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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 -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 방향이라면 언젠가 세상은 바뀌기 마련이다.
13  쭈니 2021.04.06 17:32:19
조회 36 댓글 0 신고

감독 : 이준익

주연 : 설경구, 변요한, 이정은

그런데 정약전은 누구지?

솔직히 고백하겠다. 나는 [자산어보]가 다산 정약용에 대한 영화인 줄 알았다. 정약용이 유배 생활을 하면서 실학을 집성했다는 다산초당에 가본 적도 있었고, 학창 시절 국사 시험에 정약용의 저서인 '경세유표', '목민심서' 등이 출제된 기억도 있다. 워낙 많은 책을 썼으니 '자산어보' 또한 당연히 정약용의 저서일 것이라 생각했고, [자산어보]는 정약용의 전기 영화일 것이라 지레 짐작을 했던 것이다. 비단 나만 그런 착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혼자 영화를 보고 아내에게 "'자산어보'를 쓴 사람이 누군지 알아?"라고 물었더니 당당하게 "다산 정약용이잖아."라고 대답했다. 내가 "아냐,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이야."라고 했더니 "그래?"라고 놀라더라. 그만큼 정약용은 익숙하지만 정약전은 낯선 이름이다.

정약전은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의 둘째 부인 해남 윤씨의 3남 1녀 중 장남이라고 한다. [자산어보]에서 영화 초반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3형제가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는데(신유박해), 끝내 참수를 당하는 약종(최원영)이 둘째이고, 맏이인 약전(설경구)과 막내 약용(류승룡)은 각각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약전은 흑산도에서 직접 해양 생물을 관찰하고 정리한 '자산어보'를 저술하는데, '자산어보'는 흑산도 인근 각종 수산 동식물에 대한 명칭, 분포, 형태, 습성 등을 상세하게 기록한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학 전문 서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정약전일까? 앞서 언급한 대로 유명세로만 따진다면 정약용이 더 낫다. 전기 영화의 경우 대상자의 유명세가 영화의 흥행을 좌우한다. 물론 대상자의 파란만장한 인생도 전기 영화의 중요한 흥행 요소이다. 단순하게 비교하자면 유명세와 파란만장한 인생만 놓고 본다면 분명 정약전이 아닌 정약용을 영화화하는 것이 흥행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정약용이 아닌 정약전을 선택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이준익 감독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정약전이어야 했나.

영화에서 약전은 어떻게든 버티라는 정조(정진영)의 오래전 충고를 받아들여 자신과 막냇동생 약용의 목숨을 보전한다. 사실, 자신을 체포하기 위해 긴급 출동한 관군 앞에 스스로 나타나 '나를 데려가라.'라며 외치고, 참수를 당하는 과정에서도 땅을 보고 죽느니 하늘을 보고 죽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자신의 신념 앞에 당당했던 약종의 삶이 3형제 중 가장 드라마틱 하다. 그와는 달리 약전은 '천주교라면 치가 떨린다'라고 스스로 배교자임을 선언하며 목숨을 구걸하는 듯한 비굴한 모습을 보인다.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이다. 약용은 유배 생활 중에서도 다산초당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며 수백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중에서 '목민심서'는 정치의 실상을 민생문제와 결부시켜 소상하게 밝히는 책으로 무려 48권 16책으로 이루어져 있는 정약용 사상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그와는 달리 약전은 유배 생활 중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흑산도 근해의 수산동식물 155종을 자세하게 기록한 '자산어보'를 비롯하여 단 두 권의 책을 집필했을 뿐이다. 약전의 유일한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창대(변요한)조차 이따위 것을 써서 뭐 하냐고 타박을 줬을 정도이다.

자신의 믿음 앞에 그 어떤 고난에도 결코 꺾이지 않았던 약종, 유배 생활 중에서도 조선 최고의 실학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약용도 물론 충분히 멋지고, 훌륭하다. 하지만 살기 위해 스스로 배교자가 되었고, 자신의 사상을 감추기 위해 수산 동식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약전의 인생 또한 충분히 감동적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서민적인 그의 선택은 그렇기에 영화가 끝나고 나면 공감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살기 위해, 버티기 위해, 우리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아마도 이준익 감독이 정약종도, 정약용도 아닌 굳이 정약전을 선택한 이유는 200여 년 전 살았던 조선시대 고귀한 선비에게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바로 우리 서민들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정약전이 꿈꾸었던 나라

그저 호기심으로 흑산도의 수산생물에 관심을 가진 줄 알았던 약전은 창대에게 딱 한 번 자신의 진심을 드러낸다. 그가 꿈꾸던 세상은 양반과 상놈의 차별 없이 모두가 평등하며, 굳이 왕이 필요없는 나라였던 것이다. 유교사상이 투철한 조선에서 그러한 생각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물론 그의 가족 모두가 능지처참을 당할 것이다. 약전은 서양의 학문을 봤다는 이유만으로 이 먼 곳으로 유배를 보내는 세상에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약전은 약용처럼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흑산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허송세월을 보낼 수도 없었다. 비록 하찮은 것이지만 백성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수산생물에 관한 책을 편찬하며 자신의 생각을 속으로 감추고, 그러면서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서 백성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러한 약전의 선택은 한편으로는 서글프다. 200여 년 전 약전이 꿈꾸었던 세상은 겉으로 드러내면 안 되는 대역 죄와도 같지만 현재에는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세상은 빠르지 않지만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내가 정약전이라면 어땠을까?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지만, 몸은 흑산도에 갇혔고, 생각은 결코 드러내면 안 되는 세상을 꿈꾼 탓에 감추어야 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세상을 원망하며 하루하루 불행한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렇기에 나는 영화 속 약전과 가거댁(이정은)의 사랑에 안도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약전과 가거댁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상대였지만 몸은 갇히고, 생각은 감출 수밖에 없었던 약전에게 흑산도 수산생물에 대한 관심과 가거댁의 사랑이 유이한 안식이었을 것이다. [자산어보]는 이렇게 약전의 처지에 대한 갑갑함을 흑산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흑산도 사람들의 풋풋한 사랑과 정으로 채워 놓는다. 그 덕분에 약전의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밝은 분위기로 영화가 진행될 수 있었다. 이 역시 이준익 감독의 탁월한 선택이라 할만하다.

창대가 겪는 사회의 부조리

약전의 제자인 창대는 영화적 재미를 위한 창작된 캐릭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창대 역시 엄연한 실존 인물이다. '자산어보'의 서문에는 '나는 섬사람들을 널리 만나보았다. 그 목적은 어보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사람마다 그 말이 다르므로 어느 말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섬 안에 장덕순, 즉 창대라는 사람이 있었다. (중략) 성격이 조용하고 정밀하여, 대체로 초목과 어조 가운데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을 모두 세밀하게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여 그 성직을 이해하고 있었다. (중략) 이 분을 맞아 함께 묵으면서 물고기의 연구를 계속했다.'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약전 스스로 흑산도 주민인 창대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창대가 약전의 제자였는지, 출세를 위해 흑산도를 떠나 관직에 올랐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창대라는 캐릭터를 통해 이준익 감독은 생각을 감추어야 했던 약전의 심정을 절실하게 그려낸다. 장진사(김의성)의 서자로 태어난 창대는 스스로 글을 깨칠 정도로 총명하고, 출세를 해서 사람답게 살겠다는 야망도 가지고 있다. 그는 약용의 '목민심서'에서 배운 것처럼만 하면 세상이 더 바르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의 이상은 현실과 달랐다. 관료의 부정부패는 극에 달했고, 그 속에서 백성은 핍박을 받고 있었다. 배운 대로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 믿었던 창대는 결국 생긴 대로 살기로 결심한다.

창대가 겪은 세상의 부조리는 이미 약전이 겪은 것이다. 그렇기에 약전도 잘 알고 있었다. 이상적인 생각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그가 꿈꾸었던 세상처럼 모든 것을 뒤집어 버리지 않는 한 바뀌는 것은 없다는 것을. 이준익 감독은 창대를 통해 관객에게 부조리한 세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말한다. 내가 왜 이상주의자인 정약용이 아닌, 개혁주의자인 정약전을 영화화했는지... 개혁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 개혁을 방해하는 세력 또한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약전이 그렸던 세상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약전이 그랬던 것처럼 생각을 감추고, 몸을 숨길 필요가 없다. [자산어보]는 여전히 진행되어야 할 개혁에 대한 영화이기도 한 셈이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동

약전은 결국 1816년 유배에서 풀려나지 못한 채 눈을 감는다. 유배에서 풀려날 것 같다는 약용의 전갈을 받고 약용에게 나를 만나기 위해 험한 바다를 건너게 할 수 없다며 뭍에서 가까운 우이도로 거처를 옮긴 후였다. 하지만 약전이 그토록 바랐던 약용과의 만남은 결코 이뤄지지 않았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밝은 편이었다. 가거댁을 연기한 이정은과 별장을 연기한 조우진의 맛깔스러운 연기 덕분에 간간이 웃음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세상 살이 모든 것을 잊고 흑산도에서 수산생물을 연구하는 약전의 모습이 행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는 순간에는 먹먹한 감동이 밀려 들어왔다. 세상 밖으로 창대를 떠나보내는 약전. 그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창대가 겪어야 할 일들을. 결국 창대는 부조리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무기력 속에서 상처를 받거나, 혹은 부조리한 세상에 물들어버릴 것이다. 약전이 '자산어보'를 쓸 수 있도록 도와준 제자이자 친구였던 그를 세상 밖으로 보내는 약전의 표정은 설경구의 완벽한 연기로 재현된다. 창대는 떠나고, 유배는 풀리지 않고, 기대했던 약용과의 만남도 좌절된 상황에서 약전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약전은 자신의 꿈꾸던 세상을 속으로 감춘 채 영원히 눈을 감는다.

조금 미안했다. 만약 하늘에서 정약전이 지금 우리나라를 보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양반과 상놈은 없는데 여전히 차별은 존재하고, 모두가 자유로워 보이지만 돈과 권력 앞에 결코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을 보며 약전은 혀를 끌끌 차지 않을까? 하지만 약전이 원했던 세상이 결국 이렇게 찾아왔듯이 우리가 원하는 세상도 언젠가는 우리 앞에 펼쳐지지 않을까?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 방향이 옳다면 언젠가 세상은 그렇게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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