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2021년에 개봉했던, 내가 보겠다고 리스트 업을 해놨던 영화들을 더 늦기 전에 한 편씩 보고 있는 중이다. 아무래도 기대작들은 극장에서 거의 봤고, 극장에서 놓쳤어도 OTT에 출시되자마자 챙겨보는 편이라, 이렇게 뒤늦게 보는 영화들은 내 취향은 아니지만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화들이 많다. 지난 주말에 본 [바쿠라우]와 [잘리카투]가 대표적인 경우. 그 두 영화가 굉장히 투박한 영화들이라면 이번엔 조금 고풍스러운 유럽 판타지 영화를 몰아서 봤다. 독일의 거장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의 [운디네]와 독특한 폴란드 판타지 [첫눈이 사라졌다]가 그 주인공이다. 참! [운디네]는 [트랜짓], [피닉스]에 이은 나의 세 번째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의 영화이다. 나 아무래도 이 감독 좋아하는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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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디네] - 평범한 멜로 영화도 아름다운 판타지로 만들어 버리는 감독의 역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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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크리스티안 펫졸드

주연 : 폴라 비어, 프란츠 로고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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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개발 전문 역사학자이자 박물관 관광 가이드 '운디네'(폴라 비어)는 운명적인 사랑이 믿었던 요하네스(제이콥 맛쉔즈)에게 이별을 통보받는다. 절망에 빠진 그녀 앞에 산업 잠수사인 크리스토프(프란츠 로고스키)가 나타나고 이내 '운디네'는 크리스토프와 깊은 사랑에 빠져든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크리스토프와 행복한 '운디네'의 모습을 목격한 요하네스가 '운디네'에게 다시 시작하자고 매달리고, '운디네'가 요하네스에게 잠시 마음이 흔들리는 사이 크리스토프는 잠수 중 사고를 당해 뇌사 상태에 빠지고 만다. 분노에 찬 '운디네'는 요하네스에게 복수를 다짐하는데...

영화의 제목인 '운디네'는 유럽의 강이나 샘에 사는 물의 요정이라 한다. 아름다운 처녀의 모습으로 때로 남자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 '운디네'는 원래 영혼을 갖고 있지 않지만, 남자와 사랑을 하게 되면 인간의 영혼을 얻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남자가 배반을 하면 요정 세계의 규율에 따라 남자를 죽이고 다시 물로 돌아가야 한다. 이 전설은 1811년 독일 작가 프리드리히 데 라 모테 푸케에 의해 동화로 창작되었고, 독일의 낭만파 시인 E.T.A. 호프만과 K.기르슈너에 의해 오페라로 개작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운디네'의 전설을 모르고 영화를 보면 [운디네]는 그저 한 여자의 슬픈 사랑과 복수일 뿐이다. 하지만 '운디네'의 전설에 대해서 알고 나면 이 영화가 다시 보인다. 영화 초반 요하네스가 '운디네'에게 이별을 통보할 때, '운디네'는 그러면 내가 널 죽여야 한다며 눈물을 보인다. 처음엔 이별을 통보받은 여인의 한 맺힌 독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운디네' 전설을 알고 나니 그건 빈말이 아니었다. 만약 크리스토프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정말 요하네스는 이별을 통보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전설 속의 내용 그대로 '운디네'에게 죽임을 당했을 듯.

'운디네'와 크리스토프의 사랑도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다. 단지 크리스토프가 산업 잠수사라는 것이 독특했는데, 작업 도중 거대한 전설 속의 메기와 마주치는 장면은 굉장히 환상적이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운디네'와 크리스토프의 사랑에 판타지적 요소는 없어 보인다. 물론 이미 [트랜짓]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어쩌지 두 배우가 낯이 익더라.) 폴라 비어와 프란츠 로고스키의 연기가 영화를 달달하게 만들었지만 이대로라면 [운디네]는 그저 독일을 배경으로 한 예쁜 사랑 이야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문제는 요하네스가 뻔뻔하게도 다시 시작하자며 '운디네'에게 매달리면서부터이다. 하필 그날 크리스토프는 작업 도중 사고를 당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사고를 당해 뇌사 상태에 빠졌을 시간에 '운디네'에게 전화를 걸어 '운디네'와 요하네스의 관계를 추궁했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프의 사고가 요하네스에게 잠시 한 눈을 판 '운디네' 때문임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크리스토프의 사고를 알게 된 '운디네'는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의 죄책감을 고스란히 요하네스에게 되갚아 준다. '운디네'의 전설과 같은 결말이 완성된 셈.

기적적으로 뇌사 상태에서 깨어난 크리스토프는 '운디네'를 찾아 헤매지만 '운디네'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가 다시 '운디네'를 만난 것은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크리스토프가 산업 잠수사로 다시 복귀하여 물속에서 잠수를 했을 때이다. 마치 오래전 전설 속의 메기와 마주친 것처럼 작업 도중 '운디네'의 손길을 느꼈던 크리스토프. 하지만 정말 물속에서 '운디네'와 마주쳤다는 아무런 증거는 없다. 그렇게 크리스토프는 마음속 깊은 곳에 '운디네'를 가슴에 묻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다.

'운디네'는 정말 전설 속의 물의 요정이었을까? 알 수가 없다. 그녀가 정말 물의 요정이라서 사랑을 잃고 자신을 배반한 남자를 죽인 후 물로 돌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요하네스를 죽이고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으로 참석한 복수에 눈이 멀어 살인을 저지른 여자에 불과할지도... 하지만 남겨진 크리스토프 입장에서는 그녀가 이름 그대로 전설의 물의 요정이라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잠수 작업을 하면 또다시 그녀와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사는 것이 더 아름다울지도... 판타지 영화라기보다는 멜로 영화라는 장르와 더 잘 어울리지만,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의 연출력 덕분에 [운디네]는 굉장히 아련한 물의 요정의 슬픈 사랑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바로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의 역량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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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사라졌다] - 초능력 마사지사가 첫눈과 바꿔치기 당한... 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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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 마셀 엔그레르트

주연 : 알렉 엇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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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바르샤바의 부촌 마을 사람들을 우크라이나 출신의 마사지사 제니아(알렉 엇가프)가 환상적인 마사지 솜씨로 사로잡는다. 세 아이의 뒤치다꺼리에 하루 종일 정신이 없는 여자,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자, 반려견에 대한 넘치는 사랑 때문에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 관심이 없는 여자, 마을 사람들과 사소한 일로 다투기만 하는 퇴역 군인 등. 가진 것은 많지만 무언가 마음 한구석이 결핍된 그들은 제니아의 마사지에 위안을 느낀다. 사실 제니아에게는 마시지 외에도 한 가지 능력이 더 있다. 바로 최면술이다. 제니아는 마시지와 최면술을 이용하여 마을 사람들의 심신 안정을 돕는다. 그런데 어느 날 감쪽같이 제니아는 사라지고, 제니아가 사라지자 한동안 내리지 않았던 눈이 마을을 하얗게 물들인다.

우리가 자신에게 익숙한 영화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예상할 수 있는, 그래서 예상치를 근거로 기대할 수 있는 영화적 재미 때문이다. 반대로 익숙하지 않은 영화는 어떤 영화인지 알 수도 없고, 어떤 영화인지 모르니 기대를 할 수도 없다. 물론 가끔 그런 의외성 덕분에 짜릿한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들은 당혹스러움을 안겨준다. [첫눈이 사라졌다]가 바로 내게 의외성 때문에 당혹스러움을 안겨준 대표적인 영화이다.

네이버에서 [첫눈이 사라졌다]의 장르는 판타지로 소개되었다. 게다가 [월요일이 사라졌다]를 연상하게 만드는 국내 제목(영어권 개봉 제목은 원제 'Never Gonna Snow Again'이다. 직역하면 '다시 눈이 오지 않는다' 정도) 때문에 [첫눈이 사라졌다]는 미스터리 판타지로 내게 인식되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것들과는 전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물론 미스터리한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제니아가 최악의 원전 사고가 발생한 체르노빌 인근에서 사고 발생 7년 전에 태어났다는 영화 초반 언급을 통해 제니아의 초능력(염력, 최면술)이 원전 사고에 의한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가 있다. 게다가 의문의 남자 두 명이 제니아를 찾는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들이 제니아를 찾는 이유가 밝혀지지는 않지만 제니아가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한 부분은 딱히 없었고, 제니아를 찾는 두 남자도 제니아 찾기가 우선순위는 아니었던 것 같다는 인상을 심어줘서 미스터리한 부분이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대신 영화는 시종일관 잔잔하다. 제니아가 마사지에 필요한 간이침대를 어깨에 메고 마을을 거니는 장면이 이 영화에서가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을 정도. 마을 사람들도 저마다 사연이 있지만 그다지 특별하지는 않고, 최면술을 이용한 제니아의 치료도 별로 특별한 것이 없다. 그저 제니아가 마을 사람들의 집에 방문하여 마사지하고 최면술로 치료를 하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니 지루하기까지 했다.

영화의 마지막은 더욱 혼란스럽다. 시한부를 살던 남자가 죽고, 그 남자의 부인과 잠자리를 한 제니아는 그를 대신하여 학교 마술쇼에 참가한다. 그리고 마술 도중 홀연히 사라진다. 상자에 있어야 할 제니아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자 당황하는 마을 사람들처럼, 이 장면을 보는 나 역시도 적잖게 당황했다. '이거 뭐지?' 며칠 전 [잘리키투]를 보며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 났다. 하지만 [잘리카투]의 경우는 감독이 의도는 이해가 되었지만 [첫눈이 사라졌다]는 감독의 의도조차 파악되지 않았으니 당혹스러움은 더욱 컸다.

누군가 눈은 치유와 구원을 의미하고, 눈이 내리지 않은 마을에서 제니아가 사라짐과 동시에 눈이 내리기 시작한 것은 제니아의 희생으로 마을 사람들이 치유와 구원을 얻었다는 내용이라고 해석했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감독의 의도가 어땠는지, 정말로 눈이 치유와 구원을 뜻하는 것인지,(반대로 제니아가 기억하는 눈은 원전 사고로 인하여 하늘에 흩뿌려진 방사능 재였다.) 이렇게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영화는 영화가 아무리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아도 본 것을 후회하게 된다. 고풍스러우면 뭐 하나.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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