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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 현실의 벽에 부딪힌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해서...
13  쭈니 2021.02.25 11:53:51
조회 331 댓글 0 신고

감독 : 김종관

주연 : 한지민, 남주혁

내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는 일본 영화.

일본 영화를 그다지 많이 보지도 않았고,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을 몇몇 영화를 꼽으라면 나는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오디션]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선택하고 싶다. [오디션]의 경우는 가장 무서웠던 영화이다. 물론 이 영화에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귀신은 안 나오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아사미(시이나 에리히)가 시게하루(이시바시 료)의 다리를 자르는 소리(끼릭 끼릭)는 [미져리]에서 애니(케시 베이츠)가 폴(제임스 칸)의 발목을 망치로 내리치며 '아이 러브 유'라고 외치는 장면 이후로 가장 섬뜩했다.

[아무도 모른다]는 가장 충격적인 영화였다. 어린아이들만 남겨 놓은 채 어디론가 떠나버린 엄마, 그런 엄마를 기다리며 열두 살 장남 아키라(야기라 유야)는 동생들을 챙기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 간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결국 야키라도 서서히 지쳐가며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만다. 일본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토대로 한 이 영화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과 천진했기에 벌일 수 있었던 잔인한 선택에 한참 동안 나를 충격 속에 빠뜨렸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가장 슬펐던 영화이다. 장애인 소녀 '조제'(이케와키 치즈루)와 평범한 청년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의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조제'와 덤덤한 표정으로 이별을 고한 후 길을 걷다가 오열하는 츠네오의 모습을 통해 내 눈에 한줄기 굵은 눈물을 끝내 흐르게끔 만들었다. 아내는 가장 슬픈 일본 영화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대놓고 슬픈 사랑 이야기보다, 현실에 벽이 부딪혀 좌절되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사랑이 더욱 가슴에 와닿았고, 그렇기에 더욱 슬펐다. 그런데 바로 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가 된 것이다.  

 

 

김종관 감독은 '조제'를 어떻게 바뀌었을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한국판 리메이크인 [조제]는 [최악의 하루]와 [더 테이블]을 연출한 김종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이 두 영화를 봤다면 알겠지만 김종관 감독이 연출한 영화의 특징은 무덤덤이다. [최악의 하루]의 경우 배우 지망생 은희(한예리)가 하루 동안 만난 세 명의 남자인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 남자친구 현오(권율), 잠깐 사귀었던 남자 운철(이희준)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영화는 굉장히 현실적이면서도 꽤 낙천적이기도 하다. 은희가 맞이한 '최악의 하루'는 결국 그녀의 인생의 전환점이 될 테니까.

[더 테이블]은 하나의 카페, 하나의 테이블에서 하루 동안 머물다 간 네 인연에 관한 영화이다. 스타 배우가 된 유진(정유미)와 전 남자친구 창석(정준원), 하룻밤 사랑 후 다시 만난 결진(정은채)과 민호(전성우), 결혼 사기로 만난 가짜 모녀 은희(한예리)와 숙자(김혜옥), 결혼이라는 선택 앞에 흔들리는 혜경(임수정)과 운철(연우진)이 영화의 주인공(?)인 카페의 테이블을 스쳐 지나간 인연들이다. 뭐 특별한 이야기는 없다. 그저 무덤덤하게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뿐이다.

김종관 감독의 [조제]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김종관 감독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그러했듯이 장애인 소녀 '조제'(한지민)와 평범한 대학생 영석(남주혁)의 사랑을 무덤덤하게 그려낸다. '조제'를 돌보던 할머니 다복(허진)의 죽음도, 대학 졸업반인 영석이 취업이라는 현실에 벽에 막혀 허우적대는 이야기도, 김종관 감독은 결코 관객의 감정을 증폭시키려 하지 않는다. 그저 무덤덤하게 주위를 맴돌며 지켜볼 뿐이다. 몇몇 에피소드와 설정은 바뀌었지만 큰 틀에서 '조제'와 영석의 사랑은 그대로이다. 그것이 [조제]의 가장 큰 정점이기도 하다. 

 

 

한지민, 남주혁의 연기는 손가락 척

[조제]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한지민의 연기이다. 사실 '조제'라는 캐릭터는 연기하기에 굉장히 까다롭다. 멜로 영화의 여주인공이기 때문에 매력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조제'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너무 매력적이어서도 안된다. '조제'가 현실적인 캐릭터가 되기 위해서는 가난한 장애인이라는 설정을 캐릭터의 모습에 반영을 시키면서도 영석이(그리고 관객이) 사랑을 느낄 만큼 적당히 매력적이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한지민은 '조제'를 완벽하게 구축해 낸다.

어릴 적 부모에게 버림을 받아 고아원에서 자란 선천적 장애인 '조제'. 학대를 일삼는 고아원 원장의 밥에 바퀴벌레 약을 타는 등 대담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일로 인하여 오랫동안 세상과 단절된 채 숨어 살아야 했던 마음 약한 소녀. 장애인이라는 현실을 잊기 위해 공상의 세계에 빠져 살며, 자신이 만든 공상으로 거짓말을 일삼는 소녀. 그러한 조제를 한지민은 웅얼거리는 대사를 통해 효과적으로 만들어 낸다. 영석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하며 당당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웅얼거리는 그녀의 모습은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주저하는 자존감이 결여된 모습이기도 하다. '조제'가 처음으로 세상을 향해, 그리고 영석을 향해 고함을 친 것은 영석에게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장면인데, 이 장면을 기점으로 '조제'의 캐릭터는 조금씩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영석의 캐릭터는 '조제'와는 다른 이유로 어렵긴 마찬가지이다. 그는 평범해야 한다. 너무 매력적이면 현실감이 없고, 너무 매력이 없으면 멜로 영화의 주인공의 부적합하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영석에게 감정이입을 하기에 딱 알맞을 정도로 평범해야 한다. 남주혁은 바로 그러한 평범한 재학생 영석의 연기를 잘 해낸다. 이렇게 너무 매력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매력이 없는 것도 아닌 두 캐릭터 '조제'와 영석을 통해 [조제]는 그 둘의 사랑을 현실적으로 만들어 낸다. 

 

 

하지만 원작을 뛰어넘기엔 역부족

분명 [조제]는 인상적인 영화였다. 하지만 이 영화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비교를 한다면 나는 결코 [조제]의 손을 들어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조제'와 영석을 제외한 다른 캐릭터들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영석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영화 중반엔 영석의 취업을 방해하기까지 하는 혜선(박예진)은 도대체 왜 영화에 필요한지 모르겠다. 취업이라는 현실의 벽을 직접 맞닥뜨려야 하는 영석의 처지를 설명하기 위한 캐릭터인 듯한데, 영화 후반부에 오히려 영석의 취업을 도와주며 그 의미가 퇴색해버렸다. 아마도 혜선에 대해서는 편집본이 있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영석의 대학 후배인 수경(이소희)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츠네오의 여자친구인 카나에(우에노 주리)를 한국판으로 옮긴 듯한데 그 역할이 축소가 되어 아쉬웠다. 츠네오의 여자친구인 카나에의 존재는 '조제'가 츠네오에게 다가가는데 주저할 수밖에 없는 크나큰 벽이었을 텐데, [조제]에서 수경은 그렇게 큰 벽이 되지 못한다. 영화 후반부 '조제'와 영석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것도 아쉽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츠네오는 '조제'를 부모에게 소개해 주는데 주저한다. 그것은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은 그 둘만의 문제가 아닌 그들을 둘러싼 주변의 문제라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조제' 역시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츠네오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제]에서는 그러한 장면들이 생략되고 뜬금없이 5년 후로 건너 뜀으로써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가장 결정적으로 마지막 영석의 오열 장면에서 그의 감정선을 건드리지 못했다. 나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무덤덤하게 보다가 마지막 츠네오의 오열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따라 울었었다. 내가 츠네오였다고 하더라도 장애인인 '조제'와의 사랑은 이룰 수 없었을 것이며, 고작 현실의 벽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는 나약한 내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조제'에 대한 안타까움에 같이 울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제]에서는 영석의 오열 장면에서 별다른 감정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저 혼자의 힘으로 씩씩하게 살아가는 '조제'의 모습이 흐뭇했고, 수경과 결혼을 결심한 영석의 모습에 덤덤했을 뿐이다. 어쩌면 그것이 김종관 감독의 의도일지도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처럼 내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을 영화는 아쉽지만 아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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