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나와 함께 한 넷플릭스 영화들... [키싱 부스 3], [케이트], [나이트북 : 밤의 이야기꾼]
올해 추석은 주말까지 끼어서 무려 5일간의 연휴였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고, 명절을 맞이하여 가족 모임도 제한된 상태이며, 아쉽게도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마저 부재한 상황이라 5일간의 연휴가 지루하기까지 했다. 결국 지루한 나의 시간을 메꿔준 것은 넷플릭스 영화들이다. 계획은 하루에 한 편씩 다섯 편의 넷플릭스 영화를 보는 것이었지만, TV를 독차지한 아내의 만행으로 인하여 겨우 세 편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 세 편조차도 아내가 TV를 양보(안방에서 자느라...)해줬기 때문에 가능했으니... 요즘 들어서 아내로부터 TV 채널권 독립이 간절해지고 있다. 빨리 돈 벌어서 TV를 두 대 놓을 수 있는 큰 집으로 이사를 가는 수밖에... ^^
[키싱 부스 3] - 우정과 사랑을 위한 선택이 아닌, 나를 위한 선택
감독 : 빈스 마르셀로
주연 : 조이 킹, 제이콥 엘로디, 조엘 코트니
사랑을 택하자니 우정이 울고, 우정을 택하자니 사랑이 우는 상황을 절묘한 청춘 로맨스로 그려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키싱 부스]가 드디어 시리즈의 최종 편인 3편이 지난 8월 1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 [키싱 부스]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와 더불어 넷플릭스 청춘 로맨스 영화 중 가장 재미있게 봤던 영화이니만큼 최종 완결 편에 대한 나의 기대는 당연했다.
일단 그동안의 스토리를 정리해 보자. [키싱 부스]는 같은 날 태어나 둘도 없는 절친 사이가 된 엘(조이 킹)과 리(조엘 코트니)의 우정에 대한 영화이다. 둘은 우정을 지키기 위해 몇 가지 룰을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친구의 가족, 사촌과는 사랑에 빠지지 말 것이다. 문제는 엘이 리의 형이자 학교 킹카인 노아(제이콥 엘로디)에게 자꾸만 마음이 간다는 것이다. 애써 노아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부정하지만 학교 자선행사 도중 '키싱 부스'에서 벌어진 키스 사건으로 결국 엘과 노아의 관계는 사랑으로 발전하고, 이를 알게 된 리는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물론 청춘 로맨스 영화인 만큼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엘은 리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노아와의 사랑을 쟁취했고, 리 역시 두 사람의 사랑을 인정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키싱 부스]는 '엘과 노아는 서로 사랑하며 영원히 행복했습니다.'로 끝나지 않는다. 노아가 하버드 대학에 진학하여 멀리 떠났기 때문이다. [키싱 부스 2]는 바로 이 시점에서 시작한다. 엘과 노아는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지만 이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엘은 노아의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지켜주고 싶지만 노아의 대학 친구라는 심하게 섹시한 클로이가 자꾸만 마음에 쓰인다. 게다가 엘에게도 마르코라는 새로운 남자가 적극적으로 대시를 하기 시작하며 엘과 노아의 사랑은 위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이 정도 위기로 무너지면 청춘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없다. 당연히 엘과 노아는 서로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나 사랑을 지켜 낸다.
이제 엘과 노아가 서로 사랑하며 영원히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그럴 리가.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이번에는 엘의 대학 진학이 문제가 된다. 엘은 어렸을 적부터 리와 버클리 대학에 함께 진학하자고 약속을 했다. 하지만 노아가 진학한 하버드에도 가고 싶다. 결국 두 대학에 입학 지원을 했는데, 두 대학에 모두 덜컥 합격해 버린다. 버클리 대학을 선택하자니 노아가 울고, 하버드를 선택하자니 리가 우는 상황. 엘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키싱 부스 3]는 바로 이 시점에서 시작한다.
[키싱 부스 3]에서 엘은 결국 하버드를 선택한다. 그리고 버클리에도 합격했다는 사실을 리에게 감춘다. 대신 리를 배신한 것에 대한 보상을 해주기 위해 졸업전 마지막 여름은 리를 위해 보내기로 한다. 하지만 엘이 리를 위한 여름을 보내기 위해 노력을 하면 할수록 노아와 자꾸 싸우게 되고, 리와 노아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다 보니 엘도 점점 지쳐만 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아는 무엇이 엘을 위한 최선인지를 깨닫게 된다. 바로 엘에게 이별을 선언하는 것.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는 식상한 이별 공식이 엘과 노아에게 적용된 것이다. 도대체 두 사람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엘이 리와의 우정을 위한 버클리와 노아와의 사랑을 위한 하버드를 두고 고민하는 사이 중요한 한 가지가 빠졌다. 그것은 바로 엘 자신이다. 엘은 과연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엘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어느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것일까? 미성년과 성인의 기로에서 첫걸음을 떼어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 엘은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리와 노아를 위한 선택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아가 엘에게 이별을 선언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자신이 엘의 곁을 버티는 동안 엘은 결국 자신이 아닌 노아를 위한 선택을 하리라는 것을 노아는 깨달은 것이다. 노아의 깨달음대로 노아와 이별을 하게 된 엘은 자신이 게임 콘텐츠 개발을 하고 싶고, 이를 위해서 USC 진학을 선택한다.
그렇다. 엘과 노아의 사랑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하지만 아쉬워할 것은 없다. 대학 졸업 후 변호사가 된 노아와 작은 게임 회사에서 게임 콘텐츠 개발자로 새 출발을 하게 된 엘은 결국 만난다. 물론 두 사람의 사랑이 다시 시작될 것인지, 아니면 옛 추억으로만 간직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두 사람의 사랑이 진실되었다면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깨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가벼운 청춘 로맨스 영화로 시작되었던 [키싱 부스]는 이렇게 마지막 3편에 가서는 로맨스가 아닌 엘의 성장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달달한 청춘 로맨스의 해피엔딩을 기대했다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러한 결말이 꽤 마음에 들었다. 물론 성인이 된 엘과 노아가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는 전제 아래 말이다.
[케이트] - 사건의 진실도 복수도 엉망이었지만, 어린 소녀를 지키는 것만큼은 제대로 해냈다.
감독 : 세딕 니콜라스 트로얀
주연 :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미쿠 마티노, 우디 해럴슨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을 시작으로 이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액션 영화는 흔한 장르가 되었다. 최근에 극장에서 본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만 하더라도 강력한 여성 캐릭터들이 가득한 영화였으니 말이다. [케이트]도 그중의 하나이다. [케이트]는 조직에 의해 무자비한 암살자로 키워진 '케이트'(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가 야쿠자 보수인 키지마(쿠니무라 준) 암살에 실패 후 자신이 24시간 안에 죽게 될 치명적인 독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복수극이다.
제한된 시간은 단 하루이다. 그 안에 자신에게 독(방사능)을 투여한 것이 분명한 키지마를 찾아 없애야 한다. '케이트'는 잠적한 키지마를 찾기 위해 키지마의 유일한 혈육인 조카 아니(미쿠 마티노)를 납치한다. 그렇게 결국 키지마의 은신처를 알아내고 복수의 기회를 잡지만, 키지마로부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녀에게 독을 투여한 것은 키지마가 아니었던 것. 그렇게 '케이트'의 복수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흠... 일단 볼거리는 풍성하다. 치명적인 독에 중독된 킬러 '케이트'를 연기한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의 매력이 상당하다. 그리고 '케이트'와 아니의 조합도 꽤 신선하다. [레옹]의 '레옹'(장 르노)과 마틸다(나탈리 포트만)를 연상시킨다고나 할까. 물론 굳이 깐깐하게 따진다면 국내에서는 뻔뻔스럽게 '레옹 파트 2'라는 부제를 달고 개봉한 [와사비]에서 위베르(장 르노)와 유미(히로스에 료코)를 떠올리는 것이 더 합당하긴 하지만... 영화를 가득 채운 일본의 밤거리 풍경도 사실 [레옹]보다는 [와사비]에 이 영화를 비교하는 것이 맞아 보이긴 한다.
솔직히 영화의 만듦새도 [레옹]보다는 [와사비]에 더 가깝다. 일단 영화의 설정 자체가 이상하다. 자, 꼼꼼히 따져보자. '케이트'에게 독을 투여한 것으로 의심을 받는 첫 번째 용의자는 키지마이다. 실제 '케이트'는 키지마의 동생을 암살한 전력이 있기에 키지마와 원한 관계이다. 그리고 '케이트'가 독에 중독된 덕분에 키지마의 암살이 실패로 돌아갔으니 실질적인 이득을 본 것도 키지마이다. 하지만 조금 이상하다. 키지마가 범인이라면 왜 죽이지 않고 독만 투여한 것일까? 기회가 되었을 때 '케이트'를 죽여 버리면 더 깔끔할 텐데, 굳이 독을 투여해서 '케이트'가 복수를 할 수 있는 하루의 시간을 내준 것이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대부분 이런 유의 영화에서 마지막 반전이라며 내놓는 어이없는 진범인 '케이트'의 조직 내부인인 베릭(우디 해럴슨)이 범인일까? 실제 '케이트'는 키지마 암살을 마지막으로 조직을 떠나 평범한 인생을 살겠다고 선언했다.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케이트'를 없애버리는 것은 이런 유의 영화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키지마 암살 전에 독을 먹일 필요가 있었을까? 키지마 암살이 끝난 후라면 모를까, 굳이 '케이트'의 마지막 임무가 끝나기도 전에 독을 먹여 임무를 실패하게 만든다는 것부터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마지막 용의자는 야쿠자 조직의 이인자 렌지이다. 키지마를 죽이고 나면 렌지가 조직을 이어받게 될 테니까. 하지만 이 역시 말이 안 된다. 이유는 베릭이 범인인 것이 앞뒤가 안 맞는 것과 같다. 렌지 입장에서는 키지마의 죽음을 가장 원했을 텐데, 키지마 암살 전에 킬러인 '케이트'에게 독을 투여해서 임무를 실패하게 이끈다는 것조차가 난센스이다. 그렇기에 [케이트]가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든 설정 자체가 엉망인 영화인 셈이다.
영화의 설정 자체가 엉망이다 보니 진실이 드러났을 때 너무 억지스러운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총격전이 허무하다는 점이다. 그나마 제2의 '케이트'가 될 운명인 아니를 구하려는 '케이트'의 몸부림은 인상적이긴 하다. 아니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과, 아니에게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며 괴로워하는 모습 등, 결국 [케이트]는 사건의 진실도, 복수도 엉망진창이었지만 어린 소녀를 지키는 것만큼은 제대로 한 여성 킬러의 이야기로 1/3의 성공만 거둔 셈이다.
[나이트북 : 밤의 이야기꾼] - 어린이용 판타지와 섬뜩한 공포의 중간 단계
감독 : 데이비드 야로베스키
주연 : 윈슬로 페글리, 리디아 주잇, 크리스틴 리터
[나이트북 : 밤의 이야기꾼]은 무려 샘 레이미가 제작에 참여했다. 요즘은 샘 레이미가 [스파이더맨],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을 연출한 블록버스터 감독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샘 레이미는 초창기 저예산 공포 영화 [이블 데드]로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를 열광시킨 천재 감독이었다. 일본 공포 영화를 리메이크한 할리우드판 [그루지]를 비롯하여 [부기맨], [맨 인 더 다크], [크롤] 등을 기획, 제작하며 녹슬지 않은 공포 감각을 폼 내기도 했다. 그런 샘 레이미가 제작에 참여했으니 [나이트북 : 밤의 이야기꾼]은 그저 어린이용 판타지 영화는 아닐 것 같았다.
무서운 이야기를 쓰는 것이 유일한 취미인 소년 앨릭스(윈즐로 페글리)는 친구에게 괴짜라며 따돌림을 당하자 마음의 상처를 입고 평범해지기로 결심한다. 평범해지기 위해서는 그동안 무서운 이야기를 써놓은 '나이트북'을 없애야 한다. '나이트북'을 들고 아파트 지하의 보일러실로 향하던 앨릭스. 그런데 이상한 힘에 이끌려 마녀(크리스틴 리터)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매일 밤 마녀에게 재미있고 무서운 이야기를 해줘야만 살수 있는 상황. 앨릭스는 자신보다 먼저 마녀에게 납치된 야즈민(리디아 주잇)과 함께 마녀에게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내용만 놓고 보면 [나이트북 : 밤의 이야기꾼]은 영락없이 어린이용 판타지 영화이다.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마녀를 연기한 크리스틴 리터가 넷플릭스에서 방영했던 마블 드라마 <제시카 존스>의 주인공임을 감안한다면 하나도 무섭지 않을 것 같은데, 놀랍게도 그렇지가 않다. 분위기가 으스스한 것이 성인인 내가 봐도 (물론 나는 겁이 많은 편이다.) 섬뜩함이 느껴진다. 그렇기에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와 함께 보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지난 2월에 봤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영화 [마녀를 잡아라]와 비슷하다.
물론 장단점은 있다. 비록 너무 어린 자녀와 함께 볼 수는 없겠지만, 성인이 함께 본다면 꽤 재미있게 볼 수는 있다. 앨릭스가 마녀에게 해주는 이야기를 재현해낸 장면이라던가, 앨릭스와 야즈민이 마녀의 집에서 탈출하기 위해 마녀를 속이는 장면 등은 성인이 보기에도 전혀 유치하지 않은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영화 후반 '헨젤과 그레텔'을 연상시키는 장면은 살짝 무섭기까지 했다.
솔직히 영화를 보며 당혹스러웠다. 비록 샘 레이미가 제작에 참여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어린이용 판타지 영화처럼 보였던 영화가, 영화 내내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며 섬뜩한 이야기가 진행되니,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 보던 나는 자세를 바로잡고 앉은 채 잔뜩 긴장하며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나이트북 : 밤의 이야기꾼]은 굉장히 인상 깊은 영화일 수밖에 없었다.
마녀의 정체에 대한 반전도 깔끔했고, 마녀를 이용해서 마녀를 물리치는 트릭도 기발했다. 평범하지 않았던 앨릭스가 평범해지려다가 마녀에게 잡혀 들어가 위험천만한 모험을 하는 과정을 통해 [나이트북 : 밤의 이야기꾼]은 평범하지 않음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라는 교훈도 안겨준다. 천편일률적인 교육을 시키며 내 아이를 평범하게 만드는데 익숙한 우리 부모에게 일침을 가하는 교훈이 아닐까 싶다. 비록 너무 어린 자녀와 보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지만, 이제 진로를 걱정할 중학생 자녀와 함께 보기에는 안성맞춤인 다크 판타지 영화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