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day

마이 마니아

대중문화 마니아 리스트

영화, 그 일상의 향기속으로...

이 세상 모든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영화를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닌,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
마니아 칼럼(대중문화) 즐겨찾기
모두가 아는 고전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하다... [웬디], [오필리아]
13  쭈니 2021.11.19 15:28:58
조회 85 댓글 0 신고

고전이 위대한 이유는 시대를 불문하고 작품의 깊이를 느낄 수가 있으며, 수많은 2차 창작을 통해 시대에 맞게 다르게 해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1904년 영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제임스 베리가 발표한 연극 <피터 팬 : 자라지 않는 아이>는 1911년 <피터와 웬디>라는 제목으로 소설화되었으며, 1957년 디즈니가 애니메이션 영화로 발표하는 등 10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고전이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으로도 유명한 <햄릿>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1601년에 쓴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1990년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영화 [햄릿] 등 수없이 영화화된 고전 중에서도 고전이다. 이번에 본 영화 [웬디]와 [오필리아]는 각각 <피터팬>과 <햄릿>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한 영화이다.


[웬디] - 미래에 대한 꿈의 권리를 박탈당한 빈민가의 아이들의 네버랜드

감독 : 벤 제틀린

주연 : 데빈 프랑스, 아슈아 막, 게이지 나퀸, 개빈 나퀸

기찻길 옆, 작은 식당이 세상의 전부인 소녀 '웬디'(데빈 프랑스)은 어느 날 기차 위의 신비로운 소년 피터(아슈아 막)을 발견하게 되고, 쌍둥이 형제 더글라스(게이자 나퀸), 제임스(개빈 나퀸)와 함께 기차에 올라타 피터와 친구들이 살고 있는 신비한 섬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은 자신의 의지로 어른이 되지 않고 영원히 어린이로 살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피터를 믿지 않고 의심을 하게 되면 어른이 되어 버리는데, 버려진 배에서 실종된 더글라스 때문에 슬픔에 빠진 제임스는 어른이 되어 버리고, 섬의 어른들을 선동하여 피터의 친구들을 납치한다. 이제 '웬디'는 피터와 함께 제임스에게 붙잡힌 친구들을 구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른이 되지 않는 아이들이 사는 섬... 매력적이지 않은가? <피터팬>이 오랫동안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늙고 싶지 않다는, 다시 어린이로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들의 바람을 완벽하게 꿰뚫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웬디]도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영화 초반, 식당을 운영하는 노년의 부인이 커서 해적이 되고 싶다는 손자에게 커서 이 식당을 물려받게 될 것이라며, '네 손엔 대걸레와 빗자루가 들려 있을 거다. 원해서 그렇게 되는 사람은 없어. 뛰어봐야 벼룩이지. 구스 할아버지라고 화장실 청소부가 꿈이었겠니?'라고 꿈을 짓밟아 버린다. 결국 그 소년은 '대걸레와 빗자루 따위 들지 않겠어.'라며 집을 나가버린다.

'웬디'와 더글라스, 제임스도 사정이 다르지는 않다. 그들이 어른이 성장한다면 '웬디'는 엄마가 그러했듯이 식당 웨이트리스를 하게 될 것이며, 더글라스는 웨이터를, 제임스는 계산대를 맡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어쩌면 '그래도 밥은 굶지 않잖아?'라며 스스로를 위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 것이다. 무한한 내일의 가능성을 믿으며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닐까? 이렇듯 [웬디]는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꿈을 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것일까?라는 질문과 함께 시작한다.

'웬디'와 더글라스, 제임스가 도착한 신비의 섬은 커서 웨이트리스가 되고, 웨이터와 계산대를 맡아야 하며, 대걸레와 빗자루를 손에 쥐어야 한다는 두려움을 느끼 필요가 없는 곳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영원히 어린이일 뿐이다. 그저 맘껏 뛰어놀아도 되는 어린이. 벤 제틀린 감독이 재해석한 <피터팬>은 이렇듯 꿈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빈민촌의 아이들에 대한 우화이다.

감독인 벤 제틀린의 이름을 기억하자. 그는 2012년 [비스트]라는 영화로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국내에서는 2013년에 개봉한 [비스트]는 세계의 끝자락, 남쪽에 위치한 욕조라는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기묘한 판타지 영화이다. 욕조 섬은 남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점점 바닷속에 잠기는 위험한 곳이지만,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영화의 주인공은 허쉬파파라는 어린 소녀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병에 걸려 나날이 쇠약해지고, 빙하가 녹으면서 빙하 속에 갇혔던 거대한 맹수 오록스가 깨어났으며, 육지의 사람들은 욕조 섬의 사람들을 강제로 퇴고 조치하며 육지의 수용소에 가둔다. 그러한 상황에서 허쉬파파는 욕조 섬으로 돌아와 삶을 이어 나간다. [비스트]는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제65회 칸영화제 황금 카메라상, 제28회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웬디]는 벤 제틀린 감독이 [비스트] 이후 무려 9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솔직히 이야기하겠다. [비스트]를 볼 때도 그랬지만 [웬디]도 조금은 난해한 영화이다. 물론 영화가 가지고 있는 주제는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다. [비스트]는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재난을 맞이한 난민에 대한 우화이다. 지구 온난화를 저지른 것은 선진국이지만, 재난을 맞이한 것은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던 욕조 섬의 주민이라는 점에서 벤 제틀린 감독의 비난 섞인 시선이 느껴지는 영화이다. [웬디]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이 영화는 '피터팬' 탄생 110년을 기념하여 '웬디'의 시선으로 작품을 재해석하는 영화라는 설명이 뒤따르지만, 동화적인 내용을 기대한다면 나처럼 당혹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웬디]는 어른이 되지 않는 '피터팬'을 통해 미래에 대한 꿈을 잃고 살아야 하는 빈민촌 아이들의 우울한 성장기를 다르고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장면들이 나열되어 있다.

피터를 떠나 집으로 돌아온 '웬디'는 어른이 된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기찻길 옆 식당에서 어린 딸을 키우며 일을 한다. 반전은 없다. 가난은 아무리 '웬디'라 할지라도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굴레이니까. 그리고 여전히 '웬디'의 딸은 피터를 따라 기차에 올라탈 것이고, 피터와 함께 모험을 할 것이며,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웬디'가 그랬던 것처럼 가난을 물려받을 것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봤던 신나는 '피터팬'의 모험과는 달리 벤 제플린 감독이 '웬디'의 시선으로 그려낸 '피터팬'은 빈민가 아이들이 잠시 동안 만끽하는 현실도피이다. 이렇게 우울한 '피터팬' 이야기라니... 참 벤 제플린 감독답다.


[오필리아] - 순수했던 과거의 '오필리아'가 아닌, 현대적인 '오필리아'의 이야기

감독 : 클레어 맥카시

주연 : 데이지 리들리, 조지 맥케이, 나오미 왓츠, 클라이브 오웬

현명함과 자유로움을 지닌 '오필리아'(데이지 리들리)는 거트루드(나오미 왓츠) 왕비의 총애를 받아 왕실의 시녀가 된다. 그러한 '오필리아'에게 첫눈에 반한 햄릿(조지 맥케이) 왕자.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신분의 차이 때문에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편 선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왕국은 혼란에 빠진다. 이 틈을 타서 왕의 동생인 클로디어스(클라이브 오웬)는 형수인 거트루드와 결혼하여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오필리아'는 선왕의 죽음이 클로디어스의 음모임을 눈치채고 그러한 사실을 햄릿에게 알린다. 복수를 다짐하는 햄릿. 하지만 햄릿의 복수는 모두를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참 매력적이다. 고전적이고, 우아하며, 극단적이기까지 하다. 그러한 면모는 <햄릿>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춘기 시절 해피엔딩보다는 비극적인 결말을 가진 소설, 영화에 열광을 했던 나에게 있어서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꿀단지였다. 그렇기에 아직도 나는 1990년 영화 [햄릿]을 봤을 때의 전율을 잊지 못한다. 올리비아 핫세 주연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유명한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햄릿]에서는 멜 깁슨, 글렌 클로즈, 앨런 베이츠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출연했다. 특히 헬레나 본햄 카터가 연기한 '오필리아'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사랑하는 연인 햄릿(멜 깁슨)이 아버지인 폴리니어스(이안 홈)를 죽이자 그에 대한 충격으로 실성하여 연못에 빠져 죽은 비련의 여인.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햄릿]에서 '오필리아'는 복수에 눈이 먼 햄릿에 의한 처절한 희생양이었다.

클레어 맥카시 감독은 그 누구도 아닌 '오필리아'를 재해석해냈다. 누구보다 총명했고, 누구보다 당당했던 그녀는 선왕을 독살한 클로디어스의 음모를 가장 먼저 눈치채고 햄릿에게 진실을 밝힌다. (원작에서는 선왕의 유령이 햄릿에게 나타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아들에게 알린다.) '오필리아'의 총명함을 경계하던 클로디어스에 의해 목숨이 위협을 받자 스스로 실성한 것처럼 연기하여 위기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죽음을 거짓으로 포장하는 대범함도 보여준다. 만약 햄릿이 '오필리아'의 충고대로 복수를 멈추고 함께 멀리 떠났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햄릿은 그 유명한 비극의 주인공이 아닌, '오필리아'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엔딩의 주인공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클레어 맥카시 감독은 원작의 가장 비극적인 희생양을 통해 <햄릿>을 분해해서 재조립해냈다.

이 매력적인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맡은 것은 데이지 리들리이다. 프랑코 제피렐리의 [햄릿]에서 '오필리아'는 순수함의 상징이었다. 사랑하는 햄릿이 아버지를 죽이자 그 충격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한 그녀의 순수함은 예전엔 여성의 미덕으로 받아들여져서 밀레이를 비롯한 수많은 화가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21세기에서 더 이상 '오필리아'의 순수함은 미덕이 되지 못한다. 그 결과 냉철하고, 현명하고, 자기 주도적인 현대적인 '오필리아'가 등장한 것인데 데이지 리들리가 '오필리아'의 이미지 변신을 완벽하게 수행해낸 것이다.

영화가 '오필리아'를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햄릿 위주의 장면들은 생략이 되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왜냐하면 햄릿 위주의 중요한 장면이 생략되었어도 우리는 그 생략된 장면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널리 알려진 원작을 가진 영화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대신 원작에는 없었던 새로운 장면들을 추가하며 원작의 세계관을 더욱 다채롭게 확장시킨다. 이 영화에서는 거트루드의 숨겨진 언니, 그리고 출세 지향적인 클로디어스의 추악한 과거 등이다. 그래서 원작과는 달리 거트루드가 클로디어스를 칼로 찔러 죽이는 장면에 당위성을 부여해 낸다.

[오필리아]를 보는 내내 황홀했다. 사춘기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비극적인 이야기 속에 감춰진 강인한 여성의 초상을 완성해낸 클레어 맥카시 감독의 연출력이 감탄스러웠다. 나의 사춘기 시절,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읽고 나면 한참 동안 그 비극적인 상황 속에 나를 대입시켜 감상에 젖곤 했다. [오필리아]를 보는 동안 그러한 나의 옛 감정이 되살아났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며 사춘기 시절의 감정이 깡그리 사라진 줄 알았는데... 영화 마지막 장면, 노르웨이 군사들이 덴마크의 왕궁을 침범하여 학살을 벌이는 장면에서는 그 비극적인 현장에 내가 서 있는 듯한 착각도 느꼈다. '맞아, 난 비극을 더 좋아했었지?' [오필리아]를 보며 잊고 있었던 나의 소년적 감성을 다시금 느꼈다. 그래서 더욱 만족스러웠던 영화이다.


0 첫번째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페이스북 로그인
꾸미기
행운의 다이아몬드~ 클릭하시면 포인트 5점을 드려요~
마니아 혜택/신청
Copyright ⓒ EZHLD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