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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한 밥 위에 김치 쭈욱 찢어 얹어 먹는 맛!
이지데이 이지데이 2007.12.18 17: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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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늦은 저녁 시간, 남편과 딸아이를 데리고 부산으로 갔습니다. 오래된 선후배가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저녁을 먹는다고 하니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겨울비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때 마침 오후 늦게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그칠 줄 모르더군요.

그런 날은 어디 다니는 것보다 집에서 편안하게 여가를 즐기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그날은 그런 여유를 잠시 미뤄야 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갑자기 휴대폰 벨이 울렸습니다. 의아해 하며 휴대폰을 받았습니다. 멀리서 전해 오는 목소리는 어머니였습니다.

집으로 전화해도 받지 않아 휴대폰으로 했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다급한 어머니와의 대화의 핵심은 쉬는 날 꼭 집에 들르라는 것이었습니다. 일요일 큰언니네가 와서 배추를 다 뽑기로 했고 다음날은 남들 다한 김장을 속히 해야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버스 안이라 더 이상 난감하다는 이유를 말하지 못하고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비는 늦은 밤까지 계속 내렸고, 몇 년 만에 만난 사람들의 얼굴은 정말 반가웠습니다. 우리는 늦도록 사는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다음 날, 늦은 아침을 먹고 아이들과 함께 부산의 일부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황령산 정상에 올라 사진도 찍고 추운 바람도 쐬었습니다. 강릉에서 내려온 남편의 선배 가족을 위해 광안리 바닷가에 가 겨울 바다도 보았지요.

그렇게 오후 늦게까지 가까운 사람들과 하루를 보냈습니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는 쉬는 날 와?한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오든 작은 언니가 오든 하여튼 누가 와야 김치를 담글 수 있으니 기다리겠다고 말입니다.

안 그래도 할 일이 태산 같이 많은데 김장을 하겠다고 배추를 모조리 뽑아 절여 놨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순간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싶어 그냥 있었습니다. 언니가 가든 제가 가든 둘 중 누구 한사람은 가야 할 상황이라 언니와 의논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아침 일찍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오전엔 바빠 못 올라가고 점심 전후라야 될 것 같다고 말입니다. 김치 담그는 시간을 따져 보니 저녁을 먹고 내려와야 할 것 같아 학교에서 돌아오는 딸아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제가 쉬는 날, 혼자 늦은 시간까지 집에 있게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딸아이와 함께 버스를 타고 고향에 간 셈이지요.

고향집에 어머니는 안 계시고 덩그러니 누렁이가 눈만 껌벅이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새로 한 마리를 사서 데리고 왔다는 작은 누렁이는 제가 누군가 싶어 고개를 삐죽 내밀고 쳐다보았습니다.

그냥 있을 수 없어 저 역시 한마디 건넸습니다. 작은 누렁이의 궁금증을 풀어 주기 위해 내던진 한마디 “내가 누군지 궁금하제? 내가 누군가 하믄, 이 집의 막내딸이다. 잘 기억해 두거래이. 알았나?”

어머니께서 오전에 재가 있어 절에 가겠다고 하셨는데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니 어머니는께서 오시더니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한마디 하십니다. 좀 일찍 와서 김치를 담가야지 해 떨어져 와서 언제 저 많은 걸 다 하려고 그러냐고 말입니다.

이래저래 앞뒤 절차 없이 어머니가 하고 싶은 말만을 다한 채 다시 우리는 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언니가 오면 바로 시작해도 해 넘어가기 전에 다할지 의문이지만 아무튼 언니가 와야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버스를 잘못 타 고생했다면서 투덜거리며 언니가 왔습니다.

어머니는 또 언니에게 한마디 건네며 일을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미리 준비를 다 해 놓으셨습니다. 앉아서 절여 놓은 김치에 양념을 묻히는 일만 남은 셈이었습니다. 절여 놓은 것도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아 쉽게만 생각했습니다.



작년엔 각자 자기 집 먹을 것만 담으면 되었기에 시간과 힘이 많이 들지 않았지요. 그렇게 생각만 하고 일을 시작했는데 해가 넘어가고 어둑해지도록 끝나지 않았습니다. 배추를 몽땅 뽑아 거의 다 절여 놓은 거여서 그 양이 엄청났습니다.

어머니도 도대체 몇 포기를 하는지조차 모르고 계셨습니다. 이번엔 오빠들 먹을 것까지 다해야 하니 만만찮은 양이었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몇 시간을 그렇게 김치를 독에 담고 통에 담아 젓갈 넣은 것과 굴 넣은 것을 따로 담아 두며 올해의 김장김치 담그는 일을 마무리했습니다. 허리가 아프고 팔이 저렸습니다. 정말 얼마만큼의 양을 했는지 모르지만 다 해 놓고 보니 많긴 많았습니다.

마당 한곳에 펼쳐진 그릇들을 챙겨 씻고 정리하는 동안 저는 저녁 먹을 준비를 했습니다. 따끈한 밥에 김치 한 포기 꺼내 밥 위에 찢어서 얹어 먹을 생각에 입안엔 군침까지 돌았습니다. 다들 김장김치 담그고 나면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갔습니다. 퇴근하고 작은 형부가 데리러 왔습니다. 함께 저녁을 먹고 못다한 얘기 나누다 어머니가 싸 주신 푸짐한 먹을거리들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통에 담긴 김치들을 따로 작은 김칫독에 다시 담고 겨울 내내 해먹을 것들을 생각하니 저절로 마음이 뿌듯해졌습니다. 대충 정리를 해 놓고 쉬고 있으니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는 잘 도착했는지 궁금해서 하셨지만 전 먼저 허리가 아프니 팔이 쑤시니, 뭐 그런 푸념부터 늘어놓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보니 아차, 싶었습니다. 담그는 것도 그렇지만 그 담그기까지의 준비 과정만 해도 엄청난 일인데 어머니에게 피곤함에 투정을 부린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그 과정도, 그 마음도 알아주지 못해 미안함이 더했습니다.

결국 저는 다시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맛있는 김치 잘 먹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쨌든 김장김치를 담그고 나니 올해 할 일을 다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성화에 마지 못해 해 놓은 일들이 든든하게 여겨졌습니다.

햅쌀 한가마니와 김칫독에 김치가 가득 들어 있음에 유난히 행복함이 느껴지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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