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좋아하는 사람의 보약... 올갱이국
이지데이 2007.12.18 17: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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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아마도 올갱이국일 것이다. 이는 그만큼 충청도에는 야트막한 산이 많고, 그 야트막한 산 계곡을 흘러내리는 티없이 맑은 물에 올갱이가 많이 산다는 뜻도 숨어 있다.

경상도에서는 '고디', 충청도에서는 '올갱이'라 불리는 다슬기. 다슬기는 1급수가 흐르는 시내나 하천에서 살아가는 달팽이류의 연체동물로 야행성이어서 낮에는 자갈이나 바위 밑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어야 바위 위로 올라온다. 또 다슬기는 강폭이 넓고 물이 그리 깊지 않은 곳에서 무리를 지어 사는 것이 특징이다.

충청도 청성의 보청천과 안남면 쪽의 금강, 동이면의 금강나루터와 금강휴게소 주변, 이원면에서 영동에 이르는 초강천, 충주의 남한강과 괴산의 괴강 등에서 다슬기가 많이 잡히는 것도 이곳을 흐르는 강들이 대부분 강폭은 넓으면서도 흐르는 물이 아주 얕기 때문이다. 충청도 청주를 비롯해 충주, 제천 등지에 올갱이국 전문점이 많은 것도 바로 이러한 지리적 조건 때문이 아니겠는가.

내가 어릴 때 살았던 마을(창원군 상남면 사파정리 동산부락)을 배암처럼 굽이쳐 흘러내리던 냇가에도 고디(다슬기)가 참 많았다. 그때 나와 동무들은 입이 심심해질 때면 바지를 정강이까지 끌어올린 채 냇가에 들어가 고디를 잡았다. 어찌나 고디가 많았던지 10여 분 정도 자갈이나 넓적한 돌을 뒤집다보면 어느새 한 되짜리 소주병이 가득 채워졌다.

그때 우리 마을 사람들은 고디로 국을 끓여 먹지는 않았다. 나와 동무들이 그렇게 고디를 소주병 가득 잡아 집으로 가져가면 마을 어머니들은 고디를 소금물에 담가 이물질을 토하게 한 뒤 솥에 넣고 물을 가득 부어 삶았다. 나와 동무들은 그렇게 삶은 고디의 꼬리부분 껍질을 이빨로 우드득 깨물어 부순 뒤 탱자나무 가시로 푸르딩딩한 고디 살을 빼먹었다.

약간 씁쓰레하면서도 쫄깃하게 씹히는 달착지근한 맛이 좋았던 다슬기. 조선시대 명의 허준의 <동의보감>에 따르면 "다슬기는 성질이 차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고 되어 있다. 이어 다슬기는 시력을 보호하고, 피를 맑게 해주는 것은 물론 간 기능 회복과 숙취 해소, 빈혈에도 큰 도움을 준다고 적혀 있다.



"아랫배가 더부룩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을 때 올갱이국 한 그릇을 먹으면 막힌 속이 확 풀리지요. 올갱이국은 특히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들한테는 보약과 같은 음식이지요. 술을 많이 마신 그 다음 날 손님들이 속풀이 용으로 자주 먹는 콩나물 해장국이나 북어국은 올갱이국 근처에도 못 오지요. 한번 드셔보세요. 제 말이 거짓말인가 아닌가."

지난 달 24일(수) 밤 11시. 출판사를 운영하는 김규철(47) 선생과 함께 찾았던 올갱이 요리 전문점 '충청도 올갱이촌'(서울 종로구 청진동 90번지). 이 집 주방에서 일하는 임은정(51)씨는 "올갱이국, 하면 충청도에 가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맛보는 충청도 올갱이국도 별미"라고 말한다. 이 집에서 만드는 올갱이국이 충청도식 그대로란 그 말이다.

나이가 51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얼굴에 주름살 하나 없는 임씨는 "올갱이국을 만드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임씨가 올갱이국을 끓이는 비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끓는 물에 살짝 익힌 올갱이를 바늘로 빼낸 뒤 올갱이를 삶은 파란 국물에 된장과 부추, 아욱, 대파 등을 넣고 끓여 송송 썬 매운 고추를 올리면 끝이라는 것.

임씨는 "이곳에서 만드는 올갱이국은 충청도에서 직송되어 올라온 살아 있는 싱싱한 올갱이만을 사용한다"고 귀띔한다. 이어 "올갱이는 칼로리가 낮고 소화가 아주 잘 돼 직장에 다니는 젊은 여성들도 다이어트를 위해 점심 식사 때 자주 찾는다"며, 올갱이국이야말로 충청도 사람들의 자존심을 한껏 세워주는 음식이라고 덧붙인다.

30평 남짓한 깔끔한 실내. 저만치 식당 들머리에 놓여있는 커다란 수족관 유리벽에는 살아 꿈틀거리는 올갱이들이 자갈처럼 빼곡하게 붙어 있다. 식당 안에는 11시가 훨씬 지난 늦은 밤인데도 소주잔을 부딪치며 올갱이국에 밥을 말아 먹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도대체 이 집 올갱이국이 얼마나 구수하고 시원하기에 저리도 밤늦게까지 맛깔나게 먹고 있단 말인가.

잠시 뒤, 임씨가 빙긋이 웃으며 식탁 위에 밑반찬을 놓기 시작한다. 하얀 접시에 깔끔하게 담긴 김치와 콩나물무침, 고구마줄기무침, 도라지무침이 첫눈에 보기에도 정성을 다한 것처럼 보인다. 이어 송송 썬 매운 고추가 담긴 올갱이국(5천원)이 하얀 쌀밥 한 그릇과 함께 코 앞에 놓인다. 언뜻 보기에는 그저 아욱과 된장을 넣고 팔팔 끓여낸 시래깃국 같다.



소주 한 잔 입에 털어 넣고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 올갱이 살점과 함께 국물을 한숟갈 떠서 입에 넣자 구수한 맛이 순식간에 입천장에 화악 퍼진다. 국물을 몇 수저 더 떠서 후루룩후루룩 삼키자 이내 이마와 목덜미에 땀방울이 송송 맺히면서 아까부터 쓰리고 더부룩했던 속이 시원하게 풀리기 시작한다.

시원하고 구수한 올갱이 국물을 떠먹을 때마다 이 사이에서 쫄깃쫄깃 씹히는 올갱이 맛도 정말 기막히다. 어릴 때 탱자나무 가시로 빼먹었던 그 올갱이 맛처럼 약간 씁쓰레한 맛이 나면서도 씹으면 씹을수록 달착지근한 깊은 맛이 솔솔 배어난다. 가끔 집어먹는 도라지무침도 아삭아삭 씹히는 게 입속을 향긋하게 만든다.

올갱이국 한 그릇을 순식간에 바닥까지 깨끗하게 비워낸 김규철 선생은 "내 머리털 나고 이렇게 구수하고 시원한 음식은 처음 먹어보는 것 같다"며, 이마의 땀을 훔친다. 그리고 "아까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집에서 올갱이국을 끓여도 이런 맛이 날까요"라며 넌지시 임씨에게 올갱이국 만드는 비법을 묻는다.

이에 임씨는 "집에서 맛있는 올갱이국을 끓이려면 살아있는 올갱이를 2~3일 동안 깨끗한 물에 담가 잔모래를 뺀 뒤 20~30분 정도 삶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이어 바늘로 빼낸 올갱이살에 밀가루를 살짝 묻혀 부추와 마늘을 넣고 잠시 끓여야 올갱이 특유의 비린 맛이 없어지면서 쫄깃쫄깃해진다고 귀띔한다.



"올갱이국은 싱싱한 올갱이를 재료로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집에서 담근 구수한 된장맛이 중요해요. 요즈음에는 된장을 만들 때도 수입산 콩을 사용하고, 올갱이국을 끓일 때도 수입산 올갱이를 사용하는 집도 더러 있어요. 하지만 저희들은 '신토불이'를 믿고 국산 콩으로 된장을 직접 담그고, 충청도에서 잡히는 싱싱한 올갱이만을 사용하지요."

※충청도 올갱이촌(서울 종로구 청진동 90번지, 02-738-4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