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0대 초반의 회사원입니다. 창피하지만 이번 연애가 저는 처음이에요. 변명을 하자면 그동안 공부와 일에 집중하느라 연애를 할 시간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번 연애를 시작하며 빨리 결혼을 해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실수가 더 잦았던것 같아요.

헤어진 남자친구의 이별통보에 처음은 화도 나고 이해가 안됐었는데 바닐라로맨스님의 글들을 읽어보니... 저와 비슷한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그리고 제가 뭘 잘못했는지도 알겠더라고요... 하여간 남자친구가 안하무인격의 제 행동들에 지쳐서 헤어지자고 했을때 처음엔 자존심에 버팅기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매달렸는데 이또한 방법은 아니더라고요... 

그렇게 밥도 제대로 못먹으며 일주일을 보냈는데 헤어진 남자친구 연락이 뜬금없이 찾아왔어요. 서로 얽혀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긴 했지만 굳이 제게 연락을 할 필요는 없는 일이라... 혹시... 마음이 좀 풀어진건가.. 싶다가도 괜히 헤어진 남자친구 연락에 좋다고 달려들었다가 일을 망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는 상태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요 있네요... 저는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요? - O양 

재회상담을 하면서 내담자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쫄지 좀 말아요. 죽을죄졌어요?"라는 말이다. 헤어진 남자친구 연락에 당황하거나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주눅이 드는 사람들은 "제가... 잘못해서 남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했어요... 반성하고 있어요..."라고 이야길 하는데... 뭘 그렇게 잘못을 했을까? 남자친구 몰래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다가 현장을 딱 걸렸나? 

아니면 남자친구 제테크를 해주겠다며 몰래 월급통장에 있는 돈을 몽창 뽑아다가 가상화폐에 올인해서 1/3 토막이 났는가? 대체 뭐가 그렇게 미안하고 반성을 하고 있다는 걸까? 이야길 들어보면 평소에 사소한 것으로 짜증도 많이 내고, 남자친구를 이해해주지 않고, 가끔 먼저 아무렇지 않게 헤어지자는 말도 했다는 식이다. 물론 이런 일들이 잘한 일은 아니다. 

다만 이런 행동들이 꼭 이별을 해야하는 절대적인 원인은 되지 않는다. 앞으로 이별과 관련해선 절대적인 잘못은 이렇게 생각하자. "유책 배우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잘못" 알프레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서는 기존의 원인론을 부정하며 목적론을 주창했다. 

우리는 흔히 어떤 행동을 하게된 데에는 그만한 원인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개인심리학에서는 원인보다 그 행동을 하게된 목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어렸을적 개에게 물린 트라우마 때문이라며 원인론적 사고를 하지만 개인심리학에서는 개와 가까이 하기 싫어서 어렸을적 개에게 물린 기억을 떠올린다며 목적론적 태도를 견지한다. 

이게 무슨말인가 싶을거다. "아니! 개를 무서워하는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전에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해보자. "그럼 어렸을적에 개에게 물린 모든 사람들은 커서도 개를 무서워할까?" 아들러가 원인론 자체를 아주 부정하는건 아니다. 

분명 과거의 어떤 큰 사건들은 그 사람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기 쉽다. 다만 그 사람의 현재 행동을 결정하는건 과거의 사건보다 현재 자신이 원하는 목적이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럼 목적론을 헤어진 남자친구 연락에 주눅들어 있는 O양의 사연에 적용해보자. 

지금 O양의 원린론적인 관점에서 남자친구의 행동을 바라보자면 "내가 잘못해서 남자친구가 헤어지고 싶을 만큼 나를 싫어할거야." 가 될것이다. 내가 잘못이라는 원인을 제공했고 그래서 남자친구가 O양을 싫어하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이별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목적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다소 발칙한 이야기가 된다. 바로 "남자친구가 헤어지고 싶으니까 나랑 싸웠던 일들을 끄집어 내서 헤어지자고 하는구나?" 이다. 목적론으로 생각하라는건 남자친구 탓을 하고 따지라는게 아니다. 시각을 바꾸고 지나치게 상대에게 주눅들지 말고 당당히 대화를 하라는 뜻이다. 원인론의 문제는 변화가 어렵다는거다. 

이미 O양은 남자친구 속을 다 긁어 놨으니 죄인이고 이 죄를 만회해야하는데... 과거의 잘못을 어떻게 보상할 것이며 과거는 바꿀 수 없으니 관계의 개선도 어렵다. 하지만 목적론으로 생각하면 "아... 싸우다 감정이 격해져서 헤어지자고 했구나?"라고 생각하며 좀 더 부드럽게 관계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시도할 수 있다. 

그러니 O양이 목적론으로 사고방식을 바꾼다면 헤어진 남자친구 연락에 괜히 주눅들고 저자세를 취하며 갑을 관계를 맺기보다 보다 당당한 스탠스를 가지고 대화를 하자. 주도권을 빼앗기 위해 쎈척하라는게 아니다. 미안한건 미안한것이지만 죽을죄를 지은것처럼 납작 엎드리는것은 재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 굳이 저자세를 취하지는 말라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