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들른 풍차박물관(Loosduins Museum) 주변을 돌아보고 난 후 '이준열사 기념관'으로 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네비게이션에서 가르쳐 준 정보는 거리 6.7km, 소요시간 12분.

시내 중심가라 일방통행이 많은 탓에 길을 잘못 드는 잠깐의 시행작오를 거친 끝에 이준열사기념관이 있는 거리에 도착.

기념관을 비롯한 주변 건물들은 암스테르담에서 보았던 창문이 두 칸, 세 칸, 네 칸짜리 건물들이다. 역사가 꽤 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 건물이어서 멀리서도 한 눈에 이준열사기념관임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한다.

머나 먼 유럽 땅에서 휘날리는 태극기! 가슴이 뜨거워진다.

길 건너편엔 차이나타운이 자리하고 있다. 

'해방당인가'(海方唐人街)란 현판이 눈길을 끈다. 당나라 사람들의 거리? 당나라 때 이 네덜란드까지 진출했단 말인가? 

19세기 무렵부터 해외로 진출한 화교들은 모든 차이나타운을 '당인가'로 이름 붙였다고 한다.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제국 당나라의 이름을 땀으로써 강한 나라 강한 민족임을 자부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는 중국인들, 넓은 대륙을 차지하고 있지만 돈이 되는 곳이면 세계 어디든 진출하는 욕심많은 민족이다.

이준열사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는 거리가 한인타운이면 좋으련만.......
차이나타운에서 쉬 볼 수 있는 한자간판처럼 우리말로 된 간판이 붙어있는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부를 창출하기 위해 진출한 헤이그, 그러나 우리나라에겐 오직 이준 열사가 있었기에 저 태극기가 날리고 있는 것일게다.

그만큼 그 분의 자취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후세에 아로새기고 있는 것이다.
 

건물 외벽에 'YI JUN PEACE MUSEUM'을 새겨놓았다. 이준평화기념관이다.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러 왔었기에 그 회의의 이름을 따서 '평화'란 단어를 쓴 것일까. 

1907년 6월 헤이그에서는 세계평화를 도모하기 위한 국제회의인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린다.

당시 고종 황제는 1905년의 일제에 강압에 의한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호소하기 위해 이 회의에 비밀리에 특사를 파견하는데......

밀명을 받아 이역만리길을 떠난 이준 열사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이상설을 만나고,

페테르스부르크에서 다시 이위종과 합류하여 헤이그로 함께 갔으나,

일제의 방해와 세계 열강의 무관심으로 회의에 참석하지도 못하고 울분을 삼켜야 했고

결국 그 해 7월 14일 이 준 열사는 당시 투숙하고 있던 호텔인 이 기념관에서 순국하고야 만다.

유럽에서의 유일한 항일기념지, 헤이그는 바로 그 세 사람의 안타까운 항일투쟁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정문에 '사단법인 이준 아카데미 이준열사기념관 이 집은 이준 열사가 순국하신 역사적인 집입니다.'라고 안내문을 붙여 놓았다.

문이 잠겨 있어 초인종을 누르자 우리말을 하는 여자분이 인터폰으로 용건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준다. 
안으로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갔더니 우리나라 여행객 세 사람이 한 남자분의 설명에 열심히 귀 기울이고 있었다. 

우리도 그에 합류한다.
안내를 해 주고 있는 두 분은 부부였다. 여자분의 이름은 '송창주', 남자분은 '이기항', 

역사적 소명의식 하나로 먼 이국 땅에서 기념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분들이다. 
2층과 3층 내실에 꾸며진 기념관을 돌아보며 1907년 이 헤이그에서 벌어졌던 우리의 아픈 역사를 듣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기념관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이준열사기념관을 보려면 홈페이지 http://www.yijunpeacemuseum.com/sub04/sub01_02.php 

기념관은 1907년 당시 이준 열사 등 대표단이 머물렀던 호텔(De Jong 호텔)로 1620년에 지어진 역사가 오래된 건물이다.

이 건물이 이준열사기념관로 만들어지기까지 이기항 송창주 부부의 애틋한 마음과 열심한 노력과 애정이 있었다.

기념관이 개관되던 해인 1995년,

그 전까지 호텔, 상가 등으로 사용되던 건물은 주변지역이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면서 헐릴 위기에 처하고야 만다.

이 소식을 접한 두 분은 사재를 털어 거금 20만달러를 들여 건물을 매입하고,

또 헤이그 시에 한국 역사 유적지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청원을 내게 된다.

다행히 헤이그 시 당국은 이 청원을 받아들여 재개발지역에서 해제해 줌으로써 지금의 기념관이 탄생하게 된다.

우리 정부에서 추진해도 쉽지 않을 일을 평소 이준 열사 기념사업에 애썼던 교민 두 분이 이루어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기념관을 찾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네덜란드 하면 어떤 인물이 떠오르냐고 물으면 누구의 이름이 나올까?

추측컨대 아마 히딩크가 아닐까? 이 준 열사의 이름이 나오는 사람은 열이면 과연 몇이나 될까?

기념관을 설립한 두 분의 걱정은 바로 우리 국민의 무관심이었다.

100년이 넘은 사건, 그래서 지금은 잊혀질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오겠지만.....

과거의 굴욕과 아픔을 잊는다면 그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미래에 또 그런 일을 당하지 말란 법이 있을까?

먼저 와 있던 세 명의 한국인 중 한 사람은 나이 어린 여대생이었다.

휴학을 하고 혼자서 유럽여행 중이라는 그 학생에게,

'헤이그엔 대단한 볼거리도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여기까지 올 생각이 들었냐'고 물었더니,

단지 이준 열사 기념관이 있다기에 들렸단다.

아! 우리나라엔 이런 젊은이들이 있기에 희망이 있는게 아닐까. 

우리 또한 바쁜 일정에도 헤이그에 들린 것이 너무나 잘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기념관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