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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장사] 2편. 내 이름을 걸고 장사를 하는 방법
9  enterskorea 2021.04.07 13:26:48
조회 28 댓글 0 신고


내 이름을 걸고 장사를 하는 방법


 

1997, IMF 사태가 발생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경제 시스템이 붕괴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국민은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19964, 나는 46개월 동안 근무했던 나폴레옹 제과점을 그만두고, 숙모님이 송파에 있는 올림픽 상가에서 경영하시던 프랜차이즈 제과점을 이어받았다. 이름을 곽지원 과자공방이라고 바꾸고 처음으로 내 이름을 걸고 제과점을 시작했다.

 

그동안의 경험과 실력을 바탕으로 나름 자신 있게 시작했지만, 이미 자리가 잡힌 이름 있는 제과점에서의 공장장 생활과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신규 제과점은 생각 이상으로 차이가 컸다. 더군다나 IMF의 험난한 경제 위기 속에서 시작한 제과점 경영은 매일매일이 전쟁이었다. 그동안 쌓은 경력을 실전무대에서 혹독하게 테스트하게 된 것이다.



 

경기는 점점 더 안 좋아졌다. 모두가 어려운 상태에서 장사가 잘될수록 재료비가 상승하고 직원도 더 필요해져 인건비가 상승했지만 IMF 때라 상품 가격을 많이 올릴 수 없어서 잘 팔릴수록 이익이 안 남는 묘한 경험을 했다. 이런 경험을 통하여 장사를 하면서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는 인건비와 재료비와 매상의 비례 관계를 잘 구성하지 못하면 장사 잘하고 손해 보는, 겉만 화려하고 내실이 없는 장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쨌든 이익은 박해도 대부분의 산업 기반이 무너져 가는 비상시국에 망하지 않고 장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새삼 먹는장사를 택한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이번 코로나 사태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원체 코로나의 전염력이 강하다 보니 사람들은 서울 시내에서 활동하기보다는 툭 터진 서울 근교로 자주 나오게 되고, 나온 김에 건강한 빵을 사간다는 식의 패턴으로 기존 매상보다도 더 잘 팔리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 환난의 시대에 새벽 3시부터 새벽 1시까지 몸으로 때워 가면서 하는 장사의 한계를 어떻게 하면 극복해 나갈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시대의 흐름은 엄청난 변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 변화의 흐름 앞에서 이끌고 가지는 못할망정 남들보다 한 발은 앞서 나가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보다 조금은 앞서가고 있는 선진국의 경우를 면밀히 검토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에서 서울 근교로 나가서 장사를 해도 괜찮을 거라고 믿었다. 첫째는 앞으로 자동차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테니 좋은 제품을 만들고 있으면 외곽으로 나가도 반드시 고객들이 찾아올 거라는 생각이었고, 둘째는 SNS와 매스컴의 발전으로 어디에서 장사를 해도 손님들에게 알려질 거라는 판단이었다. 빵집이 어디에 있건 장소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고 장사할 수 있는 시대가 오리라고 확신했다. 전 세계 어떤 민족을 돌아봐도 음식을 먹으면서 이 음식은 머리에 좋고 저 음식은 간에 좋다고 따지면서 먹는 민족은 우리나라 사람밖에 없다. 그러니 건강한 빵을 만들고 있으면 반드시 우리 빵을 찾아올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양수리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하고 본격적으로 집을 찾기 시작했다.



 

양수리로 이사 와 차근차근 계획했던 대로 꿈을 이뤄나가기 시작했다. 산양과 토종닭, 오리를 키워서 젖과 유정란을 얻고 모든 채소를 밭에서 직접 재배했다. 우리 밀로 빵을 만드는 것을 추구했기에 밀을 재배해서 그 밀로 빵을 구워도 보고 이스트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키운 천연효모종으로 빵을 만드는 실험을 계속했다. 앞으로 살아남는 빵집은 혼자 만들고 혼자 판매하는 형태의 건강한 빵집밖에 없으리라는 확신으로 양수리에 들어왔기에 어떤 식으로 빵집을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양수리 골목길에 곽지원 빵공방이란 이름을 걸고 빵집을 열었다. 생각과 계획은 멋있었지만 현실은 전혀 정반대였다. 지나다니는 행인들도 없고 설마 이런 곳에 빵집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이 안 되는 곳에 빵집을 하고 있으니 매상이 오를 리가 없었다. 물론 내가 세운 원대한 계획은 외지에서 오신 분들이 청정지역 두물머리를 구경하고 돌아가는 길에 들르는 건강빵집, 직장생활을 하다 은퇴하고 양수리 주변에 살고 있는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우리 빵을 알아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런 빵집은 알려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아내가 벌어오는 돈과 일주일에 한 번 대학에 출강해서 번 강의료로 그럭저럭 생활이 됐지만, 가게에서 만든 빵이 손님이 한 명도 없이 몽땅 재고로 남을 때의 허무함과 절망감은 정말로 참기 어려웠다. 언젠가는 잘될 거라고 계획을 세웠고 이럴 거라는 걸 알고 시작했지만 그 기약 없는 언젠가가 과연 언제인가가 나를 힘들게 하였다. 다행히 내 건물이라 집세가 안 나가서 버텼지 만일 매월 집세를 냈었다면 더 많은 고민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약 3개월 만에 역전이 됐다. 내가 예측한 대로 건강빵을 만들고 있는 우리 가게가 TV에 방송된 것이다. 꾸준하게 SNS를 통해서 건강빵을 홍보한 것이 방송관계자들의 눈에 띈 것이다. 산양에서 젖을 짜고 직접 키운 닭에서 난 신선한 달걀과 오리알, 밭에서 딴 토마토 등으로 만드는 우리 빵이 매스컴의 주목을 받은 것이다. 한번 매스컴을 타게 되자 타 방송국에서도 관심을 두게 되어 자연스럽게 가게가 알려지면서 손님이 많이 찾아오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머릿속으로만 구상하고 있었던 혼자 하는 빵집의 얼개그림이 하나씩 구체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직접 혼자 하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보완해 가면서 하다 보니 혼자 하는 빵집의 그림이 빨리 자리를 잡아 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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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인의 장사] 1편. 새로운 장사의 길,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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