의 연기가 주목을 받고 있다. 올리비아 콜맨은 2019년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에서 히스테릭한 영국의 앤 여왕을 연기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연기파 배우이다. 내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더 파더]를 굳이 극장에서 본 이유는 한국인 최초 아카데미 연기상 수상이 유력한 윤여정의 대항마의 연기를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기 전에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리비아 콜맨보다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가 이 영화의 백미

하지만 막상 영화가 시작되고 나니 내 모든 시선은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에 빼앗겼다. 물론 올리비아 콜맨의 연기도 좋았지만 [더 파더]는 누가 뭐래도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를 위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지난 제78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의 채드윅 보스만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채드윅 보스만의 수상이 유력하지만,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도 결코 채드윅 보스만의 연기에 밀리지 않는다고 장담한다. 개인적으로 [양들의 침묵]에서의 안소니 홉킨스보다 [더 파더]의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가 더 대단하게 느껴지더라는...

[더 파더]는 처음부터 안소니의 입장에서 진행된다. 은퇴 후 자신의 집에서 조용히 노년을 삶을 보내려 했던 그는, 앤의 소개로 자신의 집에 침입(?)한 간병인이 영 못마땅하다. 집에 낯선 사람이 있는 것이 싫은 안소니는 간병인이 자신의 시계를 훔쳤다며 앤에게 항변을 해보지만 앤의 입장은 변하지 않는다. 안소니는 투덜거린다. 앤은 언제나 걱정이 많은 아이였다고, 막내딸 루시였다면 그러지 않을 텐데.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분명 앤이 돌아가고 집에 혼자 있었는데, 낯선 남자가 자신이 앤의 남편이라며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고, 남자의 전화를 받고 급하게 집에 온 앤 또한 낯선 모습이다. 안소니는 혼란스럽지만 냉정을 되찾으려 노력한다.

영화 자체가 안소니의 입장에서 진행되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안소니가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사전 지식을 알고 영화를 보더라도 안소니가 느꼈을 혼란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래서 앤은 파리로 떠난다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조차 안소니의 착각일까? 새로운 루시를 닮은 간병인은 어떻게 되었고, 안소니에게 다 늙어서 딸을 괴롭힌다는 막말을 퍼붓는 앤의 남편은 진짜일까? 환각일까? 도대체 뭐가 뭔지 혼란스러운 스토리 전개 속에서도 꿋꿋하게 중심을 잡는 것은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력 뿐이다. 처음엔 멀쩡해 보였다가 점점 심각해지는 안소니의 상태를 이 명배우는 너무나도 완벽하게 연기해 낸다.

[폰조]와 비교해 보라.

알츠하이머에 걸린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를 본 것은 올해만 해도 [더 파더]가 벌써 두 번째이다. 2020년 10월에 개봉했던 조쉬 트랭크 감독의 [폰조]는 역사상 가장 악랄한 마피아였던 알폰소 카포네의 알츠하이머에 걸린 비참한 말년을 그린 영화이다. 사실 [폰조]와 [더 파더]는 비슷한 부분이 많다. 알츠하이머 걸린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이고, 주연 배우의 명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이면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주인공의 입장에서 영화가 진행되다 보니 영화가 현실과 환각을 오가며 굉장히 혼란스럽다는 것까지 비슷하다.

하지만 [폰조]와 [더 파더]를 세밀하게 비교해보면 영화의 품격이 다르게 느껴진다. 역사상 가장 악랄한 마피아 알폰소 카포네라는 자극적인 주인공을 내세운 [폰조]는 영화도 자극적으로 끌고 가려고 노력한다. 특히 영화 후반부 알폰소 카포네(톰 하디)가 자신의 동료들을 향해 황금 기관총을 난사하는 장면은 [폰조]의 자극적인 혼돈의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마 이러한 장면을 위해 굳이 알츠하이머에 걸린 알폰소 카포네를 소재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와는 달리 [더 파더]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중산층의 평범한 노인 안소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폰조]처럼 자극적인 장면은 없다. 하지만 안소니의 병세가 서서히 악화되는 과정을 안소니가 느끼는 혼란으로 표현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알츠하이머 환자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같은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품격이 다르다. [더 파더]는 알츠하이머를 자극적인 영화적 재미로 이용하지 않고, 오히려 관객과의 공감대 형성에 노력한다. 영화 초반 안소니가 조금은 괴짜이긴 해도 멀쩡하다고 느끼던 관객은 안소니가 점점 혼란을 느끼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며 함께 혼란에 빠져든다. 그리고 이 모든 혼란이 정리되는 요양소에서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된다. 알츠하이머에 대한 완벽한 영화적 해석. 이것이 [폰조]에는 없었던 [더 파더]의 품격이다.

어쩌면 내 이야기일 수도 있다.

상태가 점점 심각해지는 안소니를 결국 요양원에 보낼 수밖에 없었던 앤. 그리고 그러한 앤의 결정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여야만 했던 안소니. 이 장면에서는 내 두 뺨에 굵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마 극장 안에 관객이 많았다면 눈물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텅 빈 극장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것 하나는 좋더라.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잘못된 사회의 통념 때문에 눈물이 많은 나는 그동안 영화를 보며 눈물을 참느라고 고생을 했었는데, [더 파더]를 보면서는 맘껏 눈물을 흘릴 수가 있었다.

[더 파더]는 어쩌면 내 이야기일 수도 있다. 내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부모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괴로워하는 앤이 될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몇 십 년 후 내가 안소니처럼 알츠하이머에 걸려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을 괴롭힐 수도 있다. 현재까지는 알츠하이머 치료가 불가능하다. 나이가 들어서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 기능의 악화로 진행되는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는 아마도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질병일 것이다. 내 주변 사람을 괴롭히면서도 나 스스로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더 파더]를 보며 알츠하이머를 간접 체험하고 나니 더욱 그 병이 두려워졌다. 이렇듯 [더 파더]는 특별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어찌 보면 그냥 잔잔한 드라마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소니 홉킨스의 명품 연기와 더불어 알츠하이머를 간접 체험하고 나니 그 어떤 영화보다도 오싹한 느낌을 받으며 극장 밖을 나서야 했다. 부디 내 가족은, 그리고 나는 알츠하이머에 걸리지 않기를... 아니, 의학의 발달로 알츠하이머의 완벽한 치료제가 어서 빨리 개발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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